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
윤영남 지음 / 시공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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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선입견이나 전문가의 견해 이런거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느낀대로 예술을 감상하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감동이 오면 좋은 작품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지를 위해 그는 굉장히 유명한 몇명의 화가를 자신의 글에 초대한다. 피카소, 드가, 고갱, 달리가 그들이다. 피카소는 과연 천재인가? 그가 그린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소수인데도 그의 유명세 때문에 기가 죽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건 아닌가? 어찌보면 도발적일 수 있는 이런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그러면서 피카소가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건 작품 자체보다는 그의 독보적인 처세술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  드가가 여성들을 독립적으로 그리면서 여성의 독립적 인격을 표현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라면, 여성혐오자로서의 드가가 여성을 성적 관음증 대상이나 폄하의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는 주장도 있다는 설을 제시하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정 반대의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미술을 보는 사람에게 '주눅들지 말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 소위 전문가의 견해라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다.

이후 그의 글은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는 예술가들을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정보의 제공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와 대중들에게  외면받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면서 그런 이들의 그림에도 얼마나 훌륭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와서 보라고 독자를 이끈다. 그러면서 논지는 곧 지나치게 관객들을 무시하고 관객을 왕따시키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현대미술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저자의 주장 '자신의 느낌으로 미술품을 보라. 아름다움을 보라"는 주장은 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자꾸 작년에 봤던 엄청난 분량의 피카소 전기가 생각났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알았던건 피카소의 그림을 하나 하나 보면 특별히 위대하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걸 느낄 수가 없지만(이건 내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가 천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사람이고 인간이 볼 수 있는 사물의 온갖 다양한 면들을 늘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의 처세술과 더불어 당대에 빛을 볼 수 있었을 뿐이고.... 그는 늘 남들보다 한발짝을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그것은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곰곰히 보게 만들었다.

미술을 아름다움 하나만을 보기 위해 본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미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면도 있지만, 사물과 인간 사회를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고 느끼는 미술도 있지만 생각하는 미술도 있다는 것이다.

뒤샹이 기성품인 변기를 미술전시회에 내놨을 때 누구도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훌륭한 미술품이 될 수 있는건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는데 있을 것이다. 현대문명과 대량생산의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훌륭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너무나도 당연한 논지를 제시하면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면이다. 전문가집단이 강요하는 선입견을 넘어서서 자신의 눈으로 미술을 보라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해보이지만 작품만으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온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나 전문가의 안내에 의해 더 풍부해질수 있는 미술감상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런 면을 모를리야 없겠지만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너무 일방적으로만 나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흥분해서 얘기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균형감각을 잃고 있더라는....

사실 이 주제 자체도 다른 미술전문가들에게서도 흔히 이야기되어 지는 것들이다.  식견을 갖춘 제대로 된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유홍준씨나 이주헌씨 같은 경우 이 방면에 전문가지만 관객 자신의 눈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친절하게 일반 관객이 미술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코치해준다. 제목의 불손하고 건방지다라는 건 좀 더 파격적인 문제제기에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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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10-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부안의 내소사가면 사람들이 꼭 꽃창살 앞에서 소근대는데, 지나치던 것을 유심히 본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뭐랄까요. 자기 스스로의 안목으로 차분히 보기보다는 남(유홍준의 해석도 포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봅니다.

바람돌이 2005-10-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렇죠. 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안목이라는 것도 결국 학습에 의한게 아닐까 싶어요. 많이 보고 많이 읽고 생각해야만 하는.... 즉흥적으로 생기는 좋은 감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잖아요. 그래서 저는 남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 자신의 안목이 생길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