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참으로 읽기 지겨우나
지겨워서 책을 던질 만 하면 뭔가 인간에 대한 깊은 경구를 들려준다.
2권에서는 엄청 빨리 그런 문구가 등장했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 사람들이 낭비해 온 재치의 비용과 허영심에 의한 거짓말의 사분의 삼은 - 이런 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트렸을 뿐이지만 - 항상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공작 부인을 대할 때는 소박하고 소홀하던 스완도 하녀 앞에서는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잘난체 하는 것이었다. - 16쪽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간이란 강자 앞에서 잘 보이려 꾸미고 알랑거린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그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이해관계가 직결되어 있을 때이다. 그래서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생존술이니까 하고 관대하게 봐주는편이다. 다만 정말 싫고 보기 힘든건 자기보다 약자로 생각되어 지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너무 일상적으로 많이 않나?
식당에 가서 서버해주시는 분들한테 무조건 반말로 부르고 요구하기.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얼마나 훌륭했나를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그까짓 놈들이 하고 무시하고 폄하하는 표현을 욕설과 함께 함부로 하기.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을 보며 어린 자식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며 혐오감정부터 알려주기.
나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면 일단 반말부터 시전하기.
요즘은 갑질이라는 말로도 표현하는데 저런 일상의 갑질은 얼마나 무수히 존재하는가? 왜 저럴까싶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 사람 자체의 교양없음, 기본적인 품성의 문제 이런 걸로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프루스트의 이 문장을 읽으며 뭔가 깨달음이 왔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자존감이다.(정말로 기본적인 생명유지를 위한 의식주를 제외하면 이 자존감에 대한 추구야말로 인간 사회 온갖 욕망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아닐까?)
스완은 부르조아 출신이다. 이 시대 귀족에 대해 신분적 열등감도 있지만 새 시대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부르조아층이라는 자신감도 있어서 귀족에 대한 태도는 편안한편이다. 너랑 나랑 네가 나은 점도 있지만 내가 나은 점도 있어. 너는 돈 없지 뭐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테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혈통 신분에 대한 열등감은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자기보다 약하고 열등한 사람들. " 저 시종은 왜 귀족들을 모시는 만큼 나에게 공손하지 않지? , 저 하녀는 왜 귀족에게는 깍듯하면서 나에게는 뭔가 너무 스스럼없이 대하는거 같지? " 뭐 이런 감정. 나는 귀족과도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뭔가를 쟁취해낸 사람인데 왜 그 훌륭함을 알아주지 않고 나를 대충 대하지? 귀족 출신만큼 우러러봐주지 않지? 무시하는건가?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식당에서 소리치고, 관공서 공무원앞에서 세금으로 일하는 것들이 이것도 안하냐고 소리치고, 가끔 아이의 학교 담임에게 전화해서 니가 선생이냐 퍼붓고 -의 태도는 교양도 품성도 아닌 자존감의 결여. 자신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그래서 압도적으로 강한 사람에게는 무시당하는게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내가 세게 나가지 않으면 저들조차 나를 무시할거야라는 두려움. 한 번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받아보지 못했던 결핍 결국 이런 것들이 터져나오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유를 안다고 해서 뭔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유를 안다고 그렇게 기본예의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이해되고 다르게 보이지는 않으니까.... 나는 여전히 자기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 혐오스럽다. 다만 그들이 그러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욕을 하는 방법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딱히 시원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그 폭력이 나에게 닥쳤을 때 이성을 좀 덜 잃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된다.
어쨌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렇게 독자를 꼬드겨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계속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