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꽂이 위에 왜 책을 눕히나 싶었는데, 이제는 알게 됐다. 책을 더이상 세워 꽂을 공간이 확보가 안되자 미친듯이 칸마다 위로 남는 공간에 책을 눕히고 있다. 심지어 왜 방바닥에 책탑을 쌓나(곧 떠날 이처럼) 싶었는데 나도 탑하나 쌓고 있다. 아이는 매일 그 탑을 해체한다. 그러니 무용한 그 일을 반복하며 골병이 들고 만다.
보기 안좋다. 쟤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싶은 그 껄쩍지근한 심정. 넓은 집에 살고자 하는 로망은 순전히 얘들 때문이다. 옆지기의 대학때 전공서적을 좀 치워주었으면 하는 이 이기적인 마음은 차마 내보이지도 못하고 있다. 내 책만 중하고 내 추억만 무게감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요러고 있다.
누가 나에게 빈 공간과 아무 책도 안꽂힌 책장을 대여섯 개 내려 줬으면 싶다. 빈 서가는 언제나 나를 자극한다. 책이 좌르르 꽂혀 있는 그 모습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하는 그 공백이 좋다.
# 대학가 근처에(대학이 두 개나 있다.) 사는데 벌써 그 애들이랑 섞이기가 괜히 민망하다. 오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전창으로 비친 풍경은 왠지 서글펐다. 젊은 아이들이 깔깔대며 오고 가는 그 길목에 나이 든 과일 행상 아주머니가 팔리지 않는 과일들을 분주하게 어루만지는 풍경과 한쪽 모퉁이에서 무언가 불만과 결핍이 가득해 보이는 나이든 아저씨가 혼잣말을 하는 광경이 오버랩됐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가는 것이겠지만, 또한 시야가 넒어져 얇고 말랑말랑한 것들 틈새에서 두껍고 투박한 무언가가 끼어 있음을 보고 마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예전에 <샘터>에서 아홉 살 아들내미가 걸핏하면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눈시울을 적신다는 사연을 읽었었는데 그 심정을 알겠다. 그냥 요즘은 왠지 다 뭉클하다. 어버이날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가 고운 빛깔 한복을 입고 조금 덜 늙었을 뿐인 또다른 노인인 아들과 중국집에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도 눈물나고, 사탕빨고 콧물 흘리며 좋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봐도 괜히 짠하고, 뭐 이런 식이다.
정작 책 읽으며 줄 긋고 단어 정리하는 내 자신이 가장 불쌍한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