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이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9쪽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히틀러의 보복에 의해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던 곳이다. 폴란드 사람들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바르샤바에서 찍은 사진과 기록, 엽서를 보내 줄 것을 호소했고, 거기에 자신들의 기억을 더듬어 도시를 이전대로 다시 건설했다. 그리고 그곳에 나치에 이해 총살된 벽을 그대로 두고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친다. 한강 작가는 이를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며, 가능한 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온 세계인이 찾는 다뉴브 강가에 전시한다. 저 강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다. 나치에 부역한 헝가리인들에 의해서 살해당한 사람들이다. 오늘 헝가리인들은 자신들의 참회와 애도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여준다.


 제주의 죽음과 광주의 죽음은 무엇이 달랐을까? 왜 우리는 그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것조차도 눈치를 봐야 하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제주도 광주도 얘기하기 전에 한템포 숨을 쉬고 말을 고르고 해야 하는걸까? 심지어 그 어린 아이들이 침몰한 배에 갇혀 죽어야했던 세월호조차도 충분히 마음껏 애도하는 것을 가로막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구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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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5-12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에 18일이 돌아오네요 애도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어떤 일은 언제까지나 애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으로 끝나지 못하는 애도도 있겠습니다 살아 남은 사람도 생각해줘야 할 텐데...


희선
 
겨울 여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4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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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서사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제멋대로 보여준 채, 아닌 척 모호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속이려 든다.   - 49쪽


 자신의 책에 대해 책 속에 이렇게 딱 소개하는 글을 넣을 수가 있나? 책 속 저 문장이 말하듯 자우메 카브레가 만들어 낸 14개의 이야기들도 그들이 처한 운명의 일부분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삶의 다른 공간, 다른 사람, 다른 시간에서 이야기는 되풀이되고 변주된다. 내가 음악을 잘 알았다면 음악의 변주와 함께 이 이야기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음악을 모른다고 해서 이야기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되어 이야기의 탁월함과 감동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뒷 이야기의 장면에서는 다른 식으로 변주되어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운명 역시 이렇게 어딘가 다른 곳에서 변주되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떤 이야기가 가장 좋았나라고 질문하면 대답하기 어렵다. 첫 번째 이야기 사후작품에서 이건 뭐야라며 예감이 안좋은데 하다가 두 번째 이야기 유언장에서 빵 터져 주변 사람한테 막 이야기하면서 진짜 인생 너무하지 않냐라고 한탄하게 하다가 세 번째 이야기 손안의 희망에서는 주인공의 마지막 결단이 너무 가슴에 맺혀 찌릿한 감동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감정의 변주를 널 뛰듯 경험하다가 마지막 겨울 여행은 첫 번째 작품 사후 작품과 겹치며 사후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읽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의 14가지 이야기 어느 하나도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은 이런 재밌는 책을 널리 알리고 싶은데 내 글솜씨로는 그걸 알려 줄 능력이 안된다는거다. 그냥 재밌어요 읽으세요 한다고 누가 읽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어렵고도 어렵구나. 어쨌든 피해가 보자! 스포일러!


  사후 작품은 마지막 작품 겨울 여행과 만날 때 완성된다.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피아노연주자 앞에 진짜 슈베르트가 앉아 있다니.... 누가 감히 슈베르트를 연주할 것인가? 친구이자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 보내준 알려지지 않은 악보로 훌륭한 연주를 해내지만 그는 절망에 빠진다.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을것인가 아니 피아노가 지긋지긋해지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나를 붙들어줘야할 친구이자 내 사랑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어 나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 친구 역시 지금 절박하다. 25년을 기다린 사랑이 다시 사라졌다. 제대로 인사조차 못했는데.... 


  삶은 언제나 나의 뒷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다. 유언장에서 예고없이 다가온 아내의 죽음은 나를 절망하게 하지만 그것이 진짜 절망이 아니라며 강렬한 뒷통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 남자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작가는 왜 이렇게 비관적이지 하는 순간 다음 손안의 희망은 다시 우리에게 삶이 그렇게 암울하지 않음을 이야기해준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인생의 빛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 남에게는 네가 여태까지 쌓아온 계획을 한 순간에 포기해버리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이지만 나는 알것 같다. 내 인생을 지탱해주던 단 하나의 소망이 이루어진 그 순간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다음 단편 이분(진짜 시간 2분, 바로 그 2분이다.)에서는 짧은 시간 2분 단위로 물고 물리는 상황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 시간들의 어느 순간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또 누군가의 삶에 끼칠 결정적 영향의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2분이 어쩌면 앞 단편들의 사람들의 삶에 폭풍을 일으킬 작은 날개짓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돌고 도는 삶의 순간들은 사람만이 겪는 것은 아니다. 바흐의 자폐 아들의 멜로디를 음악으로 만든 바흐의 작품은 실수를 은혜하려던 제자 고트프리트에 의해 불길 속에 사라지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 그 작품을 다시 살려낸 고트프리트에 의해 세상을 돌고 돈다. 그리고 사후 작품의 피아니스트에게 돌아간다. 렘브란트의 작품 <철학자> 역시 그렇게 세상을 떠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파멸 시킨다. 하지만 작품과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돌고 돌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출구가 없는 끝도 존재한다. 나는 기억한다 속 이자크의 마지막은 삶의 첫 재채기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죄책감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원죄를 보여준다. 그것이 이자크의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평생을 따라붙는 죄책감은 결국 그를  파괴시킨다. 나를 그 자리에 대입시킨다고 해도 별다른 방법이 있을 듯하지 않다. 결국 파멸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그 인생에 연민을 보낼 밖에는..... 단편 발라드 속에서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나의 파멸과 나의 사랑이 만나는 그 지점 인생은 아이러니이고 비극이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여 그가 하고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 인생은 그저 여행의 중간 지점일 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젠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불운은 하필이면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겨울 여행에 당첨되어,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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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5-10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진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ㅋㅋㅋ 여태 내공을 숨기셨구먼요!!

바람돌이 2025-05-10 18:53   좋아요 1 | URL
Falstaff님 내공이라니요? 저 그런거 없어요. 없는 내공을 어찌 숨길까요? ㅎㅎ
그래도 재미나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책이 너무 좋았어요. 자우메 카브레를 알게된건 순전히 Falstaff님 덕분이니 모든 영광을 Falstaff님께 돌리겠습니다. ^^

새파랑 2025-05-10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나보군요~!! 읽어봐야겠습니다~!! 민음사 북클럽 사은품으로 신청했는데 아직 안왔다는... 근데 저 표지처럼 발을 노출안하고 자면 답답하지 않나요? ㅋ

바람돌이 2025-05-10 23:16   좋아요 1 | URL
실망하지 않으실거예요. 진짜 막 주변에 권하고싶은 그런 책이에요. 음 저는 발을 노출하면 뭔가 허전해서 못자는 쪽이라... ㅎㅎ
 

 마음이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대통령이 탄핵 되고 이제 순리를 따르듯이 그렇게 기본적인 국민의 의무만 하며 내 생활을 정돈해야지 했는데 이게 뭐 끝이 안 난다. 정신없는 3월과 4월을 보내고 이제 조용히 책도 좀 읽어가며 지내야지 하는데, 손에 책을 잡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손은 또 스마트폰을 들고 온갖 뉴스와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보니 읽고 있던 책도 지금의 사태와 자꾸 연결짓게 된다.














야마모토 겐이치라는 작가의 <리큐에게 물어라>를 읽고 있다. 예전에 서재 지인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소설의 기본 대립 구도는 당대의 권력자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센 리큐라는 다도의 대가이다. 정치 권력과 예술 권력의 대립이랄까? 3분의 1쯤 읽은 책이 재미있는데도 자꾸 안 읽히는 건 생각이 자꾸 딴데로 흘러 가서다. 


소설 속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주 공간은 주라쿠테이라는 성이다. 정치권력자의 공간은 위압적이고 화려하다. 특히나 칼을 든 무가 권력 중심이었던 일본 중세는 더 그러하다. 교토의 옛 건물들을 보면 제일 먼저 몸체보다 더 커 보이는 지붕으로 방문자를 누른다. 관광객이야 화려한 모습에 감탄할 뿐이지만 최고 권력자를 배알하러 가는 낮은 자들은 일단 입구부터 기가 죽고 들어가는 것이다. 당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출신성분에 열등감이 있었을 토요토미 히데요시라면 아마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또 얼마나 섬세한 존재인지 자신조차도 짓눌릴 화려함과 압도적인 권위 속에서만 살아지지는 않는다. 어딘가 편안하게 숨 쉴 공간, 내가 나로서 존재할 공간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엄격한 규율과 압도적인 공간 속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다실을 만든다. 교토의 웅장한 건물 안에 있는 소박하다기 보다는 초라하다고 말해야 할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그 공간은 자신의 공간이 아니다.


그 작은 다실-4명이 앉으면 무릎이 닿는 1첩 반의 공간은 센 리큐의 공간이다. 그는 일본 다도의 틀을 세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미의 절대적인 판별자다. 천 개가 넘는 물품 중에 단 하나 명품을 어떻게 알아보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제가 결정할 일입니다. 제가 고른 물품에서 전설이 태어납니다." 라고 답하는 인물이다. 머무는 공간은 외형적으로 소박할 지 모르지만 그가 휘두르는 것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치 권력에 맞먹는 예술 권력이다. 그의 권력은 1첩 반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에 작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 공간에 이르는 길과 그 공간 속에 정교하게 배치한 작은 기물과 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도의 과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는 무형의 권력자다. 


전국 시대라는 난세기에 이 두 권력이 부딪힌다. 정치 권력은 자신 이외의 권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예술 권력 역시 속되고 저질스러운 정치 권력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 토요토미는 센 리큐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향합을 빼앗음로써 리큐를 굴복시키고 오로지 혼자의 권력의 꼭대기에 존재하고싶다. 그러나 리큐는 가소로울 따름이다. 비록 내가 너의 힘에 무너져 할복할지언정 그것은 굴복이 아님을 굳건히 한다. 이것이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저 리큐는 "이 물건은 저의 옛 연인의 하나 뿐인 유품입니다. 그저 간직할 수 있도록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납닥 업드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리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인의 유품이 문제가 아니라 너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우월감과 권력이 진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대부분의 국민이 그러하듯 '아 저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진정코 그들의 그 권력욕이 두려워졌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직업 윤리조차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구나. 나의 위치와 권력과 엘리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마지노선도 저렇게 버릴 수 있구나. 그런 이들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었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는 느닷없었던 계엄령보다도 대법원의 이번 조치가 더 충격적이었다. 삼권 분립을 지켜야 할 그들이 행정부의 선거에 이런 방식으로 개입을 하고 삼권 분립을 정면에서 배신한다고?


정치권력이든 사법권력이든 결국 권력의 속성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위에 서있다는 우월감이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그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 네 까짓 것들이 감히라는 그 우월감이 뼛속까지 들어 차 있는 것이다. 자기 세력 이외 모두를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저 권력을 위해 그들은 토요토미처럼 치졸한 짓을 서슴치 않고 있고, 또 어쩌면 리큐처럼 목숨걸고 덤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권력이란 그런 것인가? 하지만 설사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하여 그것이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선거가 무사히 치러지기를 바랄 줄은 몰랐다. 선거에서 이겨야지 하는 생각만 했지, 그 선거 자체에 이렇게 깽판을 놓을 줄이야.... 

책을 샀다. 정치인의 책은 산적도 읽은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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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5-07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의적절하게 잘 읽으셨네요. 저도 이런 선거의 계절에 다시 헌 번 읽어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요.
대법원은 그냥 자기네들의 판을 깔고 정치인들어떻게 싸우나 지켜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엔 어떤 질서도 법이 나아가야할 길이고 뭐고 없는 것 같습니다.
권력을 부리는 사람들 무섭습니다. 내란이 적국과 싸우는 것 보다 더 무섭다던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폭삭 망하는 길 아닙니까? 전 요즘 정치인들이 무섭습니다. 매번 선거철이면 책 내는 것도 그렇고.

바람돌이 2025-05-10 18:57   좋아요 1 | URL
이 책 stella.K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었네요. 일단 책은 재밌습니다. ㅎㅎ 어쩌다 생각나서 읽었는데 이게 딱 지금 상황이란 맞물린 거 같아서 다 읽기도 전에 글을 썼네요. 앞에 맘이 싱숭생숭해서 갈피를 못잡는다고 썼지만 다음날 딱 상황 정리돼서 요즘은 국힘당 지들끼리 싸우는거 보면서 낄낄대고 있습니다. 완전 재미납니다 저러다가 같이 폭망해라하면서.... ㅎㅎ 정치인의 책은 그냥 샀습니다. 읽을거 같지는 않네요. ㅎㅎ

감은빛 2025-05-07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현재 상황에 빗대어 읽고 계신 책을 잘 엮은 멋진 글이예요.
연휴 내내 대법원 판결 때문에 가는 곳 마다 시끄러웠어요.
솔직히 저는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그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대법원의 판결이 이례적으로 빨랐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판결의 결과에 다른 의견은 없는 사람입니다만, 많은 분들이 결과 때문에 반발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오히려 이례적으로 빠른 판결을 보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법원이 판결을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루는 행태 때문에 고통받았는지를 떠올렸습니다.

좀 전에 이재명 재판이 미뤄졌다는 소식이 나왔더라구요.
여기서 결국 유,무죄 판결이 이뤄지겠지요.

저는 이번 대선에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후보로 나올 권영국 후보가 과연 무사히 기탁금을 모아 등록할 수 있을지,
완주하게 된다면 몇 표나 받을 수 있을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아마도 결국 이재명이란 사람이 당선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테니까요.

바람돌이 2025-05-10 18:59   좋아요 0 | URL
저도 딱히 이재명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시장주의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현재로는 대안이 없을뿐이지요. 그저 사람하고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죠.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고 보수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수라는 놈들이 워낙에 사람같지 않아 진보라는 명예를 그들이 누릴 뿐.... 언젠가 사람끼리 정책 대결을 하는 모습을 보고싶을 뿐입니다. 권영국후보가 완주하며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할 뿐요.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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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마음은 뭔가 좀 특별하다. 원래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싶다는 것이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사생 팬도 아닌데 작가 집 앞에 가서 무작정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으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에세이가 나오면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놓고, 그 다음은 전혀 우아하지 않게 커피를 홀짝이다가 어느 순간 소파에 드러누워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새겨듣듯 읽어나가는 것이다. 가장 편한 친구와 어딘가 놀러가서 맘껏 수다를 떠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이 수다는 일방적이다. 굳이 내가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작가가 알아서 일방적으로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나 그에게 궁금했던 생각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나는 그저 듣기만, 아니 읽기만 하면 된다. 이 편안함을 어쩔 것이냐? 좋아하는 작가 앞에서 나는 소리내어 커피를 홀짝여도 되고 드러누워도 되고 비염에 시달리는 코도 팽팽 풀어가면서 가장 편한 포즈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심지어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보통 나의 생각과 코드가 잘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읽기는 더욱 편해지는 것이다.몸도 마음도 모두 다.....


 보통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책 읽기가 마냥 편한 것 만은 아니다. 어떤 책은 책상에 각 잡고 앉아 밑줄 긋고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읽다가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회의론에 빠져들거나, 책의 내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거나 뭐 그런 책들이 훨씬 많다. 얼마 전에 너무 재밌게 읽었던 <삼체>도 너무 너무 좋았지만 편한 책 읽기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건 뭔가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놓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102쪽


 작가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내가 아는 나를 확인하거나,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어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이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면 그렇지 사는게 그런거야라는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 그리고 내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는 느낌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 결이 완전히 적대적이지만 않다면-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아 나는 그 순간에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됐을텐데 왜 그랬을까라며 뭔가 더 나은 그런걸 발견한 느낌으로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아는 나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생각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좀 더 나은 내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테니 그도 괜찮다.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하는 이번 에세이의 글들은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내게는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사랑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내 부모와 나의 관계가 글을 읽는 내내 투영되었고, 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하리라는,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을 다잡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책은 심각한 이야기도 사소한 이야기도,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역시 나의 일상에 닿는다.


누구든 일회용 삶을 살고 있어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그 단 한번의 삶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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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없었던 것은 앞으로도 없게 하는 것이 남극의기본 규칙이었다.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조각이 이 백지같은 대륙에 어떤 도미노를 불러올지 모르니까. [박사는이동하면서도 쓰레기를 주웠고 나도 곧 따라 했다. 일종의 남극 ‘플로깅 Plogging‘이었다. - P83

루쉰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히며 친구와의 대화를 기술한다. 집필 활동을 독려하는 친구에게 "창문도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에서 많은사람이 죽어갈 수밖에 없다면 그들 중 일부를 소리쳐 깨운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냉소하던 그는 "그러나 몇사람이 깨어 일어난다면 이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걸세" 하는 답을 듣고 마음을 바꾼다. 남극해를 무겁게 통과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읽는루쉰의 성찰은 얼음처럼 정결하게 느껴졌다. - P152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면 어때요, 그것도 배워가는거잖아요." - P178

남극에 도착한 이후 이렇게 여름다운 하늘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에서 곧잘 그러듯 풍경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그러면 붙들고 있던 나 자신은 사라지고 외부의 좋은 것들로만 채워지는 듯했다. - P186

남극 하면 우리와 먼 곳처럼 들리지만 막상 여기 와보니 남극의 모든 것이 삶을 관장하고 있었다. 지구의 양끝인 남극과 북극은 세상의 대기와 해류를 이동시키는아주 거대한 손이었다. 이곳의 변화들이 지구를 휘저었고 우리 일상이 조형되었다. ‘기후‘라는 말 뒤에 붙는 변화, 위기, 때론 전쟁과 습격이라는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매일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같은 시각에 풍선을 올려 하늘을 살핀다는 것이 작은 낙관처럼 느껴졌다.* - P200

아직 솜털을 달고 있는 아기 펭귄들이었다. 너희늦둥이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 P281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살고 싶어서였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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