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말에 새겨진 의미는 언어를 뛰어넘어 현상을 반영하며, 문화로 형성되어, 역사에 새겨진다. 구조화된 의식으로 결정지어지는 것들은 이미 그 시작부터 운명적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 속에도 자리잡고 있는데, 가령 여성에게 ‘도시적인 이미지가 풍기시네요’라고 하면 그것은 칭찬이 된다. 세련되고, 문화적 풍요로움을 달고 살며, 인텔리겐챠 또는 전문직 여성일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촌스럽네요’라고 하면 바로 짱돌이 날라 올 것이다. 촌스러움. 그것은 투박함, 인공미가 전혀 없는 비문명성이 흠뻑 젖어 있는 대표적인 단어 아닌가. 촌스러움에서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철저히 떼어놓은 것은 도시인이고 문명인인 것을 보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그들에게 분명히 존재한다. 시골과 도시, 야만과 문명의 관계는 언뜻 보아도 친밀함을 넘어서 태생적으로 같은 원류임을 느낄 수 있다. 배다른 형제, 그 둘의 출생의 비밀,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침 드라마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퇴폐적 진실의 가닥이 미궁에 빠질 것인가, 명명백백 밝혀져 낯부끄러움을 알게 해 줄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역사의 투명한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만큼 체계적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훌륭하다.

이 책은 ‘시골과 도시’처럼 단항적이고 계급적 경계를 갖는 ‘야만과 문명(Savages and Civilization)’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어서, 한 눈에 문명 비평서임을 알아 볼 수가 있다. 너무나 일반적인 제목, 그렇다고 다른 책들과 비슷한 얘기를 반복할까?

문명비평서의 일반적인 주장들은 획일화 된 국제 사회의 브레이크 없는 전진과 확대를 경계한다. 공존의 가치를 지워버리고, 파괴적이고 무한한 욕망의 증가가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책도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촌스러움과 도시적 이미지의 상충은 갈등의 불평등 구조를 형성하고 파괴적인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화, 현대화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대중의 욕망을 부추기고 산업화의 동력으로 바꾸는 데에 일임을 한다. 이촌향도, 과밀화 된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미개한 환경, ‘촌스러운’ 고장을 잠식하고 대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결핍은 안정된 공급을 요구하고, 파괴는 새로운 파괴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Civilization 도시) 속의 야만(Savage 숲)에 대한 현대적인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 모양만 바꾸면서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문화는 왔다가 사라지지만 도시들은 거의 그 상태대로 지속된다. 정복자가 새로 나타날 때마다 외관을 바꾸고 때로는 이름까지도 바꾸지만…’ 198p.

그러나 이 책이 이와 같은 범주에 있다 하더라도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 법.
버드아이 앵글로, 마치 창조주가 된 것처럼 인류의 역사를 유유히 훑는다. 마치 우유의 발효과정을 살피듯(치즈가 될 것이냐, 부패 할 것이냐), 시간의 흐름과 문화의 변형, 기술, 인간, 산업의 영향과 결과를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미래’의 거울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야만이라고 불리던 인간, 문화가 얼마나 문명적이었는가, 그것이 현재의 인류에 끼친 영향력을 직접 곳곳을 다니면서 전해준다. 사하라,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원주민,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 등 그들의 문화를 직접 느끼면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과정은 시간의 여행자, 역사의 증언자로 나타나 책의 무게를 더한다.

지적 유희가 좋은 책이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것을 같이 보는 것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쿠르지가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이 고통스럽듯이, 나 또한 문명처럼 작용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은 점점 더 사전적 의미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엔 문명이란 야만을 교묘하게 숨기기 위한 가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자백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미 문명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야만은 문명 내부에 자리잡았다. 문명은 야만을 만들고 북돋아 준다. 도시의 중심부는 새로운 변방지대가 되었다.’

문명은 한 가지 편의를 알려 줄 때마다 백 가지의 악을 감춘다. – 허먼 멜빌

커다란 변화는 커다란 희생을 동반한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희생되고 있다는 말이다.
농업은 야만이라는 것을 생산해 내었고, 기술은 자연을 오염시켰으며, 대서양의 항로가 열리면서 노예무역이 번창했고, 아시아로 가는 뱃길은 제국주의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핵에너지는 대량살상 무기가 되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구의 구속력을 더욱 높여 가고 있다.
‘인간은 먹을거리를 놓고 개와 독수리들과 경쟁한다. 잘사는 곳에서만 그러한 맹금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양의 음식을 내다 버릴 여유가 있는 것이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넝마주이들이 새들을 죽여버린다.’ 284p

요즘 갑자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인기 없는 과학자들의 체세포, 유전자 복제, 조작에 대한 대중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복제는 창조도 아니고, 번영도 아니다. 치명적인 자기 파괴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존엄성을 잃은 존재, 역동적인 생명을 잃은 가치에서는 영혼은 없다.
문명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잉카 문명의 유적은 우리가 앞으로 보여줄 문명의 잔해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과거이자 미래의 모습이다. 인류는 너무나 빠른 속도를 내었다. 사상누각!
쌓은 순간 만큼, 무너지는 것도 순간이다.
문명의 허기는 자일리톨을 먹으려는 충치의 끊임없는 흡수와 배설의 반복처럼 그칠 줄 모르는 탐욕만을 보여줄 뿐이다.
‘자연에서는 진정한 경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경계를 만들고, 만들고 나면 더욱 커다란 노력을 들여 그 경계를 실체화하고 보호한다. 이러한 경계는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 민족, 인종, 민족성 등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뒷받침하고자 하는 것이다’ 4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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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리뷰 읽을때는 글쓰기가 조심스러워진다니까요.

라주미힌 2005-08-2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부족한 글에 대한 과찬을.. 책이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