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감기의 돌림노래에 관한 얘기다.
먼저 아이가 걸리고, 나으면서 나에게 옮겨붙고, 1주일 휴지기 후에
또다시 아이가 걸리고, 나으면서 나에게 옮겨붙고, 마침내 아빠한테까지 엉겨붙고,
마침내 오늘 아침 아이는 분노의 콧물세례를 온얼굴에 받으며 열심히 콧물을 빨아 먹고 있다. 

기억나는 건 정말이지 미친듯이 코를 풀고 미친듯이 뒤돌아 기침을 해대다 늑골까지 결림을 느끼며
잠시 공포감에 전율하고 있다 그나마 나를 살게 했던 일정과 약속을 목소리 하나로 다 취소하고(여보세요, 하나로 다들 수긍)
가까스로 회복좀 됐다 싶으면 또다른 가족이 걸려서 다시 칩거생활에 들어가고
이 스트레스를 사발면과 비비빅과 바밤바를 폭식하는 것으로 풀고 그나마 사이 사이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씨네21>에 연재된 '김혜리가 만난 사람 시즌2'의 인터뷰 기사 중 출판을 허락한 22인의 얘기가 담겨 있다. 김혜리는 이미 <그녀에게 말하다>로 구면이다. 역시 <씨네21>에 개재된 인터뷰 기사를 발췌한 것인데 전작은 뭐랄까, 인터뷰이들에게 슬며시 예의차리며 다가가 살짝 건드리고 온 듯한 미진함이 아쉬웠다면, 이번 책은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인터뷰에 오롯이 녹아 낸 농밀한 밀도와 깊이가 빛난다. 특히나 그녀가 번역가, 문학평론가, 배우, 시인, 물리학자, 영화평론가, 음악가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분야를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한 상태에서 그들을 만났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인터뷰이들에게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정형화되고 낭비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바로 속살을 드러내고 무장해제 하게하는, 그래서 독자들은 저만치 더 멀리, 더 깊이 그들에게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비장의 무기다.  

그들의 삶은  나의 그것보다 한층 밀도와 무게가 있었다. 나는 이 지구에 두 발을 디디고 산 것이 아니었다. 저 별을 올려다보며 꿈을 제대로 꾼 것도 아니었다. 삶을, 자신의 일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함과 경건함은 찰나와 순간에 우리의 전존재를 밀어넣고 숨쉬고 말하고 사랑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 어떤 책보다 생의 긍정적 에너지를 고양하는 탁월한 재능이 느껴졌다. 

제 가장 큰 이념은 웃음이고 그걸 포기하면 저는 끝입니다.
그것을 비판이고 반정부라고 말한다면 죽을 때까지 비판적이고 반정부적일 겁니다.
-김제동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를 역설한 그가 단순히 진보정인 정치색을 드러냈다고 오독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는 결국 웃음을 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근거없이 끼어드는 억압과 제재에 대한 저항이 정치적으로 읽힌다면 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런 그가 노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오늘 M-net 김제동 쇼에서도 결론적으로 사퇴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결국 이 시대의 저들은 영원히 그를 오독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답답한 절망을 느끼게 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마침내 수군통제사의 옷을 입고 그 갑옷의 무게와 그 갑옷의 깊이를 함께 느꼈다는 김명민의 고백도 남는다. 이순신을 이해하고 느끼고 마침내 그와 한몸이 된 것 같은 경지에서 그의 심리적 고뇌의 파고까지 들을 수 있었던 그가 자신감이 생겨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내가 하려는 것, 내 안에 있는 것만 생각나고 반면 불안하면 온갖것이 보이고 신경이 쓰인다고 했던 얘기는 바로 나 자신이 듣고 싶어했던, 그리고 들어야만 했던 바로 그 조언이다. 

저자가 시민의 각성은 기대하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없어 보인다고 평했던 유시민이 민주주의를 정의한 대목도 흥미롭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욕망이 욕망을 통제하는 제도로 각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격분하면서 연대하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가 강조하는 헌법은 바로 이 연대의식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연대의식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한다는 논리로 이해된다. 이 정부가 민주주의가 뭔지 몰라 결과적 '계몽군주'를 자처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진단한 대목, 정치란 것이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재정의한 부분은  유시민만이 유시민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다. 진보신당, 민노당의 주장들에 비현실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정의롭고 시련에 굴하지 않으며 좁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는 고백은 그가 당면한 진보진영의 통합과 포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지에 대한 작은 기대를 가지게 된다. 

난 한번도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걸 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해요. 
<마더>의 엄마가 도준이한테 "너는 나야"하듯이 연기는 나에요. 숨쉬는 것처럼.
-김혜자 

언제나 두고 온 자신의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매체에 스스로를 많이 노출하고 싶다던 고현정의 인터뷰도 좋았다. 그녀가 연기 신인 시절에도 노메이크업으로 온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오열하던 모습들, 미스코리아 출신임에도 예뻐 보이고자 몸과 얼굴 근육을 사리는 일에서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그 성실해 보이던 모습은 그녀가 정작 재벌가로 홀연 사라져 버렸을 때도 진한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언제나 연기를 참 잘했다. 그녀가 십 년의 공백을 뛰어넘고도 건재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자질과 노력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채근하고 많이 노력하는 그녀의 진지함과 열성이 보기 좋았다. 그런 그녀지만 막상 촬영장에 구경나온 이가 안고온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는 김혜리의 얘기는 왠지 애잔했다. 심지어 그 아기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고양이 그림까지 그려주는 모습에서 우리가 자주 잊고 마는 엄마로서의 고현정의 아픈 사연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도 김혜자에게 연기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곧 삶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독서 같은 '간접경험'이 아니라 40분 동안 비창을 연주하면 40분 동안 비창을 사는 거란다. 이 시간 동안 그녀는 그녀가 아는 평균치의 삶에서 느끼는 애절함보다 천만배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때로는 독서도 그럴 때가 있다고 삶 속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처절하고 농밀한 감정 속에 푹 젖을 때가 있다고 항변하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도 책을 읽다 갑자기 그 속의 문자들이 매직아이처럼 떠올라 내 주변에서 뛰어놀고 살아 숨쉬고 만질 수 있는 경지까지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가장 그 사람다운 표정과 몸짓을 포착한 흑백 사진들과 인터뷰어가 그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하여 질문과 답변을 고스란히 Q&A 형식으로 재연하다 에필로그처럼 덧붙인 추신들, 모두가 청아하고 간결하고 근사했다. 섬세한 촉수가 섹시하게 간지럼을 태우는 맛은 없지만, 그러기에 더욱 신뢰가 가고 인터뷰이들을 독대하고 그들의 고백을 경청하는 듯한 멋진 환각을 선물해 준 그런 책.  그래서 조지 가랫의 얘기처럼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에 가닿고 싶은 간절한 발돋움을 무용하게 만들지 않은 책.  

시인 김경주가 말한 것처럼 눈을 감고 조용한 공간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책. 파도소리가 난단다. 정말이란다. 이런 얘기를 과연 누가 나에게 해 줄 것인가? 인터뷰의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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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6-0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자님의 말이 오늘 아침 정곡을 찌르는군요. 직업이니까 해야하는 사람과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이 몰입해온 사람, 이렇게 나뉠 수 있는건가요?
마지막 줄의 김경주의 말은 시인 입에서나 나올 수 있겠지 싶고요.
인터뷰를 통해 저런 속내를 끌어낼 수 있는 저자의 능력 역시 보통은 아닙니다 새삼스런 얘기겠지만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blanca 2010-06-02 09:10   좋아요 0 | URL
hnine님 반갑습니다. 김혜자 같이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그 누구보다 러워요. 예, 시인이 대우받지 못하는 시대에서 시인의 속내를 들으니 참 좋으면서도 안타깝더라구요. 이래저래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 부러운 면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뷰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stella.K 2010-06-0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급끌림입니다. 이런 인터뷰집이 있었군요. 제목이 무슨 사회과학계열쪽 같기도 하지만.^^

blanca 2010-06-02 16:06   좋아요 0 | URL
제목이, 좀^^;; 스텔라님, 옆에 두고 야금야금 읽기 참 좋아요. 관심가는 사람부터...

비로그인 2010-06-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배기 삶을 사는 진짜배기들의 책이로군요?!

blanca 2010-06-03 16:14   좋아요 0 | URL
마기님...이런 책 한번씩 읽어주면 좀 열심히 살게 되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6-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의 돌림노래... 분홍 공주님이 콧물 맛나게 먹던가요? 아하하~~~
전 고현정 씨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얘기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요.
아이를 참 사랑하는거 같은데, 그 아이들 한번 만나게 안 해주는 전남편도 대단하구나 싶어요.

blanca 2010-06-03 16:15   좋아요 0 | URL
저도 스무 살까지 못만난다는 대목이 참 가슴아프더라구요.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저는 엄마잖아요,라고 했던 얘기들도...고현정은 뭔가 있어 보이고 실제로 뭔가를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 같아요.

마녀고양이님, 저 어제 개표 방송 보고 가위눌리고 흑흑. 오늘도 계속 슬프네요...
 

그 아이는 아주 눈이 컸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 그 눈은 습관처럼 반달이 되곤 했다. 때로는 못알아들어도 알아들은 척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리기도 했다. 강의 시간 그 큰 눈에 물음표를 품고 서툰 한국어로 열심히 해독하지 못할 기호같은 필기를 해대던 그 아이는 우리 학교로 유학온 재일 교포3세였다.  

나는 그 아이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아니, 솔직하게 나는 그 아이를 일본인이라고 여겼다. 묘한 이질감과 일본풍의 풍모, 그리고 서투른 한국어들 갈피짬 사이로 우리가 친해질 기회는 요원해 보였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와 단둘이 될 기회를 얻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얘기했지만 다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던 그 아이는 또 활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그 때 잠시 그 아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기억을 떠올렸던 것도 같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아이가 다시 생각났다. 지금쯤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바람대로 한국어 선생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지극히 요즘 일본 아이 같았던 그 아이가 하필 한국어 선생을 하겠다고 했던 대목도 묘한 대비를 이루며 떠오른다. 왜 하필 한국어 선생이었을까? 다시 이 책을 더듬게 된다. 

원래는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디아스포라근대의 노예 무역, 식민 지배, 지역 분쟁 및 세계 전쟁으로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상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의미로 확장된다. 식민지배와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군사정권하의 정치억압 등으로 발생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자그마치 육백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재일조선인인 저자 역시 '의식적인 피차별자'로 살아갈 것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디아스포라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을 여행하며 각각의 장소에서 접한 사회적 양상과 예술작품을 테마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탐색하고 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근대'를 재해석하고 '근대 이후'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근대 국가의 틀로부터 떨어져 나가 방랑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은 끊임없이 삶의 우연적 굴절과 그것을 통해 눈물흘리며 직시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의를 통과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황이 단순한 굴욕주의적 감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런던 교외 공동묘지 마르크스의 묘비는 어쩌면 이 방랑의 길에 하나의 이정표 같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이런저런 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
마르크스

스물 일곱의 마르크스가 부르짖었던 것처럼 프리모 레비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디아스포라적 삶의 다중심성은 근대의 광신적인 내셔널리즘의 그 인위적인 '타자'의 설정과 그것을 향햔 무자비한 배척, 증오를 직시하고 그 틀을 해체하여 더 근원적이고 유연한 휴머니즘으로의 회귀의 물꼬를 트는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귀결점이기도 하다.  

특히나 재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한 글자 한 글자 눈물로 들어와 박혔다. 단순히 재일교포로 뭉뚱그려 이해되는 그들의 모습에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일본 신민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해방기 갑자기 무국적자로 버려졌다  일본과 남한의 국적을 선택하기를 강요당한 비애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했음에도 한국국적을 선택한 이들은 출입국시 번거로운 절차를 거듭 거쳐야 하고 참정권이 없다. 군사정권하 한국으로 유학했던 두 형들이 방북 문제로 투옥되는 고난을 겪은 저자는 과연 자신이 외국에서 위험한 일체 처했을 때 한국이 나서서 보호해 줄지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국경이라는 것은 실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느슨한 임의적 경계 같지만 막상 우리는 모국 바깥으로 나가면 그것의 삼엄한 위엄을 실감하곤 한다. 그럼에도 안도하는 것은 우리가 돌아올 곳이 있고 우리를 지켜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국가라는 개념이 주는 든든함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인위적이고 조악한 가느다란 경계선에 또 인위적이고 모순과 허점 투성이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개념 하나를 얹어 두고 있는 셈이다. 그것에서조차 거부당한 디아스포라적 삶은 그래서 항상 연약할 수밖에 없다.  

재일 조선인 1세 시인 김하일의 얘기는 그 연약한 삶을 뚫고 나오는 그 처절한 모순적 개념에 대한 근원적 애정을 체현한다. 그는 한센병으로 손가락도 시력도 잃게 된다. 그러니 그가 혀로 점자를 핥아가며 우리의 역사를 읽느라 혀끝이 뜨거워졌다는 대목은 목울대를 울린다. 디아스포라적 삶이 근대의 국가적 개념을 부정하고 그 너머를 지향한다지만 결국 그들은 또 나라로 돌아오고야 만다. 이 책이 가지는 회귀적 모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회귀를 절통하게 이해할 수 있기에 그 모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토록 자연스러운 내말, 자유롭고 풍요하고 끝없이 온순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이류의 영어를 해야하는 내 설움에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작가가 고뇌했던 것은 그 어린 님펫에 대한 도착적 성애가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고국 러시아를 떠나 끊임없이 방랑하다 그 방랑지에서 죽어야만 했던 그가 가장 슬퍼했던 대목은 자신의 모어를 버려야 했던 사실이다. 하고 싶은 수많은 얘기들을 1차적으로 자신의 모어의 체에서 걸러 영어로 변환시키는 지점에서 그는 항상 고뇌했다.  

이제 그 아이의 얘기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그 아이도 그랬을까? 그 아이에게 모어는 일본어였다. 저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혀 자신의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의 모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했다. 할아버지의 나라쯤으로 여겨지는 모국이 그 아이를 불러낸 그 모호하지만 강렬한 힘은 근대 국가를 세웠던 그 무모하고도 위험한 동인이기도 했다.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내고 또 그 디아스포라들을 끊임없이 손짓해서 불러내는 힘. 허구적이고 얄팍하다지만 또 그만큼 강렬하고 처절한 그 힘. 

대체 나라란 무엇이고 국민은 무엇이고 민족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유한성에 무한의 가능성의 환각을 덧씌운 것이 국가의 개념이자 애국자의 망상이라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가두고 또 우리를 나아가게도 한다. 이것은 또한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내는 전쟁의 광신도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의 프로파겐다에 차용되어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행진을 가속화시킨다. 생산적인 질문들을 만들어 내지만 대안적인 해답이 다원적인 중심성이라는 모호성으로 감침질 되고 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공고한 개념을 마구 흔들어 대는 이러한 독서는 언제나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산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어쩌면 저 삶의 국경 너머에서 찾아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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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DMB 로 뭔가를 보는데 서경식 교수와 한 서독의 간호사였다가 후에 화가가 된 어떤 분에 대한 다큐가 나오더라고요. 디아스포라.

일본,러시아,독일..등등 그곳으로 가게 된 우리 이웃들에 대한 생각이 잠시 마음에 머뭅니다. 그리고 관동대지진, 강제이주, 간호사들의 차별등 그들은 그런 차별을 너무나 까닭없이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네요.

blanca 2010-05-28 10:36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다큐를 보셨군요.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때로는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아요. 저 지금 신경숙쌤의 <어디선가~> 읽다가 바람결이라는 용어 발견하고 거기에 동그라미 쳤어요. ㅋㅋㅋ 뭔가 아주 심오한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비로그인 2010-05-2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내몰리듯 외국으로의 유학을 떠나게 되는 것, 그래서 기러기 아빠를 만들어내는 것...그리고 또 그 이후의....
이것도 이젠 디아스포라라고 표현해야 맞을것 같네요.ㅠㅠ

blanca 2010-05-28 10:37   좋아요 0 | URL
마기님! 맞아요. 유학생들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개를 마구 끄덕거립니다. 그런데 마기님 패션 센스 진짜 짱이시네요. 그리고 저도 저런 웨이브 머리 너무 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독 곱슬이라 무조건 매직입니다용--;;

비로그인 2010-05-28 10:50   좋아요 0 | URL
'트위스트 펌' 인데요, 곱슬머리에게는 딱입니다.
저도 맨날 볼륨매직 했었는데,,,요거 재생시간이 짧잖아요.
ㅋㅋ일부러 유행에 역행하는 게 저의 패션 노하우?랄까요~~푸하하~

blanca 2010-05-28 10:53   좋아요 0 | URL
마기님, 저 그럼 진짜로 트위스트 펌하고 대문 사진에 사자머리 올릴 지도 몰라요. 재생시간 얘기에 완전 혹합니다. 저 진짜 담달에 할까봐요 ㅋㅋㅋ 유행을 선도하시는 것 같은데요.^^

비로그인 2010-05-28 11:10   좋아요 0 | URL
처음 하시는 거니까 좀 굵게 해달라 그러세요.
처음부터 너무 빠글거리면 스스로가 감당이 안되어요.ㅋㅋ
저처럼 가운데 가르마 하시면 더 어울리실꼬예요.
트리트먼트랑 에센스로 잡아주면 이뻐요.

유행 따라가지 않는 것...남들이 하는 건 일단 피하고 보는 것.
그냥 이거다!싶은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남들의 평가를 너무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
색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는 것.
뭐 제 머리속에는 여러가지가 맨날 날아다닙니다만....
제일 중요한 팁은~~
나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연구하는 것!
결론적으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패션을 잡아라!!!

비로그인 2010-05-28 11:17   좋아요 0 | URL
참~~이 헤어스탈은요, 그 자체가 야~하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좀 수수하게 매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엑서세리가 번쩍번쩍하고 화장이 진하면...정말 못봐주거든요.
ㅋㅋ제가 왜이리 참견이랍니까?ㅋㅋ

기억의집 2010-05-2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글 너무 멋져요.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딜레마가 언어였네요. 저도 언어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편인데.. 이 글 읽으면 추방당한 자들의 언어에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나의 모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은 어떤 것일까요?

blanca 2010-05-28 10:38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그전에 작가의 DNA 글 읽고 얼마나 좋았던지 몰라요. 어디선가 꼭 써먹고 싶은 얘기였어요. 게다가 스티븐 킹이라니.

언어라는 게 진짜 묘한 것 같아요. 아직 저는 이 모국어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5-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여, 블랑카님 만큼 리뷰를 쓰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왜 항상 감탄하게 만드세여? 아하하---

blanca 2010-05-29 14:3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제 기분을 업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계신듯 해요^^;; 저는 오늘 청소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헤이즐넛 티백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감기도 많이 좋아졌지만 선거 홍보물을 보다 갑자기 우울해 졌어요. 선거 끝나고 할 얘기가 많아질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05-30 10:5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는 선거에 엄청나게 야당이 패하면, 2년간 뉴스도 안 보고 정치판 이야기도 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머....... 고민한다고 변할게 없으니 당분간 묻는 수 밖에요. ^^

꿈꾸는섬 2010-05-2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랑카님의 글을 보며 늘 어쩜 이리 짜임새 있게 구체적으로 게다가 감동까지 주는 글을 쓰실 수 있을까 늘 부럽습니다.^^

blanca 2010-05-29 14:38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정말 감사합니다. 꿈꾸는 섬님 가족도 저희 가족도 항상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온통 감기가 헤집고 가니 가족들이 다 골골합니다.

프레이야 2010-05-2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 모국어에 대한 나보코프의 구절들이 인상깊었던 책이에요.
요즘 전 언어를 다시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건 뜬금없이 좀 다른 얘기지만요,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를 배워라고 하는 아랍의 격언이 있답니다.
우리는 타자의 언어를 왜 이리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요.
오해, 갈등, 싸움.. 아, 그게 따지고 보면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요.

blanca 2010-05-29 14: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맞아요. 언어! 얼굴 맞대고 조목조목 설명해가며 얘기해도 결국은 오해만 남는 경우도 있고. 그래도 이런 언어가 있어 프레이야님과 좋은 인연도 맺을 수 있는 거니까 감사할래요.^^
 

코가 꽉 막혔다. 눈물, 콧물 다 줄줄 흘러내리고 흡사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모든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귓가를 윙윙대는 것만 같다. 

어딜 가나 분노와 불신, 비난 등이 난무한다. 한몫 거들어 댓글을 달고 숨돌리고 또 분노하고 그러다 유아기로 퇴행중이다. 이런 어른 노릇이 힘겹고 지겨워지려고 한다. 벌써. 

힘들 때면 내가 아이였을 때를 생각한다.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무조건 위로받고 이해받을 여지로 충만했던 시기는 죽을 때까지 꿈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던 건 아이로 살아봤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추억의 시계는 점점 더 거꾸로 돌아가 멈춘다. 그래서 노망이 나면 옛기억을 붙잡게 되나 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 귀한 줄을 알고 그 사람들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거다. 나이든 이들이 결정하고 추진한 바를 젊은 아이들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때로는 생명까지 바쳐야 되는 이 모순이 역겹다. 살아온 시간들을 빌미로 다른 이들의 남은 시간들을 분탕질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시간에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일이 아닐까. 

정말 정치를 제대로 알고 시국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화가 나는 것인지, 나 자신의 결핍과 감정마저 투사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에 흠뻑 빠져 홀로코스트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사서 읽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빌려서 줄을 긋지 못하고 간지를 무슨 문어발처럼 붙여 대는 일이 낯설고 좀 싫다. 도서관에 다 있는 책들인데 주문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제목 한 번 걸쭉하다. 누구나 극단의 상황에서 쉽게 되뇌게 되는 말이지만 사실 저자가 수용소 체험을 직접 회고한 이 책의 리얼리티에 기분이 너무 다운되서 책을 그만 읽었다는 사람까지 있으니 그 정도의 이해는 곡해이상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아우슈비츠에서 힘겹게 살아나온 저자는 끝내 자살한다. 슬픈 반전이다. 삶이란 언제나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튀어 나오는 불편하고 흥미로운 영화 같다.  스스로 삶의 종결을 집행한 이가 살아나온 이야기라니. 

<디아스포라 기행>은 실제로 보고 사려고 했는데 서점에서 미친듯이 머리를 쥐어뜯다가 디~ 다음이 생각안나서 못보고 말았다. 이럴 때 아이폰이 절실하다. 알라딘 장바구니만 보면 되는데. 여하튼 디아스포라를 생각해 내려고 온갖 단어를 다 조합하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프리모 레비의 위 책이 등장한다고 하니 두 책이 묘하게 엮여 있는 셈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대우하는 최악의 마지노선을 더듬거리며 살아나간다는 것에 대한 실증이 아닐까 싶다. 이런 책들은 언제나 읽고 나면 기분이 침체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말로 쓴 청춘의 얘기를 읽고 싶었다. 신경숙의 언어는 투명하고 아름답다. 김훈의 그것이 명징하고 둔중한 맛이 있다면 그녀의 문장들은 잘 닦인 구슬 같아 손안에 품고 싶어진다. 이 언어가 삶의 결 속에 잘 미끄러져 들어갈 때의 그 성취는 놀랍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이제는 나의 시계를 이십대로 돌려 조금 가까운 과거를 쓰다듬어 보고 싶다. 누군가 전화해서 '너의 스무 살을 나는 기억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본다.  

내일 깨면 코가 뚫리기를. 책들이 오겠지. 그 책들에 코를 박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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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5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에 '즐겨찾는 서재'로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blanca 2010-05-25 09:58   좋아요 0 | URL
마기님 어서 오세요^^ 즐겨찾는 서재가 되는건 언제나 기뻐요.

기억의집 2010-05-2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비의 책을 읽고나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에게 대하는 모순때문에 더 괴로워요.

아, 근데 왜 저는 신경숙한테는 매력을 못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20대 시절에는 한국소설을 많이 읽어 신경숙의 초기작품을 읽긴했는데.... 점점 멀어지네요. 그 때도 매력을 못 느꼈는데 지금도 매 한가지. 블랑카님이 신경숙의 언어가 투명하고 아름답다는 말에 끌리긴 해요.

코를 뻥뚜러에 갖다 댈 수도 없고..하핫, 책 받는 순간 시원하지 않을까요?!

blanca 2010-05-25 10:03   좋아요 0 | URL
아! 레비책을 읽으셨군요! 안그래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들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더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유대인 핍박을 얘기할 때 슬쩍 넘어가기 쉬운 문제가 바로 이거더라구요. 본인들의 고통만 부각되고 정작 자신들이 행하는 또다른 학대는 어물쩍 넘어가는.

신경숙은^^ 저는 원래 안좋아했었는데요. 아주 늦게 <외딴방>을 읽고 다시 보게 됐답니다. 시적인 문장이 좋아서요. 신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코는. 흑흑. 기억의 집님. 요새 감기 걸린 사람들은 다 저어하는 분위기라 가택 연금되어 울고 있습니다. 너무 괴롭네요.--;;

stella.K 2010-05-2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홀로코스트 문학 한동안 안 봤는데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다시 관심이 가요. 아직 읽은 책은 없지만...또 조만간 다시...
아무래도 읽고나면 기분이 다운이 되긴 하겠죠? 하지만 그 뒤에 희망을 보기도 하지만...

신경숙의 <리진>은 흥미롭게 봤는데 역시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는 또 갈등이 생기더군요.
도무지 이 작가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하는 걸까? 글은 너무 잘 쓰는데 우울하고 맥아리없는 건 여전하고,
어.나.벨 책은 예쁘고...암튼 그냥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요.ㅠ

blanca 2010-05-25 10:5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도 이상하게 <엄마를 부탁해>가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구요. 맥아리 ㅋㅋㅋ 갑자기 딴 얘긴데 제가 자주 쓰는 용언데 누가 대체 그게 뭐냐고 하더라구요.^^;;

함 읽어보고 말씀드릴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stella.K 2010-05-25 11:12   좋아요 0 | URL
앗, 전염됐다. 그렇지 않아도 누가 썼던 것 같은데 누구지...?
했다능. 그런데 블랑카님이셨군요.ㅎㅎㅎ
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0-05-2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 나으세요. 저는 머리만 아픈데, 블랑카님은 코도 막혔군요.
제 처지가 조금더 나은가... 아하하. 지금은 아가야가 괴롭혀도 금방 커버리면, 그리울걸요~ ^^

blanca 2010-05-25 17:4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리워하게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후회안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마녀고양이님 처지가 훨씬 나아요. 일단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면 남사스러워 밖에 잘 못나간답니다.ㅋㅋㅋ

L.SHIN 2010-05-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들에 코를 박고 싶어진다"

나의 스무 살은 어땠었지..? 하고 무심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 스무 살이 끝날 무렵에 죽을 뻔 했었군요. 하지만 그 때 만큼 열심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잠시 뿐 이어도.

blanca 2010-05-25 17:49   좋아요 0 | URL
진짜요? 또 궁금해지는걸요. 온갖 상상이 ㅋㅋㅋ 스무 살은 어렸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가장 저한테 의미 있는 나이예요. 죽을 때까지도 그럴 것 같아요.

2010-05-2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5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5-2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얼른 감기 나으세요.^^ 일교차가 커서 감기 잘 걸리죠.
제목보고 얼른 들어왔어요. 저도 스무살을 기억하고 싶어요.ㅎㅎ 누군가의 스무살도 기억하고 있구요.ㅎㅎ

blanca 2010-05-25 17:50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누군가의 스무 살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아기가 감기에 걸리면 대번 또 저한테 옮네요. 빨랑 나을게요.

2010-05-2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6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따라쟁이 2010-06-0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십대를 살면서도 스무살이 그립습니다. 원래. 스무살이란.. 그런건가봐요. 안녕하세요^-^

blanca 2010-06-04 10:03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 퍼스나콘이라고 하나요? 파란 하늘에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모습이 너무 이뻐 한참 보게 됩니다. 이십대를 사신다니...흑흑 그 말 만으로도 따라쟁이님을 부러워하게 되네요. 스무 살 때는 몰랐어요. 그렇게도 눈부신 나이인줄....
 

MBC에서 방영한 법정 스님 관련 스페셜의 아련한 잔상과 오월을 머금고 돌아온 아카시아 향기가 만들어 준 고적한 밤.
 

인간의 미덕에 대한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린 나치점령하의 집단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안온한 행복의 거름으로 당겨쓰는 행위를 제일 치사하다고 생각하건만 아카시아 향기가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금' 행복하다고, 살아있는게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했다.

 

행복하여라, 훌륭한 아파트나 누추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진 채, 홀로 앉아 꿈꾸고 울 수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형이상학적 문제를 두고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타인의 돌봄을 받는 환자들이여!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자들이여,
그리고 또 행복하여라, 그대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냐,
병원의 침대나 저택에서 정상적인 생을 누린 끝에,
정상적인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여!
-마우렐(본문 중 인용) 

추억으로 아로새겨진 과거를 의식적으로 망각하고 감히 내일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엄혹한 참경을 직시하고 같은 인간이 행하는 패악들을 견뎌나가 마침내 그것들을 증언하기 위해 돌아온 자들의 얘기다. 마흔에 요절한 저자 테렌스 데 프레가 나치와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의 증언을 채집하고 그것을 문학적, 심리학적, 철학적으로 재구성한 역작은 34년이나 삶의 지주로 이 책을 품어왔던 역자의 노고에 힘입어 한층 빛난다. 암투병중인 역자는 이 책의 서문만 세 번을 쓴다고 했다. 유신의 군사체제하 햇병아리 수습기자로 처음 접하게 된 이 책은 그의 삶의 굴곡직 서사를 돌아와 아직도 살아있다,고 자신을 표현하기에 이르른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기록을 보존하려는 욕망처럼 강한 것은 없다 

살아돌아온 자들은 강렬한 증언의 욕구를 얘기했다. 고통의 아로새겨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세상을 향해 토해내기를 부추겼다. 질병. 궁핍 속에서도 이 시기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심지어 만오천 명을 하루에 처형한 트레블랑카 집단 강제 수용소에서는 그곳의 기억을 보존하고 참상을 세상에 증언할 한 두 사람을 세상밖으로 내보내기 위하여 폭동이 일어났다. 산 자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빚진 바를 청산하고 그들을 자신을 통해 복원해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들이 증언하려고 하는 대상으로서의 이 세계가 그들이 고발하려고 했던 조건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이 증언이 가지는 시사점을 보여준다. 증언은 곧 문명의 전진이 어떻게 생명의 존귀함을 교묘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진실을 얘기하려는 것이 일차적인 본능이라면 이 본능은 결과론적으로 이 지향하는 세계와 살고 있는 세계의 그 간극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해야 하는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씻는 데 실패한 자는 죽는다. 

신체의 생리적인 작용을 학대와 조롱의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이용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한 참혹한 보고의 대목이다. 또한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에서 뚫고 나오는 체면을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저항이 어떻게 생의 의지로 승화되고 결과론적으로 생존의 승률을 높이는지에 대한 통찰은 놀랍다. 극한 상황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자신의 모습을 관리하지 않는 것이 곧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뚫고 나가지 못해 죽음으로 치닫게 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마다의 고통의 시기를 지나가게 된다. 이 기간은 흔히 자신의 신체를 돌보지 않고 혹은 학대하기 쉬워진다. 심적인 위기에서 육체는 하나의 거추장스런 부산물로 치부된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는 되레 심신의 구분의 철책이 무너져 묘한 상호순환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깨달음은 우리가 처할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슬프고 괴롭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술과 담배로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겠다. 화장실에 갈 최소한의 자유도 얻지 못한 채 용변을 서서 흘리고 다녀야 했던 그들도 매일 세수를 하고 신발끈을 묶으며 외모를 가꾸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런 자들은 살아 나왔다.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의 의지의 촉발 

재소자들이 초기의 수용소 생활을 접했을 때 받은 충격이 자아의 붕괴로까지 이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해체와 붕괴는 상당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통합과 회복으로 승화되는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사방에서 넘쳐 흐를 때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에서 생의 의지를 회복했다. 특히나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별이 총총하던 어느 날 밤, 한 노인이 구슬프게 불렀던 노랫소리에 다들 귀를 기울이며 감동받아했던 체험을 얘기하는 생존자의 증언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보존되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 같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 

수용소에서의 집단 생활은 아귀다툼을 연상하게 한다. 서로를 불신하고 배척하고 배신하고 짓밟는 참경들. 그러나 여기에는 기적이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카오스와 아노미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개인의 요행이 아니라 집단적 성취였다. 점호시간 쓰러지면 총살이었다. 그러나 비척대는 재소자는 앞뒤로 받쳐주는 이들 덕택에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생일날 자신의 자리에 사과와 낡은 칫솔을 누군가가 선물로 두고 가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를 지켜주며 버텨냈다.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무수한 작은 아름다운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벌겨벗겨지고 머리를 박박 깎고 오물이 엉긴 몸으로 그들은 서로 빵을 나누어 먹고 어린이들을 끝까지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이 지옥에서 그들은 주린 배로 질서를 짜 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연대는 요원하거나 이상적인 지향이 아니었다. 생명 간에 열린 틈을 따라 끊임없이 흐르는 배려와 지지가 인간의 존엄을 사수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우리를 거대한 하나의 가족으로 결합시켰다는 생존자의 증언은 가슴께를 둔중하게 울린다.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 

집단 강제수용소의 체험은 정신분석학적, 행동주의적 해석이 주류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시각은 지극히 1차적인 적응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유아적 퇘행 등으로 설명되는 이 대목은 그들이 2차적으로 통합,보수,극복의 모습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간과한 것이다. 땅에 밀착하고 생존 그 자체로 집결되는 그 의지들의 출현에 복잡다단한 의미를 덧붙이는 것도 경계한다. 생명이란 그저 우리의 몸속에 있는 원형질적 자기 보존력인 것이다. 숨쉰다는 것이 가지는 그 단순한 마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분투한다. 

 

집단수용소 자체의 해석 

이 책이 훌륭한 것은 재소자들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가해자, 집단수용소 자체의 출현에 관한 통찰력 있는 고찰이 있다는 것이다. 집단 수용소가 인류의 예술, 문학,신학 가운데 악마적 요소를 추출하여 신중하게 재현한 것의 사례로 제시되고 파괴,고통, 상해와 모독을 향한 극단적 상상의 정당화,합법화의 가장 잔인한 예시로 해석되는 것이다. 두렵고 패악스러운 것들을 꿈꾸면서 어느새 그것을 현실 속에 재현하는 데에 무감각해지는 모습은 소름끼친다. 또한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명의 발달이 인간 그 자체의 명징한 생명력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 지에 대한 지적은 날카롭다. 우리는 몸을 상품화하면서도 비하하는 묘한 딜레마의 질곡으로 묶어 버렸다. 이미지화되어 소비재로 탈바꿈시킨 몸은 인간 그 자체를 도구화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 지 짚어볼 일이다. 아름다운 몸을 숭상하는 것이 그 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지독한 다이어트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례들은 하나의 예증 같다.  

 

살아 돌아온 자들이 남기고 간 메시지

우주의 다른 모든 것은 하향 운동을 하는 반면 생명만이 상향운동을 한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갈구, 삶에 적합한 어떤 소질 같은 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생명 자체에 원형 보존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얘기는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여 살아 남아온 생존자들을 통해 터득하게 되는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다. 자크 모노는 모든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는 하나의 화석이며 그 내부 단백질 입자 하나 하나마다 조상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 속에도 지옥을 뚫고 돌아온 생존자들의 핏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생명은 끈질기게 공생하고 살아남고야 만다. 그 존귀함을 또렷하게 응시할 때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우해야 할 지에 대한 단순한 해답을 알아차리게 된다.  

순간 순간 우리는 행복감을 가슴 깊이 들이마실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 내어 내 가슴 깊은 곳 작은 여백에 눈물을 채울 수 있다. 그게 지금 살고 있는 우리가 끝내 죽어간 자들, 그럼에도 살아 돌아온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생명은 생명을 덜어 먹고 사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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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2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번에 학교 과제물 때문에 집단 심리에 대해서 공부를 좀 했어요. '악의 평범성'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처럼 평범한 누구라도 압력과 분위기가 조성되면, 조종당하여 악과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여염.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 만이 그에 저항하여 선을 행한다는거지요. 집단 수용소의 피해자는 그 반대겠죠. 살아남고자 거기에 집중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거죠?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죄스럽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의식적으로 어떤 집단에 수용되어 어떤 피해자를 만들고 있을까요?

blanca 2010-05-24 18:3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집단심리라는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니.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칩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래도 내일은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나가야 겠지요. 오늘은 감기에다 인터넷만 보면 심란하고 화나는 소식에 날씨까정. 아주 대박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24 19:21   좋아요 0 | URL
아아.. 블랑카님이랑 나랑 전생에 쌍동이 아니었을까요?

저도 동일한 이유로 대박입니다, 오늘. 감기 몸살 + 뉴스 승질 + 개인적 화나는 소식 + 날씨 짬뽕.
액땜이나 하러 어디 한번 가야겠군요, 둘이~ ^^

blanca 2010-05-24 22:41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게다가 말안듣는 아기까지--;; 약먹고 헤롱대는데 밖으로 나가자고 한바탕 울어대는데 분노의 게이지가 급상승하더라구요. 아, 진짜 여름에 한번 얼굴 보며 얘기좀 해야 할까요?^^;;
 

나는 그 때 지독한 육아 우울증에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하나의 너무 무기력한 작은 사람 하나를
코알라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쪽잠마저 황송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절하게 깨달아 갈 무렵 그 사람은 축축한 눈가를 예의 그 하회탈의 주름으로 감싸며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행복하다,는 말에 울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절망하거나 그를 질투해서가 아니였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후반의 삶의 시작이 감동스러웠기 때문이다.
퇴임대통령이 그리는 새로운 지도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죽어 버렸다. 아이는 많이 컸다. 달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나는 또 울며 다녔다.
아이를 업은 두 엄마가 함께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다니니 웃는 사람이 다 미웠다.
웃으면 안돼, 정말 그러면 안돼는 거야,라고 타인의 감정까지 강요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 울었다.
많이 행복하다던 그가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그 외형적 사실 밑에 가라앉아
미처 움트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씨눈들이 아까워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벌써 그런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는 이제 말대꾸를 한다.
자꾸 왜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도 왜냐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데
그것조차 어쩌면 허용안되는 그 분위기가 치사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언제 가장 그리우세요? 

밤에 혼자 숙소로 돌아갈 때 ...여기 일교차가 큰 날은 물안개가 짙거든요. 가로등 불빛에 몽환적인 분위기인데...문득 누가
등을 툭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그런 느낌이 드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 소 같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취재수첩을 덮었다. 

-한겨레 21 제811호 <그는 가고 뜻은 남았다>중 인용  

대학 농활 때 거머리가 무서워 논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김전비서관은 이제 홈페이지에 농군일기를 올린다.
양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문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조직화했던 그가 이제는 논에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놓으며
세상을 직접 만지고 더듬으며 새로 배워 나가고 있다. 그의 상관은 그의 기안서류에 서명을 해주는 대신
그의 가슴 속 상흔으로 결재를 해 준다.   

여름이면 늦반딧불이가 황홀하게 귀환한다는  그곳에 정작 그것들을 불러모으고
저편으로 저물어 버린 그가 또 그리워지고 만다. 
비겁하고 말뿐인 진보는 언제나 흘러넘치는 감정에 질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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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보는 항상 흘러넘치는 감성에 질식하고 만다는 표현, 딱 맞아 떨어지는거 같아요.
어째 블랑카님 요즘 쳐진거 같아요? 나도 그런데...
우리 둘 다 흘러넘치는 감성을 감당하지 못 하고 있는 걸까요? 요즘 같아서는 미칠거 같아요.
그래서 내 주문을 걸며 날씨 탓을 하며 뉴스 탓을 하며 별 짓을 다하는데,, 빠져나오기 힘드네요.

노대통령 1주기네요. 그분이 그립습니다.

blanca 2010-05-20 13:40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로 쳐져요 ㅋㅋㅋ 벌써 1주기예요. 세월 너무 빠르죠? 마녀 고양이님도 저도 다 행복하다고 즐겁다고 자기주문을 걸면서 그렇게 살아가야되겠죠? 그런데 투표결과보고 더 기분나빠지면 어떡할까도 싶어요^^;;

2010-05-20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20 21:4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제가 남매를 둔 사람으로서 장점을 말해볼께요. 일단 어느 정도 키워놓으니깐 둘이 놀더라구요. 전 거의 책 읽어주는 것 이외에는 애들사이에 잘 안 끼어들어요. 둘이 잘 노니깐...애들이 놀다가 잠깐 잠깐 불러 제낄때가 있는데 그 때 응해주는 척 하죠.
하지만 엄청 싸우기도 해요. 장난 아니여요.
단점은 진짜 돈 많이 들어요. 흑흑 오늘 우리 월급날인데..학원비 제하고 뭐 했더니 겨우 현금 삼십만원 쥐나봐요. 전 학원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70만원 넘게 깨져요.돌아버리죠. 아들한테만 50이고 딸애가 이십오만원이에요. 아들애는 방학중에는 미술 좀 보내달라고 하는데 일단 보내주기로 했는데 학원비 13만원을 어디서 쪼개야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애 낳지 말라고 해요. 어차피 크면 따로 노는데 궂이 형제애를 강조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전 언니하고 친했는데 애 어느 정도 크니깐 거의 연락 안 하고 살게 되더라구요.
오히려 여기 블로그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들하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요.
저의 고민도 거의 다 블로그 지인들에게 터 놓게 되고.
블랑카님, 애 낳을려면 터울 없이 낳으세요. 같이 놀게 하려면 터울 없이 낳는 게 좋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저의 아이들한테도 애 낳으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부부끼리 여유롭게 즐기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는 거 같아요. ^^ 너무 현실적인가요!

2010-05-20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