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작은 집을 권하다
다카무라 토모야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독서량이 많지 않지만, 올해 읽은 책 중에 최고라고 꼽고 싶다.

집 장만은 언제 해?” 하고 달려온 삶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깨닫게 해주었다. 돈 들여 아니 빚 들여 집을 사서 미래를 저당 잡히고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집을 꾸미고 그렇게 일생을 사는 것, 정말 끔찍한 생각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1인에 필요한 공간은 3~4평 정도다. 1층은 주방, 화장실, 거실 공간이고 2층은 침실이며 가족이 한명씩 생길 때 마다 하나씩 더 지어 붙이고 이어주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 4인 가족은 12~16평정도 땅이 있으면 될 것이다. 물건은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산다. 이렇게 사는 걸 상상해 보니 참 좋을 것 같다. 복잡하지 않은 요리를 하니 가사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절약이 되니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 환경파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대단하다.

 

이 얘기를 지인에게 했다. 그랬더니

작은집을 짓겠다는 사람이 엄청 많아지면 우리나라 기득권층들은 땅값을 엄청 올릴 거야. 작은 땅이라도 있어야 집을 지을 테니.”

일할 수밖에 없게 하기 위해서 집값을 이렇게 올렸다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민낯이라는 말을 지인이 한 것이고 이와 같은 언급이 책에도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민이 이토록 나라를 믿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것이다. 오늘도 민생은 뒷전이고 지들 밥그릇 지키겠다고 저 난리들을 피우고 있는 국회이니 말이다.

 

주님은 믿는 만큼 보여주신다고 어느 젊은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믿지 않았구나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해야 할 기도는 물질을 주세요.’가 아니라 ‘20세 이상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나라가 되게 해 주세요.’인 것 같다. 기회가 균등하면 필요한 만큼 일하고 이웃과 꿈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나라가 아니지만 나는 몇 년 뒤 아들들이 군대 가고 독립하면 작은 집에서 살 것이다. 1층에서 헌 책을 팔고 다락에서 부부가 잠을 자는 일상을 꿈꾼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아도 되니 생각만 해도 좋다.

이 책을 '고난도 주님의 뜻이었다'며 세상 편안한 미소를 지어서 모태신앙들은 확실히 다르구나.’하고 나를 숙연하게 했던 베스트 프렌드, *이와 연*이랑 함께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목과 담쟁이
최현숙 글.그림 / 시와동화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책을 선물 받으면 참 행복하다. 최현숙 작가의 <고목과 담쟁이>는 그냥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울적했던 내 마음에 반짝 뜬 샛별과 같아서 폴짝폴짝 뛰며 웃는 큰 기쁨이다.

그간 내 마음은 구름 낀 하늘에 어둠이 밀려오는 것과 같았다. 동화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2년 째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올 해는 정말 되겠지 하고 낸 작품이 낙방하고 말았다. 안방 바닥에 나뒹구는 소주병은 아이 둘이 목격한 엄마의 절망이었다. 아이들이 자는 여러 날 밤 혼자 소주를 마시고 취해서 상을 치우지도 않은 채로 잠들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철 든 중학교 2학년 큰아들은 늦은 아침상을 차려서 나를 깨웠다. 아침에도 취기가 가시지 않아 아이들 앞에서 주정을 했다.

“아! 엄마는 뭐가 문제일까? 글 쓰는 재능이 없나?”

아빠를 닮아 가슴이 따뜻한 아들의 위로는 이랬다.

“엄마가 글을 못쓰는 게 아니고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뭔가가 있을 거야, 엄마는 그 뭔가를 찾아야 해.”

“그걸 어떻게 찾냐?”

“공부를 해야 찾지.”

“미친, 그러니까 내 실력이 모자란다는 거잖아.”

“아! 내 말이 그 말이 아니고! 아무튼 한 번 더 해봐, 세 판은 해봐야지.”

“세 판에 결정이 나면 좋게? 엄마는 안 될 것 같아.”

“아! 그래도 해봐, 중학교도 3년 다니고 고등학교도 3년 다녀.”

공부는 그럭저럭 하지만 입이 살아있는 착한 아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 하는데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방바닥과 껌 붙이고 누워서 ‘글 쓰는 재능은 하늘이 내리는 건가? 난 왜 선택받지 못했을까? 글 쓰는 거 아니면 난 뭘 하지? 뭘 해야 하지?’ 하고 생각이 드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베개를 적시곤 했다. 애꿎은 주님을 탓하며 성탄 미사에도 가지 않았다. 저에게 왜 꿈을 가지게 하셨나이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게 하시지.

연휴가 끝나고도 힘이 나지 않아서 나를 일으켜 세워줄 밧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존경하는 신부님이 떠올랐다. 남편을 앞세워 연말 인사도 드릴 겸 찾아뵈었다. 신부님은 남편을 더 반가워하셨지만 내가 신춘문예에 떨어져서 왔다고, 답을 빨리 듣고 가겠다는 자세로 급하게 말씀을 드렸다.

“왜 떨어진 것 같아요?”

“공부가 부족해서겠지요.”

“공부가 아니라 동심이 부족한 게 아니고?”

“동심이요? 그것도 부족했겠지요.”

“공부는 부족해도 되는데 동심은 충만해야지. 얼마 전에 읽은 동화는 지뢰랑 사슴이랑 대화를 해요. 동심이 있으니 그런 동화를 쓸 수 있지. 또 읽은 동화는 성탄 미사를 봐야 하는데 이브날 밤에 구유에 계시던 아기 예수님이 사라졌어. 어디 계신가 봤더니 동네 아이가 세발자전거에 예수님을 앉히고 동네 한 바퀴 구경시켜주고 있는 거야. 아이는 그렇게 기도를 했대. 세발자전거 갖게 해주시면 아기 예수님도 태워드릴게요. 주님이 이 기도를 엄마 아빠를 통해 들어 주셨으니 아이는 아기 예수님과 약속을 지켜야지. 동심은 이런 거야. 동화를 한자로 풀면 어떻게 되나?”

“아이 동자, 말씀 화자이지요.”

“나는 동화를 아이 화 되는 거라 보거든. 내가 강론을 할 때도 동심이 필요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특히 동심을 좋아하시지. 그분들한테 내가 공부를 많이 했으니 존재니 뭐니 철학적 용어를 쓰면 하나도 반응이 없는데 그걸 다 풀어서 아이들도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그나마 나를 한번 빤히 쳐다봐 주셔. 무릎을 꿇고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봐요. 그런데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도 동심을 많이 들려드려야 할 것 같아. 옛날 생각나게 하는 것 말이야.”

동심, 그날 이후 주욱 동심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내 시선과 고집을 내려놓고 쓰자. 무언가를 주려 하지 말고 아이가 되어 쓰자. 아니, 아이 마음을 가져 보자. 더 읽고 더 비워야 했다.

몸을 씻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다가 새해가 되어 보게 된 <고목과 담쟁이>. 아! 신부님 말씀이 여기 있구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좋아하는 동심.

고목이 되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큰 나무에게 숲을 떠돌던 어린 새싹 담쟁이가 찾아 왔다. 담쟁이는 자라면서 고목을 타고 올라갔다. 고목에게 아름다운 단풍 옷을 입힌 담쟁이를 보고 감동하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작가의 모습이 상상 되었다. 그림에 더 따뜻한 마음이 보였다. 색연필로 쓱싹쓱싹 그린 그림, 꾸미지 않은 솜씨, 동심이 있었다.

작가는 ‘조심스럽게 사랑을 표현하시는 어르신들, 어린이와 어르신을 위해 쓰게 된 이야기’ 라고 했지만 나는 담쟁이의 동심이 더 많이 보였다. 고목도 피어나게 하는 동심은 세상 그 어느 것에도 깃들고 어우러지는 것이다.

어른의 지혜와 아이의 동심이 만나면 이렇게 이루어진다. 성령과도 같은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위로
임재청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견디며 사는 일상이었는데 남편도 그랬나보다. 남편의 첫 책이 나온지 한참이 되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올린다. 
프롤로그에 '아픔'이라는 말이 참 많다. 뭐, 아픔을 문학으로 이겨내고 즐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남편의 삶은 곧 나의 삶이기에, 남편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기에 (그만큼 내가 의지하는 사람이기에) 남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나의 민낯을 고스란히 대면하는 것 같아서 참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밀쳐두었다가 어제밤에 읽어봤다. 
흠, 이 인간이 사랑이 뭔지를 아네~^^
남편 책을 읽은 나의 소감 한마디다.^^
 
평화주의자 남편이 싫을 때가 많았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싸움을 싫어한다는 것은 구석에서 움츠리고 사는 꼴을 자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남편과 TV를 보다가 사랑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남편이 한 말,

"희생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내 아픔을 참고 상대에게 잘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 나를 사랑하면 힘든 것을 참아야지 하고 상대에게 바라면 안돼. 사랑하면 힘들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그 힘듦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지."

그때 나는 남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차가운 바람 한주먹이 내 이마를 폭 때리며 이렇게 말 했다.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야. 큰 그릇인 사람이라서. 하루 하루 견디며 살고 있군."

그날 이후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남편 말 대로 무지 사랑하지만 눈꼽만큼도 희생하지 않는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설겆이 따위 제쳐두면 남편이 어느새 해놓았고,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시장 보는 것 따위 깜박 잊었더니 남편이 어느새 냉장고를 채워두었다. 
둥지 안에서 짹짹거리는 나와 아들 둘을 너무나 사랑해서 먹이를 물어다도 주고 넓은 날개로 안고 온기까지 주는 오늘날의 남편을 고전문학이 만든 것 같다. 책을 읽어 보니.   ^^
남편의 책으로 위로 받고 그 사랑을 느끼는 나는 참 축복받은 사람일 거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자 놀이>를 읽고

 

  책 속에서 한순간에 고아가 된 임성준씨 부부의 자녀들을 보고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곧 내가 임성준씨의 부인 서미영이 되어 베란다 난간에 서 있는 듯한 소름끼치는 느낌이 밧줄이 되어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시종 책 속에 묶어 놓았다. 그 소름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노동자의 아내로 사는 아픔, 나는 그것을 안다. 2년 전부터 나의 남편도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남편은 모 출판사의 영업부장이었다. 크고 작은 베스트셀러를 더러 냈던 인문‧과학 출판사다. 그러나 인문‧과학 분야는 베스트셀러를 내도 공지영씨 책들의 판매 부수에 10분의 1도 안될 만큼 시장 규모가 작다. “오빠, 오늘은 요 넥타이 메고 가서 서점 여직원들한테 윙크 많이 날리고 와.” 하고 애교를 떨며 남편을 배웅하던 그 때, 뉴스에서 간간이 보게 되는 쌍용자동차는 나에게 그렇고 그런 노사분규쯤으로 인식되었다. 그때는 언론의 왜곡 보도를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남편은 노동자가 아니라 하얀 와이셔츠를 다려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쌍용자동차 일은 나에게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전부터 어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출판사는 문화‧예술계를 핍박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되고, 급기야 다섯 명 남짓한 직원들 중에 가장 많은 연봉을 받던 남편이 정리 해고자가 되고야 말았다. “사장님이 이제 출판은 미래가 없다고 나더러 먼저 내려가서 농사지으라고 하시네. 곧 합류하시거나 투자 하신다고.” 남편은 내가 그 말을 곧이 믿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당신더러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딱 농사나 지어야 될 정도로 능력이 없다고 말한 거 아니야?’ 하고 속으로만 쏘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전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아픔이 남편의 눈과 가슴을 적시고 있었기에.

  그길로 우리는 시댁인 전주에 내려갔고 남편은 농장 노동자가 되었다. 토마토 재배법을 배우고자 한 것이다. 150만원 월급에 12시간 근무를 남편은 즐겁게 했고, 나는 딱 반으로 줄어든 월급으로 시골의 큰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 과자 값 벌겠다고 일을 시작한 내가 작은 교통사고를 냈고, 그날 남편은 농장 기둥에 튀어나온 철사에 얼굴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상처가 심해서 얼굴에 조폭 같이 상처를 꿰맨 자국이 남게 생겼는데, 성형수술을 해줘야 할 농장주는 반창고 값도 주지 않은 채로 다음 날로 남편을 해고 시켰다. 그것도 전화 한통으로. 사유는 몸이 아파 하루 쉬겠다는 말을 전화로 하면 안 되고, 직접 출근을 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농장에서 일을 잘 못한 것일까. 그럴 리 만무하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며 자란 농사꾼의 자식인데다가 대학 시절 엠티 때 추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나무를 한 짐 해서 올 만큼 남편은 우직하고 꾀를 모르는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서 학습지회사 일을 하던 중에 또 한 번 사고가 났다. 주중에는 농장 일에 주말에는 아버님 농사를 돕느라 몸이 상할 데로 상한 남편은 그래도 몸살 한번 나지 않더니, 무릎 관절과 십자 인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방문 수업 중에 계단을 오르며, 그러니까 근무 중에 당한 사고였는데도 산재 처리가 되지 않고 또다시 해고를 당했다.

  전주에서는 일자리가 없었던 남편이 경주에 와서 현대자동차 하청 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건 지난 봄 부터다. 희망이 생긴 나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아도 행복했다. 하지만 여름 때 시작된 정규직들의 파업은 한 달이 넘게 지속되었고, 나는 돈이 없어서 굶는 것이 어떤 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정규직들이 파업을 단행하면 비정규직들은 월급이 없는 것이다. 파업 사유는 불합리한 근무 시간 조정이었는데, 그 주장이 관철되면 시급을 받는 비정규직들의 생계는 위협받는 것이다. 남편의 월급은 170만원 남짓 했다. 거기에 하루에 한두 시간 시급이 줄어든다면……. 노동자의 월급이 어찌 이렇게 적을 수 있단 말인가. 에어컨 바람 쐬며 펜대 굴리는 사람들 보다 배는 힘들게 일하고, 월급은 배로 적게 받는다니……. “20년 전에 우리 아빠 회사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도 200에서 3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고 절규하는 나에게 남편은 “능력 없는 내가 못난 놈이지, 누굴 탓 하냐?” 했다. 그렇게 아이들 배를 골리며 더운 여름을 견디고 있었는데 지인으로부터 소개가 들어왔다. 파주의 한 제조업체의 정규직 노동자 자리. 그 지인도 한 때는 제법 큰 출판사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던 사람이 노동자가 된 것이다. 그 자리의 월급도 170만원 남짓, 이 돈을 고스란히 생활비에만 쓴다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100만원은 파주에서 살던 아파트 대출 이자에, 단칸방 월세에, 그밖에 대출 이자로 다 소모되고 공과금을 제하면 4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네 식구가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이라는 것이 희망이다.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는 정규직. 그래서 남편은 한시 바삐 그곳으로 갔고 나는 남편과 떨어진 채로 단칸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누군가 긴 손톱으로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가슴이 너무나 쓰라리고 아프고 먹먹하다. 침을 삼키지 않으면 곧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다. 계속 침을 삼키니까 진즉에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돌덩이가 자꾸만 깊숙이 들어간다. 자살도 종종 생각한다. 종묘사에 가서 무턱대고 농약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과연 어떤 종류의 약을 얼마만큼 마시는 것이 치사량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은 또 기도를 한다 ‘하느님, 이 길이 하느님이 저에게 경험하라 하시는 어렵고 험난한 길임을 압니다. 이 길의 끝에는 하느님이 씌워주시는 월계관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니 제발 저에게 꿋꿋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와 현명한 정신을 주세요.’ 하고. 그리고 밤에는 또, 불 피울 연탄은 어디 가서 살 것이며 성냥불로 연탄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지를 생각하며 울며 잠든다. 알토란같은 자식을 두고 어떻게 갈 것이냐고 할 것이다. 저 아이들도 살다 힘들면 죽겠지 하고 생각하는 나는 정말 죄인이다. 이제 울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이런 고통스런 나날들을 어찌 견뎠을까. 그들은 나처럼 단지 해고가 아니라 77일간의 그 끔찍한 옥쇄 파업이라는 고통이 더해져 있지 않은가. 정말 악랄함의 차원을 넘은 용역을 동원한 사측의 폭력 진압과 간사함의 도를 넘은 정신 회유책, 사측에 가세해 끔찍한 강경 진압을 일삼은 경찰 공권력, 이 모든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 일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 심정인데 그 속에 가족들은 어떨까, 정말 사회가 이래도 되는 걸까. 살갗이 벗겨지는 최루 가스를 헬기를 동원해 뿌리고, 맞으면 팔이 부러지는 고무총을 쏘고 넘어진 사람에게 집단 폭행을 하고, 그런 현장을 앞으로 보게 된다면 혹은 내가 그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나 또한 22명의 희생자 중에 한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도망가고 싶다. 이 비열하고 불합리한 한국 사회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진즉에 매매로 내놓았던 아파트 값이 또 떨어져 이제는 팔아도 마이너스라고 하는 남편에게 욕을 하며 분풀이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그제 쯤 남편에게 주문했다. 서평쓰기를 취미로 하는 남편은 인터넷 서점에 마일리지가 많아서 아이들과 나는 항상 읽고 싶은 책을 남편에게 주문하곤 한다. 남편은 이 와중에도 아이들 교육이 걱정되는지 <잠수네 아이들의 수학 공부법>이라는 책을 함께 보냈다. 우울하던 중에 <의자놀이>를 읽으면 아이들 앞에서 통곡하게 될까 두려워 <잠수네~>를 읽다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조금만 읽어야지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읽고, 울고, 읽고, 울고…… 끝내는 아이들을 놀라게 하고야 말았다. 대학 시절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며 읽었던 <인간에 대한 예의>로 나에게 들어왔던 공지영씨가 르포르타주도 잘 쓰는 실력가여서일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신자유주의의 자본이 무서워서일 것이다.

  어제 허공에다 대고 했어야 할 분풀이를 남편에게 하고야 말았다. 욕이 나오는 ‘나꼼수’를 편하게 듣지 못하는 간이 콩알만한 나는 한 번도 욕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내 입에서 개자식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고서 후회하며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개자식일까 하고. 능력이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처자식 건사하는 노동자 남편이 개자식일까, 편의에 따라 해고 하는 회사의 사장들이 개자식일까, 자본주의의 병폐를 깨닫지 못하는 사회가 개자식일까, 자본에 병들어 악랄한 행동을 일삼는 정권이 개자식일까, 양심을 팔아먹은 일부 언론(지금은 많아진)이 개자식일까, 아!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다.

  누군가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세상엔 금을 가진 자들이 있지만 그들이 가진 금은 너무 딱딱해서 나누기가 힘드니까 부드러운 빵을 가진 우리가 나누며 삽시다’ 하고. 나는 3월에 둘째 녀석이 입학하기 전에 파주에 월세집이라도 구해야 하는데 보증금 1000만원을 구해야 하는 고민에 휩싸여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누어 먹을 빵이 없다. 이 고민이 해결 되면 1년 쯤 뒤엔 나에게도 나누어 먹을 조그맣고 포실한 빵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먼저 와락 센터에 갈 것이다. 내가 이래 뵈도 한 때는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동화책을 재미나게 읽어주는 아줌마였다. 와락의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책을 읽어주고 싶다. 아니 아니다. 와락은 그 전에 없어지거나 다르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하루 빨리 쌍용자동차 일은 민주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고, 철탑 위의 노동자들이 기쁘게 내려올 일이 있어야 할 것이며 쌍용의 식구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쌍용의 식구 중 어느 집에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서 동화책을 읽어주며 웃다가 올 것이다.

  이렇게 울며 쓰는 서평은 처음이다. 정혜신 박사님이 그러셨다. 사람 마음의 상처도 외상을 수술하듯 상처의 실체를 드러내고 치료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아픈 2년간의 상처를 드러내 보았다. 아프다. 하지만 조금은 치유된 느낌이다. 사람 마음의 상처는 이렇듯 후벼 파며 치료해야 하는데, 이 사회의 아픔은 왜 이렇게 후벼 파고 드러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걸까. 그 일은 언론과 정치인이 나서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 속에 개인이 행복해지고 행복해진 개인이 사회를 만들 텐데, 정말 나라가 망하려나 보다 싶다. 기대했던 대선의 결과는 정말 참혹하리만큼 ‘멘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운명조차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
위지안 지음, 이현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분 간격으로 경주 시내 골목 골목 방문 수업을 다니며 몇차례 교통 사고의 위기를 넘겼다.

그 아찔함이 내 몸에서 가시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쳇,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이렇게 겁을 내? 죽으면 가져갈 것도 아닌데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사고가 날 거면 애매하게 몸만 다치게 하지 말고 한순간에 데려가 줬으면 좋겠네."

하고.

 

그냥 내가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라로 생각했다.

삶에 무슨 이유가 있냐고.

 

그런데, 요즈음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지 결심하고나서

 처음 손에 잡은 책이 내게 살아갈 이유를 이야기 한다.

 

위지안씨의 말처럼 적어도 겁쟁이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다.

인생에 여한이 없고 지금이라도 다 버리고 떠날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도통한 성인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별 것 아닌 인생을 살아낼 용기조차 없었던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어서 누군가 죽여주길 바라는...

 

작년 봄에 이 세상을 떠난 위지안이라는 여자는 죽어서 나에게 "무외시"를 베풀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서 "무외시"를 베풀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