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친구네 가족들과 1박2일간 경주에서 실컷 놀다가 돌아왔다. 지난 여름휴가를 제주도에서 같이 보내고 난 이후에 대부분 처음 만나니 딱 반년만이다. 그럼에도 워낙에 익숙한 친구들이라 그런지 오랫만에 본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 경주에서 만나 콘도에 짐을 풀었다. 못온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대식구다. 어른 10명에 아이들이 8명이니....우리의 전략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이 피곤하도록 실컷 놀아준 이후에 어른들끼리 밤새도록 노는거다. ^^

뭐 그런대로 전략은 성공해서 우리집 꼬맹이들이 가장 늦게 잠들었지만 밤 11시쯤에는 아이들이 다 잠들고... 우리는 새벽까지 수다떤다고 신이났다. 물론 여전히 남자들은 훌라판을 벌이고, 머리와 손과 입이 동시에 떠드는 수다의 경지를 보여주고....

이들은 뭐 여러가지 경로로 만났지만 남편의 친구도 아니고 나의 친구도 아니고 우리 둘다의 친구들이다. 빠르게는 내 고등학교때부터의 친구도 하나 있지만 사실 고등학교때 우리는 같은 반이라도 하나도 안 친했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난 이후 혈기넘치고 고민도 많고 엄청난 꿈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부대껴온 친구들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이 싸웠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럼에도 늘 든든한 우리들의 친구였다.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이들의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 한마디만 해도 그들의 말속에 담긴 마음이 이해되고, 그들 역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친구의 모습은 내 모습이 되어가고, 반년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것 같은 이들이 있어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나는 상황에 맞게 적당히 가면을 꺼내쓰는 나의 모습에 익숙해져 간다. 인터넷 공간이 이곳 역시 내가 쓰고 있는 많은 가면들 중의 하나일게다. 적당히 편집되고 적당히 좋은 모습을 골라서 드러내고.....하지만 가끔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기거나 싫증날때도 있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가면도 쓸 필요가 없는 그들. - 사실 너무 적나라하게 나에 대해 알고있는 바람에 가면을 쓰도 통하지도 않는다.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유쾌한 일만 있으랴... 좋은 일 안좋은 일도 같이 웃고 울수 있는 그들이 있어 행복한 이틀이었다.

다들 사는게 바빠 이제는 자주 보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내년 여름 휴가 계획을 짜면서 또 반년 후를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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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2-0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친구들 꼭 필요하죠. 저도 몇넘 있어요. ^^

바람돌이 2006-02-0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여러분들은 아마 다들 이런 친구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근데 이런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소중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어릴때는 전 저보다 너무 똑똑한 어떤 친구를 보면서 질투도 했었고(하나만은 아니었던것 같군요. ^^), 근데 지금은 친구가 잘사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하나도 샘 안난다니까요. ^^

urblue 2006-02-0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중학교 때부터의 친구랑 하루종일 놀았어요. 알고 지낸 시간이 모르고 지낸 시간보다 더 길어진 친구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서로들 징그러워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만날 날이 몇십년 더 남았으니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이 친구들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해요. ^^

바람돌이 2006-02-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뭐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젊었거나 어렸던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잖아요. 많은 것이 변해도 또 변하지 않는것도 있으니.... 어쨌든 좋은 친구란 좋은 인생의 동반자인건 맞는 것 같아요. ^^
 
솔이의 추석 이야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2
이억배 지음 / 길벗어린이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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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이었지만 읽어줘도 아이들이 사실 별로 좋아라 하지 않았다.
근데 얼마전이 설이었고 설 책으로 설빔을 보더니 추석에 관련된 이 책을 아이가 다시 꼼꼼히 보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래서 요즘 매일 다시 읽어주고 있는 그림책이다.

아이가 좀 커서 그런지 이 책은 사실  엄마가 읽어준다기보다는 것에  책 가득히 펼쳐진 그림들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아이가 찾는 재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표지의 엄마가 솔이의 한복을 다림질하는 장면에서부터 아이의 눈은 반짝인다. "엄마 나도 이 색동저고리 있어 그치?" 그리고 표지를 펼치면 한 가득 펼쳐지는 분주한 동네시장의 모습. 아이는 가게마다 들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엄마 이 아이는 왜 울어?" "음 여긴 치과니까 아마 이빨이 아야해서 우는걸거야" "야 우리도 여기 목욕타에 가봤는데.... 엄마 미장원이다. 근데 이사람은 왜 머리에 이런걸 썼어?" 등등 장면마다 아이는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을 얘기하고 저와 같은 경험, 다른 경험들을 재잘거린다. 그리고 각 페이지마다 주인공인 솔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이 책의 진가는 결국 이야기에 있지 않고 그림에 있는 것 같다. 별로 튀지 않는 평범한 색깔들이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정겹고 펼쳐지는 이야기와 장면들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림들을 보면서 아이가 온갖 자신의 경험과 소망을 재잘거릴 수 있는 것.... 그림책 하나가 이정도를 줄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책 아닐까?

근데 말이다.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보고 나도 전에는 제대로 못본 그림인데 이번에 보니 딱 걸리는 게 있다. 바로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는 장면인데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제사상에 절을 하고 있다. 근데 여자라고는 딱 어린 솔이 한명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옆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릇을 닦고 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다. 뭐 내가 시집에서 늘 보는 풍경이니까.... 그렇기에 아이는 이 장면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림을 찬찬히 보니 솔이 엄마는 늘 어린 동생을 업고 있다. 솔이의 아빠는 한번도 동생을 안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명절 준비를 하는 장면에서도 기존의 성역할이 바뀌어서 나타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 많이 변했고 우리들도 변했다. 물론 변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하지만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하고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면 이런 정겨운 풍경에서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고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과 같이 이런 모습의 문제점을 얘기해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처럼 어리고 또 이런 모습이 많이 익숙해져있는 아이들에게 그건 쉬운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림책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명절 풍경에는 이런 모습도 있어라고 얘기하며 어떤게 더 보기 좋은 거 같니라고 얘기하는게 아이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더 좋은게 아닐까?

이렇게 좋은 그림책에 너무 결정적이 흠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안타깝다. 이 책의 개정판이 다시 나와 그림속 남자 여자의 역할이 섞이고 같이 명절을 준비해나가는 모습이 들어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 그림책에 별 4개가 아니라 10개도 퍼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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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2-0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억배씨의 책은 본게 요거 하나뿐이거든요. 만약에 이 그림책이 별로 맘에 안들었다면 흥! 하고 넘어갔을거예요. 근데 저는 이 그림책이 너무 맘에 드는데 저런 흠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랄까? 그래서 이 책이 다시 그림을 좀 바꿔서 재출간이 되면.... 하지만 작가의 생각이 다르다면 어림없는 일이겠죠.

프레이야 2006-02-0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지적하신 거 같아요. 아주 오래전 보았던 그림책인데요 성역할을 고정하는 글과 그림이 요새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죠. 새로 태어나는 <솔이의 추석이야기>가 나온다면 좋을 것 같네요. 우리전통을 소개하는 목적이라면 몰라도 시대에 맞게 변한 풍속을 보여주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추천합니다

바람돌이 2006-02-0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안녕하세요. 다른 분의 서재에서 댓글로 자주 뵈었던 것 같은데....
그림책도 시대에 맞게 아니면 보다 더 바람직한 가치가 있다면 거기에 걸맞데 좀 변해줬으면 좋겠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
 
루비레드 - 삶의 숨은 진실을 찾는 15편의 심리동화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영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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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하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두려움과 맞서고, 욕망과 싸우고, 도덕적인 문제와 대면할 기회가 필요하다..... 동화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대립 구도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서 뭔가를 끌어올리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고, 자신의 문제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8페이지, 머리말)

저자의 이말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에 해당한다. 그래서 백설공주를 다시쓴 루비레드나 헨젤과 그레텔을 모티브로 한 그레텔의 마녀나 그외의 창작 동화들은 무언가 심리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썼다는게 분명히 느껴진다.

루비레드가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하나로만 이 양자를 보지 않고 각각의 독립적인 여성으로 봤을때, 즉 흔히 어머니라는 중성적인 이름에서 무시되어지는 여성성을 복원했을 때 나타나는 미묘한 심리적 혼란.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의 절정을 치달아가는 딸과 점차 여성성을 상실해가는 엄마. 그 때 엄마라는 여성과는 아마도 어느정도는 자신의 엄마라는 위치와 여성이라는 위치 사이에서 위축과 혼란 또 그로 인해 생기는 죄책감 이런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 때 그 죄책감을 달래주고 어루만져주며 딸과 어머니라는 두 여성의 서로의 이해과정을 들려주는 동화가 바로 루비레드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 불안과 상처들 내면의 말할 수 없는 억압된 내밀한 욕구들을 대신 말해줌으로써 그것이 나만의 문제이거나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죄책감같은걸 덜어주는게 이 짧은 이야기들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잘모르지만 상담이나 심리학의 치료란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그걸 해결해주는게 목적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당사자가 직시하고 바로 볼 수 있도록 표면화해줌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것, 이런게 아닐까?

"너만 그런게 아니야.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러니 우리 서로 욕망을 인정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자고..."라고 속삭여주는 듯한......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서 별로 공감이 안생기는 건 아마도 내 문제일거다. 사실 딸의 여성성을 질투하는 백설공주 어머니의 이야기는 아직 아기인 내 딸들을 생각하면 공감하기 힘들고,,, 아마도 이건 또 서양과 우리의 다른 문화적인 배경 - 유난스러울 정도로 모성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저런 감정자체가 사회적으로 너무 억압되어서 은밀한 욕망으로조차 나타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이야기들은 -즉 루비레드 같은 이야기들은 서양과 우리의 문화적 배경이 너무 다름으로써 공감하기 힘들었고, 하늘위의 하늘이라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치유되어가는 이야기는 또 워낙에 자식에 대한 소유관념이 심한 우리나라이기에 오히려 더 공감이 되었고....

누구나가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모든 이야기에 공감하기는 힘들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또 적어도 한 두편의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줌으로써 일종의 치유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 광고 때문에 여기 이야기들이 대부분 기존 동화를 새롭게 해석한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대부분이 작가의 창작 동화인것 같다. 물론 내가 모르는 동화를 개작했느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그래서 이전에 나온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류의 책과는 상당히 다르다.

--------> 2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에 비해 책값은 사실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은 정말 끝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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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빌에서 만나요 3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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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진의 만화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인물들이 예쁜 것도 아니고 대부분 뭔가 약간 냉소적인 듯한 분위기의 주인공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유시진의 주인공들은 완전히 냉소적이 못된다.

신화의 세계를 헤매다 끝을 못지고있더니 새롭게 이 작품이 나왔다. 여전히 유시진 다운 분위기의 주인공들이 포진하고 있다. 아주 자유롭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과 그 중간에서 늘 혼란스러워하는 어정쩡한 위치의 주인공까지....

주인공 도윤은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정말 평범 그 자체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고 특별히 반항적이지도 않고 그러니 뭔 특별한 사건이 날리도 없다. 특별하다 해봤자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와 산다는건데 그것 역시 요즘 우리나라에선 점점 특별하지 않은 일이 돼가고 있으니.... 주인공이 이러니 뭔 일이 일어날 턱이 없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클라이막스도 없다. 그저 이야기는 도윤이 사는 집의 아래층에 사는 이언이와 이비라고 하는 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생활하고 친구들과의 관계 찔끔 나오고 뭐 이게 다다. 그러다 보니 처음 한동안은 재미없다 싶을 정도로 맹숭맹숭....

하지만 워낙에 유시진 만화를 좋아하다보니 그 믿음때문에 계속 보게 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유시진이다 싶다. 도윤이 섬처럼 고립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벗어나 바깥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 한발을 내딛어 가는 심리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말 어렵게 한발짝을 내밀지 않을까? 옆에서 알아채기도 힘들게 말이다. 그런 조심스러운 한 번의 손짓이 주변을 좀 더 이해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깊이를 가져가게 하지 않을까말이다.

보면 볼수록 사춘기 소년의 심리묘사에 빠져들게 만드는 섬세한 성장보고서... 갈수록 은근히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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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박노자씨의 책을 읽을때면 나는 가끔 해보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이 파란눈의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거나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그의 글이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논객의 대접을 받고 할 수 있었을까?(책을 읽다보니 뒤쪽에 실제로 나같은 생각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 학생이 있더만....) 한겨레 21을 통해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때 사실 나 역시 그의 특이한 이력 - 오리지널 백인이면서 한국으로 귀화한 -에 끌렸었다. 그가 만약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귀화인이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쉽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글들을 읽었을는지는 알 수없다.

박노자 그가 말하고자 하는것. 그것은 바로 대다수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 편견과 편견으로 인한 폭력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비판은 그 스스로가 한국인이라 생각하기에 조금도 외부인의 체면치레나 외교적인 언사가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라는 인간속에 축적된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의 경험덕택에 보다 객관적이고 명쾌하게 한국사회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여기서 객관적이라 함은 누구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제반 문화에 대해 일정의 거리두고 바라보기에 그가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안보이는 법이니까....)

박노자는 박통을 늘 다카키 마사오라 부른다. 그가 박통을 박정희가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라 부르는 것은 박통의 친일 경력때문이 아니다. 사실 식민지 시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다른 친일파들에 비하면 그의 업적(?)은 사실 미미하다고 할 것이다. 박통이 박정희가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인 이유는 박통이 만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 그 자체 아니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의 군사문화와 억압적 폭력적 통치체계가 여전히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편에서 박통정권의 해부에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것일게다.

박통이 이 땅에 심어놓은 일본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2권에서 보다 더 폭넓은 영역에서 짚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속에 뿌리박은 군사문화의 획일성 억압성이 어떻게 아직도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외면을 규율하는 복장의 규격화 획일화는 아주 빠른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 그래도 나아졌다고 자부할 때 여전히 우리는 중학교 아이들의 복장부터 그들을 억압하고 있다. 누구나 상식처럼 생각하지 않나? 어릴때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가 예쁜거야... 화장은 무슨... 머리도 단정하면 예쁘지...이런걸 상식이라고 하지 않고 억압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있는 박노자는 그래서 고맙다. 나의 진보성이란게 어느 수준인지를 자각하게 해주니까....

최근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낱낱이 보여주게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그의 비판의 칼날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가 되려면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교육과 문화가 몽땅 아시아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만이 서구 제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자신이 벌거벗기워 지는 기분이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부끄럽다고 끝내버리는데 그의 글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은 쉽다.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가는게 진정한 비판이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대안을 모색한다. 그러므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그러므로 유쾌하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넘어 우리들의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그날 아마도 우리는 백인이 아닌 흑인 박노자, 또는 동남아시아 출신이나 남미 출신 박노자를 만날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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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6-02-0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비판은 쉽지요^^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가는게 진정한 비판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던 때가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바람돌이 2006-02-0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2권은 1권보다 새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더 성숙해진 느낌이랄까.... 이 책 읽으면서 박노자라는 사람이 참 낙관적인 사람이구나 하는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의 그 낙관의 힘이 저에게도 전염되는 느낌이랄까.... ^^

딸기 2006-02-10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합니다. :)

바람돌이 2006-02-1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