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은 아주 많다. 하지만 감히 나에게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으라면 알라딘 서재에서 여러번 추천된 책인 아래 책을 주저없이 내밀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의 가장 큰 함정은 불균형성과 저자의 자의성이다. 저자는 흔히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의 독서 경험과 자신의 독서 기호도와 작가 선호도를 슬몃 끼워 놓는다. 그것은 때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도 하지만 어떤 책에 대한 완벽한 오해, 고정관념, 오독을 불러온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이 책이다. 일단 이 책의 저자 클리프턴 패디먼은 라디오 퀴즈 쇼의 사회자였고, 비평가이자 작가였다. <평생독서계획>의 초판은 1960년에 나왔다 저자가 99년 사망할 때까지 수정과 증보를 거듭하다 마침내 완결된 판으로 우리 손에 왔다. (작가 소개 참조) '길가메시 서사시', '맹자'로부터 치누아 아제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 희곡, 철학책, 과학책, 소설 등 균형을 갖춘 독서를 진작하는 저자의 배려는 흔히 독서의 여정에서 치우치기 쉬운 균형점을 잡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한 권의 책에 대한 간략학 소개, 저자의 소고, 그리고 독자가 이 책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안내가 적절하고 친절하게 잘 버무려져 있다. 고전의 초입문에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안내 지도로 가지고 출발해도 좋을 것 같다. 빌려서 돌려주고 말기에는 너무나 참조할 구석이 많아 두고두고 옆에 두며 꺼내보게 되는 책이다. 일례로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을 읽고 클리프턴 패디먼의 그녀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 다시 이 책을 꺼내놓고 보다 그가 권하는 <엠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식이다. 클리프턴 패디먼은 게다가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돈키호테>는 발췌독을 해도 된단다. 무조건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너무나 읽기 난해하고 지루한 책에 대한 솔직한 감정과 독자에게 그 책을 어떤 식으로 알아가야 할 지에 대한 더 쉬운 지름길도 제시한다. 이 사랑스러운 책을 쓴 저자의 책은 번역된 것으로 이게 전부다. 너무 아쉬웠다. 그러다 읽게 된 책
이 책의 저자 앤 패디먼은 위의 클리프턴 패디먼의 딸이다. 이 책도 책에 대한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철저히 개인적인 책에 대한 감상이다. 항상 책에 둘러싸여 있던 유년시절,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서재를 합치는 과정 등 앤 패디먼의 재기어린 입담은 아버지의 그것보다 조금 가볍지만 나름 상큼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 책에서의 수확은 군데군데 클리프턴 패디먼에 대한 개인 정보다. 아버지로서의 그. 그는 장수했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여든여덟 망막 괴사 진단을 받는다. 이러한 슬픈 노년에 대한 이야기.
읽거나 쓰지 못한다면 나는 끝난 것이라고 봐도 좋다."
p.60
그가 딸 앤 패디먼에게 한 이야기. 책에 대한 그 훌륭한 이야기들을 그렇게나 아름답게 유려하게 했던 그가 자신의 실명 앞에서 한 이야기. 딸이 편도선절제술을 받았을 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어주었던 아버지. 이제 딸은 아버지에게 전화로 책을 읽어준다. 밀턴의 <나의 실명에 대하여>를 전화로 아버지에게 읽어주는 딸. 그리고 그것을 말없이 듣는 아버지. 이 대목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의 클라이막스보다 더 가슴 안쪽을 울리게 했다. 언제나 책을 읽고 책을 숭배하고 음식점 메뉴판의 오탈자 찾기에 골몰했던 패디먼 가족의 이야기.
책에 대해 이야기하였던 그는 실명 앞에서도 꿋꿋하게 책 앞을 떠나지 않는다. 어린 딸에게 읽어 주었던 그 숱한 책들은 다시 그 성장한 딸의 입에서 그의 귀로 흘러들어온다. 비극적인 계기 앞에서 그의 삶은 더욱 찬란하고 책에 대한 밀착도는 더욱 높아진다. 활자와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이 부녀의 이야기는 왠지 더 희망적이다.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 꼭 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낭만적인 메시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