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와인
엘리자베스 녹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나는 천사라고 하면 굉장히 순결하고 깨끗한 존재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천사는 그리 깨끗하지도 않고, 사람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 간단히 말하자면, 타락천사이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듣고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는데, 읽다보니 조금씩 책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 감이 잡히기는 잡히더라. 몽환적인 분위기을 책 표지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부분이다. 와인의 모호한 색과, 고독한 천사의 모습이 책 내용과 무척이나 잘 어우러진다. 사실 와인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프랑스의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골도 잘 모르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장면들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그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냥 단순하게 여름날 밤, 천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기분이 들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도 분명히 그런 기분을 느꼈으며, 그 때문에 천사를 숭배하게 되었을 게다.

 

와인을 즐기는 천사는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기도 하다.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천사가 와인을 마시다니? 아마 첫 도입부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뭔가 어색한 천사의 행동이 나중에 벌어질 일들을 예고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인공인 소브랑과 새스, 오로라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소브랑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워낙 많은 이름들이 나와서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 무척이나 헷갈렸다. 이야기의 진행이나 각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아이들이 많아 차례로 아이들의 이름을 정리해가면서 읽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 좀 더 이 내용을 잘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그만큼 주인공의 자식 번식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보여진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동안 메모지 한 장을 준비해놓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와인과 천사, 그리고 그와 교류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의 욕망과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비단 소브랑 한 사람만의 인생으로 모든 사람의 인생을 엿볼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은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묘사가 많은 소설을 참 오랜만에 읽어봐서 약간 적응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잘 짜여진 풍성한 그림을 본 듯한 느낌이다. 사실 좀 투툼한 책의 두께는 한번에 읽어 해치우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냥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묘사한 작품인 만큼, 천천히 여유를 두고 읽는 것이 이 소설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의 줄거리를 서평으로 채우기에는 나중에라도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따뜻함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는 사실만큼은 알리고 싶다.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다양한 와인 용어를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했다. 생소한 용어에 대해서는 각 페이지 밑에 주를 달아서 설명하고 있으니 모르는 용어로 인해 책 읽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일은 없다. 천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는 사람이나, 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묘사력이 뛰어난 소설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더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셀 베이커 자서전 : 성장
러셀 베이커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많은 자서전을 읽어봤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처음이다. 솔직히 '러셀 베이커'라는 이름은 이번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유명한 언론인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나이가 들었고 미국 관련 언론인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는지라 약간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비록 번역본으로 읽기는 했어도 이 책에는 진실과 유머가 뒤섞여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물론 이 책을 다 읽고난 나도 이 책의 솔직한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굉장히 무덤덤하게 디자인 된 표지가 그리 특별해보이지는 않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그리 무미건조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보다 생생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찾으려고 해도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에 실려있는 모든 이야기가 저자가 직접 겪은 실화라는 사실이다. 덕분에 저자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은 매우 길었던 미국의 대공황 시대를 유년기로 보냈다. 그 시대는 누구나 어려웠고 살기 힘들었다.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악착같이 일하고, 자신의 아들을 공부시킴으로서 신분 상승하고자 노력했다. 어머니의 그런 노력은 결실을 거두어 마침내 아들은 미국에서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사업에도 소질이 없고, 운동에도 그닥 소질이 없던 주인공은 일찍부터 자신이 가진 재능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본 어머니의 무한한 관심 덕분이었다. 그런 자신의 장점을 꾸준히 갈고 닦은 결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고, 재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미국의 유명한 언론인이 되었다. 사실은 나도 어릴 때 꿈이 작가였던 만큼, 어린 주인공에게 참 많은 공감과 감정이입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 어머니의 무한한 지원과 관심, 그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은 이 책의 주인공과도 참 많이 닮았다.

 

무조건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것만 같았던 주인공에게도 반항의 시절이 있었다. 첫번째는 양아버지를 인정하는 일이었고, 두번째는 여자친구와 결혼하는 일이었다. 양아버지 문제는 사춘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사건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남자보다 여자 동생인 도리스가 좀 더 적응과 이해를 잘 했는데, 아무튼 새로운 가장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게다.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처음에 참 많은 방황을 했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자신과 잘 어울리는 좋은 부인을 만난 것 같다.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 마음 됨됨이가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그런 솔직함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미국의 대공황이라는 어려운 상황이 없었다면, 그리고 미국이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주인공의 운명도 참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의도한 바와 상관없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이 때 자신의 신념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 물결에 휩쓸려 방황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 때마다 자신의 중심을 잡은 덕택에 지금은 저명한 유명인사가 되었다. 20대 후반은 제 2의 사춘기라고 할 만큼 굉장히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시기이다. 그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학생에서 벗어나 밥벌이의 어려움을 처음 겪게 되고,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은 꽤나 시기적절한 타이밍인 듯 하다. 이 책은 뭐든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멋진 책이기 때문이다. 정말 잘 쓰여진 성장기에 관한 자서전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하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이 책은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 29 39 -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그녀들의 아슬아슬 연애사정! 소담 한국 현대 소설 2
정수현.김영은.최수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쩜 이렇게 기막힌 일이 있을까? 한 남자가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나. 게다가 그 나이는 무려 10살씩이나 차이가 난다. 소설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 주변에 이런 우유부단한 남자가 있으면 단번에 엉덩이를 빵 차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재미있는 칙릿 소설을 쓰는 여성작가 3인이 모여서 멋진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다. 한 사람이 다 써도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무려 3명의 개성을 엿볼 수 있어서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각자 3명의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각 나이대마다 그 나이의 여성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이 오롯이 녹아 있어서 이 책을 읽는 여성들은 아마 절대적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공감이 갈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어린아이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 사람들의 속내를 알고 나니 충분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설정이다. 물론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멋진 여성들이 된 모습덕분에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을 때는 왠지 모르게 뿌듯하면서도 아쉬웠다. 여기에서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사랑에 당당하고 자신있는 19가 왠지 부러워졌다. 내가 아무리 그 때라고 해도 저정도로 자유분방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대학이라는 문을 처음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버리하게 보낸 시간이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더 자신있게, 이것저것 해보아도 좋았을 나이였는데, 지금은 직장이라는 틀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게 행동하기는 어려워서.. 그저 아쉽기만 하다. 물론 29와 39도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겪지 못한 단계이기 때문에 약간은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요즘에 사랑에 죽자사자 목메는 여자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신체적인 조건과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남자보다는 약간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많이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사회의 시선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나름대로 개방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정작 혼외 임신을 했다고 하면 사정없이 비난할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회적인 인식과 요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담아서 써낸 이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들정도로 매력적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직장에서 쉬는 시간에 책을 본 것 같다. 사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 45분 공부하고 10분 휴식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딱히 정해진 쉬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휴식의 의미를 되새겨볼만한 기회가 마땅치 않은데,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읽는 책 맛은 가히 꿀맛이었다. 그정도로 오랜만에 푹 빠져서 읽을만큼 매력적인 책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이미 19살은 지난지 오래고... 이제 29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39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요즘에 워낙 시간이 빨리 흐르다보니 생각보다 금방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29살의 이야기가 정말 많이 공감갔다. 그래도 이 주인공은 바람피우는 남자라도 있는데,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남자친구 하나 없으니 좀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들을 하다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여자 전혜린 - 그리고 다시 찾아온 광기와 열정의 이름, 개정판
정도상 지음 / 두리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참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으나 한국 문학과 그닥 친하지 않았던 나에게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그녀의 글에 대한 찬사는 이 책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 잘 알지 못하면 어때? 일단 이 책을 통해서 '전혜린'이라는 사람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분명히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쓰여있으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자서전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아마도 주인공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하고 분석한 작가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현실과도 같은 생생한 소설을 읽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주인공의 실제 객관적인 사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네이버를 잠깐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마땅히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이미 소설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대부분이었고, 너무나도 짧은 삶을 살다가 갔기 때문에 그닥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그나마 제대로 된 그녀를 알려고 한다면 그녀의 유작밖에는 없을 듯 하다. 이 때문에 더더욱 전혜린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로서는 '그 여자 전혜린'이라는 소설이 흥미를 끌 수 밖에 없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 눈에 비친 전혜린의 모습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사회의 굴레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거기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맞추어 살게된 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그 시절만해도 여자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으니 마음대로 활동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외국 대학물을 먹었기 때문에 교수직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전혜린이 가상으로 썼던 소설을 통해 표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사실 소설도 작가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허구로 쓰기란 불가능하다. 설사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설보다는 동화나 판타지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회에 저항하고자 하나 결국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절망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까웠다. 현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일생이 불행해진다면 그것도 추천할 만한 삶의 방식은 아닌 듯 싶다. 오히려 바보같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만족할만한 삶이 아닐까.

 

책 표지에 있는 얼굴없는 여성의 모습은 왠지 쓸쓸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열정은 가득하지만, 결국에는 혼자 남겨진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사실 주인공의 절망은 너무나도 커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같이 절망하고 슬픔을 느낀다. 사실 심각한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그 문제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이 가는 듯 하다. 그 때는 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음울하여 모든 것을 조심했어야 하는 시대였다. 한 사람의 힘이란 너무나도 미약해서 세상을 바꾸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그런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가 간 전혜린의 모습에서 조금은 애련한 감정마저 든다.

 

아직까지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아주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전혜린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조금 교육을 받은 지식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책이 지금은 모든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울림이 되었으면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 노트북
제임스 A. 레바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인도라는 곳은 항상 신비로운 나라였다.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자란 곳,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그 곳에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로는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나중에는 그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냥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곳도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었나보다. 어린 소녀에게 참으로 못할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소설로 실화가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초해서 쓰여진 이야기라도 실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이 소설은 15세의 소녀가 어떻게 창녀가 되고 생을 마감했는지 생생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바툭이라는 소녀의 눈으로 쓰여져있다.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를 배우게 된 후로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 답답한 생활에서 하나의 배출구가 되었다. 아직 정확한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팔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게 되었기 때문일지 주인공 자신은 자신이 그토록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몸 때문에 자신이 먹고 살수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글쓰기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역할도 하고, 그냥 상상으로만 하고 있던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역할도 한다. 어떻게 봐도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바툭이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싶다.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 때는 글을 씀으로서 현실을 도피하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생각만 가득 함으로써 극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툭이 묘사하는 남자들은 제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살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는 그런 소녀이다. 아직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어린아이인데, 그냥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암울한 상황속에서도 그녀이 글에서는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작은 희망마저 느껴진다.

 

책 표지를 보면 어린 소녀가 세상모르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좁은 방안에 잠들어 있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방은 화장실 만큼이나 좁고 바깥으로 이어진 통로는 손님이 들어오는 방문과 하늘이 약간 보이는 쇠창살이 달린 창문 하나 뿐이다. 그럼에도 환상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꿈은 안개처럼 희미하면서도 달콤하다.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웃고 울고 절망하고 희망하기를 반복했다. 그저 순수하기만 한 그녀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냥 소설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쉽게 눈이 감겨지지 않는다. 인간이기를 이미 거부한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 세상에는 바툭과 같은 소녀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바툭처럼 글을 쓸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더이상은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