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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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핌에 두 번밖에 가지 못할 것이었다."


이 첫문장의 '핌'은  "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로 표현됐던 디디에 에리봉의 고향 랭스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요양원이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통해 고백한 디디에 에리봉의 계급 탈주의 오디세이는 이제 그의 어머니인 서민 여성 노동자의 내밀한 개인적 늙음과 죽음의 서사를 사회학적 역사적, 철학적으로 치열하게 재해석하는 속편으로 이어진다. 


디디에 에리봉은 스스로를 아주 나쁜 아들이라 지칭하지만, 어머니의 사후 씌어진 이 '사회학적 전기'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십대 시절부터 하녀와 가정부 일을 하다 만난 노동자 계급의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끝내 끝까지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요양원에서 고독사한 한 여인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여 단순히 개인적 특수성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구조적, 제도적인 측면에서 조망하고 해석하여 유의미한 부고로 탈바꿈시켰다. 디디에 에리봉 특유의 내밀한 개인사의 사회학적 해부는 우리가 가족 관계 안에서 통과하는 필연적인 늙음과 죽음에 대해 그 어떤 이도 제시해주지 못했던 번뜩이는 통찰을 발견하게 한다. 


하지만 제약의 톱니바퀴들 안에서도 언제나 '게임'은 있다. 구조적 타성들에 의해 아무리 축소되고 위축되어 있다 해도 개인적 혹은 집단적 변화를 위한 자리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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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에리봉은 단순히 모든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비록 늙음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관계에서의 소외, 단절을 표상하는 요양원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의 상황과도 겹쳐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 현재가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쓰기는 변화의 자리를 예비한다.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는 그의 적나라한 표현은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우리가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비참한 존재의 단계가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명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그는 언제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 안으로 침잠하는 대신 그 개인사를 사회학적 고배율 현미경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밝혀낼 수 있을까 싶은 지점까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난 아들이었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 생전에 우리 관계가 아무리 멀고 간헐적이었다 해도,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가 평생 아들로서 노력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해도 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었다.

-pp.154


이 한 대목만 놓고 본다면 사람들은 오해할지 모른다. 그래, 그는 가부장적 구조에서 한 몸에 기대를 받고 자라 어깨가 무거운 아들이구나. 이제 이런 고백은 진부하지 않나? 이렇게. 그러나 디디에 에리봉이 말한 아들의 의미는 다르다. 그는 노동자 집안에서 공부한 유일한 아이였고, 유일한 게이였다. 실제 그는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타인이 아닌 친동생에게서 그의 성정체성의 암시에 관련한 적대적인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모자의 관계는 사회적 편견의 지형을 고스란히 재현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든의 어머니가 뒤늦게 빠진 사랑을 가장 먼저 고백한 이는 바로 디디에 에리봉이었다는 점은 그녀가 아들에 대해 가지는 모순적인 애증을 드러낸다. 즉 노년의 사랑과 동성애가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지대에 있다는 공통된 감각 말이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극우로 변신한 늙은 노동자 어머니는 아들이 쓰는 글에서 자신이 차지해야 할 위치를 알았다. 이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존재, 다양한 층위에서 느끼는 정동이 결집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시선은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이야기해도 이 작가의 탁월한 글쓰기의 핵심을 보여준다. 즉, 그는 우리가 모두 단정하는 그것들의 지반을 기꺼이 흔들어댄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며 말하는 것들이 소외시키는 실재들에 대해서. 



디디에 에리봉이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철학에는 늙음의 자리는 없다."

이 철학은 실존주의다. 인간의 실존에 천착하는 이 철학에서 늙음을 은폐하고 묻어버리고 있다는 발견은 충격적인 발견이다. 인간 존재의 필연적 스펙트럼의 끝에 있는 시기를 부재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성립하는 철학을 우리는 신봉해왔다. 그러나 정작 거기에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결코 '우리'로 연대하여 세력화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미래, 늙음이다. 


디디에 에리봉 어머니의 삶, 노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의 그것에 대해 암시하고 촉구한다. 지금 소외시키는 그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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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01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년에 홀로 있는 것은 참 슬프고 외로운 일이지요.특히 요즘은 비혼에 따란 1인 가구가 증가되는데 제대로 된 노후 대책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면 향후 십 수년내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블랑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26-01-01 14:32   좋아요 0 | URL
결국은 다 홀로 그 길을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새해 벽두부터 조금 우울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괜히 그랬나 싶기도 해요.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