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은 아주 많다. 하지만 감히 나에게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으라면 알라딘 서재에서 여러번 추천된 책인 아래 책을 주저없이 내밀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의 가장 큰 함정은 불균형성과 저자의 자의성이다. 저자는 흔히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의 독서 경험과 자신의 독서 기호도와 작가 선호도를 슬몃 끼워 놓는다. 그것은 때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도 하지만 어떤 책에 대한 완벽한 오해, 고정관념, 오독을 불러온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이 책이다. 일단 이 책의 저자 클리프턴 패디먼은 라디오 퀴즈 쇼의 사회자였고, 비평가이자 작가였다. <평생독서계획>의 초판은 1960년에 나왔다 저자가 99년 사망할 때까지 수정과 증보를 거듭하다 마침내 완결된 판으로 우리 손에 왔다. (작가 소개 참조) '길가메시 서사시', '맹자'로부터 치누아 아제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 희곡, 철학책, 과학책, 소설 등 균형을 갖춘 독서를 진작하는 저자의 배려는 흔히 독서의 여정에서 치우치기 쉬운 균형점을 잡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한 권의 책에 대한 간략학 소개, 저자의 소고, 그리고 독자가 이 책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안내가 적절하고 친절하게 잘 버무려져 있다. 고전의 초입문에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안내 지도로 가지고 출발해도 좋을 것 같다. 빌려서 돌려주고 말기에는 너무나 참조할 구석이 많아 두고두고 옆에 두며 꺼내보게 되는 책이다. 일례로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읽고 클리프턴 패디먼의 그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 다시 이 책을 꺼내놓고 보다 그가 권하는 <엠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식이다. 클리프턴 패디먼은 게다가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돈키호테>는 발췌독을 해도 된단다.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너무나 읽기 난해하고 지루한 책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독자에게 그 책을 어떤 식으로 알아가야 할 지에 대한 더 쉬운 지름길도 제시한다. 이 사랑스러운 책을 쓴 저자의 책은 번역된 것으로 이게 전부다. 너무 아쉬웠다. 그러다 읽게 된 책

 

 

 

이 책의 저자 앤 패디먼은 위의 클리프턴 패디먼의 딸이다. 이 책도 책에 대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철저히 개인적인 책에 대한 감상이다. 항상 책에 둘러싸여 있던 유년시절,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서재를 합치는 과정 등 앤 패디먼의 재기어린 입담은 아버지의 그것보다 조금 가볍지만 나름 상큼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수확은 군데군데 클리프턴 패디먼에 대한 개인 정보다. 아버지로서의 그. 그는 장수했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여든여덟 망막 괴사 진단을 받는다. 이러한 슬픈 노년에 대한 이야기.

 

읽거나 쓰지 못한다면 나는 끝난 것이라고 봐도 좋다."

p.60

 

 

그가 딸 앤 패디먼에게 한 이야기. 책에 대한 그 훌륭한 이야기들을 그렇게나 아름답게 유려하게 했던 그가 자신의 실명 앞에서 한 이야기.  딸이 편도선절제술을 받았을 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어주었던 아버지. 이제 딸은 아버지에게 전화로 책을 읽어준다. 밀턴의 <나의 실명에 대하여>를 전화로 아버지에게 읽어주는 딸. 그리고 그것을 말없이 듣는 아버지. 이 대목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의 클라이막스보다 더 가슴 안쪽을 울리게 했다. 언제나 책을 읽고 책을 숭배하고 음식점 메뉴판의 오탈자 찾기에 골몰했던 패디먼 가족의 이야기.

 

책에 대해 이야기하였던 그는 실명 앞에서도 꿋꿋하게 책 앞을 떠나지 않는다. 어린 딸에게 읽어 주었던 그 숱한 책들은 다시 그 성장한 딸의 입에서 그의 귀로 흘러들어온다. 비극적인 계기 앞에서 그의 삶은 더욱 찬란하고 책에 대한 밀착도는 더욱 높아진다. 활자와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이 부녀의 이야기는 왠지 더 희망적이다.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 꼭 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낭만적인 메시지 같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2-1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낭만주의는 blanca님도 이들 부녀 못지 않군요.^^

blanca 2013-02-20 08:43   좋아요 0 | URL
섬님, 제가 그래요?^^;;

꿈꾸는섬 2013-02-1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결혼시키기, 담아야겠어요.

blanca 2013-02-20 08:4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이에요. 지금 와서야 왜들 그렇게 좋아들 하셨는지 역시 알라딘 서재분들이 좋아하는 책은 배신이 없구나, 싶었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도 그랬고요. 섬님도 많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댈러웨이 2013-02-1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프 패디먼의 책은 아주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게 요점을 정리해놨죠. 저도 종종 참고하고 있어요. 해럴드 블룸 <세계문학의 천재들>도 좋아하실것 같아요. 클리프 패디먼의 이 책이 좋으셔다면요. 블룸의 책은 편역 오역의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아는데 참고용으로는 일단 좀 깊게 들어가서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서재결혼은 정말 사랑스런 책이에요. 블랑카님, 정말 오랫만요. :)

blanca 2013-02-20 08:45   좋아요 0 | URL
아, 댈러웨이님 정말 반갑습니다.^^ 아! 저도 언젠가 블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님이 추천해 주신다면야 다음에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좀 더 깊이가 있군요!

라로 2013-02-20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을 먼저 알았어요!!ㅎㅎㅎ 그리고 그녀의 글이 좋아서 다른 책도 샀는데 그 책도 좋아요,,,번역 제목은 [세렌디피티 수집광]인데 알라딘에선 아예 검색도 안 되네요???헐
아니면 제가 못 찾는 것일까요???ㅠㅠ
암튼 저도 클리프 패디먼의 저 책에는 블랑카님과 같은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답니다!!^^
블랑카님이 글을 아주 잘 쓰신다는 것을 알지만 제가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어서 그럴까요????이 글이 젤로 좋아요!!>.<
기분나쁘진 않으시죠???^^;;;
이 글 패디먼 부녀를 대신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에요!!^^

blanca 2013-02-20 08:47   좋아요 0 | URL
아, 기분이 나쁘긴요. 저는 아래에서 '기분나쁘진 않냐'는 글을 먼저 읽고 긴장하고 댓글 읽었답니다.ㅋㅋ 패디먼 부녀, 패디먼 가족의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더라고요. 저도 나이들어 제일 무서운 게 사실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 클리프턴 패디먼이 잘 극복하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혹시 앤 패디먼의 책은 절판된 것이 아닐까요?

자하(紫霞) 2013-02-2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책 다 읽었는데 부녀 사이라는 것은 블랑카님 글 읽고 처음 알게 되었네요. 오~@@

blanca 2013-02-22 14:47   좋아요 0 | URL
신기하게 부녀더라고요^^ 그런데 역시 책을 많이 읽고 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던 집안 분위기에서 또 글을 쓰는 딸이 나온 것같아요.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것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더없이 재미있어 항상 이야기를 듣고자 주변에 사람이 들끓는 그런 사람이 있다. 과장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덧붙이는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은 사건이나 상황의 무미건조한 표면에 나름의 섬세한 끌질로 빛나게 한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사실 진부하게 활용되기 힘들 만큼 드문 캐릭터다. 어쩌면 이들은 사건의 이면, 사람들의 언어의 이면의 진짜 핵심, 차마 말하여지 못한 것들을 성실하게 소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하는 특별한 작은 세계의 회전축이 고상한 사상, 강렬한 야망, 비극적 절망 등이 아니라 금전, 결혼, 사회적 계급의 유지 등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클리프턴 패디먼, 존 S. 메이저 <평생독서계획> 중

 

<서재 결혼시키기>의 앤 패디먼의 아버지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독서계획>에서 제인 오스틴을 '대가족의 동정을 잘 살펴보는 똑똑하고, 눈 밝고, 의견 표명 잘하는 나이든 고모'라고 표현한 대목에 줄을 그었다. '제한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고득점을 올리고 있다'고 제인 오스틴을 평가한 부분에도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사실 제인의 이야기들은 정말 별것들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한다. 대부분 이 여자들은 가문은 괜찮지만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미모와 덕성의 콜라보레이션이지만 실질적인 신붓감으로 각광받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돈도 많고 가문도 좋은 미남자가 나타난다. 숱한 난관과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들은 현실을 극복하고 결혼한다. 대체로 이러한 구도다. 단순한 플롯의 그녀의 작품들이 지루하고, 진부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 사실 그게 미스테리였다. 그녀의 소설들은 정말 다 대체로 아주 재미있다. 진부한데 구태의연한데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연재 만화와 연속극 같다고나 할까. 자극적인 막장 요소가 없는데도 그녀의 작품은 일정 시청률을 담보한다.

 

 

 

시골 목사의 딸로 태어나 평생 혼자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고 미혼으로 죽은 제인 오스틴의 처녀작. <센스앤 센스빌러티>로 영화화도 되었다. 엘리너와 메리엔 이 두 자매의 기질이 이성과 감성의 대표인 것은 당연하다. 동생 메리엔은 소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쓰라린 배신을 당하고 결국 나이 지긋한(고작 서른여섯인데 완전 늙다리처럼 묘사된다--) 신사와 결합한다. 물론 언니 엘리너도 차분하게 사태를 관망하며 자신의 주위에서 가까워졌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 헤어진 남자와 결혼하여 자매까리 지척에 살며 더없이 행복해졌다는 이야기. 줄거리의 비약은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급조된 것처럼 다 행복해지고 동생 메리엔의 나쁜 남자마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막을 내리는 데에서 절정을 맞는다. 그. 런. 데. 너무 재미있다. 아껴가며 읽게 된다. 그리고 클리프턴 패디먼이 강추하는 그녀의 <엠마>를 읽을 결심을 하게 된다.

 

왠지 깐깐하고 성마르게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 앞에서 제인 오스틴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제인은 1800년경 증오도 고통도 공포도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는 일도 없이 글을 쓰는 여성으로 칭송된다. 독립된 서재도 없어 가족공동거실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원고를 숨겨 두거나 압지로 덮으며 글을 썼던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시대적 격랑이나 역사적 외연은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펜끝에서 스며나오는 인간의 내면의 섬세한 결은 하나 하나 다 그대로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로 확장된다. 사람을 됨됨이가 아닌 가진 것이나 줄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풍조. 그리고 그 풍조에 저항하는 소수. 그럼에도 항상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도 살아남는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백 년이 지나도 아니 심지어 오백 년이 지나도 읽히고 또 살아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거창한 주제나 심오한 고민보다 자기 내면의 끄달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자잘한 감상, 아쉬움, 바람으로 언제나 돌아오는 존재이니 이 깐깐하고 명민한 고모의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머리 아프고 '척'하는 이야기에 질릴 때쯤 그녀의 이야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여자와 멋있는 남자가 결국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달콤하다. 참, 완성도 면에서 가장 높다는 그녀의 <설득>도 더불어 추천한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3-02-1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막장요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도 흥미진진. 두근두근 ^^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저는 설득으로 제인 오스틴을 시작했는데, 왜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어요. 다른 책들도 다 읽고 말겠단 결심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게을러요. ㅠ_ㅠ) 올해는 제인 오스틴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블랑카님 덕분에 다시 불끈. 힘내봅니다. 감사합니다. ^^

참참. <눈먼 암살자> 읽고 있어요. 블랑카님 글을 읽고 나니 참을 수 없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딴 책들을 새치기해서 읽기 시작했지요. 너무 재미있네요. >.< 감사합니다. 또. ^^

blanca 2013-02-17 10:3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재미있죠! 다행이고 기쁘네요^^ 저는 <엠마> 꼭 읽어보려고요. 분량의 압박이 있지만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노라면 세상 시름 다 잊고 푹 빠질 수 있어 너무 행복해져요. 끊었던 믹스 커피 한잔 달달하게 마시니 참 행복한 아침이네요.

이진 2013-02-1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네요, 무지. 저는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도 아직인 걸요. 어서 여류 작가들을 읽어야할텐데. 버지니아 울프나 브론테 자매 등이요. <설득> 추천 제가 거두겠습니다.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해야 겠군요.

blanca 2013-02-17 10:3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제 생각엔 지금쯤 제인 오스틴을 읽으면 저 같은 아줌마가 ㅋㅋ 읽는 것보다 소이진님 감성과 나이로 더 흠뻑 몰입하실 수 있을 거예요. 눈이 부시게 예쁜 나이네요.

순오기 2013-02-1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내 취향을 잘 알던 비디오가게에서 권했던 <센스앤 센스빌러티>를 보다가
너무 지루하게 전개돼서 깜박 졸아서 다시 되돌려 봤던 기억은 스멀거리는데 영화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
오만과 편견만 생각나요. 언제 기회되면 제인 오스틴 영화랑 책을 다시 봐야겠어요.
우리동네 극장에선 제인 오스틴 영화도 금세 내려서 못 봤어요.ㅠ

blanca 2013-02-17 18:59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못 봤어요. 지루하군요. 아,맞아요. 저도 <오만과 편견>은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봐서 정작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읽은 것 같아요. 저는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 인가 하는 영화를 보고 싶은데 그게 아직도 못 봤어요.

라로 2013-02-1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엠마는 저도 읽으려고 결심을 하지만 아직도 웨이팅이네요,,,ㅎㅎㅎ
설득도 그렇구나,,,ㅠㅠ
요즘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하루 한권 읽기 프로젝트를 강행하고 있는데 언제 읽을까나요,,,밑에 눈먼 암살자도 마냐님 리뷰와 님의 페이퍼 보구 부들부들 떨면서 읽어야지 하건만,,,,시간이,,,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면서 읽을 책은 갈수록 쌓이고,,,,헥헥헥
그런데 브랑카님은 언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으시는 거에요?????응??

blanca 2013-02-17 19:04   좋아요 0 | URL
하루 한권 읽기 프로젝트, 우아. 저는 한 권에 한 사흘에서 일 주일 걸리는 것 같아요. 요새 한 권을 진득히 읽지 못하고 세 권씩 같이 읽고 우왕좌왕하는 습관이 들어서, 고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책이 안 읽히고 자꾸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려서 우울해지더라고요. 다시 책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좋습니다. 나비님은 <레미제라블> 완독하셨잖아요!

꿈꾸는섬 2013-02-1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요. ^^ 같은 사랑 얘기인데도 뭔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저도 제인 오스틴 책 다시 읽기하고 싶네요.^^

blanca 2013-02-17 19:05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제인 오스틴의 연애담 읽다 보면 그냥 맘이 절로 평안해져요. 이게 바로 그녀의 매력이겠죠! 아까 도서관에 엠마 빌리러 갔다가 엉뚱한 책만 두 권 빌려왔어요 ㅋ

프레이야 2013-02-1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목표가 그냥 지나간 저는 에효 부끄^^ 제인오스틴북클럽 영화 참좋아요. 그 영화 보고 오스틴 작품 여섯권 새로 다사놨잖아요ㅎㅎ 블랑카님 페이퍼로 다시 불끈! 세월이 가도 변하지않을 게 있다면 님의 멋진 리뷰가 아닐까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요^^

blanca 2013-02-18 13:15   좋아요 0 | URL
아. 이 영화 꼭 봐야 겠네요. 불끈. 저의 예전 글들은 차마 부끄러워 읽지 못합니다. 그냥 책을 읽고 쓰고 여기서 댓글로 이야기 하는 그 순간이 즐거워서 조금 부끄럽고 후회될 지도 모르지만 오래오래 있고 싶어요.

Jeanne_Hebuterne 2013-02-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까 무인도에 가져갈 책 1위로 뽑혔나 봅니다!

blanca 2013-02-18 13:15   좋아요 0 | URL
아, 제인 오스틴의 책이 그렇군요!
 

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이다. 낯설고 난감하고 경이로웠다.

 

 

 

 

 

 

 

 

 

 

 

 

 

 

 

 

분권된 소설은 섣불리 시작하기 힘들다. 일단 1권이 별로라 할지라도 2권이 노려보고 있다. 읽지 않은 책 목록에서 이런 긴 분량의 이야기는 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말 신중한 시작이어야 한다. 작품성이 아무리 대단해도 지루한 이야기라면 곤란하다. 독자는 좋은 책의 기준 안에 반드시 읽는 즐거움을 포함시킨다. 그것은 문학상 심사위원들이나 문학평론가들과 반드시 만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캐나다의 여류 작가의 이 책을 시작하는 데에 망설였드랬다. 나에게 필요한 리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보장성이 담긴 것이었다. 재미없는 책을 향하여 발휘하였던 인내심들은 이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괴이쩍은 재미를 가지고 있다. 보기 힘든 구성이다. 일단 화자는 노년의 아이리스다. 아이리스는 현재에서 자신의 유년과 젋음을 회고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눈먼 암살자'라는 액자 형식의 다른 이야기가 간헐적으로 삽입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도피중인 '그'와 목마른 재회를 나누며 '그'가 해 주는 공상 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삼중의 액자 형식이다. 노년의 아이리스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전쟁이 끝난 지 열흘째 되던 날, 하나 뿐인 여동생 로라가 스물 다섯 살의 나이로 차를 몰고 다리 위에서 추락하는 장면이다. 단추공장의 상속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서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은 자매는 하녀 리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만 공장의 몰락, 아버지의 파멸과 더불어 탐욕스러운 실업가 리차드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이 슬픈 이야기의 단초를 얻는다. 언니를 따라 형부의 보호 아래 있게 된 로라는 때로는 구제불능인 것처럼 심지어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아이리스와 격리되어 자매는 서로의 진심을 알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 소녀 시절 아이리스, 로라가 함께 숨겨주었던 공산주의자 청년 토마스를 사랑했던 그녀들은 이제 이 '눈먼 암살자'라는 이야기가 동생 로라가 남긴 유작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리스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암시를 곳곳에 숨기게 된다. 사랑없는 결혼으로 이용당하는 여자는 항상 도망다녀야 하는 남자와 비밀리에 만나며 그가 해 주는 자이크론이라는 행성의 '사키얼 논'이라는 도시에서 카페트를 짜며 시력을 잃은 소년들이 암살단으로 사주를 받고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 혀가 잘려진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 다다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남녀가 이 비극의 서사의 열린 결말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은 오싹하면서도 서글프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러한 슬픈 서사의 실타래를 다 늙어버린 아이리스의 손가락에 맡긴다.

 

낙원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곳에는 여로가 없기 때문이다. 상실과 후회와 비참함과 열망이 굴곡진 길을 따라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2권 p.393

 

작가의 기본적인 서사에 대한 시선은 이런 곳에 닿아있다. '이야기'는 상실과 후회와 비참함과 열망 사이에서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여동생 로라가 남겼다고 표방되는 이야기는 결말부에서 드디어 언니 아이리스의 것으로 겹쳐진다. 한 남자를 사랑했던 자매는 그 사랑이 용인되지 않았던 시대에서 서로를 철저히 오해한 채 허무한 작별을 맞는다.

 

할머니 아이리스의 고독하고 무기력한 삶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변화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조로 또하나의 절절한 서사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이러한 구절은 계절의 변화마다 따른다. 아무래도 작가의 시인으로서의 경험이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의 직조에 한몫을 담당했을 테다.

 

야생 기러기가 고장 난 경첩처럼 끽끽 울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강변을 따라 옻나무 초가 흐릿한 붉은 색으로 타고 있다. 지금은 10월 첫주다. 좀약 사이에서 끄집어낸 양모 옷의 계절. 밤안개와 이슬과 미끄러운 현관, 그리고 늦은 전성기를 맞이한 민달팽이의 계절.

-1권 p.331

 

시간와 물질과 야망이 모두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그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리스가 이제 펜을 놓고 손녀와의 재회를 꿈꿀 때 그래도 삶은 생명은 어떤 순수, 진리에 대한 열망과 사랑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눅진하고 서슬 같은 소설. 이야기는 이렇게나 위대해질 수 있구나. 진실은 실재는 죽음으로 화석화되어 현재완료형이 되어 심지어 역사라는 틀에 담겨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 단순한 명제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철저히 서로들을 오해하며 그렇게 오늘도 삶을 산다. 나이가 들어 나의 삶을 다시 그 초입부터 매만져도 그것은 또다른 형태로 가공되기 마련이다. 그 삶속을 들락날락했던 수많은 만남들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반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연한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직시와 다름아니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3-02-0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눈먼 암살자>를 읽고 싶은 열망이 들끓습니다. blanca님 글의 힘이군요. ^^ 사놓고 못 읽은 수많은 -_- 책들 중 하나인데요. 말씀처럼 분권이라 그런지 선뜻 손이 가지 않네요. 이참에 힘을 내봐야겠어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3-02-04 16:59   좋아요 0 | URL
달밤님! 꼭 읽으세요. 정말 괜찮아요. 일단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요. 조금만 참으시면 별세계가 펼쳐집니다.

Jeanne_Hebuterne 2013-02-0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이국적이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늘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존재. 과거와 그 속의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했군요.

blanca 2013-02-05 11:33   좋아요 0 | URL
쥬드님, 맞아요. 쥬드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정말 이국적이고 몽환적이고 아름다웠어요.

Jeanne_Hebuterne 2013-02-05 11:56   좋아요 0 | URL
이리 말씀하시면 아니 읽을 수가 없지요! 좋은 책을 일러주셔서 고마워요, 블랑카님!

테레사 2013-02-05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어,블랑카님, 무섭진 않나요? 공포나..뭐...저도 읽어 보고 싶은데..암살자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선험적인 두려움? 이라고 할까요? 좀...

blanca 2013-02-05 11:34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저 엄청난 겁쟁이거든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 책 읽고는 밤에 잠도 못자고 --;; '그것이 알고 싶다' 보고 악몽 꾸고 그러는 수준인데. 이 책은 안 무서워요^^;; 암살자,라는 게 사실 거의 은유에 가까운 이야기더라고요,

테레사 2013-02-06 09:4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렇다면 읽겠어요!!!(불끈) 블랑카님 덕이에요, 다~^^

후애(厚愛) 2013-02-0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좋은일만 가득가득하셔용~~~~^^

blanca 2013-02-11 11:45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요! 감사합니다.

순오기 2013-02-1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재마실이 뜸해서 블랑카님 서재에도 오랫만에 들려요.
명절은 잘 보내셨지요?
이제 곧 새봄 맞으려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분홍공주도 새봄엔 더 파릇파릇해지겠지요.^^

blanca 2013-02-14 17:25   좋아요 0 | URL
예, 저도 명절 잘 보냈습니다. 한창 바쁘시죠? 오늘 바깥에서 봄냄새가 나더라고요. 순오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순오기 2013-02-17 11:12   좋아요 0 | URL
들려요~ 들어요,로 돼 있어서 오타 수정했더니
님 답글보다 늦은 날짜로 잡히네요.ㅋㅋ

2013-02-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2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새 책을 좀 안 읽었다. 그러니 자꾸 스마트폰만 붙들고 스마트폰의 그 단문들과 이미지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책을 안 읽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지하철을 타도 주변을 둘러봐도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책들로 책꽂이를 채워도 나에게 책에 대하여 묻는 사람도 같은 책을 읽는 사람도 참 보기 힘든 요즘이다. 참, 책을 안 읽는 시대다. 책을 읽어도 안 읽어도 더이상 '책'에 대하여 신나게 떠드는 게 익숙한 풍경이 되기는 힘든 시대. 다시 책으로 돌아와 그 흑백의 언어들과 현란한 이미지의 경쟁이 얼마나 때로 승산없는 것이 될 수 있는지 잠깐 동안의 외유에서 돌아와 편혜영의 단편집에 집중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언어의 틈새에서 일렁이는 그 순전한 파고를 즐길 수 있는데 그 '조금만'이 어려워진 시대다. 눈에 보여지는 게 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문자 텍스트 앞에서 발휘해야 하는 인내심은 비싼 희생이다. 언어들만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의지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재창조하여야 하는 독서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십 년이 지나고 삼십 년이 지나면. 어쩌면 종이 위의 문자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무리들은 점점 더 화석 같은 풍경이 되어갈 지 모른다. 그래서 책을 사고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이 공간에 둥지를 틀고 나면 이 공간에서의 논란에서도 슬며시 주인의 손에 이끌리게 된다. 명분, 합리성, 정직, 신뢰. 이러한 가치를 지향하며 철저히 이성적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표방하는 주체가 내가 되기는 힘들다. 도서정가제에 대하여 제대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틈새의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나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미숙한 판단이 두렵다. 나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도 않으니까. 온라인 서점에서의 할인과 마일리지가 동네서점 고사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동네서점의 부활에 일조를 담당하리라는 낙관은 들지 않는다.

 

편혜영의 화자는 대부분 '그'이다. 참 신기하다. 남자 작가가 여성화자를, 여자 작가가 남성 화자를 택할 때의 그 일말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중간도 못 왔지만 색깔이 아주 명확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초적인 척 하는 나약한 중년의 사내들의 이야기. 한 편을 읽고 나니 나머지는 쉽게 읽힌다.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할 많은 작가들이 있어 다행이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도 절절하게 묘사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쉽게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쉽게 이야기하려는 순간 그것의 진정성은 바랜다. 언어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나는 실패했다. 그 수많은 은유,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은 머뭇거림에 이제는 참고 다 읽어내는 인내력에 후달리는 나로서는 그 심오함을 제대로 못 따라가겠다. 참지 않고 조금 있다 덮었다.--;;  너무 무거운 무언가를 품고 있을 거라는 부담감도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같다. 구입한 책을 읽지 못할 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에게 이 시리즈를 다섯 권 사서 읽어주고 있다. 그림이 다소 흐릿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읽어주다 보면 그냥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글밥이 많아서 아이는 후반부에 가면 꼭 딴짓을 하고 나는 목이 아프다. 그래도 옆에 앉혀 두 권이나 읽어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책을 너무 좋아해서 한글을 떼지도 못하면서 책만 붙들고 있었다. 발달이 늦어 그랬는지 그렇게 책을 많이 봐도 한글을 다 알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아이도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이것도 하나의 채근이 된다. 즐겁게 젖어들어야 할 텐데. 벌써 영상물과 이미지의 급변에 익숙해진 스마트폰 세대의 아이들은 느린 활자가 주는 즐거움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편혜영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를 읽을테고 그 다음에는 정말 그 다중지능이론의 가드너(전공에서 유일하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가 썼다는 신간을 구입하게 될 것같다. 올해는 살이 찌고 있고 무기력해져 가고 늙고 있고 머리가 다시 곱슬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눈밑의 주근깨는 점차 기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늘 아침 뜬금없이 나의 엄마가 살아서 나와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뒤늦게 철이 들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는 것같다. 세월의 힘도 그것.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13-01-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어낚시는 저도;; 이게 왜?! 이런 기분이었죠.

blanca 2013-01-30 09:43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저도--;; 정말 그랬어요. 저는 그리고 은유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을 텐데 이제는 그런 인내심 자체가 없어졌어요.

icaru 2013-01-29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송어낚시는 실패요. 중간에 놓아 버리고, 찝찝함을 느꼈는데 그게 아마 죄책감이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하네요~
서든 에이지 이후 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 노화의 징후를 굳이 애써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저보다는 서넛 어리신 것 같은 블랑카 님께 마흔 즈음에 일독을 권해 드려요!

blanca 2013-01-30 09:45   좋아요 0 | URL
서든 에이지 이후! 꼭 읽어 볼게요. 미리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산 책은 웬만하면 다 읽자, 주의인데 못 읽으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도 읽다 말다 하다가 마침내 끝까지 읽고 마지막의 감동이 참 강렬하더라고요. <송어낚시>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지만 이제 책장이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다 못 읽겠더라고요.

꿈꾸는섬 2013-01-30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이 잘 안 읽히는 걸 스마트폰 탓으로 돌려야겠어요.ㅎㅎ
편혜영, 저녁의 구애,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blanca 2013-01-30 09:46   좋아요 0 | URL
꿈섬님, 이 책 정말 재미있네요. 또 한 명의 작가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애(厚愛) 2013-02-0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피터래빗 이야기'에 관심이 가네요.^^
오랜만이지요? 잘 지내셨어요?
감기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

blanca 2013-02-02 16:41   좋아요 0 | URL
예, 후애님. 후애님도요^^
 
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높은 기대치를 항상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같은 경우가 그렇다. 나올 이야기는 다 나오고 들을 이야기는 넘쳐서 그랫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그 흡인력, 뭉클함 같은 것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다 오다 단편 한 두편 정도로 알아 왔던 김애란의 대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를 펴든 순간 우리 나라 소설계는 여전히 성장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여타 우수상 수상작들도 꼭 상을 받아서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농축의 미가 돋보였다. 재미있었고 허무하지 않아 좋았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루어진 영이다. 나는 거대한 눈이자 입.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낱낱의 입자로도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중략>-p.13~14

 

소설 같지 않은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자기 정의. 이건 흡사 철학책의 한 장을 할애한 것 같다. 여기에서 화자는 사라져 가는 '말'의 정령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특별구역으로  사라져 가는 언어를 구사하는 소수의 화자들이 보존되는 곳. <소수언어박물관>의 정경. 여기에 김애란이 자주 그렸던 활달하고 젊은 88만원 세대의 구체적인 실체는 없다. 이제 김애란은 자신이 어루만지고 구사했던 언어의 본질적 모습에 가 닿는다. 그것은 '말'을 사용하여 인간의 삶을 다루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한계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언어는 삶의 한계이자 철책이면서 해방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도 아니고 우리의 삶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오해와 바람과 눈물을 담는 그릇에 불과할런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죽고 우리의 삶은 언어로 축소된다. 언어로 이야기되는 것은 결코 전부가 될 수 없다.

 

그에게 모어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고 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p.30

 

진지한 이야기가 꼭 지루함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딛고 서는 이 발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의 경계는 확장된다. 이제 김애란에게 서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더이상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우리가 하고 싶었지만 듣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화자가 되어 답답함을 풀어준다. 그녀는 분명 아주 잘 크고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부모님의 소개팅이 이루어졌던 시골의 잡화점 같은 '송방'에서의 이야기는 부록 이상이다. 거기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화투놀이의 일종인 '뽕을 쳤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가게 점방 같은 곳에서 놀이를 하고 바로 벌칙으로 엿과 삶은 달걀을 사고 사랑에 빠진 그녀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당돌한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녀의 익살도 재기도 시원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러한 부모님의 익살과 재기를 잘 담아내어 조금씩 더 무거워지려 한다. 그녀의 수상소감처럼 그녀의 무게가 길 위에 '방향'을 만들 것이다. 독자들은 그녀가 만든 지도의 발자국에 살짝 자신의 발을 넣어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지는 꿈을 꾼다.

 

 

편혜영 <밤의 마침>

 

오퍼상에서 비밀 사서함을 관리하다 자신의 내밀한 과거에 대한 암시를 발견하는 중년의 사내. 누구나 실수는 하고 누구나 환한 대낮에 크게 얘기할 수 없는 은밀한 공모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는 몹시 떨리는 이야기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에게 용서를 받을 일이 하나 있기는 했다. '여자아이'를 추행한 일은 무고로 결론지어지고 그의 아내는 그의 결백함을 깔끔하게 수용해 주지는 않는다.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귀가 하나 빠진 퍼즐로 독자를 유인한다. 바로 속으면 안 된다. 절대.

 

 

그는 자신이 선량하고 성실하며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도 명확한 신념과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일로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란 신념이 흔들릴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인데, 자신에게는 애당초 흔들릴 신념조차 없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에게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만이 있다. 그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순간적인 위기에 대처 능력이 뛰어나나 그게 가진 능력의 전부이다. 그가 자부하던 건전한 양심과 신념, 사회적 위상과 도덕에의 의지, 원칙이나 선의 같은 것들은 그간 주머니에 비축된 먼지의 양보다 적다. 그는 그저 상황과 위기에 걸맞게 신념과 가치라는 걸 조작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을 착각했고 과신했다.

-p.198

 

이러한 '그'에 대한 설명은 '그'가 누구일 지라도 얼마간은 아니 상당 부분이 맞다. 인간은 고정불변의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불확실하고 가변적이고 모호하고 상황에 따라 어떤 모습도 보일 수 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떠한 상황에서 예외의 모습을 보였을 때 그는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대쪽같은 신념과 일관성은 생동하는 삶과 합치되기 어려운 과제다. 물론 지향이 될 수는 있겠지만. 편혜영이라는 작가는 그러한 지점을 비범하게 포착했다. 흘러내리는 단발머리 속에서 예쁘게 미소짓는 그녀의 흑백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다.

 

손홍규의 <배우가 된 노인>도 김이설의 <흉몽>도 우리의 삶의 이면, 그 비의에 대한 적나라한 고찰이다. <배우가 된 노인>이 딸을 위하여 연기하는 삶도 모텔을 청소하며 남편의 범죄를 방조하는 그녀의 그 비루한 일상도 결국 생존에 끄달리게 되었을 때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그 나락에서의 모습에 대한 성실한 고찰이다.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 닿으면 그 골목은 갑자기 그 빈곤한 언어들 앞에서 겸손하게 문을 만든다. 책도 그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사는 삶도 언제까지나 그렇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3-01-2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상 받는 사람은 항상 우수상만 받는군요... 편혜영, 손홍규, 윤성희 등이요.
언젠가 그네들도 이상문학상 대상에 이름을 올릴 수 있더라면 좋겠어요.
김애란의 수상에 영 내키지 않았는데, 블랑카님께서 인용해주신 부분과 글을 읽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요.

blanca 2013-01-26 15:4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도 사실 김애란 취향은 아닙니다. 몇 몇 단편이 소재나 주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장편은 못 읽어 봤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 작가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어요. 안주하는 작가가 아니라요.

꿈꾸는섬 2013-01-3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애란 팬인데...아직 이상문학상수상집은 못 읽어봤네요.
요새 워낙 책이랑 멀리 지내서, 가깝게 지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blanca 2013-01-30 09:46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그러다가 또 책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