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이런 책에는 ‘드디어 읽었다‘라는 말을 꼭 해줘야 할듯하다. 물론 1권만 읽은 거지만 이런 경우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진리일 듯하다. 이 1권을 읽음으로써 나는 남은 12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정말 책읽는 나무님과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다 읽어내지 못하고 언젠가는 읽으리하며 던저놓은 책에 들어갔으리라..... 역시 함께 읽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1권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궁금증 하나를 풀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서구의 소설들마다 왜 이 책이 그토록 인용되고 이야기되어지는가에 대한 것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작가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책이라는 것이다.



내가 다소 불경한 표현으로 극강의 주절주절이라고 표현했는데 ‘듣기 싫은 얘기는 듣지 않았다‘라는 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1페이지 전체를 소비한다든지, 마들렌과 홍차가 일으킨 옛 추억의 소환 장면을 장장 9페이지에 걸쳐서 서술한다든지 하는 것은 독자에게는 고역이지만 앞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갈 듯하다. 그러니까 프루스트는 작가들에게는



˝봐라, 내가 첫 사랑에 빠진 소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심리를 알려줄게. 소년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말야˝라고 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춘기 소년의 풋사랑을 중계한다. 그 내용을 엄청난 수다스러운 문장들 속에 녹여놓는 데 그 이야기라는 것들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다.



소녀의 모습은 육체와 영혼, 소년의 존재 전부를 사로잡았고(248~249쪽), 소년은 소녀의 주의를 끌고 나를 알리고 싶은 갈망에 시달렸으나 소녀는 소년이 그런 행동을 비웃듯이 지나갔고(249쪽), 그 순간 이후 소녀는 소년에게 의미를 가진 꽃이 되었고, 소년은 자신이 들어가지 못하는 소녀의 삶을 강렬하게 질투하게 되었다(250쪽). 아름다운 소녀에 비해 초라한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욕지거리를 퍼붓기도 하고(251쪽), 소녀를 다시 만나고싶으나 만나지 못하는 장애물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252-253쪽), 소녀를 만나기 위해 소녀가 지나간다는 곳을 하염없이 헤매면서 모든 사물에 소녀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256~257쪽) 이런 것들이다.



모든 장면이 이런 식이다. 어떤 하나의 감정이나 사건을 얘기하면 그것과 관련해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장면을 생중계한다고 할까? 내가 만약 작가라면 이 책은 표현의 사전, 문장의 사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듯하다. 글이 막힐 때 아 맞아 프루스트가 이런 것에 관해서 얘기한 게 있는데라고 생각해보면 반드시 있는 그런 사전 말이다. 그토록 많은 작가들이 이 책을 인용하고 들먹이는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들을 매료시킬 법한 것은 프루스트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목이 꽤나 날카롭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극강의 수다 중에도 뭔가 평가를 해야 할 게 생기면 또 기가 막히게 경구를 만들어낸다.



뱅퇴유씨와 딸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딸의 부도덕성에 대해 떠들어도 뱅퇴유씨는 딸에 대한 숭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하는데(사랑이 아니라 숭배라고 표현한 것은 뱅퇴유씨의 딸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이었다는 표현이지 싶다.) 그 이유는 (객관적) 사실이 인간의 믿음을 결코 침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적도 없고, 믿음을 파괴할 수도 없다는 꽤나 날카로운 경구를 창조해낸다. 프로스트가 가진 관찰력과 지성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만하면 정말 작가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문득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요즘 독서 유튜브 방송이나 숏츠를 통해 인생책 시리즈들이 엄청나게 범람하는데도 이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인생책으로 꼽는 이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왜? 작가들이 이렇게 좋아하면 독자들도 좋아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없지라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곰곰히 생각했다고 하지만 또 그렇게 미친듯이 몰입해서 생각한 건 아니라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이 책이 13권이라는 것이다. 토지처럼 재미있는 책도 분량이 많아서 다 읽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물며 이렇게 사건은 없고 말만 많은 책이라니 아마도 완독한 사람이 얼마 없을 거라는 것이다. 완독하지 않은 책을 인생책으로 올리기는 좀 그렇지......



그리고 순수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딱히 감동적이지도 흥미진진하지도 공감이 막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 예로 든 사춘기 소년의 사랑의 감정을 보더라도 아 딱 내가 저렇게 느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중에 어떤 점은 나도 느껴봤어라고 일부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에 대해서 수긍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작중 인물 누구에게도 공감이나 일체화가 잘 안되는 소설이 독자에게 완전히 주목받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고 겨우 1권을 다 읽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음....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면 앞으로 읽어가면서 수정할 기회가 있겠지 뭐...



그러면 나는 왜 1권을 읽고 그만 읽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인가? 물론 책읽는 나무님과의 약속도 있지만 정말 못읽을 정도였다면 책나무님한테 사과하고 저는 안되겠어요라면서 하차했을테다. 그런데 기어이 13권을 완독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의외로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극강의 주절주절에 말이다. 말이 너무 많으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고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문장들을 손으로 하나 하나 짚어가며 읽어보면 일단 이해 못할 문장은 딱히 없다. 다만 계속 문장이 가리키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그 풍경속으로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심심찮게 있다. 책은 재미없지만 이런 순간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이 13권의 책을 완독하면 내가 무수히 많은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인생의 한 단면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장면을 그릴 수 있을지도....그리고 좀 더 인간에 대해서 이해 깊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 이런 게 생기는 거다. 물론 진짜 생길지는 내년에 완독 후에 돌아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1권을 읽음으로써 이후 계속할 힘을 얻었고, 궁금증도 풀었고 나와 책읽는 나무님에게 화이팅을 보낼 힘도 얻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6-08-3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보태드립니다!!

꼬마요정 2026-09-0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집니다!! 화이팅!!!

하이드 2026-09-0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시작이 반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지금 4권.. 읽고 있고, 올해 다 읽으려고 피치 올리고 있습니다. 지구만한 사과를 안 끊기고 깎는 느낌이에요. 챕터도 없고 챕터도 없고 챕터도 없고 ... 잃시찾 읽는 모든 분들의 완독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