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때 지독한 육아 우울증에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하나의 너무 무기력한 작은 사람 하나를
코알라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쪽잠마저 황송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절하게 깨달아 갈 무렵 그 사람은 축축한 눈가를 예의 그 하회탈의 주름으로 감싸며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행복하다,는 말에 울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절망하거나 그를 질투해서가 아니였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후반의 삶의 시작이 감동스러웠기 때문이다.
퇴임대통령이 그리는 새로운 지도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죽어 버렸다. 아이는 많이 컸다. 달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나는 또 울며 다녔다.
아이를 업은 두 엄마가 함께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다니니 웃는 사람이 다 미웠다.
웃으면 안돼, 정말 그러면 안돼는 거야,라고 타인의 감정까지 강요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 울었다.
많이 행복하다던 그가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그 외형적 사실 밑에 가라앉아
미처 움트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씨눈들이 아까워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벌써 그런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는 이제 말대꾸를 한다.
자꾸 왜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도 왜냐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데
그것조차 어쩌면 허용안되는 그 분위기가 치사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언제 가장 그리우세요?
밤에 혼자 숙소로 돌아갈 때 ...여기 일교차가 큰 날은 물안개가 짙거든요. 가로등 불빛에 몽환적인 분위기인데...문득 누가
등을 툭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그런 느낌이 드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 소 같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취재수첩을 덮었다.
-한겨레 21 제811호 <그는 가고 뜻은 남았다>중 인용
대학 농활 때 거머리가 무서워 논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김전비서관은 이제 홈페이지에 농군일기를 올린다.
양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문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조직화했던 그가 이제는 논에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놓으며
세상을 직접 만지고 더듬으며 새로 배워 나가고 있다. 그의 상관은 그의 기안서류에 서명을 해주는 대신
그의 가슴 속 상흔으로 결재를 해 준다.
여름이면 늦반딧불이가 황홀하게 귀환한다는 그곳에 정작 그것들을 불러모으고
저편으로 저물어 버린 그가 또 그리워지고 만다.
비겁하고 말뿐인 진보는 언제나 흘러넘치는 감정에 질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