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책을 좀 안 읽었다. 그러니 자꾸 스마트폰만 붙들고 스마트폰의 그 단문들과 이미지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책을 안 읽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지하철을 타도 주변을 둘러봐도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책들로 책꽂이를 채워도 나에게 책에 대하여 묻는 사람도 같은 책을 읽는 사람도 참 보기 힘든 요즘이다. 참, 책을 안 읽는 시대다. 책을 읽어도 안 읽어도 더이상 '책'에 대하여 신나게 떠드는 게 익숙한 풍경이 되기는 힘든 시대. 다시 책으로 돌아와 그 흑백의 언어들과 현란한 이미지의 경쟁이 얼마나 때로 승산없는 것이 될 수 있는지 잠깐 동안의 외유에서 돌아와 편혜영의 단편집에 집중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언어의 틈새에서 일렁이는 그 순전한 파고를 즐길 수 있는데 그 '조금만'이 어려워진 시대다. 눈에 보여지는 게 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문자 텍스트 앞에서 발휘해야 하는 인내심은 비싼 희생이다. 언어들만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의지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다시 재창조하여야 하는 독서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십 년이 지나고 삼십 년이 지나면. 어쩌면 종이 위의 문자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무리들은 점점 더 화석 같은 풍경이 되어갈 지 모른다. 그래서 책을 사고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이 공간에 둥지를 틀고 나면 이 공간에서의 논란에서도 슬며시 주인의 손에 이끌리게 된다. 명분, 합리성, 정직, 신뢰. 이러한 가치를 지향하며 철저히 이성적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표방하는 주체가 내가 되기는 힘들다. 도서정가제에 대하여 제대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틈새의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나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미숙한 판단이 두렵다. 나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도 않으니까. 온라인 서점에서의 할인과 마일리지가 동네서점 고사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동네서점의 부활에 일조를 담당하리라는 낙관은 들지 않는다.

 

편혜영의 화자는 대부분 '그'이다. 참 신기하다. 남자 작가가 여성화자를, 여자 작가가 남성 화자를 택할 때의 그 일말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중간도 못 왔지만 색깔이 아주 명확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초적인 척 하는 나약한 중년의 사내들의 이야기. 한 편을 읽고 나니 나머지는 쉽게 읽힌다.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할 많은 작가들이 있어 다행이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도 절절하게 묘사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쉽게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쉽게 이야기하려는 순간 그것의 진정성은 바랜다. 언어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나는 실패했다. 그 수많은 은유,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은 머뭇거림에 이제는 참고 다 읽어내는 인내력에 후달리는 나로서는 그 심오함을 제대로 못 따라가겠다. 참지 않고 조금 있다 덮었다.--;;  너무 무거운 무언가를 품고 있을 거라는 부담감도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같다. 구입한 책을 읽지 못할 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에게 이 시리즈를 다섯 권 사서 읽어주고 있다. 그림이 다소 흐릿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읽어주다 보면 그냥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글밥이 많아서 아이는 후반부에 가면 꼭 딴짓을 하고 나는 목이 아프다. 그래도 옆에 앉혀 두 권이나 읽어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책을 너무 좋아해서 한글을 떼지도 못하면서 책만 붙들고 있었다. 발달이 늦어 그랬는지 그렇게 책을 많이 봐도 한글을 다 알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아이도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이것도 하나의 채근이 된다. 즐겁게 젖어들어야 할 텐데. 벌써 영상물과 이미지의 급변에 익숙해진 스마트폰 세대의 아이들은 느린 활자가 주는 즐거움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편혜영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를 읽을테고 그 다음에는 정말 그 다중지능이론의 가드너(전공에서 유일하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가 썼다는 신간을 구입하게 될 것같다. 올해는 살이 찌고 있고 무기력해져 가고 늙고 있고 머리가 다시 곱슬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눈밑의 주근깨는 점차 기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늘 아침 뜬금없이 나의 엄마가 살아서 나와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뒤늦게 철이 들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는 것같다. 세월의 힘도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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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1-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어낚시는 저도;; 이게 왜?! 이런 기분이었죠.

blanca 2013-01-30 09:43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저도--;; 정말 그랬어요. 저는 그리고 은유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을 텐데 이제는 그런 인내심 자체가 없어졌어요.

icaru 2013-01-29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송어낚시는 실패요. 중간에 놓아 버리고, 찝찝함을 느꼈는데 그게 아마 죄책감이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하네요~
서든 에이지 이후 라는 책을 읽으면서,,, 제 노화의 징후를 굳이 애써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저보다는 서넛 어리신 것 같은 블랑카 님께 마흔 즈음에 일독을 권해 드려요!

blanca 2013-01-30 09:45   좋아요 0 | URL
서든 에이지 이후! 꼭 읽어 볼게요. 미리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산 책은 웬만하면 다 읽자, 주의인데 못 읽으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도 읽다 말다 하다가 마침내 끝까지 읽고 마지막의 감동이 참 강렬하더라고요. <송어낚시>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지만 이제 책장이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다 못 읽겠더라고요.

꿈꾸는섬 2013-01-30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이 잘 안 읽히는 걸 스마트폰 탓으로 돌려야겠어요.ㅎㅎ
편혜영, 저녁의 구애,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blanca 2013-01-30 09:46   좋아요 0 | URL
꿈섬님, 이 책 정말 재미있네요. 또 한 명의 작가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애(厚愛) 2013-02-0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피터래빗 이야기'에 관심이 가네요.^^
오랜만이지요? 잘 지내셨어요?
감기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

blanca 2013-02-02 16:41   좋아요 0 | URL
예, 후애님. 후애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