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이다. 낯설고 난감하고 경이로웠다.
분권된 소설은 섣불리 시작하기 힘들다. 일단 1권이 별로라 할지라도 2권이 노려보고 있다. 읽지 않은 책 목록에서 이런 긴 분량의 이야기는 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말 신중한 시작이어야 한다. 작품성이 아무리 대단해도 지루한 이야기라면 곤란하다. 독자는 좋은 책의 기준 안에 반드시 읽는 즐거움을 포함시킨다. 그것은 문학상 심사위원들이나 문학평론가들과 반드시 만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캐나다의 여류 작가의 이 책을 시작하는 데에 망설였드랬다. 나에게 필요한 리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보장성이 담긴 것이었다. 재미없는 책을 향하여 발휘하였던 인내심들은 이제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괴이쩍은 재미를 가지고 있다. 보기 힘든 구성이다. 일단 화자는 노년의 아이리스다. 아이리스는 현재에서 자신의 유년과 젋음을 회고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눈먼 암살자'라는 액자 형식의 다른 이야기가 간헐적으로 삽입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도피중인 '그'와 목마른 재회를 나누며 '그'가 해 주는 공상 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삼중의 액자 형식이다. 노년의 아이리스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전쟁이 끝난 지 열흘째 되던 날, 하나 뿐인 여동생 로라가 스물 다섯 살의 나이로 차를 몰고 다리 위에서 추락하는 장면이다. 단추공장의 상속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서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은 자매는 하녀 리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만 공장의 몰락, 아버지의 파멸과 더불어 탐욕스러운 실업가 리차드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이 슬픈 이야기의 단초를 얻는다. 언니를 따라 형부의 보호 아래 있게 된 로라는 때로는 구제불능인 것처럼 심지어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아이리스와 격리되어 자매는 서로의 진심을 알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 소녀 시절 아이리스, 로라가 함께 숨겨주었던 공산주의자 청년 토마스를 사랑했던 그녀들은 이제 이 '눈먼 암살자'라는 이야기가 동생 로라가 남긴 유작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리스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암시를 곳곳에 숨기게 된다. 사랑없는 결혼으로 이용당하는 여자는 항상 도망다녀야 하는 남자와 비밀리에 만나며 그가 해 주는 자이크론이라는 행성의 '사키얼 논'이라는 도시에서 카페트를 짜며 시력을 잃은 소년들이 암살단으로 사주를 받고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 혀가 잘려진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 다다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남녀가 이 비극의 서사의 열린 결말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은 오싹하면서도 서글프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러한 슬픈 서사의 실타래를 다 늙어버린 아이리스의 손가락에 맡긴다.
낙원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곳에는 여로가 없기 때문이다. 상실과 후회와 비참함과 열망이 굴곡진 길을 따라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2권 p.393
작가의 기본적인 서사에 대한 시선은 이런 곳에 닿아있다. '이야기'는 상실과 후회와 비참함과 열망 사이에서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처럼. 여동생 로라가 남겼다고 표방되는 이야기는 결말부에서 드디어 언니 아이리스의 것으로 겹쳐진다. 한 남자를 사랑했던 자매는 그 사랑이 용인되지 않았던 시대에서 서로를 철저히 오해한 채 허무한 작별을 맞는다.
할머니 아이리스의 고독하고 무기력한 삶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변화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조로 또하나의 절절한 서사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이러한 구절은 계절의 변화마다 따른다. 아무래도 작가의 시인으로서의 경험이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의 직조에 한몫을 담당했을 테다.
야생 기러기가 고장 난 경첩처럼 끽끽 울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강변을 따라 옻나무 초가 흐릿한 붉은 색으로 타고 있다. 지금은 10월 첫주다. 좀약 사이에서 끄집어낸 양모 옷의 계절. 밤안개와 이슬과 미끄러운 현관, 그리고 늦은 전성기를 맞이한 민달팽이의 계절.
-1권 p.331
시간와 물질과 야망이 모두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그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리스가 이제 펜을 놓고 손녀와의 재회를 꿈꿀 때 그래도 삶은 생명은 어떤 순수, 진리에 대한 열망과 사랑의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눅진하고 서슬 같은 소설. 이야기는 이렇게나 위대해질 수 있구나. 진실은 실재는 죽음으로 화석화되어 현재완료형이 되어 심지어 역사라는 틀에 담겨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 단순한 명제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철저히 서로들을 오해하며 그렇게 오늘도 삶을 산다. 나이가 들어 나의 삶을 다시 그 초입부터 매만져도 그것은 또다른 형태로 가공되기 마련이다. 그 삶속을 들락날락했던 수많은 만남들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반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연한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직시와 다름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