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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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편리한 장르이다. 작품에 대한 몰이해도 ‘해석’의 한 부분으로 인정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다행스러운 책 읽기의 기억으로 왜곡하련다. 이 책은 이해하기가 무지 까다롭다. 상황은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과론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컷’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이 없다. 마치 소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듯이 자기 말만 하고 닫아 버린다. 작가도 좀 미안한지 책 뒷부분에 힌트를 던져 놓았는데, 그걸 보면 그럴 듯 하다.

어찌 됐던 해석의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게 되니, 소설 속의 세상도 무한히 팽창한다. 저자의 정신세계가 이렇구나! 정말 특이한 동네다. 팀 버튼의 ‘화성침공’에 나오는 개 몸뚱이에 사람 머리가 달려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동네다. 콜라주처럼 얼키설키 엮어 탄생한 인류의 열 가지 몽타주는 10차원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럼 나머지 11번째 차원은 어디로 사라졌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일 것이다. 이 세상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들이 이 책 안에 있는 작은 차원들인 것이다.

역시 소설은 인간 세상을 놓지 않는다.

여기 나오는 인간상들은 소시민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나이 좀 되면 퇴직해야 할 너구리가 되고, 이 대륙 저 대륙으로 철새처럼 날아다녀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솟구치는 집값의 대안인 고시원에 기거하는 사람들. ‘산수’의 욕망은 목만 늘어난 가녀린 기린이 되고, KS가 찍힌 공산품에 쓰러져가는 농촌의 모습. 세상의 이치가 탁~ 막힌, 그래서 멸종과 변비를 감내해야만 하는 도도와 현대인들.

쿠르트가 꿈꾸는 세상, 막힘 없이 세상의 순리가 잘 돌아가는 세상이 저들을 감싸주겠지? 부패한 세상으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리고 안 좋은 것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 시키기 위해서 냉장고를 활용하자. 그렇게 탄생한 카스테라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따위의 유머가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목이 메이는 소설이다.

카스테라를 먹었으니,
냉수 한잔 들이키게

ps. 난무하는 상징과 은유는 흡사 한 편의 시 같다. 잘 보면 음율, 추임새까지 있다. 울리불리, 불리울리, 허~, 빙고 링고. 눈으로 읽지 말고, 성대를 사용하면 유아용 책마냥 ‘말의 맛’이 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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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비와 야쿠르트. 비유가 너무 재미있고 참신해요. 자일리톨과 충치도 재미있었죠.

라주미힌 2005-08-2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발함이 너무 매력적이에용.. 통통 튀는 것이.. ㅎㅎ

릴케 현상 2005-08-2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게 읽으셨네요

라주미힌 2005-08-2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뭔 소린지 잘 몰라도 분위기에 적응하니 그런데로 재미있던데요.

가넷 2005-11-06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지만 뭔소린지 모르겠더군요. 웬지 바보같은 느낌이..- -;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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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거짓에 관한 논의는 끊김이 없어야 한다. 멈추는 순간 그것은 종교적 믿음이 되거나, 이야깃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이성과 과학은 나름대로 전자의 방식을 취해서 발전해 왔다. 물론 그것이 진리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의 ‘업적’은 이미 너무나 커졌다. 벌여놓은 것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눈에 보이는 것의 대부분이 공장에서, 발전소에서, 연구소에서 튀어 나온 것이니…

먹고 살만해 지니깐, 건강에 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그것을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서 출몰한다. 정보가 많아지니깐 사이비 정보도 많아진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밀화인(꿀에 절인 인간의 유해)이나, 이집트의 미이라를 약으로 쓴 유럽인들, 시체를 매독약으로 쓴 조선의 아낙의 기이한 일들은 워낙 오래 전 일이니깐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요즘에도 이상한 것들을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과 ‘이상한 믿음’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잘못된 상식과 정보는 그래서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던가. 야생 짐승의 생피를 빨아먹어 기생충 감염으로 큰일나고,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더 악화되고, 사이비 종교단체의 치료행위로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정보가 쓰레기로 전락한 세상이다. 많은 정보는 스펨메일처럼 귀찮을 뿐이다. 필요한 정보, 정확한 정보만이 가치가 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잘못된 의학 지식, 의료 분야에 알려지지 않은 대한 정보, 일종의 편견들에 대한 응징, 응급약 같은 상식들이 담겨져 있다. 의학 교수님이 쓴 책이니 믿을만한 정보들일 것이다. 게다가 저자가 워낙 유머러스하여 어려운 내용은 하나도 없고, 부담 없이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실용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인데 단점을 얘기하는 건 인지상정 상으로 아닐런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운 것이 하나가 있다. 기존의 거짓이나 편견을 부시기 위해서는 치열한 검증과 논의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런데 법의학 이야기라던가 몇몇 단락에서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뒤에 누가누가 이것을 지적해 주었습니다라고 수정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의 겸손함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책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뜨리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누가 조언을 해주었다라고 명시를 하고 올바른 내용을 책의 주 내용으로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러한 구성을 본 후 뒤에 응급구조라는 단락에서는 ‘~ 설이 있다’, ‘확인 안된 보도에 의하면’ 식의 농담이 있는데, 사실 이것이 농담인지 진짜인지 독자는 고민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 저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책이라면 좀 더 진중한 글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담없음이 가벼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필요로 하는 정보도 있지만, 과장, 허황된 표현으로 재미를 추구하기에는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의도는 너무나 무겁다.
김두식씨의 ‘헌법의 풍경’같은 자기 분야를 낱낱이 해부하는 책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언급한 의료계와 환자간의 불신의 벽을 서민적인 저자의 글 솜씨가 가능케 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참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했던 유년의 시절… 그‹š를 떠오르게 하는 마지막 장… 뒤집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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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8-15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간밤에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이 세개나 올라왔어요. ㅋㅋ 제 브리핑에만. 재밌더라구요. 이제 반 읽었는데

비로그인 2005-08-1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기대됩니다.. 어서 읽어보고 싶어요..;;

2005-08-15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15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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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초반을 읽게 되면 혀가 점점 짧아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맞춤법, 띄어쓰기가 엉망인 글을 따라 읽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내가 그가 된 기분이 든다. 어느새 그의 흉내를 내고 있게 되는데, 지능이 많이 낮은 30대 아저씨 찰리의 일기는 이렇게 독자의 눈높이도 함께 낮추고 시작한다.

찰리는 뇌 수술을 받게 되고, 급격하게 지능이 향상된다. 좋게 말하면 의학 연구이고, 나쁘게 말하면 생체 실험이었다. 일기의 하루 하루는 찰리의 심리, 정신, 지능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러다가 그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도 하나씩 재생되기 시작한다. 부모, 주위 사람들에게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던 찰리의 어린 시절, 성장기, 최근의 기억들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정서장애를 일으킨다.
이젠 평범함을 뛰어넘은 천재성을 가진 그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부도덕성, 낮은 지능을 이해할 수 없는 찰리는 또 다시 그들의 틈에서 고독한 개인이 되어버린다. 인간다움이란, 평범한 그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온 몸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는 일기의 초반과 달리 점점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중반부의 일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실험은 실패하고, 찰리의 지능은 급속히 퇴행 된다. 선악과를 먹고, 이성의 눈을 떴을 떄의 충격만큼이나 어둠 속으로 쓸려가는 찰리의 격정적인 심리 변화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다. 변화와 속도, 기억과 심리의 흐름은 책 한 권의 선율이 되어 거대한 굴곡을 지닌 슬픈 아리아의 떨림으로 발산한다. 극과 극의 체험, 빛과 어둠, 기억과 망각의 터널에 관한 경험은 연민 이상의 애잔함을 독자에게 남긴다.

이 책의 원제인 ‘엘저넌에게 꽃을’의 의미는 아마도 엘저넌에 대한 애정이면서, 엘저넌에 투영되어 있던 자아의 존중에 대한 찰리의 깊은 바람일 것이다.(엘저넌은 찰리처럼 뇌수술을 받은 실험용 쥐, 지능 퇴행 중 죽음).

기억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망각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존재 하지 않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지워지고 남는 것은 찰나의 감각뿐 일 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은 고독이다. 기억되고 싶어하는 욕망,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묻혀지는 슬픔을 감내하려는 자의 몸부림이다.
망자 기억하기. 한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꽃은 삶의 시작과 소멸을 상징하기에 망자 앞에 놓여진다. 꽃은 놓여지고, 시들면 다시 놓여진다. 마치 윤회와 같은 ‘망자 기억하기’같은 꾸준한 관심을 찰리는 바랬던 것이다..

뇌수술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치유였다. 백치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벗어나 고통 받던 영혼이 회복하기 위한 치료였다. 그리고 백치를 비인간적으로 바라보던 인간들의 비인간성을 들춰내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과는 같지 않다. 이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목소리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사라졌으니….

찰리에게 꽃을….
우리 주위에서 잊혀진 자들에게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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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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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말에 새겨진 의미는 언어를 뛰어넘어 현상을 반영하며, 문화로 형성되어, 역사에 새겨진다. 구조화된 의식으로 결정지어지는 것들은 이미 그 시작부터 운명적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 속에도 자리잡고 있는데, 가령 여성에게 ‘도시적인 이미지가 풍기시네요’라고 하면 그것은 칭찬이 된다. 세련되고, 문화적 풍요로움을 달고 살며, 인텔리겐챠 또는 전문직 여성일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촌스럽네요’라고 하면 바로 짱돌이 날라 올 것이다. 촌스러움. 그것은 투박함, 인공미가 전혀 없는 비문명성이 흠뻑 젖어 있는 대표적인 단어 아닌가. 촌스러움에서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철저히 떼어놓은 것은 도시인이고 문명인인 것을 보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그들에게 분명히 존재한다. 시골과 도시, 야만과 문명의 관계는 언뜻 보아도 친밀함을 넘어서 태생적으로 같은 원류임을 느낄 수 있다. 배다른 형제, 그 둘의 출생의 비밀,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침 드라마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퇴폐적 진실의 가닥이 미궁에 빠질 것인가, 명명백백 밝혀져 낯부끄러움을 알게 해 줄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역사의 투명한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만큼 체계적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훌륭하다.

이 책은 ‘시골과 도시’처럼 단항적이고 계급적 경계를 갖는 ‘야만과 문명(Savages and Civilization)’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어서, 한 눈에 문명 비평서임을 알아 볼 수가 있다. 너무나 일반적인 제목, 그렇다고 다른 책들과 비슷한 얘기를 반복할까?

문명비평서의 일반적인 주장들은 획일화 된 국제 사회의 브레이크 없는 전진과 확대를 경계한다. 공존의 가치를 지워버리고, 파괴적이고 무한한 욕망의 증가가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책도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촌스러움과 도시적 이미지의 상충은 갈등의 불평등 구조를 형성하고 파괴적인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화, 현대화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대중의 욕망을 부추기고 산업화의 동력으로 바꾸는 데에 일임을 한다. 이촌향도, 과밀화 된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미개한 환경, ‘촌스러운’ 고장을 잠식하고 대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결핍은 안정된 공급을 요구하고, 파괴는 새로운 파괴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Civilization 도시) 속의 야만(Savage 숲)에 대한 현대적인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 모양만 바꾸면서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문화는 왔다가 사라지지만 도시들은 거의 그 상태대로 지속된다. 정복자가 새로 나타날 때마다 외관을 바꾸고 때로는 이름까지도 바꾸지만…’ 198p.

그러나 이 책이 이와 같은 범주에 있다 하더라도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 법.
버드아이 앵글로, 마치 창조주가 된 것처럼 인류의 역사를 유유히 훑는다. 마치 우유의 발효과정을 살피듯(치즈가 될 것이냐, 부패 할 것이냐), 시간의 흐름과 문화의 변형, 기술, 인간, 산업의 영향과 결과를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미래’의 거울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야만이라고 불리던 인간, 문화가 얼마나 문명적이었는가, 그것이 현재의 인류에 끼친 영향력을 직접 곳곳을 다니면서 전해준다. 사하라,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원주민,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 등 그들의 문화를 직접 느끼면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과정은 시간의 여행자, 역사의 증언자로 나타나 책의 무게를 더한다.

지적 유희가 좋은 책이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것을 같이 보는 것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쿠르지가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이 고통스럽듯이, 나 또한 문명처럼 작용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은 점점 더 사전적 의미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엔 문명이란 야만을 교묘하게 숨기기 위한 가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백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미 문명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야만은 문명 내부에 자리잡았다. 문명은 야만을 만들고 북돋아 준다. 도시의 중심부는 새로운 변방지대가 되었다.’

문명은 한 가지 편의를 알려 줄 때마다 백 가지의 악을 감춘다. – 허먼 멜빌

커다란 변화는 커다란 희생을 동반한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희생되고 있다는 말이다.
농업은 야만이라는 것을 생산해 내었고, 기술은 자연을 오염시켰으며, 대서양의 항로가 열리면서 노예무역이 번창했고, 아시아로 가는 뱃길은 제국주의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핵에너지는 대량살상 무기가 되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구의 구속력을 더욱 높여 가고 있다.
‘인간은 먹을거리를 놓고 개와 독수리들과 경쟁한다. 잘사는 곳에서만 그러한 맹금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양의 음식을 내다 버릴 여유가 있는 것이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넝마주이들이 새들을 죽여버린다.’ 284p

요즘 갑자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인기 없는 과학자들의 체세포, 유전자 복제, 조작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복제는 창조도 아니고, 번영도 아니다. 치명적인 자기 파괴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존엄성을 잃은 존재, 역동적인 생명을 잃은 가치에서는 영혼은 없다.
문명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잉카 문명의 유적은 우리가 앞으로 보여줄 문명의 잔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과거이자 미래의 모습이다. 인류는 너무나 빠른 속도를 내었다. 사상누각!
쌓은 순간 만큼, 무너지는 것도 순간이다.
문명의 허기는 자일리톨을 먹으려는 충치의 끊임없는 흡수와 배설의 반복처럼 그칠 줄 모르는 탐욕만을 보여줄 뿐이다.
‘자연에서는 진정한 경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경계를 만들고, 만들고 나면 더욱 커다란 노력을 들여 그 경계를 실체화하고 보호한다. 이러한 경계는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 민족, 인종, 민족성 등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뒷받침하고자 하는 것이다’ 4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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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리뷰 읽을때는 글쓰기가 조심스러워진다니까요.

라주미힌 2005-08-2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부족한 글에 대한 과찬을.. 책이 재미있습니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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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낯이 익은 멋쟁이 아저씨가 날 빤히 보고 있다. 의 움직임, 의 생각, 의 인생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던 저편의 ‘’는 세월의 주름을 하나씩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속의 ‘’는 현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증인이 아닌가. 시간의 화살을 묵묵히 증언하는 ‘’에게 말을 걸어 본다.

"기계적인 일상을 숨기기 위해 알코올을 흡수하고, 자본의 목마름이 나의 의지를 간섭할 때마다 유년의 감각을 하나씩 떨궈내더니 도대체 남은 게 뭐더냐?"

’가 대답하길,
"유년의 추억 속에는 놀이와 처벌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맞은 기억은 아픔으로. 비난의 기억은 상처로. 부끄러움은 나약함으로 부활할 테니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중 처벌이다.
보송보송한 과거, 세상의 시름이 비켜가던 그 시절...'
‘친구야 놀자’라는 암호로 그들을 호출하여 동네 여기 저기를 배회하다가 딱지, 구슬을 발견하면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쇼부’를 보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서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적절히 음미도 하고, 흙집을 두꺼비에게 분양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던 그 때의 기억들은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이것 또한 무의미 하지 않는가. 세속의 굴레 속에서는 오직 현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미래를 결정 짓고 있음을 명심하라."

거울 속의 ‘’는 그렇게 삶에 적응해 왔다. 이 책은 ‘’의 목소리는 이미 노쇠하여 생명력이 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때는 ‘경험’이 ‘재미’였고, ‘시도’가 ‘흥분’을 불러왔다. 내 몸의 감각적인 반응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문은 원하면 언제든지 열리고 나를 받아들였다. 세상에 규칙이란 없다. 나의 방식, 나의 시선은 창조 자체가 되었다.
프뢰벨은 "놀이는 어린이의 내적 세계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며, 아동기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산물이고, 인간생활 전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 자기 내외(自己內外)의 편안함과 세계와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놀이의 실루엣은 너무나 흡사한 것이고, 이 책은 그것의 누드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탐미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상상 속에서는 무의미하다. 기술과 문명은 이미 진화했고, 그것을 답보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한 복제의 시대는 복제된 사고를 거부하고, 변형, 기형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놀아라, 놀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의 7개의 단락은 특별한 연계성을 띄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끈끈한 유기성을 보이는 데 그것은 2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식의 전환(시선, 빛, 공간, 시간, 의미, 왜곡, 숨김, 사라짐 등)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식의 전환은 형식, 의미, 전통, 규칙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한다. 공간에 대한 반전, 시간에 대한 역전, 왜곡된 형상, 빛의 반사와 굴절, 존재와 부재의 쉼 없는 교차는 극과 극을 대면하게 하여, 그것의 융합과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중권이 썼다는 점이다. 진중권은 사실 글의 구조에서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미장센을 괜히 두지는 않는다. 미술로 따지자면 설치 미술쯤이 아닐까.
무지개 빛으로 나뉜 각 단락은 정신분석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선형, 비선형의 교차를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는 빨강, 왜곡과 역상의 광기를 보이는 노랑, 논리적 체계성과 감성의 날카로움 겸비한 수수께끼의 녹색, 신화적 상상과 예술적 미를 상징하는 보라 등 그 상징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Over the Rainbow'가 연상된다면, 그리고 무지개의 건너편 땅 속에 난쟁이의 보물이 있다는 상상이 떠오른다면, 그래서 그것이 인간의 창조성을 의미한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일단은 방대한 지식의 배치와 구도는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장엄함이 있다.

이 책의 유별난 재미는 책이 장난감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만화경마냥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단순히 책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은 놀이의 장이 되어 준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이 yellow의 아나몰포시스, 인형 풍경이다. 누구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여기의 재미는 공간의 재해석을 느껴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구의 중력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간의 왜곡이 무엇인가를 의미한 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장 웃겼던 페이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정리한 베얼리의 작품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들’의 방을 정리한 할머니의 행동을 예술의 파괴, 반달리즘에 비유하다니…. 우하하하 누구에게는 예술이, 누구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진실을 베얼리의 작품으로 설명한다. 그것이 진중권의 ‘언어 유희’와 ‘절묘한 비유’로써 책에서 얻게 되는 ‘숨은 그림 찾기’ 이자 ‘애너그램’이다. 다른 한 곳을 더 보자면, 137p의 왜상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정치 풍자도 가능할 것이라는 명제를 내놓고, 예를 드는 것이 ‘저 그림 속 네 인물의 자리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을 그려넣고, 가운데에 피라미드 거울을 올려놓으니, 노무현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하면서 정치풍자를 하고 있다. 예를 드는 척하면서 실제로 정치 풍자를 하는 장난끼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낸다.

어렵고 전문적인 주제, 방대한 자료를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미학을 쉽게 펼쳐보이는 이 책은 너무나 명랑하고, 놀이의 유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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