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리디아는 할머니와 함께 꽃을 가꾸고 채소를 가꾸기를 좋아하는 소녀다.
자칭 원예사로서 긍지도 대단한 소녀다.
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리디아가 더이상 할머니, 부모님과 살기 힘들게 만들고 다른 도시의 외삼촌 댁에 잠시 맡겨지게 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동화속의 씩씩한 여주인공인 우리의 리디아는 불안감 조차도 기대로 바꿔가며 자신의 상황을 꿋꿋하게 받아들인다.

아직 어려운게 뭔지를 알턱이 없는 우리집의 복받은 녀석들은
"왜 아빠 엄마랑 살 수 없어?"
"엄마 실직이 뭐야?"
"직장이 없으면 같이 살수 없는거야?"라며 도저히 이해안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이렇게 어린 녀석들이 이해할 리가 없지.....

드디어 외삼촌이 사는 도시에 도착한 리디아....
리디아의 불안은 이제 커다란 기차역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혼자 동그마니 그려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곧 외삼촌의 동네에 도착하고..
테라스마다 꽃을 가꾼 마을의 모습은 리디아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
환경의 변화에 지나치게 절망하는건 어쩌면 오히려 어른들이지 않을까?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고 적응하고 그 생명력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제 리디아의 희망은 잘 웃지 않는 외삼촌을 웃게 만드는것이다.
우리집 아이들도 이게 제일 궁금한가보다.
"엄마 외삼촌이 왜 안웃어?"
이건 좀 난감하다.
이 녀석들 주변에 잘 안웃는 무뚝뚝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들만 보면 항상 웃는 사람들 뿐이니....
안 웃으면 그냥 화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인지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도 대답할 말이 안떠오른다.
"외삼촌이 왜 안웃는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 아마 리디아도 잘 모를거야.
그래도 웃는게 좋지? 아마 그래서 리디아는 외삼촌을 기쁘게 해주고 웃는 모습을 보고싶은가봐"

리디아의 외삼촌 웃게 만들기 작전은 황량한 건물 옥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
이 장면에서 책을 보는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책을 들고
"아빠 아빠 이렇게 지저분한 옥상이 이렇게 예쁘게 변했어"라며 소리지른다.
아마도 리디아는 외삼촌을 기쁘게 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더 기쁘게 해주나 보다.

마지막 장면에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리디아를 기차역에서 꼭 끌어안는 외삼촌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꼬마 소녀 리디아의 기적이 바로 이것이었겠지....
마지막 표지에 보면 이제 리디아는 다시 할머니와 정원을 가꾼다.
바구니에는 꽃씨와 함께 외삼촌에게서 왔을지도 모를 편지들도 가득하다.

처음에는 편지글의 형식이라 아이가 잘 이해할까 하고 걱정되었지만 그건 그냥 기우였다.
아이는 리디아의 정감어린 말투와 그림들에 폭 빠져 버렸으니....

아이에게 "우리도 이제 봄이 오면 같이 꽃씨를 심을까?"라고 말해줬다.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에 리디아의 모습이 겹친다.
아름다운 것을 가꾸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리디아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바라고 키워야 할 아이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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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추석 잘 보내셨나요?
추석 연휴 길다고 빈둥빈둥하다보니 이래저래 알라딘에는 소홀했답니다.
더군다나 어쩌다 들어와보면 즐찾서재 브리핑이 텅 비어있는 상황은 의욕을 확 꺾어버리더군요.

저는 뭐 늘 같은 추석이었습니다.
7대 장손집의 막내 며느리이지만 유일하게 옆에 사는 일복만 많은 며느리인지라....
늘 그랬던 것처럼  먼저가서 대식구들의 먹을거리와 제사 음식준비, 그리고 접대에 기꺼이(ㅠ.ㅠ) 이 한몸을 바쳤습니다.
밤에서 열댓명이 함께 자야하는 좁아터진 방에서 TV요란하게 켜놓고 캐러비안의 해적 보는 모모 시집 식구들에게 열받기도 했구요. 피곤해 죽겠구만.....
인의 부친상 소식에 명절 다음날에는 문상까지 갔다왔구요.

그래도 앞뒤로 연휴가 길었던 관계로 피곤은 싹 풀린듯합니다.
늘 이렇게 연휴가 길면 얼마나 행복한 명절이 될까요. ㅎㅎㅎ

그래도 우리집 아그들 명절인사는 받으셔요.


가운데 녀석은 처음 등장하는 조카 - 남동생의 아들이라죠.
추석 전전날 머나먼 길을 달려 할머니집에 왔는데 밤늦게 와서 우리집 애들과 얼마 못노느걸 섭섭해 하는 눈치라 아예 우리집에 데리고 와서 잤답니다.
이녀석들이 전날밤에 11시까지 난리를 부리고 놀았다죠.
지금은 조카는 제 친정에.... 우리는 시집으로 출발하기 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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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10-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7대장손집안이라니..우와~ 저도 막내이지만 가까이 살땐 늘 젤먼저가서 음식 다하고 젤 늦게 집에 돌아오고 그랬지요..그래서 친정은 가까운게 좋고 시댁은 먼게 좋다는 소리가 있는건강??ㅋㅋㅋ안면이 많은 이쁜처자들은 선녀들 같네요..가운데 조카도 너무 귀엽구요..울딸은 버스타고 가느라 이뿐한복을 못입어서 명절내내 한복소리를 해댔답니다.입은 대발 나와가지구요.언제 한번 꺼내서 멋대로 입고 놀으라고 해야겠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06-10-0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멀어지셨나봐요. 좋으시겠어요. ㅎㅎㅎ 저는 뭐 멀어질 전망은 전혀 안보입니다. 그냥 팔자려니 해야지요. ㅎㅎ 우리집 애들은 저 한복을 거의 평상복 입듯이 맨날 꺼내서 난리예요. ^^

가랑비 2006-10-0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군요. 저도 무사히 잘 다녀왔답니다. ^^

바람돌이 2006-10-0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연휴가 길어서 몸살은 뭐..... 또 이동거리가 없으니까요. 친정이나 시댁이나 코앞에 사니.... 어쨌든 용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바람구두님한테 추석 인사를 받은 기억은 없는데.... ㅎㅎㅎ
벼리꼬리님/저는 그저 무사히 잘 치러낸 기분입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2006-10-0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까짓거 그러죠 뭐.... ㅎㅎㅎ

전호인 2006-10-0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한복이 너무 예쁩니다. 추석 잘 보내셨지요?

바람돌이 2006-10-0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예린이는 밑으로 줄줄이 여동생들이 있으니 물려주면 된다는 생각에 한복은 사게 되더라구요. ^^ 근데 그것도 해마다 유행이 있는가봐요. 조금씩 모양이 바뀌네요.

2006-10-13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10-1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바쁘신 와중에 인사까지.... 음 지금 바쁘신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는데 좋은 결과 있으시길 빌게요. 힘내세요.
 

 

70. 이사카 고타로의 <러시 라이프>

 

  표지의 에셔의 그림과 소설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다니....

아마도 작가가 에셔의 그림을 보고 소설을 구상한게 틀림없어...

충격적이거나 기가막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도저히 연결되지 않을 것같은 것들이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 맞춰져 있는걸 발견할때의 쾌감같은 느낌이랄까....


71-73.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1,2,3>

  앗싸!!! 심봤다 소리치고 싶은 소설.

처음으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를 만났다.

추리소설의 미덕을 고루 다 갖추고도 모자라,

사회소설 같은 분위기까지....

하지만 작가의 다른 책이 혹시 이보다 못할까 두려워 다른 책을 드는걸 계속 미루고 있다.


74. <역사용어 바로쓰기>

  언어라는게 얼마나 인간의 의식을 구속하는지....

특히나 역사에서 용어의 중요성은 뭐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에 있어서 역사용어의 선택은 바로 그 사람의 가치관을 설명해준다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래저래 배운 것도 많고 그만큼 공부안한 티가 절절 났던 책이다.

아!! 공부해야지.... 언젠가는... 하여튼...ㅠ.ㅠ


75. 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

  표지의 그림은 클레 같은데 분위기는 또 아니다.

저런 황당한 빨간색이라니.....

표지의 그림이 뒤틀려있는 만큼 인생이 꼬이고 뒤틀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참 잘도 살아간다.

이거 왜 이렇게 비관적이지 하다가 갑자기 코미디처럼 낙관적으로 변해버리는 마지막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역시 오쿠다 히데오답다는 생각을 한다.

   참 이 책 정말 오랫만에 본 아주 야한 책이다. ^^


76. 한창호의 <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

 

  익숙한 그림들이 영화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쓴 책.

 단점은 내가 그 영화들 중 본게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길지 않은 글들에 알맹이 같은 글들만 모아놓은 것 같이 재미있었다.

 아마 저자의 글솜씨겠지....


 

77. 구트 졸리의 <올가와 외투의 비밀>

 

서평단으로 받은 책.

초등학생용이지만 어른들이 같이본다면 더 좋을 듯하다

어른들의 편견을 향한 올가의 외침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더불어 사할린의 슬픈 역사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78. 조정래의 <인간연습>

 

다시는 이런 소설이 안 쓰여져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옛날에는 정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어 하고 웃고넘길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우리나라 장기수들의 삶과 아픔을 담은 글들이다.

개인의 사상을 국가가 검열하고 강요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한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해 버리는지.....



79. 유재현의 <느린 희망>

사진이 주인공인 책이다.

글자는 얼마 안된다.

하지만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언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쿠바에게 희망을....

사진속의 웃고 있는 쿠바인들에게도 그 웃음이 더 커질수 있기를....

그나저나 나도 누구의 말처럼 카스트로 죽기전에 쿠바엘 가고 싶다.


80. 오쿠다 히데오의 <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인더풀 빼곤 출간된건 다 봤다.

인더풀은 공중그네와 한쌍이라는데 공중그네를 먼저 봐버려서 고민중....

이 책은 남자가 쓴 소설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자의 심리묘사가 훌륭하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세상과 남자들에 한방씩 먹이는 통쾌함까지....

                     역시 오쿠다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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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초반 빼고는 조금 시간이 났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 집을 너무 좋아해서 할머니집과 엄마집을 하루씩 꼭 번갈아가면서 자야 한다는 우리집 아가들에게 감사를....


요즘 나 너무 편한 것 아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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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0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더풀은 재미 없어요. 공중그네랑 같은 이야기인데 그만큼의 재미와 감동이 없더라구요. ^^;;;

이매지 2006-10-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모방범도 재미있었지만 이유나 인생을 훔친 여자도 재미있었어요^^
10월 중으로 인생을 훔친 여자가 재출간 될 모양이니까 나오거든 한 번 읽어보세요^^

바람돌이 2006-10-0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안그래도 인더풀 보신 분들이 공중그네를 안읽었다면 모를까 먼저 읽어버렸다면 별로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
이매지님/이유와 인생을 훔친여자 접수합니다. 곧 읽어볼게요. ^^

반딧불,, 2006-10-0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겹치는 책이 하나도 없어요ㅠ.ㅠ

바람돌이 2006-10-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세상의 책이 얼마나 널렸는데 베스트셀러만 읽어대는게 아니고서야 안겹치는게 더 당연한거 아닐까요? ^^

내이름은김삼순 2006-10-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라라피포 하나~!ㅎ 걸도 조만간 읽을꺼라구요^^ 야한 책이란 님의 말씀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아직도 생각하면 민망해지고 약간 속이 거북해진다죠^^;;
모방범이란 책 저도 찜해놓았는데 언젠간 읽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6-10-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정말 라라피포는 어찌보면 야하다기 보다는 읽다보면 너무 적나라해서 또는 그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어찌할바를 모른다 뭐 그랬던 것 같아요. ^^
모방범은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듭니다. 시험공부 끝내고 보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

야클 2006-10-0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야하다구요? =3=3=3

전호인 2006-10-0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정말!!!!!!!
제가 읽은 것은 인간연습 뿐이군요

바람돌이 2006-10-09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역시 야하다는데 필을.... ㅎㅎㅎ 야하긴 아주 야합니다. 근데 재밌기도 해요. 이런걸 일석이조라 한다죠. ㅎㅎㅎ
전호인님/어차피 세상에는 사람보다 책이 더 많은 법. 님이 읽은 책 중에서도 제가 읽어본 건 그리 많지 않을걸요. ㅎㅎㅎ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들은 말이야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아닌것 같고 깬다 싶어도 모두들 마음속에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구
(하기야 그건 어찌보면 남자들이 큰소리치고 싶고 멋있게 폼잡고 싶어하는거랑 비슷할수도 있어
또  나처럼 게을러서 그런 욕구가 아주 가끔 표출되는 여자도 꽤 많지만 어쨌든 비슷해)

근데 남자들이 잘 모르는게 있어
그게 뭐냐면 말야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어려보이고 싶어하고 하는건
 항상 남자들에게 잘보이고 싶어서라고 착각하는 거지
물론 가끔은 그럴때도 있어, 없는건 아냐
하지만 그건 정말 마음속의 일부일 뿐이라구
그게 아니라면 남자들이 저 패션은 진짜 아니다 하는데도
당당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여자들이 왜 있겠어
오히려 여자들은 같은 여자들의 의견에 더 민감하지....
남자들의 감각을 별로 안 믿거든....

그냥 그게 Girl이야.
영원히 젊고 예쁘게 있고 싶은 욕구
하지만 현실은 안 그렇지
누군들 흐르는 세월을 잡아둘 수 있겠어

요코는 12살 아래 띠동갑인 신타로를 보고 맘이 설레
누군들 바로 옆에서 젊고 멋진 남자를 보면 안그럴까...
아줌마인 나도 아마 약간은 마음이 설레일걸
그래서 요코가 참 귀여워
다른 여자들이 신타로에게 애교떠는걸 보면서 질투하고 안달하는 모습이....
하지만 그게 그대로 사랑이 되는건 아냐
요코의 Girl에 대한 욕망이 신타로라는 대상을 매개로 나타난것일거야
요코가 그걸 깨닫는 순간 새로운 요코가 탄생하는거야

세이코는 이제 과장이 되었어
세이코의 남편 히로보다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부하직원인 이마이때문에 너무 너무 화가나
남자랍시고, 선배랍시고 온통 무시하고 제멋대로거든
그래도 세이코는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남자들은 여자의 그런 배려를 항상 자신이 잘나서 여자가 찍소리 못하는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런 남자는 정말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유키코는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회사원이야
그녀의 옆에는 일은 무지 잘하지만 하는 짓이나 입고다니는 것이나 아직도 자기가 20대 초반인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 오미츠가 있어
하지만 말야 뭐 그럼 어때
오미츠는 그게 즐거워서 그럴 뿐인데....
누구한테도 피해 안주고 오히려 항상 주변을 활기있게 만들어주잖아
유키고 오미츠 등등 30대 아가씨 아줌마 다 그냥 자신을 사랑하면 되는거잖아

유카리 역시 30대 회사원이야
친구 메구미때문에 갑자기 아파트가 사고싶어졌어
하지만 원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희생해야 하게 너무 많아
누르고 누르며 자신을 희생해보지만 그 희생이 아파트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유카리의 선택은?
아파트냐 자신이냐!!!
그래도 유카리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은 참 재밌어
물론 유카리의 선택에 넉다운 되는 부장이 더 재밌긴 하지만.....

다카코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결혼했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있어
이혼하긴 했지만....
다카코는 슈퍼우먼이야
정말이라니까
그래서 솔직히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좀 짠해!
아마 앞으로도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다카코는 잘 헤쳐나갈수 있을거야
아들을 위해서 철봉도 넘어보였고, 공놀이도 열심히 배웠잖아
그리고 같은 여성과 연대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Girl일때의 꿈을 잊지 않아
때로는 향수가 되기도 하고 자기비하가 될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같은 여자들끼리의 연대를 만들어내기도 해
뭐 가끔 여자의 적은 여자일때도 있지만
여자의 동지로서의 여자가 더 많은게 사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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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9-30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늦게 까지 안주무시는군요. 저도 이 책 읽고 팠는데^^

바람돌이 2006-09-30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이야말로 주무셔야죠... 저도 이제 자러 갈려고요. 자야 내일 일어나서 출근할테니.... 이 책 공중그네랑 좀 비슷한 느낌이예요. 근데 작가가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여자의 심리에 정통하네요. 재밌어요. ^^

하이드 2006-09-3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오쿠다 히데오. 정말 대책없이 낙관적이죠. ^^

바람돌이 2006-10-0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킬 앤 하이드님/대책없는 낙관주의라 정말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가장 절묘한 말인것 같습니다. 그의 책들에 대해 이만큼 적당한 다른 말이 더 없을것 같네요. 대단한 지킬님!!! 빨리 하이드님으로 돌아올수 있기를.....

kleinsusun 2006-10-2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재미있겠는데요. 필 확~꽂혀서 막바로 보관함으로!^^
 
 전출처 : 로드무비 > 파주 보광사






보광사엔 왜 장기수 묘역이 조성되어 있을까?
중생들 사는 세상엔 여러 모양이 있다

박상표 수의사

침묵하고 있는 풍경과 나누는 묵언의 대화

세상에 어찌 사연이 없는 풍경이 있을까마는 말을 붙이거나 농(弄)을 걸어도 풍경은 언제나 묵묵히 침묵하고 있다. 풍경은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너스레를 떨지도 않고 남을 깎아내리기 위한 허튼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그곳을 찾는 사람과 묵언(默言)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영장리(靈場里) 고령산(高靈山)에 있는 보광사도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절집이다. 그러나 보광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은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사연을 전해주지 않는다.

왜 이곳에 장기수묘역 ‘연화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호응한 극우단체가 이곳을 훼손했는지, 언제 이곳이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원찰이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1981년에 이곳에 호국대불을 세웠는지, 무슨 영문으로 1994년 새로 지은 원통전과 지장전의 바깥벽에 특이한 벽화를 그렸는지를 얘기해주지 않는다.

숙빈 최씨의 원찰, 고령사

보광사(普光寺)의 옛 이름은 고령사(高靈寺)였다. 고령사는 숙빈 최씨(1670~1718)의 원찰(願刹)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이름 없는 절집에 불과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11의 양주목 불우(佛宇)조를 보면 “고령사(高靈寺) : 고령산(高靈山)에 있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는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3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들 중에서 금(昑, 연잉군)이 훗날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었다.

그러나 숙빈 최씨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171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경기도 양주목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묻혔고, 무덤의 이름은 ‘숙빈묘(淑嬪墓)’라고 불렸다. 이러한 상황은 18세기 중반에 제작된『해동지도』「양주목 지도」와 19세기 전반에 제작된『광여도』「양주목 지도」에 반영되어 ‘고령사’와 ‘숙빈묘’가 표기되어 있다.

1724년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왕이 되었다.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된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다.

영조의 콤플렉스와 소령원, 육상묘, 어실각

영조는 이러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숙빈 최씨의 무덤(墓)을 소령원(昭寧園)으로 격상시키고, 그녀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사당(廟)으로 육상묘(毓祥廟)를 세웠다. 그리고 고령사를 원찰로 삼고 어실각(御室閣)을 세워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셨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저승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저승관에 따라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廟)을 짓고, 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무덤(墓)을 만들었다.

한편 불교는 중생은 생전에 자신의 행위인 업장에 따라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이라는 육도윤회를 한다는 사후관을 가지고 있다. 왕실이나 귀족들은 망자(亡者)가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함으로써 부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원찰(願刹)을 세웠다.

소령원과 육상묘, 그리고 보광사는 바로 이러한 저승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1739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육상묘도(毓祥廟圖)」(보물 873호)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영조는 1753년에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승격하였으며,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추시했다.

조선말에 고령사에서 보광사로 이름이 바뀌다

고령사가 언제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지도를 통해서 추정해보면, 조선후기에 보광사로 부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보광사 대웅보전에는 불국옹(佛國翁) 여여(如如)가 1869년(고종 6)에 쓴「고령산 보광사 상축서(高靈山普光寺上祝序)」가 걸려 있다. 응진전에도 1870년(고종 7)에 여여(如如)가 쓴「양주 고령산 보광사 십육성중전 이건기서(楊洲高靈山普光寺十六聖衆殿移建記序)」라는 판각이 걸려 있다. 이들 기록을 통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이후 봉은사나 보광사 등 왕실의 원찰도 함께 중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1872년(고종 9) 지방지도』중의「양주목 지도」에도 ‘소령원’과 ‘보광사’라는 표기가 나타난다. 1899년에 편찬된『양주군읍지(楊洲郡邑誌)』불우(佛宇)조에는 “고령사 : 주의 서쪽 40리 백석면이 있는데 지금은 보광사라 한다.”고 기록했다. 1901년에 낭응 경림(朗應鏡臨)이 지은「고령산 보광사 법전 중창 병단호기서(高靈山普光寺法殿重創幷丹호記序)」에도 ‘보광사’라고 표기했다.

노동자·농민·학생·전경이 어깨를 걸고 탑돌이를 하는 원통전 벽화

보광사의 원통전과 지장전 바깥벽에는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벽화가 있다.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집이다. 원래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슈바라'에서 유래했는데,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부른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곳에 두루 있으면서 중생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이 사는 집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할 때까지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온 힘을 다 바치고 있다. 지장보살은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고, 저승세계인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진광대왕·염라대왕·전륜대왕 등 10명의 시왕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지장전을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호세전(護世殿)이라고도 부른다.

보광사 원통전의 벽에는 정병을 들고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머리띠를 질끈 동여 맨 노동자, 삽을 든 농민, 책가방을 둘러 맨 학생, 전투모를 쓴 전경 등을 두루 보살펴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전투경찰 등 모든 중생이 어깨를 걸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석탑을 빙 돌면서 탑돌이를 하는 그림도 있다.

불기 2540년(서기 1996년) 9월 7일에 완성한 이들 그림들은 마치 80년대 대학가의 걸게그림을 연상하게 만든다. 사실 걸게그림은 불교의 괘불탱화(掛佛幀畵)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원통전 벽화는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는 불교의 자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손길은 왕이나 왕비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학생, 전투경찰에 이르기까지 뭇 중생들을 두루 어루만져준다. 그 손길에는 차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떠나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을 조성했던 것이리라.

게 눈 속의 연꽃

지장전의 벽에는 모든 민중들이 용이 이끄는 지혜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림이 있다. 반야용선에 탄 사람들의 모습은 서양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이를 통하여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구름 위의 허공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구체적 현실 속으로 내려와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1994년에 신축하기 전에는 이 건물을 ‘호세전(護世殿)’이라 불렀는데, 황지우 시인의 ‘게 눈 속의 연꽃’이라는 작품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시인 황지우는 호세전 벽화에 그려진 게 눈 속의 연꽃을 보러 문학평론가 김현과 함께 보광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시와 대담(평론)으로 남겼다.

게는 바다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김현과 황지우는 결국 게 눈 속의 연꽃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벽화를 촬영한 사진이 보광사 종무소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몇 년 전 홍수가 나서 아쉽게도 분실되었다고 한다.

계엄사령관이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시주한 까닭은

보광사 뒤편 언덕에는 1980년 5월에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시주했다는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이 미륵상은 고령산의 산세나 절집의 규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비·우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에서 유래한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세상에 출현할 미래의 부처라고 한다. 그는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할 예정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무슨 생각으로 12.5m가 넘는 거대한 미륵보살상을 시주했을까?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죄를 씻고 극락왕생을 꿈꾸었는지, 현세의 뛰어난 무공(?)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는지 궁금하다.

우익단체 회원들의 장기수 묘역 '연화공원' 훼손

보광사 진입로 왼편 야트막한 언덕에는 장기수 묘역인 ‘연화공원’이 있었다. 연화공원에는 금재성(1998년 8월 사망), 최남규(1999년 12월 사망), 정순덕(2004년 4월 사망), 손윤규(1976년 4월 사망), 정대철(1990년 사망),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등 여섯 명의 비전향장기수 유골이 안치되어 있었다.

최근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연화공원에 대해 색깔시비를 제기했다. 이에 고무된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대한민국HID특수임무청년동지회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 지난 12월 5일에 보광사에 난입하여 빨간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비석을 때려 부수었다. 또한 우익단체 회원들은 장기수들의 유골을 파헤치고, ‘남파 공작원은 영웅이고 북파공작원은 역적이냐’ ‘연화공원을 찬양조성한 주지 일문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연화공원은 철거되었고, 장기수들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

연화공원에 묻혔던 여섯명의 장기수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1998년 당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유해마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 금재성의 자그마한 묘비를 진입로 왼편 호젓한 숲속에 세웠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의사 고 금재성지묘 - 선생은 일제강점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부인 이명숙, 아들 금환·금충렬, 딸 금두심”

금재성은 1924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온 가족이 함경도 원산으로 이사했다. 해방 전 원산에서 노동운동에 가담한 그는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해방직후 출소 했다. 출소 후 원산으로 돌아가서 45년 5월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해방 후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

정전협정 이후 인민군을 제대하여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금재성은 1956년 평화통일을 선전하는 정치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고향 땅 대전으로 내려왔다. 남파된 이듬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유신시절의 악법 가운데 하나였던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청주보호감호소에 수감되었다가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했다. 수감 중 그는 비인간적인 전향고문에 저항해서 싸웠다. 출소 후에는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다가 1998년 8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1999년 12월 11일에는 87세의 비전향장기수 최남규 노인이 사망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오갈 데 없는 그의 유해를 또 다시 보광사에 안치했다. 최남규는 청진교원대학 지리학교수로 일하다가 1957년에 소위 ‘평화통일을 위한 대남 정치공작사업’에 동원되었다.

남파된 직후에 체포된 그는 비전향자라는 이유로 29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징역을 살았다.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한 그는 오랜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폐렴·중풍·치매를 앓다가 1999년 12월 11일 서울의 보라매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작가 류시춘이『안개너머 청진항』(창작과비평, 1995)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시키기도 했고,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이 엮은『현대사 증언록 1 ; 끝나지 않은 여정』(대동, 1996)을 통하여 알려지기도 했다.

정순덕은 1963년에 지리산에서 체포된 여성빨치산으로 2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손운규는 빨치산 출신으로 유신정권의 조직적 전향공작과 고문·폭력 등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1976년에 사망했음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냈다. 정대철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한 빨치산으로 21년6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류락진은 빨치산·혁신정당·호남 통혁당 재건위·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모두 4차례에 걸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남과 북은 이들을 서로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남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 또는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북에서는 ‘통일애국투사’ 또는 ‘의사’로 찬양하고 있다. 이처럼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낸 적대의 골은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기만 하다. 아마 옳고 그름을 따져 이들에 대해 통일된 평가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쟁의 당사자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종교의 역할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광사 원통전 벽화의 화기(畵記)에는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반드시 부처님의 법 가운데로 돌아온다(衆生世界諸形相 必竟歸來佛法中)”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기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은 따스한 손을 내밀어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계엄사령관 이회성, 노동자, 농민, 학생, 전경, 비전향장기수뿐만 아니라 소, 말, 개, 돼지, 새, 물고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두루 어루만져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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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재성의 소설 <경성 트로이카>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분이 있어 검색하다가
파주 보광사의 연화공원과 원통전 벽을 알게 됐다.
오래 전, 윤후명의 무슨 소설('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였던가?)을 읽다가
아주 상세하게 소개된 세종문회회관 외벽의 승천하는 선녀들 부조가 
그렇게도 보고싶더니만......
그 소원을 푸는 데 5년 걸렸다.

바다야 항상 좋지만 가을에는  山寺가 더 운치있다.
가을이 저물기 전에 꼭 가서 보고 싶다.
그 정다운 벽화를, 숲을, 절집을, 그리고 묘역을......





보광사 대웅보전 뒤......

 


보광사 원통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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