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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사실과 거짓에 관한 논의는 끊김이 없어야 한다. 멈추는 순간 그것은 종교적 믿음이 되거나, 이야깃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이성과 과학은 나름대로 전자의 방식을 취해서 발전해 왔다. 물론 그것이 진리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의 ‘업적’은 이미 너무나 커졌다. 벌여놓은 것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눈에 보이는 것의 대부분이 공장에서, 발전소에서, 연구소에서 튀어 나온 것이니…
먹고 살만해 지니깐, 건강에 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그것을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서 출몰한다. 정보가 많아지니깐 사이비 정보도 많아진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밀화인(꿀에 절인 인간의 유해)이나, 이집트의 미이라를 약으로 쓴 유럽인들, 시체를 매독약으로 쓴 조선의 아낙의 기이한 일들은 워낙 오래 전 일이니깐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요즘에도 이상한 것들을 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과 ‘이상한 믿음’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잘못된 상식과 정보는 그래서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던가. 야생 짐승의 생피를 빨아먹어 기생충 감염으로 큰일나고,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더 악화되고, 사이비 종교단체의 치료행위로 죽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정보가 쓰레기로 전락한 세상이다. 많은 정보는 스펨메일처럼 귀찮을 뿐이다. 필요한 정보, 정확한 정보만이 가치가 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잘못된 의학 지식, 의료 분야에 알려지지 않은 대한 정보, 일종의 편견들에 대한 응징, 응급약 같은 상식들이 담겨져 있다. 의학 교수님이 쓴 책이니 믿을만한 정보들일 것이다. 게다가 저자가 워낙 유머러스하여 어려운 내용은 하나도 없고, 부담 없이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실용서라고 볼 수 있다.
저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인데 단점을 얘기하는 건 인지상정 상으로 아닐런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운 것이 하나가 있다. 기존의 거짓이나 편견을 부시기 위해서는 치열한 검증과 논의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런데 법의학 이야기라던가 몇몇 단락에서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뒤에 누가누가 이것을 지적해 주었습니다라고 수정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자의 겸손함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책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뜨리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누가 조언을 해주었다라고 명시를 하고 올바른 내용을 책의 주 내용으로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러한 구성을 본 후 뒤에 응급구조라는 단락에서는 ‘~ 설이 있다’, ‘확인 안된 보도에 의하면’ 식의 농담이 있는데, 사실 이것이 농담인지 진짜인지 독자는 고민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 저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책이라면 좀 더 진중한 글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담없음이 가벼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말 필요로 하는 정보도 있지만, 과장, 허황된 표현으로 재미를 추구하기에는 이 책의 제목에 담긴 의도는 너무나 무겁다.
김두식씨의 ‘헌법의 풍경’같은 자기 분야를 낱낱이 해부하는 책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언급한 의료계와 환자간의 불신의 벽을 서민적인 저자의 글 솜씨가 가능케 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참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했던 유년의 시절… 그를 떠오르게 하는 마지막 장… 뒤집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