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을을 보면 마음이 참 이상하다. 참 좋기도 하고. 

아버지는 운전하다 석양을 보면 으레 서툴게나마 그것을 찬미하고 싶어했다. 신경숙 작가의 말처럼 언어는 삶의 바깥을 흐르기 마련이라 아버지가 못다한 수많은 얘기들이 그 속에 있음을 짐작했다.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하고 뭐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뒷날들이 오버랩 되는 그 지점에서 장녀에게 해주고 싶은 수많은 얘기들을 언어화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도 함께였을 것 같다.

법정 스님 스페셜에서 상좌스님이 동자승들을 곁에 두고 노을을 보며 배경처럼 나지막하게 한 얘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바로 어제 너희들 같았었는데 저렇게 저물거라고. 지금 나는 정오쯤 온 것 같다고. 

   

 

하루해가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넘어가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맑게 갠 날만이 아름다운 노을을 남기듯이
자기 몫의 삶을 다했을 때
그 자취는 선하고 곱게 비칠 것이다. 

남은 날이라도 내 자신답게 살면서,
내 저녁 노을을
장엄하게 물들이고 싶다.
-<허의 여유> 중 

저녁 노을을 보며 법정 스님을 추억할 뒷사람들을 마치 예감이라도 한듯하다. 어젯밤 이 대목을 읽고 왜 노을을 보면 마음이 애잔해 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삶의 일몰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모습은 언제나 얼마쯤은 슬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삶의 성실성을 유추해 낸 그의 혜안과 내 저녁 노을을 장엄하게 물들이고 싶다던 그의 마지막 유언 같은 말이 가슴께를 뻐근하게 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충만하게 존재하기 위해 살라는 그의 얘기가 허공에 흩날리는 수사로만 들리지 않았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않고, 새로운 물건이 진열된 선반으로 끊임없이 이끌린다.
                                                                                                             -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중

 

소유의 가치가 존재의 무게감과 직결되는 듯한 환상을 주입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딜레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이고 지고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갈 수 없다. 억만장자라도 그건 별 수 없다. 다 버리고 가야 한다. 그 때에서야 비로소 순간의 있음으로 엮인 삶의 정수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슬픈 도식은 정형화된 삶의 패턴 같다. 알베르 카뮈도 얘기했다.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다,라고. 공교롭게도 그 날 본 티비 단막극에서는 여주인공이 사랑은 원레 헤픈 거라고 누가 그렇게 움켜쥐며 싸가지 없게 사랑하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사랑은 원래 헤픈 거라고. 

적게 가지고 많이 사랑하라고. 저녁 노을을 볼 때마다 삶의 황혼에 이르렀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연상해 내고 역설적으로 현실에 더 충만하게 존재하라고. 

노을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질 것도 같다. 종교를 떠나 절절하게 순간순간 삶을 꼬옥 꼬옥 눌러 밟았던 스님의 얘기를 들으니 지저분한 내면이 조금 정갈해 지는 것 같아 상쾌하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6-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을을 보면 모든 저물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든달까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것이 나이드는건가 봅니다.

blanca 2010-06-08 16:51   좋아요 0 | URL
제가 올해부터 하게 된 생각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탐욕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초연해질까요?

2010-06-08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8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6-0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은 저녁에도 그러했지만, 아침에도 읽기 좋네요 ^^

요즘 또 뭔가를 마구 버리면서 "소유" 한다는 것에 여러 생각이 닿습니다.

시간, 사랑, 소유 오늘 아침은 이런 생각들과 함께 시작을 하게 되네요!

blanca 2010-06-09 14:0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그래서 요즘은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답니다.^^ 버리는 연습을 슬슬 해야 되는데 이게 주기적으로 또 좌절당한답니다.

여름이 너무 빨리 와버려서 이제는 가을을 또 기다리게 되네요.^^

기억의집 2010-06-0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갑자기 노을 이야기 하시니깐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시, 신대철의 처형이 떠오르네요.
저, 산 노을이 비치고
온 몸에 금이 가요.
사방에서 노을이 떠요.
살고 싶어요.
사람이 죽으면 노을에 묻히나요?
블랑카님 말씀대로 노을은 사람의 감정을, 삶을 슬프게 하는 것 같아요.예전에 이 시의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는데 블랑카님의 이 페이퍼 읽으니 얼핏 알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운전면허 딴다고 정신 없이 살고 있어요. ^^

blanca 2010-06-10 12:50   좋아요 0 | URL
온 몸에서 금이 가요. 살고 싶어요...역시 시인들의 감성은 다르네요. 막연한 생각들이 그들의 입만 빌리면 바로 그거야, 싶어지니까요.

기억의집님, 운전면허 따시면 꼭 바로 차 몰고 나가세요. 저 장롱면허 만들었다 연수 한 번 받고 또 안 몰았다 지금에 왔는데 운전 전혀 못한답니다. 아마 또 연수 받아야 할 것 같아요. 한 번에 붙기를 기원하구요. 빨랑 컴백하셔야 합니당!

후애(厚愛) 2010-06-10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 책 구매했는데 아껴가면서 읽으려고요.^^
법정 스님 책들은 다 좋아요. 마음에 와 닿는 글들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고요.^^

blanca 2010-06-10 12:51   좋아요 0 | URL
후애님, 저는 최근들어 법정스님 책을 별로 안 읽었는데 다시 접하게 되니 정말 아껴 가며 읽을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읽는 동안은 정말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더라구요.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 책꽂이 위에 왜 책을 눕히나 싶었는데, 이제는 알게 됐다. 책을 더이상 세워 꽂을 공간이 확보가 안되자 미친듯이 칸마다 위로 남는 공간에 책을 눕히고 있다. 심지어 왜 방바닥에 책탑을 쌓나(곧 떠날 이처럼)  싶었는데 나도 탑하나 쌓고 있다. 아이는 매일 그 탑을 해체한다. 그러니 무용한 그 일을 반복하며 골병이 들고 만다.

보기 안좋다. 쟤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싶은 그 껄쩍지근한 심정. 넓은 집에 살고자 하는 로망은 순전히 얘들 때문이다. 옆지기의 대학때 전공서적을 좀 치워주었으면 하는 이 이기적인 마음은 차마 내보이지도 못하고 있다. 내 책만 중하고 내 추억만 무게감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요러고 있다. 

누가 나에게 빈 공간과 아무 책도 안꽂힌 책장을 대여섯 개 내려 줬으면 싶다. 빈 서가는 언제나 나를 자극한다. 책이 좌르르 꽂혀 있는 그 모습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그 공백이 좋다. 

# 대학가 근처에(대학이 두 개나 있다.) 사는데 벌써 그 애들이랑 섞이기가 괜히 민망하다. 오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전창으로 비친 풍경은 왠지 서글펐다. 젊은 아이들이 깔깔대며 오고 가는 그 길목에 나이 든 과일 행상 아주머니가 팔리지 않는 과일들을 분주하게 어루만지는 풍경과 한쪽 모퉁이에서 무언가 불만과 결핍이 가득해 보이는  나이든 아저씨가 혼잣말을 하는 광경이 오버랩됐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가는 것이겠지만, 또한 시야가 넒어져 얇고 말랑말랑한 것들 틈새에서 두껍고 투박한 무언가가 끼어 있음을 보고 마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예전에 <샘터>에서 아홉 살 아들내미가 걸핏하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눈시울을 적신다는 사연을 읽었었는데 그 심정을 알겠다. 그냥 요즘은 왠지 다 뭉클하다. 어버이날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가 고운 빛깔 한복을 입고 조금 덜 늙었을 뿐인 또다른 노인인 아들과 중국집에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도 눈물나고, 사탕빨고 콧물 흘리며 좋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봐도 괜히 짠하고, 뭐 이런 식이다. 

정작 책 읽으며 줄 긋고 단어 정리하는 내 자신이 가장 불쌍한 건지도 모르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10-06-06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misshide/3796580#C1870717
보이세요? 옆으로 빽빽 들어찬 책들 ㅎㅎ 이 칸은 그나마 큰 책이라 한 줄이구요,
다른 칸은 저렇게 두 줄, 세줄까지 쌓여 있어요. 그래도 책탑은 여전합니다만

전 넓은 집에 커다란 책장도 좋지만, 좁은 집에 빽빽한 책장도 좋아요. 온 벽이 책인 뭐 그런거요.
너무 넓으면 책으로 도배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헤헤

blanca 2010-06-07 14:42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서재는 옆으로 빽빽이 통일성이라도 있잖아요. 저는 일단 세워서 꽂은 다음 윗틈새에 눕히는 거라 좀 지저분해 보인답니다.-..- 책으로 도배! 히히, 맞아요. 그런데 차라리 다 옆으로 눕히는 게 더 많이 수납할 수도 있겠다, 싶어 오호!합니다.ㅋㅋㅋ

2010-06-07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7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6-0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그냥 이렇게만 불러 드리고 갑니다. 흐흑~

blanca 2010-06-07 14:42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그 뒤에 말줄임표 속을 짐작해야 하는 건데. 그냥 불러만 주셔도 고맙네요 ㅋㅋ

L.SHIN 2010-06-0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책을 바닥에 혹은 박스에 넣는 한이 있더라도...왠지 책 위에 껴 넣고 싶지 않더라구요.
뭐랄까, 쓸데없는 '정리벽'이죠. -_- 그래서인지, 요즘은 책들의 사이즈가 다 틀리잖아요?
일렬로 줄 맞춰 잘 정리되다가 같은 장르의 책 중 하나가 삐죽 위로 올라와 있으면 그게 너무 싫은 겁니다.(긁적)

blanca 2010-06-07 21:01   좋아요 0 | URL
흑흑, 제가 그래요.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 얼마나 신경질이 나겠습니까 ㅋㅋㅋ 저도 특히나 책등이 고루지 못한 모습 보면 화납니다.^^;;

2010-06-13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3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위에서 저를 좌파라고 합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걸핏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니까요.  

요즘은 그런 표현은 안씁니다. 옛날 얘기죠.

2차선 도로를 인도를 넓히면서 갑자기 1차선으로 만들어 버려 온갖 교통혼잡을 야기한 것을 불평하다 지방선거 얘기, 북풍몰이에 대한 비난 등 처음 만난 기사와 승객은 서로를 알아보고 신나게 시국토론을 하다 갑자기 그 대목에서 불일치를 봤다. 기사 아저씨의 나이는 대략 육십 대 어름으로 보였다. 빨갱이. 좌파. 더 많은 얘기들은 하필 그때 목적지에 당도함으로써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빨갱이. 우리는 언제쯤 이 용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적색 경계 경보를 울리면 우리는 언제나 얼마쯤 주춤한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각을 세우는 부분도, 그리고 언제나 돌아오고 마는 원점도 이 지대에 있다. 레드 콤플렉스는 한반도 내에 그 이념을 체화하겠다고 진군했었던, 하지만 결국 파시즘적 공통 분모를 결과론적으로 가지게 된 저들과 완전히 통합하거나 치지도외하거나 하지 않는한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들어붙을 수 밖에 없는 망령이다. 

70년대 말에 태어난 나도 결국 유년시절부터 반공이념을 주입받은 세대다.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주며 으쓱했고,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반공 표어와 포스터로 모범적인 어린이로 인정받고자 했던 기억이 뿌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서 그런 인위적인 적대감의 주입은 하나의 에피소드 이상으로 남아 있지 못한 것 같다. 다만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는 의아했던 것같다. 대체 왜. 왜 이다지도 그런걸까, 싶은.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사람의 체취를 불러오고 왜 그다지도 그들이 그 사상에 도취되어 투신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한참 후에야 소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빨치산들의 그 몽상가적이고 이상주의자적 면면뿐만 아니라 그것이 결국 일제 강점기의 항일투쟁과 해방기의 토지개혁과 맞물려 있음을 서사를 통해 체현한 대목은 거의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을 주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북한정권으로부터 거꾸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일제치하 중국으로 추방, 혹은 도피한 독립운동세력들이 그 운동의 동인으로서의 이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차용측면에서의 이해, 중국의 항일투쟁과 연합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인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또한 해방기 농지재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친일파들의 처단 들과 조우했던 지점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미군정하에서 거의 대부분의 주요한 통치 체제에 친일파들을 등용함으로써 그들의 콤플렉스가 반공주의의 불꽃을 점화하는데 은밀한 역할을 했음도 마찬가지다. 

때마침 우연찮게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있었다.  

 

 

내 전생애는 실패했지만, 단 하나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고 자평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가 중국 공산 혁명에 뛰어들어 항일투쟁을 하는 와중에 처음에는 리리산주의자, 심지어는 우파, 마지막으로 조선인이라는 딱지로 어떻게 폐기처분되는 지를 어떻게든 납득해야 하는 일이었다. 또한 오늘날도 그렇게 한 인간에 각종 이념적 꼬리표를 막무가내로 붙이는 그 염증스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슬픈 체념도 함께 감당해야 했다.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평양 교외에서 가난한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에 이미 조선독립군 군관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국외에서의 항일투쟁은 테러리즘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혁명은 잔혹성 속에 진실을 건져 올리는 일과 다름아니었다. 그들은 이상주의자기도 했지만, 삶과 역사가 박애와 그 인연이 없음을 절절하게 응시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영화 부활을 보면서 엉엉 울었던 김산은 그럼에도 톨스토이는 하나의 정적인 관성의 체현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역사는 꿈틀대는 용틀임이었고, 하나의 생명이었기에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체제를 종식시키고 금덩어리같이 귀하게 여겨졌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오는 일은 투쟁과 직결되었다. 

 서울 근처에 아리랑 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었다.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이 소나무는 수백 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옹이 진 가지에 목이 매여 죽었다. 그리고 시체는 옆에 있는 벼랑으로 던져졌다. 그중에는 산적도 있었고 일반 죄수도 있었다. 정부를 비판한 학자도 있었고, 조선 왕족의 적들도 있었고 반역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 반역자들이었다. 이런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 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진 뒤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끓는 노래가 조선의 모든 감옥에 메아리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p.60~61 

우리가 전통민요 정도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이런 피압제민들의 응어리진 애환과 한, 체념서린 수런거림이 퇴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끌려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마지막으로 벽에 손톱으로 아리랑 가사를 긁어 놓은 것에서는 비감어린 뭉클함이 전해져 왔다. 저항하고 투쟁하다 결국은 넘고야 마는 죽음의 고개. 그러나 그 고개를 넘어간 이들은 김산이 얘기했던 것처럼 눈앞의 승리를 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역사 자체로 녹아들어가 결국 승리하고야 말았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다 분파주의, 파벌주의에 이용되고 희생되어 결국 고국의 해방도 미처 못 본 채 눈감아 버린 수많은 저들의 피어린 삶들은 그 자체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호흡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잘한 편린 들 속에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살아 돌아온 자들은 우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던지는 시선들, 우리가 하는 행동들, 우리가 내뱉는 말들 속에 그들의 유지는 체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산은 옳고 그름의 분계선이 유동적이라고 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올바른 평가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또한 그러한 진동 자체가 변화를 낳는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간직하고 싶은 얘기다. 

누군가를 비판하면서 그들이 개념없이 사용하는 감정서린 뒤틀린 용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억울함을 토로한 나의 모순을 반성한다. 그 기사분이 옳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6-06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6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7 0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6-0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뭔가 체계를 만들어가기도 전에 6.25라는 전쟁을 겪고, 통일을 겪지도 못하고 미군정의 영향탓으로 애매하게 나라의 뼈대가 만들어진 것.

그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꿰매지지 못한 상처들 속의 고름은 과연 언제즘 없어지게 될까요..?

시간이 더 지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blanca 2010-06-06 22:13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누구나 자기 자신은 특별하게 느끼겠지만 우리 민족은 특히나 아주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상흔이 다 아물기 전에 진정한 화해나 통합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감기의 돌림노래에 관한 얘기다.
먼저 아이가 걸리고, 나으면서 나에게 옮겨붙고, 1주일 휴지기 후에
또다시 아이가 걸리고, 나으면서 나에게 옮겨붙고, 마침내 아빠한테까지 엉겨붙고,
마침내 오늘 아침 아이는 분노의 콧물세례를 온얼굴에 받으며 열심히 콧물을 빨아 먹고 있다. 

기억나는 건 정말이지 미친듯이 코를 풀고 미친듯이 뒤돌아 기침을 해대다 늑골까지 결림을 느끼며
잠시 공포감에 전율하고 있다 그나마 나를 살게 했던 일정과 약속을 목소리 하나로 다 취소하고(여보세요, 하나로 다들 수긍)
가까스로 회복좀 됐다 싶으면 또다른 가족이 걸려서 다시 칩거생활에 들어가고
이 스트레스를 사발면과 비비빅과 바밤바를 폭식하는 것으로 풀고 그나마 사이 사이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씨네21>에 연재된 '김혜리가 만난 사람 시즌2'의 인터뷰 기사 중 출판을 허락한 22인의 얘기가 담겨 있다. 김혜리는 이미 <그녀에게 말하다>로 구면이다. 역시 <씨네21>에 개재된 인터뷰 기사를 발췌한 것인데 전작은 뭐랄까, 인터뷰이들에게 슬며시 예의차리며 다가가 살짝 건드리고 온 듯한 미진함이 아쉬웠다면, 이번 책은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인터뷰에 오롯이 녹아 낸 농밀한 밀도와 깊이가 빛난다. 특히나 그녀가 번역가, 문학평론가, 배우, 시인, 물리학자, 영화평론가, 음악가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분야를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한 상태에서 그들을 만났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인터뷰이들에게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정형화되고 낭비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속살을 드러내고 무장해제 하게하는, 그래서 독자들은 저만치 더 멀리, 더 깊이 그들에게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비장의 무기다.  

그들의 삶은  나의 그것보다 한층 밀도와 무게가 있었다. 나는 이 지구에 두 발을 디디고 산 것이 아니었다. 저 별을 올려다보며 꿈을 제대로 꾼 것도 아니었다. 삶을, 자신의 일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함과 경건함은 찰나와 순간에 우리의 전존재를 밀어넣고 숨쉬고 말하고 사랑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 어떤 책보다 생의 긍정적 에너지를 고양하는 탁월한 재능이 느껴졌다. 

제 가장 큰 이념은 웃음이고 그걸 포기하면 저는 끝입니다.
그것을 비판이고 반정부라고 말한다면 죽을 때까지 비판적이고 반정부적일 겁니다.
-김제동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를 역설한 그가 단순히 진보정인 정치색을 드러냈다고 오독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는 결국 웃음을 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근거없이 끼어드는 억압과 제재에 대한 저항이 정치적으로 읽힌다면 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 그가 노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오늘 M-net 김제동 쇼에서도 결론적으로 사퇴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결국 이 시대의 저들은 영원히 그를 오독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답답한 절망을 느끼게 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마침내 수군통제사의 옷을 입고 그 갑옷의 무게와 그 갑옷의 깊이를 함께 느꼈다는 김명민의 고백도 남는다. 이순신을 이해하고 느끼고 마침내 그와 한몸이 된 것 같은 경지에서 그의 심리적 고뇌의 파고까지 들을 수 있었던 그가 자신감이 생겨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내가 하려는 것, 내 안에 있는 것만 생각나고 반면 불안하면 온갖것이 보이고 신경이 쓰인다고 했던 얘기는 바로 나 자신이 듣고 싶어했던, 그리고 들어야만 했던 바로 그 조언이다. 

저자가 시민의 각성은 기대하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없어 보인다고 평했던 유시민이 민주주의를 정의한 대목도 흥미롭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로 각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격분하면서 연대하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가 강조하는 헌법은 바로 이 연대의식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연대의식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한다는 논리로 이해된다. 이 정부가 민주주의가 뭔지 몰라 결과적 '계몽군주'를 자처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진단한 대목, 정치란 것이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재정의한 부분은  유시민만이 유시민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다. 진보신당, 민노당의 주장들에 비현실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정의롭고 시련에 굴하지 않으며 좁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는 고백은 그가 당면한 진보진영의 통합과 포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지에 대한 작은 기대를 가지게 된다. 

난 한번도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걸 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해요. 
<마더>의 엄마가 도준이한테 "너는 나야"하듯이 연기는 나에요. 숨쉬는 것처럼.
-김혜자 

언제나 두고 온 자신의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매체에 스스로를 많이 노출하고 싶다던 고현정의 인터뷰도 좋았다. 그녀가 연기 신인 시절에도 노메이크업으로 온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열하던 모습들, 미스코리아 출신임에도 예뻐 보이고자 몸과 얼굴 근육을 사리는 일에서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그 성실해 보이던 모습은 그녀가 정작 재벌가로 홀연 사라져 버렸을 때도 진한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언제나 연기를 참 잘했다. 그녀가 십 년의 공백을 뛰어넘고도 건재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자질과 노력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채근하고 많이 노력하는 그녀의 진지함과 열성이 보기 좋았다. 그런 그녀지만 막상 촬영장에 구경나온 이가 안고온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는 김혜리의 얘기는 왠지 애잔했다. 심지어 그 아기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고양이 그림까지 그려주는 모습에서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엄마로서의 고현정의 아픈 사연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도 김혜자에게 연기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곧 삶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독서 같은 '간접경험'이 아니라 40분 동안 비창을 연주하면 40분 동안 비창을 사는 거란다. 이 시간 동안 그녀는 그녀가 아는 평균치의 삶에서 느끼는 애절함보다 천만배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때로는 독서도 그럴 때가 있다고 삶 속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처절하고 농밀한 감정 속에 푹 젖을 때가 있다고 항변하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도 책을 읽다 갑자기 그 속의 문자들이 매직아이처럼 떠올라 내 주변에서 뛰어놀고 살아 숨쉬고 만질 수 있는 경지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가장 그 사람다운 표정과 몸짓을 포착한 흑백 사진들과 인터뷰어가 그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하여 질문과 답변을 고스란히 Q&A 형식으로 재연하다 에필로그처럼 덧붙인 추신들, 모두가 청아하고 간결하고 근사했다. 섬세한 촉수가 섹시하게 간지럼을 태우는 맛은 없지만, 그러기에 더욱 신뢰가 가고 인터뷰이들을 독대하고 그들의 고백을 경청하는 듯한 멋진 환각을 선물해 준 그런 책.  그래서 조지 가랫의 얘기처럼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에 가닿고 싶은 간절한 발돋움을 무용하게 만들지 않은 책.  

시인 김경주가 말한 것처럼 눈을 감고 조용한 공간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책. 파도소리가 난단다. 정말이란다. 이런 얘기를 과연 누가 나에게 해 줄 것인가? 인터뷰의 마력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6-01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6-0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자님의 말이 오늘 아침 정곡을 찌르는군요. 직업이니까 해야하는 사람과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이 몰입해온 사람, 이렇게 나뉠 수 있는건가요?
마지막 줄의 김경주의 말은 시인 입에서나 나올 수 있겠지 싶고요.
인터뷰를 통해 저런 속내를 끌어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 역시 보통은 아닙니다 새삼스런 얘기겠지만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blanca 2010-06-02 09:10   좋아요 0 | URL
hnine님 반갑습니다. 김혜자 같이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그 누구보다 러워요. 예, 시인이 대우받지 못하는 시대에서 시인의 속내를 들으니 참 좋으면서도 안타깝더라구요. 이래저래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 부러운 면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뷰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stella.K 2010-06-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급끌림입니다. 이런 인터뷰집이 있었군요. 제목이 무슨 사회과학계열쪽 같기도 하지만.^^

blanca 2010-06-02 16:06   좋아요 0 | URL
제목이, 좀^^;; 스텔라님, 옆에 두고 야금야금 읽기 참 좋아요. 관심가는 사람부터...

비로그인 2010-06-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배기 삶을 사는 진짜배기들의 책이로군요?!

blanca 2010-06-03 16:14   좋아요 0 | URL
마기님...이런 책 한번씩 읽어주면 좀 열심히 살게 되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6-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의 돌림노래... 분홍 공주님이 콧물 맛나게 먹던가요? 아하하~~~
전 고현정 씨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얘기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요.
아이를 참 사랑하는거 같은데, 그 아이들 한번 만나게 안 해주는 전남편도 대단하구나 싶어요.

blanca 2010-06-03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스무 살까지 못만난다는 대목이 참 가슴아프더라구요.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저는 엄마잖아요,라고 했던 얘기들도...고현정은 뭔가 있어 보이고 실제로 뭔가를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 같아요.

마녀고양이님, 저 어제 개표 방송 보고 가위눌리고 흑흑. 오늘도 계속 슬프네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천사가 있었다. 죽음으로 넘어가는 고통스러운 최후의 길목, 그 천사의 도움으로 노인이 본 풍경은 열일곱 첫사랑 소녀가 강가에 배를 대고 그를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노인은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십 대에 즐겨보던 미국드라마의 그 한 장면은 시리게 내 마음 한 켠에 박혀있다. 청춘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그런 순간, 눈을 비비고 있어도 빛이 나는 그런. 죽는 그 순간에도 가장 붙잡고 싶은 가장 떠나 보내기 힘든 그런. 

윤교수의 말처럼 공교롭게도 더이상 청춘이라고 일컫기 힘든, 이제는 죽어도 요절이라고 불러주기 뭣한 그런 나이 서른 셋을 통과하며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쓰고 읽고 걷고 울고 투쟁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떠나 보내는 스무 살을 읽었다. 

자꾸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에게도 오래전, 이라고 쓴 뒤에야 왜 그때 그러지 못했나, 싶은 일들. 살아가면서 아, 그때!라고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던 자책들을 주워모아 뒤로 뒤로 가고야 마는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윤이, 단이, 명서, 미루가 통과했던 시대적 질곡을 밟고서야 개인의 고뇌를 들이밀 수 있었던 80년대의 청춘과는 빛깔이 달랐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소소한 일들을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틀로 걸러 그럴듯한 것들로 만들고 싶어 더 불행했던 그 청춘의 기억들이 별처럼 하나씩 깜빡거렸다. 그때의 나는 지극히 과장적이었다. 모든 생것들이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들을 그때는 몰랐다. 소통이 실패해도 내가 쏘아올린 전파는 어디엔가 가 닿아 또다른 움틈을 만든다는 깨달음을 알지 못했다. 나는 무조건 슬프고 무조건 기뻤다. 나는 이들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걸으면서 타인과 현상을 다시 들여다 본게 아니라 배경을 음악처럼 내 눈에 문지르며 주로 자책하고 자악했다. 아쉽게도 뭔가를 본 사람 같은 윤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선물받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엄마를 잃고 이 도시에 온 나 윤이, 열심히 투쟁하고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전화를 거는지도 모른 채 새벽마다 윤이에게 전화를 걸게 된 명서, 사라져 버린 연인과 그를 그렇게 만든 세상에 시위하듯 분신자살한 언니를 둔 미루,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사주고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던 단이. 이 넷은 젊음이 통과하는 상실의 길목의 체현 같았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운 그 골목 골목 사이마다 작가는 이런 날이 다시 올까?. 똑같은 날은 없어.라고 각인시키며 영롱하고 아름다운 구슬들을 굴려 넣는다.  

아.름.답.다. 그럼에도 진.지.하.다. 고 생각했다. 소설가들이 인간 자아의 실체를 뿌리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과거를 재생해 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테렌스 데 프레의 얘기는 신경숙에게 가 공명한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직간접으로 통과해 온 청춘을 형상화했지만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껍질을 뚫고 들어와 우리의 스무 살을 불러 낸다. 이 소설의 보너스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억들을 흘러가는 꽃잎처럼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을 넌지시 일깨우고 그 기억들이 박혀 있던 상흔들을 삶의 의미로 메워주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 살아있어서 그 눈부신 시절을 통과해오고 마침내 여기에 이르러서 다행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건 분명 신비의 묘약 같은 이 소설의 마력이다. 

우리말로 쓴 우리의 청춘소설을 들고 나온 작가는 작가로서의 진중한 고민들과 소망들을 슬며시 끼워넣는다. 독자는 예기치 않게 그녀의 속내를 엿보게 되는 은근한 즐거움에 취하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눈 내리는 새벽에 이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 가만히 엎드린 채 눈을 감고 싶다. 그게 지상에서의 나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한다. -p.26 

폭력에 이로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써서는 안된다.-p.89 

결국 하고 싶었던 그녀의 말. 그리고 남은 말은 우.리.다. 나와 너에 관한 얘기는 내가 그쪽으로 갈게,로 연결되고 만다. 모르는 백 명을 포옹해주는 모습을 촬영하는 프로젝트의 도정에서 다시 나타난 명서의 모습은 그런 얘기들이 모인 것이다. <어디엔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그래서 서로를 찾고 마침내 만나고야 마는 모습을 환기한다. 이별하지 않기 위해 약속을 남용했던 청춘은 그런 얘기들로 이루어진 한 장이다. 이런 깨달음들을 가지고 다시 그 시간들을 살고 싶다. 인생의 맨 끝에 청춘이 있어야 한다는 명서의 말을 울컥 삼킨다.

잃어버린 것들에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이다. 그게 삶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은 참 아름다워요^^

blanca 2010-05-31 13:53   좋아요 0 | URL
마기님 고마워요~ 아름답다니...과하지만 기분이 둥둥 뜨는 칭찬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이란 겪는 사람은 괴롭고, 훔쳐보는 사람은 부러운 그런거죠.
블랑카님... 진짜 20세로 돌아가고 싶으세여? 저는 절레절레... ^^
지금 하세요, 못한 것들. 문화센터의 수강생 언니들이 "저보고 내 나이 40만 되면 좋겠다" 그런답니다. 아하하.

blanca 2010-05-31 13: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안그래도 친정엄마가 야단치더라구요. 자기도 젊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면서요. 저도 원래 절레절레였는데요. 갑자기 올해부터 그러고 싶어졌어요. 참 이상하지요? 이것도 과정인가봐요. 다시 절레절레가 되겠지요?

비로그인 2010-06-0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눈물이 차오른다는 것. 그 느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기억, 잊지 못하는 장면들. 어쩌면 저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blanca 2010-06-01 17:30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결국 추억도 자기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죠. 정말~ 갑자기 한 장면이 생각나서^^

강래희 2010-06-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예뻐요
전 초등학생 같아 부끄럽네요 ^^

blanca 2010-06-05 22:14   좋아요 0 | URL
예쁘다니, 괜히 쑥쓰러워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