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에 쓰여진 이 책에서 말한다. 오늘날 강간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인종주에에 빠진 작가들이 아주 많다고.

인종주의에 기반한 흑인 강간범 신화와 흑인여성의 성적 문란이라는 테마는 사실상 오늘날 한국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정말 말도 안돼서 대꾸할 가치도 없어보이는데 미국사회에서는 20세기 말까지도 그 힘을 잃지 않고 통용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떤 사회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논리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거짓일뿐인데도 그 사회에서 그 논리가 통용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흑인을 위한 린치는 흑인 강간범 신화로 인해 당연시되고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된다. 더 많은 흑인 남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더 많은 흑인 여성들이 백인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에 대해 "하나님은 강간 살인은 용서해도 인종혼합은 용서하시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학교에 등교하는 어린 흑인 여학생이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이것을 단지 인간의 본성이 악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뒤에는 남부의 경제를 식민화하고 흑인 노동력의 야만적인 착취를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북부의 자본가들이 있다. 또한 이 자본가들은 자본가를 향한 백인 노동자의 적개심을 흑인 노동자들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지킨다. 그러면 이 평범한 가난한 백인들은 왜 자본가가 아니라 흑인들에게 분노의 돌팔매를 던지는가? 한 때 인간의 근본적으로 이성적이고 따라서 논리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설득하면 억압적인 세계의 파괴를 위해 싸우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가 당연히 오리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이 이성과 합리의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실제 세상과 인간의 마음은 늘 이런 이성과 합리의 세계를 비웃듯 다르게 흘러간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돼. 괴롭히면 안돼라는 이런 명제가 뭐가 어렵지? 너무 당연한거잖아. 그런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거지? 사람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생각이 빠트린 것은 무엇이지?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전방향적인지도 잊지 말아야 한다. 흑인 강간범 신화는 흑인 여성의 성적문란함이라는 쌍생아를 낳고 흑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정당화했다. 또한 공포를 작그하는 린치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남성의 지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 가부장제를 강화시킴으로써 흑인여성뿐만 아니라 백인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도 되었다. 그리고 앞에 말했듯 가난한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자본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흑인에게로 돌리는 역할까지 말이다. 사실상 이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영향이고 결과인가는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모두가 중대한 있어서는 안되는 폭력이다. 그들이 전방위적이라면 그들에 대한 싸움 역시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약자에게 필요한건 공감이고, 그 공감에서 나오는 연대이다.  너무 식상한 결론이지만 연대 없이는 싸움의 승리가 없는데 어떡하라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이대남과 이대녀의 대결구도는 정말로 그들의 대결인가? 그 대결을 공론장으로 이끌어낸 이들이 따로 있지는 않은가? 노동시장을 자본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는 의도와 맞물려있지는 않은가? 사실상 역사는 늘 반복되는데 본질은 그대로이고 겉에 걸친 옷만 갈아입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속는다. 나의 눈을 가리는 그 속임수에서 어떻게 탈피하고 길을 찾을 것인가?


  분명히 무조건적으로 옳아보이는 어떤 운동이 처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임신중지권은 당시 백인 여성들에게는 당연히 쟁취되어야 할 여성의 권리였지만, 수많은 흑인여성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많은 흑인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비참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의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들에게 더 절박한 것은 자신의 아이를 낳고자 욕망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던 것이다. 흑인여성들에게 또는 가난한 백인 여성들에게 더 절박한 것은 임신중지권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재생산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둘은 대립되는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당대 페미니스트의 임신중지권 요구가 이런 흑인 여성들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는 한 이 두 세력이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이 1981년작이라는 것을 떠올리는건 책의 마지막 장에 가서이다. 여성해방의 전제 조건으로서 가사노동의 문제를 다루면서 작가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와서 보면 가사노동의 수많은 부분이 사회화 되었지만 그럼에도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예를 들면 내 어머니 세대에서 육아는 사실상 젖먹이를 벗어나고 나면 끝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냥 큰다고....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돌봄은 지속된다. 그 돌봄이 끝나고 나면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하여 부모세대에 대한 돌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돌봄노동까지 포함하는 가사노동의 끝을 어디까지 사회화할 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아직 정확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다. 또한 작가가 독점자본주의의 타도와 사회주의로 완전한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이왕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 역시 시대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오랫만에 진짜 꼼꼼하게 책을 읽었고,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대부분 정리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따로 쓰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의 인종차별의 역사와 여성운동의 역사를 교차시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리는 결론은 역시 해제에서 정희진샘이 말했던 공감의 연대이다. 역사상 수많은 진보와 인권을 위한 운동들이 나의 문제와 타자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하고, 심지어 타자를 계속 타자로 던져두는 억압을 인지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해왔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실패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의 타자들은 누구인가? 여성, 20대 젊은이들, 이주노동자와 여성들, 장애인들, 성적소수자들...... 기준을 어디에 갖다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이러한 타자들의 연대는 나와 당신의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역시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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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2-17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본질은 그대로이고 걸친 옷만 바꿔 입는다‘는 바람돌이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입장차에 연대가 절실한데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그 연대가 깨지는게 이득이란걸 너무 잘 알기에 갈수록 교묘하게 갈등을 조장하죠. 완독 수고하셨어요!
저는 이 책 인종주의와 성차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어요^^*

바람돌이 2023-02-17 22:53   좋아요 1 | URL
저도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만나는 지점과 그 둘이 어긋나는 지점들을 보고 그걸 또 오늘 우리 현실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은 독서였어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제 생각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게 너무 좋은거 같아요. 물론 또 이런 책을 읽고 바라보는 현실은 너무 갑갑해서 속이 터지기도 하구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2-17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언뜻 듣기만 하고,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흑인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해 읽으며 왠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바람돌이님의 리뷰도 쏙쏙 날카롭게 읽힙니다. 공감이 결여된 연대는 쓸모가 없습니다. 공감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마지막 문구를 기억하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2-17 22:54   좋아요 1 | URL
저도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결합되는 순간이나 같이 싸워야 할 사람들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과정같은걸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날카롭게 읽으시고 나무님의 날카롭고 예술적인 100자평도 기대합니다. ^^

은오 2023-02-17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왜 웃기시면서 정리도 잘하시는거죠 제발 하나만해주세요ㅠ

바람돌이 2023-02-17 23:00   좋아요 2 | URL
그럼 웃기는 쪽으로.... 제가 항상 꿈꾸는 사람이 웃기는 사람입니다만..... ^^

그레이스 2023-02-17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사노동의 사회화!
제가 심각하게 생각해왔던 부분이예요.~

바람돌이 2023-02-18 00:09   좋아요 2 | URL
집안일하는 여자 치고 이거 생각안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에 보면 그런 장면 나와요. 집안 청소를 전문 청소노동자들이 와서 해주는거죠. 그들은 그걸로 임금을 받고 여기에 드는 비용은 사회복지 정책으로 국가 지원이 되어서 아주 가난한 노동자도 쉽게 서비스를 이용하고요. 아 진짜 제가 원하는바입니다. 그리고 우리집앞에 3시세끼 밥해주는 곳 있으면 진짜 좋겟어요. ㅎㅎ

희선 2023-02-18 0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깊이있게 잘 보셨군요 모두가 좋은 걸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것도 생각해 봐야 할까 싶기도 하네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겠습니다 모두를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그러기 어렵기도 하네요 다른 것도 보게 해주는 게 이런 책이겠습니다 책도 한쪽으로 치우칠 때 있겠지만... 그런 것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싶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3-02-25 12:08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꼼꼼하게 책읽기를 한 것 자체가 저에게는 또 좋은 일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약간 자아도취랄까요? ㅎㅎ 그리고 모든 책은 어차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제대로 판단하고 나의 입장을 찾는 것이 중요한거겠죠. 항상 관심 감사합니다. ^^
 


  흑인 여성의 조직적인 활동이 백인 여성들의 클럽을 모방한 형태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그 외의 다른 조직의 형태를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조직을 만들기에는 여전히 그들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가난하니 말이다. 문제는 또한 이런 형태의 여성클럽이 흑인 여성들 내에서도 똑같은 문제 엘리트주의에 직면하는 것도 당연할테다. 시대적 한계라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해체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가이다. 


  참정권 운동 역시 여러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사실상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 노동계급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권을 얻으면 신세계가 열리리라는 전망을 열렬히 외치지만 노동자 여성들은 투표권을 가진 자신의 아버지,남자형제들의 삶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매일 보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 성차별주의가 계급 불평등이나 인종주의보다 훨씬 억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주장, 언어일 뿐이다. 인종과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여성이 투표권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는 것은 이 투표권이 자신의 노동조건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결국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적 각종 조직- 노동조함, 노동자 협회, 공산주의자 클럽, 사회당 등-의 등장과 그 영향과 연결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등장으로 투표권운동은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서 노동계급으로 확대되게 된다. 또한 걸출한 흑인여성혁명가들, 또는 사회운동가들이 등장한다. 루시 파슨스같은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초기 공산주의 운동이 그러하듯이 모든 특수성 - 인종, 젠더를 계급성으로 대체해버리는 우를 범하지만 이것은 루시 파슨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거의 모든 사회주의 운동이 초기에 겪었던 오류를 거쳐가는 과정일뿐이다. 엘라 비르 블로어라는 백인 공산주의자 여성운동가에 이르면 이제 공산주의운동은 흑인해방운동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나간다. 또한 클라우디아 존스에 이르면 가사노동이 주를 이루는 흑인 여성의 직업이 성차별의 주요한 원인임을 간파하고 사회주의가 흑인여성, 흑인 전체, 노동계급 전체를 위한 이론이자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제 이들은 여성, 인종, 계급운동에서 어떤 새로운 차원을 열어갈 것인가?

점점 흥미로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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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7 0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든 처음부터 잘 되는 건 아니겠지요 좋은 뜻이어도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다음 단계로 가겠습니다 더 안 좋은 길로 가지 않고 올바르게 간다면 좋을 텐데, 올바른 것도 정말 올바른 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사람 마음이 다르기도 하니...


희선

바람돌이 2023-02-17 22:55   좋아요 1 | URL
뜻이 좋다고 모든 것이 다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여기서도 또 느끼네요. 역사는 어차피 그런 장면의 연속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달라지는 지점을 포착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

다락방 2023-02-17 09: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게 그런 것 같아요. 처음 시작은 당연히 우를 범할 수밖에 없고요. 그러나 그것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한계가 드러났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드러난 한계를 그 다음에는 수정해나가며 점점 완성된 형태를 갖출 수 있을 테니까요.

역시 같은 책 읽으면서 다른 분들의 감상을 읽는 건 너무 재미있어요. 바람돌이 님이 점점 흥미로워진다 하시는데, 저는 바람돌이 님의 글이 그렇다면 또 나오겠구나 싶어 흥미로워 집니다. 훗.

바람돌이 2023-02-17 22:59   좋아요 2 | URL
사회주의가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그 긍정성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정말 깨지기 힘든 무기를 쥐어준거니까요. 맑스가 그랬잖아요. 철학자의 임무는 세계를 해석하는게 아니라 변혁하는거라고....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의 오류 또한 우리는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책을 읽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맑스주의자로서 작가 앤절라 데이비스의 한계를 보기도 했습니다. 여성문제는 계급문제나 사회주의의 문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데 그 부분은 간과됐거든요. 뭐 80년대 초반의 맑스주의자라면 당연한 한계이기도 합니다만.... ㅎㅎ
 

1890년대는 노예제 폐지 이후 흑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인종의 저항 투쟁에 가담할 의무를 느꼈다. 밀어닥치는 린치의 물결과 흑인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성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최초의 흑인여성 클럽이 조직되었다. - P203

흑인 여성의 클럽 운동은 단호하게 흑인해방투쟁에 전념했지만 그 중간계급 지도자들은 때로는 안타깝게도 흑인 대 - P210

중에 대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가령 패니 배리어윌리엄스는 클럽의 여성들을 해당 인종의 ‘새로운 지성이자각성된 양심‘으로 보았다. - P211

노동계급 여성 대중은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 같은 당면한 문제에워낙 골몰해서 터무니없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대의를 위해싸우지 못했다.  - P219

수전 B. 앤서니가 노동계급 가정의 현실에 익숙했더라면절대 이런 말은 못 했을 것이다. 노동계급 여성들이 익히 잘알고 있듯 투표권을 행사하던 그들의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아들들은 전과 다름없이 부유한 고용주들에게 비참하게착취당했다. 정치적 평등이 경제적 평등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 P220

어머니, 내가 앨라배마로 돌아가서 작고 낡은 우리 오두막뒤에 있는 목화밭에 나가면 거기 서서 혼자 생각할 거예요.
"캐피톨라, 너 정말로 거기 파리에 가서 그 온갖 멋진 여자들을 만나고 그 온갖 멋진 말들을 들었던 거니? 아니면 네가거기에 갔던 건 그냥 꿈이었던 거니?‘ 그리고 그게 정말 꿈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되면, 오 어머니, 나는 앨라배마 방방곡곡에 내가 여기서 배운 걸 전부 떠들고 다니면서, 전 세계여성들이 우리가 남부에서 상대하는 그런 테러를 끝장내기위해, 그리고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알릴 거예요.  - P246

니그로 여성과 백인 여성의 경제적 관계는 ‘마님 - 하녀‘ 관계를 영속시키고 남성우월주의적 태도에 먹잇감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백인 여성 진보주의자, 그리고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잘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는 백인우월주의의 모든 표현에 의식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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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제가 없어졌다. 그러나 재산이라고는 진정 몸뚱이밖에 없는 그들에게 어떤 초기 정착을 위한 경제적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생산과 동시에 빚이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동시에 미국의 법은 그들을 실질적인 노예 상태를 벗어나게 하고싶지 않다. 재소자 임대 제도는 흑인들을 아주 사소산 구실로 체포하게 하고 그들을 다시 농장주들에게 대여되도록 하였다. 실질적으로는 노예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1890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48개 주 가운데 32개 주에서 가사서비스가 흑인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지배적인 직업이었다는 것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통념과 달라서 약간 충격이었다. 일반적으로 남북전쟁을 남부의 농장제와 북부의 공장제의 대립으로 보고 값싼 공장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는데, 1890년의 인구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통념보다 미국의 자본주의 공장제 공업의 비중이 아직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럼으로써 남부의 노예제에서 벗어난 대다수의 흑인들이 다시 농장에서 옛 주인 밑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가질 수 있는 직업은 가사노동- 백인들의 시중을 드는 그런 것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제 흑인=노예라는 공식이 흑인=하인이라는 공식으로 대체되는데 실제 흑인들의 처지는 이전의 노예로서의 상황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흑인 여성 가정부를 두고 있는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 여성은 백화점 점원의 노동조건에는 분노하지만 자기 집의 흑인 가정부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알고싶어하지 않는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나의 주장과 나의 삶이 어긋날 때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의 필요다. 나와 나의 가족이 해야 할 노동을 대신하고 있는 흑인 가정부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다면 다른 어떤 공감도 그것이 나의 삶의 편안함을 희생해야 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더 이상 진보적이기 힘들다. 

오래 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지역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다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바라고 있다고 그래서 이 지역의 평화 역시 긍정적이라고 평해놓은 것을 봤었다. 하지만 내가 그 책의 인터뷰를 통해서 느낀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바라는 평화는 자신의 삶의 어떤 것 -현재의 편안함, 경제적 안정, 사회적 지위 등등 - 양보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빼앗은 것 어떤 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고싶다고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평화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흑인 여성의 노동이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이든 그것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다면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도 평화를 말하는 것도 공허하기 이를데 없고, 위선일 뿐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흑인들이 원했던 것은 땅, 투표권, 그리고 학교였다. 해방된 흑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이 3가지였다. 땅과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던 흑인들에게 남은 것은 교육이었다. 백인 여성들은 흑인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투쟁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백인 여성들은 자신도 갖지 못한 투표권을 흑인 남성이 가지는 것은 반대한다. 또한 흑인 투표권에 대항하여 여성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문해력을 투표권의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명백한 인종주의일뿐만 아니라 계급차별이기도 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군가를 나보다 못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동정하고 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을 여기서 발견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동정하는 대상이 내가 동정할 사람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 평등한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사회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라고 질문하다가 이 질문 자체가 역시 얼마나 인종주의적이고 오만한 것인지를 다시 깨닫는 것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비공감과 편의주의, 그리고 자기애가 가지고 오는 이런 판단 미스는 실제로 우리 사회의 타자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는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미국 백인여성들의 온정주의적이지만 인종주의적이고 계급차별적인 결정들이 흑인에 대한 무수한 린치, 살인들을 방조하고 오히려 그 폭력들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흑인 남자가 가능한 모든 행복과 진보를 누리기를 바라지만 앵글로색슨 인종의 성역을 침범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199쪽


 이토록 직접적이고 대범한 인종차별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언사에 지금의 나를 대입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장애인의 처지가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그의 출근길 시위로 내가 더 빨리 집을 나서 출근해야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는 그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댓가가 나의 지위나 급여보다 올라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동성애를 이유로 차별하는것을 반대하지만 나의 아이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등등등..... 이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문장은 무수히 많다. 

때로는 반면교사가 더 힘이 세다. 나의 위선을 바라보는 거울이 일상에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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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5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인 여성이 가진 생각 한국 사람도 가지기도 하겠네요 한국 사람이라고 하다니... 저도 그렇겠습니다 이젠 한국에 한국 사람만 살지 않기도 하죠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한국이 돌아가나 싶은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람으로 생각해야죠 언제나 자신을 되돌아봐야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3-02-15 23:38   좋아요 1 | URL
조만간 한국의 인구에서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경우도 예상해야 할 거 같아요. 현재의 인구감소 추세로 볼때 우리 나라도 다인종 다민족국가가 되는게 멀지 않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러면 뭐 큰일 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걸 또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또 뭐 그렇게 큰일인가 싶기도 하구요. 그런 문제에서 언제나 나의 관점을 다시 되돌아보는 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햇살과함께 2023-02-15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부분, 흑인 여성 가정부를 둔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 여성의 모순에 크게 공감했어요!
제가 육아도우미를 고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가정에서 사용자라는 나의 위치와 직장에서 사용인이라는 나의 위치에 대한 저의 대립적, 모순적 시각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기에..
책을 읽는다는 건 이런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3-02-15 23:40   좋아요 2 | URL
우리는 사실 모두 나의 편안함을 위해 타인의 불편함에 눈을 감는 경향이 다 있잖아요. 이런 것을 자각하기만 해도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같은게 달라지리라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이렇게 얘기도 하고 하는거잖아요. ^^

단발머리 2023-02-19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에 대한 리뷰들 중에 이 리뷰가 제일 좋았어요. 바람돌이님 이 책 리뷰들 여러 편 쓰셨는데 그 중에서도 이 리뷰가 최곱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비공감과 편의주의, 자기애에 대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관해야 합니다!!!!!!!

바람돌이 2023-02-25 11:44   좋아요 1 | URL
여러 글들중에서 그래도 공감가는 글이 있었다고 얘기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이참에 알라딘에 명예의 전당 영구박제공간 하나 만들어달라고 졸라볼까요? ㅋㅋ
이번 달의 책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들,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더 생각하게 해줘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단발머리님의 리뷰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인종주의는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백인보다 흑인 하인을 더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이 흑인을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들은 실제로는 하인 - 솔직히는 노예-은 천생 흑인의 숙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152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는 종종 수렴하고, 따라서 백인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유색인종 여성의 억압적인 난관에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므로 백인 여성 가사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항상 흑인 여성 하인의 임금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는 인종주의적 기준에 맞춰 고정되었다. 가내 일자리를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주 여성들은 흑인 여성 못지않게벌이가 형편없었다. 소득 잠재력에 관한 한 이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백인 남자들보다는 흑인 자매들 쪽에 단연 더 가까웠다.  - P153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여자도, 남자도 땅을 원했고, 투표권을 원했고 "학교를 절절하게 갈망했다"  - P162

교육을 쟁취하기위한 미국의 여성 투쟁사는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에서 흑인여성과 백인 여성이 함께 문맹과의 전투를 진두지휘했을 때진정한 절정에 도달했다. 이들의 단합과 연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생산적인 가능성 중 하나를 지키고 공고히 다졌다. - P176

이 결의안은 흑인 남성과 이민자 남성들의 권리와 함께흑인 여성과 이민자 여성의 권리를 호방하게 일축했다. 게다가그것은 해묵은 편의주의 논리로는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배신을 시사했다. 이 결의안의 논리 안에는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공격, 그리고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차별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신흥독점자본가들과 결탁할 의지가 은연중에 배어 있었다. - P185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중대한 이데올로기적 결합을통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었다.
항상 손쉽게 어울리던 백인우월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공개적으로 그 결합을 받아들이고 강화됐다. 20세기 첫 몇 해 동안 인종주의적 사고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 P192

나는 흑인 남자가 가능한 모든 행복과 진보를 누리기를 바라지만 앵글로색슨 인종의 성역을 침범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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