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우리집은 늘 정치적 견해차이로 티격태격했었다.
그것도 내가 아니고 우리 부모님 둘이서....
김영삼과 같은 고향 출신인것이 무슨 벼슬인양 생각하던 아버지와,
나라에 안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건 다 김영삼의 얼굴이 복없게 생겨서 그런거라는 어머니.....

2권을 읽는 내내 마음아픈 장면들의 연속이다.
왜 그리 사고가 많았는지....
구포열차 탈선사건에서는 우리 동네 시장 아줌마도 그 기차를 타고 겨우 살아났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건, 삼풍백화점.....
오로지 돈과 능률위주로만 치닫던 한국자본주의의 밑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장이라고는 해도,
그 결과는 너무 처참하다.

정치에 있어 이합집산이나 온갖 부정부패야 뭐 새롭겠냐만,
김영삼의 정치스타일이야 익히 알고있던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속에 얽혀있던 비화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계속 산책을 하고 있으나 그 산책이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이러고도 지금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1994년의 전쟁위기
미군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공격할 경우, 북한은 그들의 핵을 사용하지 않고 휴전선 전방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서울을 포함해 안양까지 5-6분 사이에 6,000개의 포탄이 떨어진다. 또한 노동 1호와 노포동 미사일은 주요 기간산업과 고리, 영광 등 원자력 발전소를 겨냥하고 있는데, 마하 5-6정도의 속도로 날아오는 노포동 미사일은 충분히 원자력 발전소의 호벽을 깰수 있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남한 전역은 핵 오염지대가 될것이다. 전쟁 발발 후 1개월이 지나면 전선에 배치된 미군 3만 5,000명이 사망하고 8-10만명의 미국인이 죽게 된다. 또한 한국인은 100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다. 2개월이 지나면 북한 정권은 사라지고 전쟁은 끝난다. 그리고 통일은 될 것이다. 그러나 남한 경제는 5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25쪽 유엔군사령관 게리 럭이 미국무성에 보낸 보고서)

아주 현실적인 전쟁상황 예측 아닌가? 북한의 피해는 빠졌지만.....
아마도 북한땅은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바뀌지 않을까?
이러고도 전쟁을 얘기하고 북한과의 평화노력을 거부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지금 현재 미국의 하는 양을 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는 오히려 커진것 같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한반도에서 평화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다.

북한은 늘 어떤 식으로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때 북한이 도발의 징후를 보이면 그 목소리는 '국가안보'에 압도되곤 했는데, 북한은 96년에도 그런 '정치행위'를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잠수함 침투 사건이었다. 한총련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하게 하라는 뜻이었을까?(286쪽)

가끔 북한이 하는걸 보면 정말 남한의 정권과 짜고 고스톱을 치는게 아닐까 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남한 정권이 결정적인 시기마다 한 건식 터뜨릴 때가 많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남한 정권에 필요적절한 시기에 북한도 한 건씩 터뜨려주는지....
분단상황에서 존재근거를 찾는 정권의 필요악이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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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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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삐딱성인지....
작가나 책이 너무 유명하면 오히려 손이 잘 안가질때가 있다.
그래서 남들은 다 ”f는데 나만 못 본 그런책들....

레이먼드 챈들러는 우리나라에선 뭐 그리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알라딘에서는 유명한 것 같다.
여기 저기서 추리소설이나 탐정 얘기만 나오면 이 사람 얘기가 빠지지 않고,
또 칭찬외엔 못들어본 것 같다.

읽고 난 소감!
음~~ 딱히 잡히는게 없다.
그저 오래된 옛날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작가는 말로가 가는곳마다 너무 세세하다 싶을 정도로 주변 묘사에 신경을 쓴다.
그런 풍경들이 1940년대쯤의 미국의 이곳 저곳의 풍경이었겠지....
그런 풍경들의 공통점은 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 보다는 한편의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칼라시대의 홍콩 느와르 말고, 미국의 흑백 느와르 영화같은....
필립 말로 역시 딱 그런 영화에 나오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필립 말로의 책은 거의 다 영화화 됐다하니 영화도 그런 분위기 아닐까? )

이후 탐정의 전형을 만들었다는데 그건 맞는 말 같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별로 새롭지 않은 느낌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당연히 기대하게 되는 꽉짜인 구조나
결말의 대반전이나
뭐 이런거하고는 별로 안 친한거 같다.
주인공도 거의 완벽한 것 같은데 뭔가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느낌.
책의 전반적인 내용 역시 그러하다.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 하나도 그렇고,
가끔은 등장인물의 행동이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을때도 있고...
인생이란게 뭐 원래 그렇게 딱딱 맞아들어가는게 아니긴 하지만서도....
작가가 그런 틈을 보이는건 의도된 것일까?

이런게 궁금해서 다음권 까지는 봐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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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진짜 궁금한 것 - 책에 보면 필립 말로가 담배를 필때마다 손톱에 성냥을 그어서 불을 켠다. 그게 가능한건가? 마찰열을 이용하는 거니까 딱히 불가능한 건 아닌거 같기도 한데....
너무 궁금해서 조금전에 실험해봤다.
내 손톱은 너무 연약하니(?) 책속의 다른 누구처럼 발톱에....
안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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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8-1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에 이거 봤어요. 말씀하신 대로 딱히 잡히는 건 없던데요. 그냥 뭐~
손톱에 성냥 긋는 거 말이 되나 싶긴 했는데, 직접 실험까지 하시다니. ㅎㅎ 제가 안 한게 다행인가요? =3=3

바람돌이 2006-08-1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다른 사람들이 너무 좋다는데 그래서 일단 2권까지는 볼까 싶어요. 근데 정말 궁금하지 않아요. 손톱에 성냥이라니.... 제 발톱은 좀 겁나서 아주 세게는 못해봤는데 오늘 저녁에 옆지기 손톱가지고 한 번 해볼까요? ^^

mrufina 2006-09-0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성냥(오래되서 기억이 가물^^)이라고 있습니다. 보통 성냥하고 다르게 끝부분에 하얀것이 붙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아무대나 대고 긁으면 성냥이 켜집니다. 힘조절을 잘못하면 성냥 앞부분이 통째로 날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68 원숭이) 시중에 돌아 다녔는데... 저도 못 본지 오래 되었네요.
참고 되셨기를...

바람돌이 2006-09-0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rufina님 /아 그런것이 있었군요. 어쩐지 안돼더라... 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근데 저도 68원숭인데 왜 저는 모를까요? ^^;;
 
 전출처 : 로쟈 > 이 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

금요일자 한겨레 북리뷰를 인터넷에서 미리 훑어보다가 '한국의 책쟁이들' 시리즈에서 미술 저술가 이주헌씨 편을 읽었다. 이 연재물을 즐겨 읽지만 유독 이 글만을 옮겨올 생각을 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띄어서이고 또 그가 현재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필중이라는 소식이 반가워서이다. 이만한 저술가/책쟁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역정'을 잠시 따라가본다.

한겨레(06. 08. 11) “나 자신이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이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이 이주헌(46)씨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어보인다. 대중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미술을 만나게 안내해주는 필자로 이씨만큼 유명한 이는 아직 없다. 일찌감치 이 분야에 뛰어들어 가장 먼저 이름을 얻은 ‘개척자’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신문사에서 미술담당 기자를 지낸 이력을 보면, 그가 미술 저술가가 된 것은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변신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씨가 기자를 그만 두고 최고의 미술저술가가 되는 과정이 과연 그렇게 순조로왔던 것일까?

 

 

 

 

-<한겨레>에서 미술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이씨는 93년 5년 넘게 몸담았던 신문사에 사표를 낸다. 미술 글쟁이로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열달 남짓 미술잡지 편집장을 지낸 뒤 이씨는 아예 전업 저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94년 봄, 이씨는 무작정 화랑 겸 출판사인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을 찾아갔다. 이씨는 우 사장에게 유럽 주요 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답사해 기행문처럼 들려주는 대중적 미술책을 펴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취재비용으로 1000만원을 먼저 달라고 요청했다(*이게 그림을 보는 안목보다도 더 배울 점이다). 선인세로 받아 책이 나온 뒤 팔리는만큼 갚는 것인데, 한가지 조건을 더 달았다. “책이 안팔려 절판되도 갚을 돈이 없다”고 미리 못박은 것이다. 지금 보면 거의 ‘배째라’ 수준이지만, 당시 이씨의 형편으로선 솔직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특별한 교분이 없었던 우 사장을 찾아간 것은 학고재의 성격이 책의 성격에 맞아보였고, 그런 지원을 해줄 인식을 지닌 출판사가 학고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 사장은 놀랍게도 그자리에서 흔쾌히 이씨의 조건대로 책을 펴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1100만원을 지원받은 이씨는 저금한 돈 400여만원에서 100만원만 남기고 모두 인출해 여행비에 보탰다. 그해 8월 말, 이씨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출발했다. 이씨 나이 서른세살, 아이들은 겨우 세돌과 한돌이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도착지에서 바로 답사기를 <한겨레>에 송고하기 시작했다. 53일간의 미술관 답사기는 <한겨레> 연재를 거쳐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기행>이란 제목으로 학고재에서 출간됐다.

-“제 인생의 승부를 건 것이죠. 이게 되면 이걸 통해 살아갈 길이 나올 것이고, 안되면 미술 글쓰기를 접기로 하고 이 책에 제 전부를 던진 겁니다.” <50일간의~>는 미술과 여행 두가지 재미를 함께 지녔다는 평을 들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초의 대중적인 미술 저술가’ 이주헌은 이처럼 더이상 물러날 곳 없는 배수의 진을 친 도전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신문기자를 그만 두고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인 ‘미술 저술가’에 승부를 건 것 역시 당시로선 아무도 하지 않았던 모험이었다. 이후 이씨는 <미술로 보는 20세기>, <신화 그림으로 읽기> 등 내는 책마다 호평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미술 저술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씨의 강점으로는 잘난척하는 법 없이 차분하고 편하게 미술을 설명하는 글솜씨가 맨 먼저 꼽힌다. 이씨 이전에도 미술 글쟁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로 하여금 오히려 미술과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관심사를 논할 뿐이었다(*인문학의 다른 분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저술가로서 가져야 할 문장 구사력, 그리고 작품의 배경과 여러 의미를 읽어내는 인문적 소양을 갖춘 필자도 드물었다. 이런 모든 단점을 한꺼번에 극복하고 등장한 저술가가 이씨였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늘 미술을 쉽게 설명하는 훈련을 쌓았던 것이 이씨의 자산이었다. 미술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힌 최초의 저술가가 이씨이고, 대중들에게 감상의 동반자로 나선 저술가도 이씨가 처음이었다.

-이씨의 글은 철저하게 저널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씨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결국 ‘소통’의 문제다. 정보나 지식 등 필요한 것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상인의 언어로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씨 스스로도 항상 ‘나 자신이 미디어다’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쓴다. 그래서 이씨의 글은 가장 편하게 읽으면서 정보와 감상을 얻을 수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씨 이후 이씨보다 더 학문적 배경을 갖췄거나 이씨처럼 쉽게 글쓰는 이들이 등장했지만 누구도 이씨처럼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이유가 바로 ‘저널리즘적 글쓰기’ 감각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씨가 10년 넘게 최고의 미술 저술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글솜씨 이상으로 탁월한 책 기획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씨는 자신이 책의 모든 부분을 기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철저한 프로의식이 깔려 있다. 이씨의 출세작인 <50일간의~>을 보면 이씨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프로’인지를 알 수 있다. 이씨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책이므로 가족여행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고, 또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글을 쓸 에피소드들이 나올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부부는 힘들어도 책에 재미를 넣어 보다 폭넓은 대상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런 기획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만해도 이런 식의 미술책은 거의 없었다. 가족들에게 미술이 뭔지 쉽게 설명해주는 이씨의 고군분투 여행기를 읽다보면 유럽 풍광을 엿보는 동시에 옆에서 설명듣듯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책만의 새로운 재미였다. “당시 여행자유화가 되면서 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어요. 그런데 유럽에 가면 미술관을 가봐야 하고, 미술관에 가면 뭔가를 좀 알아야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이제는 이런 책이 나올 때가 됐다고 본거죠. 개인적으로는 ‘될 수밖에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기획력으로 이씨는 지금까지 낸 10여종의 책을 단 한권도 절판되지 않은 스테디셀러로 만들어냈다. 이씨의 책들은 모두 제각기 컨셉과 문체, 구성이 다르다. 이씨처럼 계속 책에 변화를 주는 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씨는 언제나 책의 소재와 주제를 그 시점의 미술책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되 새로운 것으로 골라 철저하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독자들이 관심가질 만한 것들을 고르는 것이 원칙이다. 한동안 그가 집중적으로 소개한 라파엘 전파가 대표적인 사례다. 때로는 철저하게 타깃 독자들에게만 맞추기도 한다. ‘가정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한 미술책 <그림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가 대표적이다.

-이씨의 프로기질에는 미술 관련 글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 자기 분야에 대한 순결주의와 자기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자택에 틀어박혀 오로지 미술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만을 쓸 뿐이다. 요즘에는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풀중이다.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술관들과 그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이 조만간 이씨의 책목록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글 구본준 기자)

06. 08. 11.

P.S. 따져보니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책은 <미술로 보는 20세기> 한권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의 러시아 미술관 소개를 나는 손꼽아 기다려보기로 한다(사진은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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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0004

2만이 되면 벤트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젯밤만 해도 요즘 내 서재에 들어오는 숫자로 봐서는 한참 걸리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고민하자 뭐.... 이러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방금 보니 나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에잉~~~
다음번 3만이나 기다려 볼까?
어느 세월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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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8-09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잡아 드리는건데. 3만때는 기대하시라! ^^

바람돌이 2006-08-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야클님 /주인장도 못잡은걸 어쩌겠어요. 3만을 기대하시라 짠~~~ ^^;;

라주미힌 2006-08-0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120009

 

 


바람돌이 2006-08-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 ^^ 저도 도장 찍어드릴까요? ㅎㅎㅎ

라주미힌 2006-08-1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구...

사람 이름 같네요. ㅎㅎㅎ

아영엄마 2006-08-10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이 휘리릭~ 지나가버렸군요. 뭐 곧 22222가 다가올 터이니..^^

Mephistopheles 2006-08-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22벤트한번 하세요.^^

국경을넘어 2006-08-1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4(이만 사), 20046(이만 사유), 20543(이만 사오삼)... 이만으로 되는 말이 참 많군요 ㅎㅎㅎ

stella.K 2006-08-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22222때 하세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8-1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20050

바람돌이님~오랜만에 와서 저두 숫자 하나 잡고 가요,,헤^^

22222 이벤트에 저두 한표입니다^^

 


바람돌이 2006-08-11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을 꺼낸게 잘못인것 같다는 느낌이....ㅠ.ㅠ
모두들 건수 잡았다는 듯이 이벤트를 조르다니 말입니다. 흥! 그래도 저는 3만을 기다릴테야요. ^^;;

2006-08-11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1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4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해콩 > ‘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한겨레]

 

그림 밑바탕에 색칠도 드러나 “미완성 인물상 아니다” 몸체 그린 방식은 아직 못밝혀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 240호·해남 윤씨 종가 소장)은 그림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로도 이름높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이 절세의 초상화는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통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뛰어난 사대부 지식인이던 공재가 당대 유교적 미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나면서까지 엽기적 자화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가. 왜 이 걸작은 미완성 그림처럼 남았을까.

한국 미술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였던 공재의 ‘머리통 자화상’에 얽힌 비밀이 최근 상당부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조선사료집진속>(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자화상>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 관찰로 얼굴 가장 자리에서 발견되어 공재 윤두서가 귀를 그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됐다. X선 촬영을 통한 안료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렸다고 여겼던 자화상의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부분 등도 화면의 뒷면에 은은하게 채색하는 배채법으로 색칠되어 있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논란의 대상인 몸체의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가 되어있었다.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종이는 젖은 상태의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이른바 도침(搗砧)가공이 이뤄진 종이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결국 미완성처럼 보였던 공재 윤두서의 초상은 사실상 완성품으로 봐도 손색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인물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미술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지워진 줄 알았던 자화상의 상체 부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점과 배채 채색 사실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며 “액자로 표구하면서 배접지가 붙어 배채법을 쓴 몸체의 색감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체를 앞 화면에 그렸는지 화면 뒤에 그렸는지의 논란은 앞으로 그림을 다시 표구하기 전까지는 풀리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분석결과로는 뒤에서 그렸을 가능성에 근접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초본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미완성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윤두서 자화상>은 그의 후손들이 60년대 말려져 있던 것을 펼쳐서 액자에 표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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