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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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낯이 익은 멋쟁이 아저씨가 날 빤히 보고 있다. 의 움직임, 의 생각, 의 인생을 언제나 주시하고 있던 저편의 ‘’는 세월의 주름을 하나씩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속의 ‘’는 현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증인이 아닌가. 시간의 화살을 묵묵히 증언하는 ‘’에게 말을 걸어 본다.

"기계적인 일상을 숨기기 위해 알코올을 흡수하고, 자본의 목마름이 나의 의지를 간섭할 때마다 유년의 감각을 하나씩 떨궈내더니 도대체 남은 게 뭐더냐?"

’가 대답하길,
"유년의 추억 속에는 놀이와 처벌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맞은 기억은 아픔으로. 비난의 기억은 상처로. 부끄러움은 나약함으로 부활할 테니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중 처벌이다.
보송보송한 과거, 세상의 시름이 비켜가던 그 시절...'
‘친구야 놀자’라는 암호로 그들을 호출하여 동네 여기 저기를 배회하다가 딱지, 구슬을 발견하면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쇼부’를 보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서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적절히 음미도 하고, 흙집을 두꺼비에게 분양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던 그 때의 기억들은 현재의 삶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이것 또한 무의미 하지 않는가. 세속의 굴레 속에서는 오직 현재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미래를 결정 짓고 있음을 명심하라."

거울 속의 ‘’는 그렇게 삶에 적응해 왔다. 이 책은 ‘’의 목소리는 이미 노쇠하여 생명력이 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때는 ‘경험’이 ‘재미’였고, ‘시도’가 ‘흥분’을 불러왔다. 내 몸의 감각적인 반응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문은 원하면 언제든지 열리고 나를 받아들였다. 세상에 규칙이란 없다. 나의 방식, 나의 시선은 창조 자체가 되었다.
프뢰벨은 "놀이는 어린이의 내적 세계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며, 아동기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산물이고, 인간생활 전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 자기 내외(自己內外)의 편안함과 세계와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놀이의 실루엣은 너무나 흡사한 것이고, 이 책은 그것의 누드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탐미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상상 속에서는 무의미하다. 기술과 문명은 이미 진화했고, 그것을 답보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한 복제의 시대는 복제된 사고를 거부하고, 변형, 기형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놀아라, 놀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의 7개의 단락은 특별한 연계성을 띄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끈끈한 유기성을 보이는 데 그것은 2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식의 전환(시선, 빛, 공간, 시간, 의미, 왜곡, 숨김, 사라짐 등)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식의 전환은 형식, 의미, 전통, 규칙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한다. 공간에 대한 반전, 시간에 대한 역전, 왜곡된 형상, 빛의 반사와 굴절, 존재와 부재의 쉼 없는 교차는 극과 극을 대면하게 하여, 그것의 융합과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중권이 썼다는 점이다. 진중권은 사실 글의 구조에서 미적인 면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미장센을 괜히 두지는 않는다. 미술로 따지자면 설치 미술쯤이 아닐까.
무지개 빛으로 나뉜 각 단락은 정신분석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선형, 비선형의 교차를 통해 역동성을 강조하는 빨강, 왜곡과 역상의 광기를 보이는 노랑, 논리적 체계성과 감성의 날카로움 겸비한 수수께끼의 녹색, 신화적 상상과 예술적 미를 상징하는 보라 등 그 상징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Over the Rainbow'가 연상된다면, 그리고 무지개의 건너편 땅 속에 난쟁이의 보물이 있다는 상상이 떠오른다면, 그래서 그것이 인간의 창조성을 의미한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일단은 방대한 지식의 배치와 구도는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장엄함이 있다.

이 책의 유별난 재미는 책이 장난감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만화경마냥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단순히 책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은 놀이의 장이 되어 준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이 yellow의 아나몰포시스, 인형 풍경이다. 누구나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여기의 재미는 공간의 재해석을 느껴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구의 중력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간의 왜곡이 무엇인가를 의미한 다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가장 웃겼던 페이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정리한 베얼리의 작품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들’의 방을 정리한 할머니의 행동을 예술의 파괴, 반달리즘에 비유하다니…. 우하하하 누구에게는 예술이, 누구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진실을 베얼리의 작품으로 설명한다. 그것이 진중권의 ‘언어 유희’와 ‘절묘한 비유’로써 책에서 얻게 되는 ‘숨은 그림 찾기’ 이자 ‘애너그램’이다. 다른 한 곳을 더 보자면, 137p의 왜상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정치 풍자도 가능할 것이라는 명제를 내놓고, 예를 드는 것이 ‘저 그림 속 네 인물의 자리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을 그려넣고, 가운데에 피라미드 거울을 올려놓으니, 노무현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하면서 정치풍자를 하고 있다. 예를 드는 척하면서 실제로 정치 풍자를 하는 장난끼를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낸다.

어렵고 전문적인 주제, 방대한 자료를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미학을 쉽게 펼쳐보이는 이 책은 너무나 명랑하고, 놀이의 유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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