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윤리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 영감을 주고, 욕구를 해소할 수 있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남성의 행태가 착취가 아닌 사랑으로 일컬어진다는 것, 《달과 6펜스》가 그린 남성예술가의 모습은 아주 최근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발견할수 있지 않았나. 특히나 폴란스키의 수상 그리고 그를 ‘작품‘만으로 평가하자며 두둔했던 프랑스 아카데미의 태도는 《달과 6펜스》가 과연 옛날이야기인지 의심케 만든다. 나는 《달과 6펜스》가 일종의 ‘헤게모니‘로 작용한다고 본다.  - P50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를 출간하기 직전인 1918년, 영국에서는서프러제트 운동으로 비로소 삼십 세 이상의 여성이 참정권을 얻었다. 이렇듯 《달과 6펜스》가 유럽 여성이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시기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나‘가 티아레와아타의 종속적 태도를 어떠한 분석이나 비판 없이 서술하는 데는일종의 의도가 담겼다고밖에 볼 수 없다.  - P55

참전 용사들은 일하는 여성, 타인 앞에 나서서 매력과 능력을수줍음 없이 과시하는 여성, 남성과 대등하게 맞서거나 심지어대적하려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을 맞닥뜨리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돈과 힘을 직접 갖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다.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이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대립과 긴장관계를 재빠르게 포착했다. - P71

 결백하지 못한 아름다운 여성들은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 명명되었다. 탐정이 일단 ‘그 여자‘를 찾아내면, 이 죄 많은 팜므 파탈들을 어떻게든 퇴치하거나 순응시킬 방법부터 찾아내야만 한다. 사건은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해결된다. ‘그 여자를 찾아라, 그다음 그 여자를퇴치하라‘의 구조를 취하는 것이다. - P72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누아르 작가로 꼽히는 메건 애벗은
"만약 당신이 유해한 백인 남성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아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미국의 백인 남성들이 누리던 삶은 처음에는 대공황 때문에, 그다음에는 전쟁때문에, 그다음에는 그들이 나가서 싸우는 동안 자신들의 자리를대체한 여성들 때문에 파괴되었다. 누아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만개했다. 탐정, 형사, 짭새 등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의 이야기는자신들이 적법한 권력의 자리에서 축출되었고 여성에게 근본적으로 위협당한다면서 여성을 전능한 위치에 올려둔다. 그런 다음, 이 백인 이성애자 남자들이 저질렀던 온갖 악행의 원인을 여성들에게 돌린다. 누군가를 죽이고 은행을 털었던 모든 것이 팜 - P72

므 파탈이 조종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누아르 소설들은 침입에 대한 격분과 여성의 힘을 저지하겠다는 분노로 끓어오른다.  - P73

하드보일드 작가들이 포착했던 동시대 참전 용사들의 분노, 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거나 혹은 자신이 더는 구애하기 힘든 위치로 가버려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여성들을 향한 젊은 남성들의 분노와 경멸이, 헬렌을 향한 말로의 복잡한 시선에 투영된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길, 이 나라에서 남자들이 할 수 있는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니까. 항상 여자들이 끼어들게 마련이죠." - P85

《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여자를 ‘수수께끼‘로 보는 시각을 매우 잘 대변한다. 나자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여성들은 대체로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발작적‘으로 나타나 홀연히 사라지고, 미래를 예언하는 듯 묘한 말을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적당히 신비스럽고 적당히 흐트러진 이 여자들은 과연 실체가 있는인물인가. - P145

남성 예술가의 무의식에 따라 서술되고 재현된 ‘초현실적 여성‘과 달리 초현실주의 예술에 직접 참여한 여성 예술가는 적극적으로 배제되었다. 많은 여성이 남성의 작품 속에 박제되었지만, 그 여성들의 창작물은 소외된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였던 다른 여성들보다, 갈라가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 폴 엘뤼아르의 아내, 살바도르 달리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 P157

 브르통이 여성 작가들을 익명으로 소비하며 사랑의 매개로만 다룬 점은여성 창작자를 바라보는 남성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 P158

 이로써 그는 분리된 육신과 정신이라는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육신과 정신을 화해시키지 못한다. 그가설정한 ‘육신의 현현‘인 조르바가 순전히 왜곡된 남성성이라는판타지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거칠 것 없이 페니스를 휘두르며 자유인이라 주장하는 상상 속 남성성, 평생 책상 앞에서 ‘나‘
가 했다는 공부와 성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P175

‘나‘는 페니스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조르바와 함께 ‘신도 없고 악마도 없고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 있는수도원‘을 꿈꾸었다. 종교의 경계를 헐어 신과 악마가 양면적인하나의 존재라는 점을 볼 줄 알았으며 이성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고 조국이라는 허상도 깰 수 있었지만, 젠더 위계와 불평등은끝까지 알아챌 수조차 없었던 그들의 상상 속 수도원은 얼마나행복한 곳일까? - P181

 작품의 내용은 네 가지 측면에서 진부하다. 첫째,
인간의 조건인 ‘일상의 노동‘과 ‘초월성‘을 대립시킨다. 초월성은노동을 부정하는 부정의이자 젠더화된 언설의 대표적 관념이다.
둘째, 초월적 인간이 되려는 강력한 동기가 경제력을 가진 여성에 대한 분노와 ‘일하는 여성 = 구차한 현실‘이라는 성차별에서 나온다. 셋째, 어성의 도구화로 이를 재현한다. 마지막은 일제시대라는 배경을 강조하며 <날개>를 ‘지식인의 고뇌‘로 읽는 천편일률적 독해다. 읽기의 진부함이다. 식민지 시대에는 지식인 남성만 고통스러운가? 게다가 <날개>의 남성 주인공이 살아가는 방식과 목소리는 어느 시공간에나 존재한다. - P186

성매매와 섹슈얼리티는 한국 사회 그 자체고, 여성의 삶. 젠더 문제의 핵심 이슈인데 성매매 언설은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을앓고 있다는, 그들의 행위성을 완전히 박탈하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이 가능한 사회다. 여성들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성폭력으로서 성매매‘와 이 구조 때문에 발생한 피해에 국한되어 있다. - P202

‘나(이상)‘는 혼나는 아이다. 이러한 관계는 남성이 공사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사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살면서도, 자신이 아이처럼 취약한 존재라며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게끔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도displacement와 부정의가 의심 없이 수용된다. 이것이 미소지니다.
<날개>에서는 여성의 직업이 성 판매일 때 자연스레 발생하는 미소지니에 지식인 남편을 혼내고 통제하는 강력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소지니가 더해진다. - P205

종속적인 위치의 남성들은 약자와 연대하기보다 패권적 남성의 자리를 욕망하거나 그들에게 ‘자신의 여자‘를상납한다.  - P206

문제는 거래 대상인 물건 (여성)이 행위성을 발휘하거나 지배계급 남성이 자신을 실제로 구원해주지 않을 때 발생하는 피지배계급 남성의 좌절감이다.
그런 피지배계급 남성의 목소리가 바로 <날개>다. <날개>는치욕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남성 심리의 원형이다. 자신이 존재가치가 없는 남성임을 깨달은 남성 지식인이 현실에 대처하는방식은 자기 조작 making이다. ‘가난한 천재‘가 대표적이다.  - P207

미소지니가 근본적인 폭력인 이유는 임의성 때문이다. 임의적 재현은 혐오든 숭배든 ‘나는 너희들을 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세상을 규정하는 위치에 두고 세계를 창조하는것이다. 남성 문화가 여성을 ‘창녀‘가 아닌 어머니로 숭배한다고해서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나 창녀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이다. 어머니나 창녀는 사회가 부여한 성역할이지, 본질적으로 ‘그런 여성‘은 없다. - P213

나는 한국 문학사에서 이상이 이룬 문학적 성취에 동의한다.
내가 불편한 점은 콘텍스트 context, 즉 그의 작품에 대한 변화 없는해석이다. 그의 문학은 한국 사회에 갇혔다. 그런 의미에서 <날개>는 죄가 없다. 지금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다시 읽기가 필요할 뿐이다. - P214

메데이아의 매력은 그 성격의 복합성에서 나온다. 그녀는 뛰어난 능력과 진취적, 적극적 성격을 함께 갖춘 여성 영웅으로 여성해방의 상징인 동시에, 남편의 배신으로 생긴 가족 질서의 위기를 본인이 주체가 되어 심판하여 해결하는 가족의 수호자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피해자로서 서구 사회의 배타성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이방인 타자이고, 복수의 의미와 폭력의 정당성을 깊게 성찰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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