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때의 일이다. 서양의 문예사조사를 가르치던 노 교수는 문예사조를 결정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는 것을 발표했는데, 일명 '반발의 원리'였다. 내용인 즉슨 예컨대 16,17세기에 부흥했던 고전주의는 과거의 미를 추구하며 조화와 형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는데, 이후에 등장한 낭만주의는 이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추구하였다. 뒤에 나타난 사실주의나 상징주의도 반발, 혹은 반발의 반발로 태어났다는 일관된 원칙이 '반발의 원리'라고 했다. 물론 이러한 원리가 훨씬 오래 전부터 정리되었다고 옆에 앉은 선배가 귀띔해 주었다. 문예사조와 관련해 한 가지 더 귀기울일 만한 원리는 최신의 사조가 이제까지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며, 그래서 한 시대의 사조는 '독식'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다. 비단 문예사조만 그러할까. 철학사는 물론 학문의 영역을 넘어 '승계구도'를 가지고 있는 모든 구성원 내면에 탑재된 욕망이다.

내가 88만원 세대를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문예사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책이 지향하는 행동이 바로 '반발'이며, 이 책이 우려하는 현상이 바로 '승자 독식주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름을 '승자 독식 세대'나 '배틀로얄 세대'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서문을 보아도 글쓴이들이 이 개념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우석훈의 글에서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사실 나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몰랐다. 세계와 경쟁하고 영원히 경쟁해야 하는 추상적이고 비장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책을 읽고 개념을 바로 잡았다. 경쟁을 위해 필요한 선결 조건은 바로 '룰', '협의', '장치'인데, 이것을 모두 걷어치운 상태에서 아무런 형평성도 없이 싸움을 붙이는 것이 무한경쟁이 의미하는 본뜻이었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사실 '경쟁'이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무한약탈' 정도 될 것이다.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이전 세대와 88만원 세대가 벌이는 세대 간 승부나 돈과 권력과 시스템 등 모든 것을 갖춘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 사제단, 몇몇 소신 있는 언론사가 펼치는 전쟁은 마치 대기업에 맞선 중소기업의 처지를 생각나게 한다. 벌칙 없는 싸움이라면 탈벌, 편법, 위법에 능숙한 자가 언제나 이긴다. 그래서 여기서 제기된 과제는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진짜 인생 걸고 싸울 만한 경쟁의 틀이 필요하다. 그 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구할 수 있도록 구체화시켜야 하며, 이것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서 싸워야 한다. 이런 과정 역시 하나하나가 다 과제이다. 결국 우석훈의 결론도 '싸우라'는 것인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을 써야 할 것이다. '싸움의 기술'을 만들어내기에는 88만원 세대는 훈련이 잘 안 돼 있다.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우석훈은 20대의 70%가 이 책을 읽어주기를 기대했다고 하는데, 실제 20대 구매자는 기대치의 1/3이 조금 넘는다. 이렇게 된 이유 역시 이 책에 기록돼 있다. 오로지 마케팅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정체 불명의 오합지졸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미래를 좀먹는 죄수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점점 좁은 문으로 '양떼몰이'를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대는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고, 그들 역시 점점 좁혀 들어오는 룰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한창 대학2년생의 로망에 취해 있을 때, 학교에서 한자사전과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고, 도서관에서는 철학사나 문학작품을 읽은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88만원 세대'와 그 후배들을 '할당량 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할당량 세대는 20대는 물론 초등학교, 유치원생까지 포함하는데,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해야 할 몫이 정해져 있는 세대이다. 물론 그 몫을 정하는 계획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다. 좋은 초등학교, 좋은 중학교,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으로 언제나 지상과제가 놓여 있기 때문에 할당량을 거부한다거나 '좋은 목표'의 궤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가 느끼는 사회적 압력이 대단하다. 물론 나도 할당량을 강요받았으나 나를 가르친 스승들은 한사코 그러한 강요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나는 주류에서 다소 벗어나 아웃사이더로 남는 길을 택했는데, 그때의 결정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강요를 받아들였다면 태평로 삼성그룹 앞에서 삼성을 양해 성토할 기회도 없었을 테고, <시사IN> 기자들과 함께 싸우며 새매체를 일으키는 데 참여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고분고분하게 다 받아들이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20대들을 보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입카드가 달린 목걸이를 차고 다녀야 하고, 지금까지의 강요보다 더 어려운 강요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내는 주체가 아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의 생각이 아니다. 그저 회사에서 그의 머리에 미리 입력해놓은 문장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휴머노이드가 미리 입력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제 말을 기계적으로 생성해 내뱉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삼성 로봇’이 사람과 너무 똑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 <시사IN> 9호, 진중권의 칼럼 "'기계'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오다" 중에서

중앙일보의 기자들은 어떤가. 자신들의 사주가 구속되던 날 현장에서 도열하면서 한목소리로 '회장님 힘내십시오!'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주류'의 피곤함이 엿보인다. 얼마 전에 만난 기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통쾌하게 논평을 했다.

"기자의 월급이 올라갈수록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는데, 반대로 기자가 박봉이면 엄청난 '사회적 불만'을 지면에 쏟아낸다."

결국 이러한 주류의 굴욕 하나하나가 88만원 세대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구에게 기대를 걸 것인가? 우석훈은 이 계획에서 작정하고 386을 배제하려 한다. 이 책에서도 386에 대해 논한 지면은 몇쪽 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중략)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68세대들이 공교육 체계를 대학까지 연장시키면서 다음 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20살에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반면 우리나라의 386은 학벌주의와 겨에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지금 10대와 20대가 맞게 된 조금 황당한 상황들은 사실 이 386세대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77~178쪽>

글쓴이는 이 이 책에 대해서 386의 피드백을 별로 얻지 못했다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88만원 세대'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쉽게 보았던 부분은 386과 88만원 세대 간의 타협점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자가 386에게 느낀 반감과 실망의 골이 이만큼 깊음을 말해 주는 것이겠지만, 덕분에 386도 이 책이 던지는 의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협의'보다는 '저항'에 무게중심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88만원 세대에게 맡긴다는 의미인지 '싸우라'는 선언 외에 어떤 명확한 제안도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싸우기 위해서는 '구조'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데,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토플책을 내던지고 바리케이트를 세우라는 과제를 88만원 세대들이 수행할 수 있을까? 기득권자들은 엄청난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88만원 세대들이 모의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조직이나 세대내 협의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들은 '각자'에게 유배된 상태다.
프랑스처럼 중고등학생이 전국적으로 들고일어설 수 없을 바에야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하면서 세대를 대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88만원 세대와 처지가 비슷한 10대가 연대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구성한다면 사회변화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현행 선거법에서는 선거권을 만 19세에게 부여하고, 피선거권은 그보다 훨씬 뒤인 25세 이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25세라는 근거조차 불명확하므로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일하게 18세로 정한다면 게임은 해볼만 할 것이다. 결국 수탈당하는 세대가 수탈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말인데, 기성세대는 그들의 반발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20대를 착취하는 룰은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부당함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잘못된 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20대에게 맡겨진 과제라면 매우 절망적이다. 우석훈에게 책을 몇 권 더 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대 간 대결구도를 세대 간 화합 구도로 전환하는 책을 하나 쓰라. 아니면 20대가 짱돌을 던지고 바리케이트를 던지기까지 결단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라.
정작 20대의 각성을 요구하는 방법밖엔 없단 말인가. 길을 돌고 돌아도 마주치는 출구는 바로 이 지점뿐 없단 말인가. 오호 통제라. 순환논리의 터널이 너무나 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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