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에서 아이가 신간을 펼쳐보고 있자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에서 목을 빼고 자국 안 남게 보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화들짝 놀라 책을 덮고 바로 꽂아둔다. 내심 들어가 책을 잠시라도 보면 단 한 권이라도 꼭 사주려고 했던 마음(실제로 그래왔다)이 절로 식었다. 상대적으로 초등학교 시절 버스 종점에 있었던 서점 생각이 났다. 나는 서점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물다 그냥 나온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이 책을 살까, 저 책을 살까 고민하다 몇 장을 넘겨 보고 있자 "다리 아프니 앉아서 봐요."라고 의자를 밀어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책을 너무 오래 봐서 야단칠 줄 알았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아저씨의 배려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게 친절이라는 거구나, 싶었고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서점도 우리가 기대하는 문화공간이기 이전에 영업이익을 내야 하는 가게다.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다른 가게와는 다른 어떤 기대치가 사라지지 않는 건 책이라는 매개체가 가진 의미 때문일 것이다. 책을 사고 파는 공간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좋다. 삭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적어도 손님이 조금 길게 머물러도 참아줄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기대감은 너무 큰 것일까? 어쩌다 작은 동네 서점에 신간을 조금 오래 구경만 해도 마음이 절로 불편해진다. 그러다 보면 동네서점 장사를 시켜주고 싶어도 결국 대형 서점으로 온라인 서점으로 가게 된다.
속초의 동네 서점지기인 저자의 경험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어느날 서점에 들어와 계속 돌아다니며 계속 혼잣말을 하며 다른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를 보다 저자는 참지 못하고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이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서점이 뭔데요."
"서점이 뭔데요. 아이가 편하게 있도록 내버려 두세요."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김영건
내가 속상했던 대목,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서점이 뭔데요."에 집약되어 있는 듯했다. 이 아이에게는 경미한 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돌아다니던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는 나가버리고 저자는 어머니의 이 말에 감전된 듯 서 있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아마도 이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편안한 장소로 책을 파는 동네서점이라는 공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데리고 간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인 시선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서운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다른 가게는 다 그래도 서점만큼은 그러지 말았으면 최후의 어떤 공간으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서점이 뭔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영세한 자영업자의 공간으로 분투하고 있을 그곳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어떤 기대를 공유하고 그게 순진한 낭만에 기댄 것이라 할지라도 쉽게 포기하기 싫은 것 같다. 저자의 그런 마음들이 잔잔히 그가 읽은 책들과 어우러져 전해온다. 특히 저자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한다는 유디트 헤르만의 책을 사고 또 사는 마음 같은 거. 설득당하고 만다. 대체 얼마나 좋길래.
효율과 물질적 가치가 추앙 받는 사회에서 여전히 옛것에 기댄 가치를 공유하는 일은 서러운 공감이다. 기회가 되면 '서점이 뭔데요'라는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었던 저자의 속초 동아서점에 꼭 방문하여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