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추리소설일까? 역사소설일까?

시대는 18세기 정조시대. 흔히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시대라 불리는 시대다. 교과서에서 익히 배웠던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등등 실학파 - 흔히 중상학파라고 배웠지 -들이 개혁을 이야기하고 너도 나도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던 시대. 아직은 그들이 좀 더 Œ었을 그 시절. 세상에 나아가지 못한 그들은 백탑아래 모여 그들의 시대를 기다린다.

이들 백탑파중의 하나인 김진이라는 꽃에 미친 한 서생과 종실 출신으로 의금부 도사인 이명방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것이 이야기의 큰 골격을 이룬다.

살인사건이니 당연히 추리소설이지만 어딘가 좀 허전하다.  소설은 청운몽이라는 당대 제일의 매설가(소설가)가 도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형에 처해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두 주인공이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단순한 그러나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얽히고 설켜 당대의 정치집단의 이합집산과 그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혀들면서 복잡다단해진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묘미란 것디 아무리 중간과정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켰대도 결론을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확 풀리는 맛인데.... 이 소설이 추리소설로 어정쩡하다는 건 이런 면이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장치들을 끌어들였는데 결국 그것을 제대로 하나로 통제해내는 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진짜 살인범의 살인동기는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우며, 그 배후의 인물들 역시 대부분을 그늘에 가려진 채로 덮어버리는 것 역시 그러하다. 다 읽고 난 뒤에도 이것이 추리소설 맞나라고 반문하게 되는건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역사소설일까? 조선 후기의 내노라하던 사상가들(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이겠지만)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읽어내기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들의 생각과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고...하지만 이 책에 나열된 백탑파들의 모습은 얼마전에 봤던 <미쳐야 미친다>에서 만났던 그들의 모습과 자꾸 겹친다. 겹치면서도 더 나아갔다기 보다는 어설프게 겹친다고나할까? 아직은 그들의 치열한 시대의식을 만나기 힘들고, 당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모습도 온전히 들어오지 않는다. 정조의 <문체반정>까지 다루면서 그것이 의도하던 정치적 함의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본격적인 역사소설로 보기에는 문제는 있지 않을까?

역사와 추리, 두마리 토끼를 ?는건 역시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는 작가가 2편에서는 어느정도 나아갈지 궁금한 걸 보면 그래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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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1-07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역사적인 사설을 바탕으로 그럴 듯한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저같이 역사적인 배경지식이 부족한 사람한테는 왠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전 안읽을래요. 그나마 많이 알지도 못하는 역사적 지식에 혼선이 오면 어쩌나 겁나네요.

바람돌이 2005-11-0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장미동상! 어찌 이런 약한 말을.... 그냥 가볍게 보면 재밌는 소설이예요. 시리즈로 이어진다니 갈수록 괜찮아 질듯도 한데.... 게다가 그 시대의 적당히 치기어리고 나름대로 열정적인 젊은 그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구요.
 
그래도 널 사랑해
교코 모리 지음, 김이숙 옮김 / 노블마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엄마가 이런 짓을 저지른다 해도, 널 사랑한다는 걸 믿어주겠니? "

세상의 아름다움을 딸과 같이 나눌줄 알고 자유로운 감성을 나눠줄 줄 알았던 엄마가 어느날 이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면, 그래서 그녀의 딸이 엄마와의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엄마의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목소리였음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그 엄마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냥 소설이었다면 좀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주인공 유키를 통해 나타나는 작가의 슬픔과 상처가 내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 슬픔은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을만큼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며,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떤 일과 맞딱뜨리더라도 12살 소녀적 그 아픈 시절에 소녀를 묶어두었으리라....그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정말로 믿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도 회복되지 않는건 그녀가 잃어버린 소녀시절이리라... 외로워서 자살을 선택한 엄마가 더 큰 외로움에 딸을 남겨두고 떠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유키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 상처가 비록 희미해진다 하더라도 그냥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일뿐 지워지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더 모르겠다. 어떤 외로움이 아이를 혼자 남겨두게 할 정도로 큰 것인지....

유키는 정말 홀로 남는다. 아버지와 새엄마가 같이 살지만 아버지는 딸과의 교류를 포기했고 - 아마도 엄마와 너무나 똑같은 딸을 보는 것이 괴로웠으리라, 죄책감과 미안함, 무력감이 범벅된듯한 그런 감정? - 새어머니는 유키와 너무 다르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둘은 물과 기름이다. 서로를 견딜 수 없다. 다만 이웃의 눈을 의식해 같이 살고 있을 뿐....

그래도 유키는 살아간다. 하기야 이 나이의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래도 유키가 가끔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하는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모랑 있을 때다. 그들의 사랑이 그래도 유키의 화나고 슬픈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충분하진 않더라도... 그리고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죽음앞에 다시 서며 유키는 비로소 엄마의 죽음을 진정으로 대면하는 것 같다. 엄마의 곁을 떠나지 못하던 어린아이가 이제 어른이 되는걸까?

감성적인 문장들은 유키의 감정선을 가슴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그 절제된 문장과 아픔이 오히려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이제 유키는 아마도 어른이 되었으리라....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마음을 열고....그래도 그녀가 가진 마음의 상처는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한마디 속에 여전히 남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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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10-29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말이 오히려 정말 아이에겐 마음 속 깊이 상처로 남을 것 같군요.

바람돌이 2005-10-2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폐인촌님!!! 아이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구요. 그런의미에서 오늘도 힘내자 아자!!! ^^
 
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과 내용 모두에 내가 완전히 빠져들어 감탄한것도 참 오랫만인것 같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순간이 아까울 정도로 환상적인 색깔들이 펼쳐진다. 외국의 그림책에 비해서 우리 나라 그림책들의 색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나의 선입관을 완전히 무너뜨린 순간이다.

첫 장을 펼치면 조그만 창을 통해 나타나는 창밖의 비오는 풍경, 아직 어둑한  어슴프레한 모습이 흐리고 아직은 아침이 밝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보라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이 이런 기막힌 분위기를 만들어낼줄이야... 그리고 방으로 옮기면 문득 잠이 깬 아기 고양이, 그 옆에 잠이든 아빠와 동생의 모습도 우리집 가족들의 잠자는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동생을 깨워 노란 비옷을 입고 비오는 밖으로 나가는  고양이 형제들. 빛의 처리와 명암 뭐 등등등... 어디 하나 흠잡을데 없는 완벽한 그림이다.(여기서 아빠는 자는데 애 엄마는 일찍 일어나서 혼자서 식사준비를 하냐고 묻지 않을련다.)

바깥으로 나온 고양이 형제들이 바라보는 하늘의 색감은 어쩌면 이런 색깔이 가능할까 싶게 비오는 흐린 날의 어슴프레한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은 하늘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이 페이지의 색감은 정말 최고다.

이후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구름을 집으로 가져와 빵을 만드는 과정은 갑자기 요리책으로 변신, 아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만든다. 집에서 빵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예린이와 해아는 정말 눈이 반짝 반짝 빛나면서 요리 과정을 뚫어지게 보고 즐거워한다.

늦잠을 잔 아빠는 허겁지겁 아침도 못먹고 출근하고, 남은 가족들끼리 구름빵을 냠냠냠.... 여기서 구름빵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상상력이란... 예린이와 해아도 폴짝 폴짝 뛰면서 구름빵을 냠냠냠....

구름빵을 먹은 고양이들은 모두 하늘을 둥실 둥실 떠다닐 수 있게 되고, 그저 자신들의 배부름에 머물지 않고 아침도 못먹고 가신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에게 구름빵을 갖다드리기로 한다. 비오는 도시위로 흐린 하늘위를 우산을 쓰고 둥둥 떠가는 아기 고양이들. 만원버스안에 갇혀있던 아빠는 아이들이 가져다준 구름빵을 먹고 같이 둥실 떠올라 회사로.... 집으로 돌아온 아기고양이들은 이제 비가갠 하늘 아래 지붕위에 앉아 남은 구름빵을 먹어치운다. 이 때의 하늘은 얼마나 또 정겨운지...

내용과 그림, 상상력이 모두 별 5개인 그림책. 혹시 어른인 나만 이렇게 좋아하는게 아니냐고요?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다 읽어주고 난 이후에 예린이가 말했다. "엄마! 한번 더 읽어줘, 근데 이번에는 그림만 볼래" 예린이가 이런 말을 한 건 정말 처음이다. 책을 읽고 그림이 예쁘다던지 재밌다던지 하는 말은 자주 했지만 엄마가 글자 읽지 말고 그냥 그림만 보여주면서 책장을 넘겨달라는 건 정말 처음이다. 아이의 눈에도 이 그림들이 정말 맘에 들었던 걸까? 나는 사실 이 그림책이 좋으면서도 혹시나 예린이가 진짜 구름빵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면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그림을 보는 예린이의 모습이 내가 책을 볼때의 눈빛과 정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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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0-2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절로 땡스투가 눌러지는 리뷰를 쓰셨네요^^

바람돌이 2005-10-2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구름빵 정말 재밌더라구요. 누구나 좋아하는 책에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런거에 상관없이 좋은 책도 있잖아요. 저는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닐까.... 이것도 알수가 없는거긴 하지만... 헤헤헤 ^^

panda78 2005-11-0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05-11-0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고마워요. 저보다 더 빨리 알고 축하해주시는 알라디너님들 덕분에 행복한 하루예요. ^^

울보 2005-11-0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축하드려요 바람돌이님,,

비로그인 2005-11-0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부러워요...;;;;;;;;

비로그인 2005-11-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그림과 내용 모두에 빠져들 수 있을까요? 고민하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여튼, 바람돌이님, 축하를...;;;;

바람돌이 2005-11-0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비숍님! 근데 이 그림책이란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안보이던 새로운 매력도 보이는 거 같은지라 비숍님께는 어떨지 알수가 없네요. 흐흐~~~
울보님도 고맙습니다. ^^

urblue 2005-11-1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좋아했던 그림책이에요.
언젠가 보니까 구름빵 모양의 장난감도 사은품으로 주는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살짝 탐이 나더라구요. ^^

바람돌이 2005-11-1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구름빵 모양의 장난감도 줬단 말예요? 에고 그 때 살걸.... ^^;;

하늘바람 2005-11-1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05-11-1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고맙습니다. ^^

진주 2005-11-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저는 이제사 봤어요!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근데..저는..구름빵-하면 왜 해아의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와 동그란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건지...^^(리뷰 축하금으로는 애들 책 많이 사주실거죠?^^)

바람돌이 2005-11-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진주님 해아 파마머리가 좀 비슷하긴 하죠.. 글구 리뷰 축하금으로는 이벤트했다구요. 오늘 아침은 이 녀석들 미워서 책 사주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지금 기진맥진.... 이유는 나중에 시간내서 페이퍼 올릴거예요. ^^

진주 2005-11-1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그게 그렇게 된 거였구낭....
이래서 알라딘은 하루라도 거르면 안 된단 말이 생겼나봐요...

잠림이 2005-11-2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참 잘 봤는데... 우리 아이도 좋아하구요^^
사진이 함께 들어간 그림책은 참 드물죠?^^
빛그림이라고 표현한 것도, 편집자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져요. ㅎㅎ

바람돌이 2005-11-2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애들도 매일밤 이 책을 읽어줘야 한답니다. 저는 좀 다양하게 봤으면 싶은데 한 번 마음에 든 책은 보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게 아이들인가봐요. 아이들도 따뜻한 마음을 같이 느끼나봐요. ^^
 
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
윤영남 지음 / 시공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선입견이나 전문가의 견해 이런거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느낀대로 예술을 감상하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감동이 오면 좋은 작품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지를 위해 그는 굉장히 유명한 몇명의 화가를 자신의 글에 초대한다. 피카소, 드가, 고갱, 달리가 그들이다. 피카소는 과연 천재인가? 그가 그린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인데도 그의 유명세 때문에 기가 죽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건 아닌가? 어찌보면 도발적일 수 있는 이런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피카소가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건 작품 자체보다는 그의 독보적인 처세술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  드가가 여성들을 독립적으로 그리면서 여성의 독립적 인격을 표현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라면, 여성혐오자로서의 드가가 여성을 성적 관음증 대상이나 폄하의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는 주장도 있다는 설을 제시하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정 반대의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보는 사람에게 '주눅들지 말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 소위 전문가의 견해라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다.

이후 그의 글은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는 예술가들을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의 제공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와 대중들에게  외면받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면서 그런 이들의 그림에도 얼마나 훌륭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와서 보라고 독자를 이끈다. 그러면서 논지는 곧 지나치게 관객들을 무시하고 관객을 왕따시키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저자의 주장 '자신의 느낌으로 미술품을 보라. 아름다움을 보라"는 주장은 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자꾸 작년에 봤던 엄청난 분량의 피카소 전기가 생각났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알았던건 피카소의 그림을 하나 하나 보면 특별히 위대하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걸 느낄 수가 없지만(이건 내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가 천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이고 인간이 볼 수 있는 사물의 온갖 다양한 면들을 늘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처세술과 더불어 당대에 빛을 볼 수 있었을 뿐이고.... 그는 늘 남들보다 한발짝을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것은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곰곰히 보게 만들었다.

미술을 아름다움 하나만을 보기 위해 본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미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면도 있지만, 사물과 인간 사회를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고 느끼는 미술도 있지만 생각하는 미술도 있다는 것이다.

뒤샹이 기성품인 변기를 미술전시회에 내놨을 때 누구도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훌륭한 미술품이 될 수 있는건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는데 있을 것이다. 현대문명과 대량생산의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훌륭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너무나도 당연한 논지를 제시하면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면이다. 전문가집단이 강요하는 선입견을 넘어서서 자신의 눈으로 미술을 보라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해보이지만 작품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온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나 전문가의 안내에 의해 더 풍부해질수 있는 미술감상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런 면을 모를리야 없겠지만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너무 일방적으로만 나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흥분해서 얘기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균형감각을 잃고 있더라는....

사실 이 주제 자체도 다른 미술전문가들에게서도 흔히 이야기되어 지는 것들이다.  식견을 갖춘 제대로 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유홍준씨나 이주헌씨 같은 경우 이 방면에 전문가지만 관객 자신의 눈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친절하게 일반 관객이 미술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코치해준다. 제목의 불손하고 건방지다라는 건 좀 더 파격적인 문제제기에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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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10-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부안의 내소사가면 사람들이 꼭 꽃창살 앞에서 소근대는데, 지나치던 것을 유심히 본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뭐랄까요. 자기 스스로의 안목으로 차분히 보기보다는 남(유홍준의 해석도 포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봅니다.

바람돌이 2005-10-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렇죠. 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안목이라는 것도 결국 학습에 의한게 아닐까 싶어요. 많이 보고 많이 읽고 생각해야만 하는.... 즉흥적으로 생기는 좋은 감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 자신의 안목이 생길테니까요.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박3일정도의 등산이라도 챙겨야 할 건 많다. 먹을 것도 챙겨야 하고 여분의 옷 하나정도, 취사도구, 침구 등등... 남자들에게 텐트를 맡긴다 하더라도 짐의 무게는 장난아니다. 그래도 배낭을 꾸리고 등산로를 확인하고 갈곳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는 시간들은 즐겁다. 등산 초입-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기 전은 항상 왁자지껄하고 들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고 한 발 한발이 천근만근이고 심장은 쉴 새없이 뛰면서 얼굴이 새빨개 질 즈음 등에 맨 배낭은 천근만근으로 어깨를 짓누른다. 등산은 몇명이서 가든 결국은 혼자가는거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땅만 보고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길뿐..... 같이 가던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제기랄!!! 제기랄!!! 내가 미쳤다고 산에를 왔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힘든 산을 또 오자고 한거야? 아! 아이스크림 먹고싶다... 이 배낭만 버리면 정말 가뿐하겠다. 앞에 가는 저 놈은 무슨 기운이 남아돈다고 저렇게 빨리 가는거냐? 등등등...."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로 머리속이 하얘진다. 얼굴도 빨갛다 못해 하얘지고....

그러다 전망 좋은 곳이 나오면 모두들 한 자리에 누워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래도 기운 남아도는 놈이 농담한마디 던져주면 잠시 웃고.... 길은 아득하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으나 누구도 선듯 말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혼자 내려가기는 정말 겁나고 쪽팔리고.... 야영할 곳을 찾기도 전에 해가 지면 안되니까 무조건 걸어야 한다. 머릿속을 하얗게 비운채로...

그래도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란걸 산행에서만큼 절실히 느낄 수 있을까? 텐트 치고 불편하게 밥해서 맛없는 반찬도 꿀맛으로 먹으면 하룻동안의 고생이 모두 잊혀진다. 산위의 오싹한 추위도 피곤에 쩔어 잠이 들면 잊혀지고.... 다음날의 산행도 오늘도 해냈는데 뭐....

드디어 정상. 누가 정상을 정복하는거라 할까? 그냥 산은 거기 있고 사람들이 잠시 다른 길을 스쳐 지나왔던 것처럼 정상도 그냥 잠시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딱 1병 들고온 소주병을 꺼내 딱 한잔씩 나눠먹는 소주맛은 꿀맛이다. 남은 물에 커피믹스를 풀어 흔들어서 먹는 미지근한 냉커피도 꿀맛이고... 이 맛 한 번 보자고 산에 온것같다. 그리고 나도 참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은 여유롭다. 다리는 휘청거리지만 재잘대기도 하고, 주변에도 눈을 돌리고...

산행이란 결국 인간이 날것으로의 자신을 그대로 대면하는 시간이 아닐까? 지리하고 힘든 오르막의 시간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것이다.  대화도 힘들고 오로지 날것으로서의 내 자신과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그래서 정상에 잠시 있는 시간도 누구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간이리라... 조금은 대견해 보이는.... 그렇다고 그걸 내놓고 말하기는 사실 쪽팔리니까 그냥 하늘을 보며 누워 말없이 그렇게 소주 한잔씩을 돌리는걸게다.

이 책의 저자가 숲에서 만나는 것도 그런 자신일게다. 거기가 거기같은 끊임없는 숲을 지나고 가끔은 위험에도 처하고 잠시 길을 잃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류의 책에서 기대하는 뭐 그렇게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전문 등산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산에서 만나게 되는 자기 내면의 온갖 감정들이 그대로 다가왔다. 이 책에 쓰여진 숲의 환경정책이나 미국의 역사적 장면들은 모두 들러리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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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9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제 자신의 목소리에 질문하고 대답하고. 누군가가 말 시키면 그것도 힘들어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묵묵히 산을 오르나봐요.

바람돌이 2005-10-1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묵히 안 오르면 낙오해요. 어야둥둥 힘을 아껴야지.... 근데 이렇게 산에 가본지도 언젠지,,,, 뒷산 말고 배낭매고 진짜 등산을 하고 싶은데....

국경을넘어 2005-10-1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 등산 간 지 참 오래되었네요. 등산복하고 등산화가 썩어버리겠습니다. 이번엔
꼭 단풍보러 갈 겁니다. ^^

바람돌이 2005-10-19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근데 폐인촌님 계신데는 지금쯤 단풍이 들기 시작할 거 같은데.... 여기는 아직 감감합니다. ^^ 애들 데리고 한 번 가까운데 단풍놀이 가고, 애들 떼고 좀 먼곳으로 단풍놀이 한 번 가고 그랬음 딱 좋겠지만 아마 후자는 힘들겠지요. ^^

야클 2005-10-1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만에 다 본 책. 이번주 일욜쯤 저도 산에 가요 ^^

바람돌이 2005-10-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야클님 좋으시겠어요. 저도 갈까 싶은데 어디로 갈지....^^ 이놈의 아그들을 데려가야 하니 갈수있느데가 항상 정해져 있네요.

클리오 2005-10-1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책을 제외한다면, 늘 제가 보고싶어 찍어놓는 책을 보시는군요.. 역시나 취향도 비슷.. ^^ 그나저나 바람돌이 님의 다독도 직장인으로서 아무나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수준입니다. 님은 분명 좋은 선생님이실 거여요...

바람돌이 2005-10-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우리반 봉숭아 학당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요. ^^ 요즘 봉숭아 학당 심란스러워서 그 녀석들 얘기도 안써지네요. ^^ 글구 제 약간의 다독은 다 책장 잘넘어가는 책만 골라읽어 그런거지요. 이제 전공 밑천도 딸려가는데 공부는 안되고 심란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