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 품속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감싸안을 수 없는 사람-그런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 P22

"그래요. 사랑이 주는 만족감을 아는 사람은 좀더 따뜻하게 말하는법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사랑은 죄악입니다. 그걸 아나요?"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38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
나는 그런 각오로 살아가는 선생님에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 P43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를 하지않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현재 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지.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일반적으로 증오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위로의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 P83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나는 그의 경멸을 살 만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본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나도 그걸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곳만 높고 그 외의 것들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불구자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차제에 만사를 제쳐놓고 그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그의 머릿속이 훌륭한 사람의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그 자신이 훌륭해지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도 없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를인간답게 만드는 첫번째 수단으로 나는 우선 그를 이성 곁에 앉힐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분위기를 접하게 하여,
녹슬어가던 그의 피가 새로워지도록 시도한 것입니다. - P208

그래도 그가 하는 말의 어조만은 강하게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앞에서 말한 고통뿐 아니라 한편으로 어떤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상대는 나보다 강하다는 공포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 P234

오히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수행을 쌓아나가길 바랐습니다. 그런 수행으로 도를 깨치건 극락을 가진 그런 건 알 바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직 K가 삶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나의 득실과 충돌하는 게두려웠습니다. 요컨대 내가 던진 말은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 - P246

"결혼은 언제 하는데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나서 "뭔가 축하 선물을 하고 싶은데, 전 돈이 없어서 드릴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앞에 앉아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 P261

나는, 남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절실히 느끼긴 했지만, 남만 나쁘게 여길 뿐 자신은 그래도 틀림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 사람은 어떻든지 간에 나 하나만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이란믿음을 어딘가에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K의 일로 그 믿음이보기 좋게 무너지고 자신도 작은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어질어질해졌습니다. 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나는 자신에게도 정나미가 떨어져 활동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 P273

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승하했습니다. 그때 나는메이지 정신은 천황에서 시작되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 세대가 그후에도살아남는 것은 필경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세게 쳤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솔직하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뜸. 그럼 순사라도하시지그래요, 라며 나를 놀렸습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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