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있다.
그는 겨우 19살의 나이에 독립운동을 해야겠다 결심하고 가출하듯 집을 나와 상하이로 간다. 김원봉이 주도한 조선의용대의 단원이 되어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한다. 이후 조선의용군으로 새로 편성된 부대의 분대장이 되어 일본과 맞서 싸우다가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부상당한 채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된다. 전향서 한 장을 쓰지 않아 다리 부상을 치료받지 못하고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하고 해방을 맞는다.
돌아온 조국은 독립운동가들을 오히려 탄압하는 곳이었다. 북으로 갔다. 그러나 곧 북한은 김일성의 일인독재 체제를 꾸리고 자신의 독립운동 동지들을 숙청하는 괴물이 되어간다.] 또 하나의 혁명의 조국이었던 중국 역시 마오쩌둥의 일인독재체제와 우상화로 변해간다. 그는 이 모두와 단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의 일인 독재와 우상화를 비판한 책으로 인해 10년의 감옥살이를 다시 하고, 자유를 얻기 까지는 24년이 걸렸다. 그리고 자신의 문학 <항전별곡> <격정시대><해란강아 말하라>를 쓴다.
한국에서 호의로 진행했던 건강검진에서 내시경 도중 천공이 생기자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연변으로 돌아가 존엄사를 택한다.그는 마지막 나날에 조선 의용대 동지들의 단체 사진을 가지고 오게 해 그들의 이름과 출신지, 어떻게 살고 싸웠는지르 받아 적게 하였다. 그것이 그가 최후로 한 일이었다. 자기가 떠나면 그들을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김학철이다.
조선의용대 사진 속에서 그는 혼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제 겨우 20살 남짓이었던 청년의 웃음이 지금 이토록 아파지는 것은 이후 펼쳐진 그의 삶의 고난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그러나 또한 그의 웃음이 이토록 고마운 것은 어떤 고통과 억압도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없음을 그가 삶으로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동그라마 속 인물이 김학철선생님이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그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모르는 사이에 김학철문학상이 생겼다. 너무 반갑고 궁금해서 어떤 단체에서 이런 상을 만들었나 찾아봤는데 항일루트 답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제정했다고 한다. 100명의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그해 발표된 작품 중에서 서로 추천해 선정한단다. 단 김학철 선생님의 삶을 기리는 상인만큼 친일파 작가의 상인 동인문학상, 미당서정주문학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작가는 제외된다. 이 문학상에 선정된 작가분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수상하신 분들의 짧은 소감이라도 받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학철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고 존경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문학상의 소식이 너무 반가웠다.
어쩌면 한 인간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그리는 것일 수도 있음을 김학철 선생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또 내가 김학철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때문이다. 자신의 조선 의용군 시절을 그린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독립군들 역시 역사속 인물이 아니라 나와 같이 웃고 떠들고 절망하고 까불고 짝사랑도 하고 시덥잖은 일로 동료들과 티키타카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한 인간으로 다시 직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후의 분대장>은 내가 강추하는 책이다. 독립운동가를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만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문학작품으로서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절판이 되어 안타까웠는데 보리 출판사에서 김학철 문학전집을 내주면서 같이 나왔다. 너무 반갑고 좋았는데 최후의 분대장 외에는 아직 읽지 않고 있어 미안할 뿐....어쨋든 내 책장에서 기다리고 있긴 하다.
7
다시 이제 오늘의 본론 김학철 문학상으로 돌아가자.
1회 수장작에 선정된 것은 황정은 작가의 <문제없는, 하루>, 최진영 작가의 <울룰루-카타추타>, 전춘화 작가의 <웰컴 투 빌라> 3작품이다. 3작품이 모두 좋았다. 문학상 수상집을 읽으면서 모두가 좋기는 힘든데 작품의 수가 3작품 뿐이어서 인지 모두 좋았다.
이 중 황정은 작가의 <문제없는, 하루>는 김승옥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작품이어서 재독이었는데 그럼에도 그 마지막 외침 '사람, 있어,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 높지 않은 목소리였을 텐데도 절규처럼 들렸고 가슴 한 가운데 와서 박히는 느낌이었다. 자매 중 동생인 인범처럼 모든 사람이 그토록 세상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살수는 없을테다. 적당히 외면하지 않으면 인간이란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테고 아마 극심한 스트레스로 단명하고야 말리라. 그래서 우리는 작중의 영인처럼 적당히 눈감고 적당히 오늘을 살아간다. 나 역시 영인의 생각과 삶과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그 적당히라는 말은 나의 위선을 표현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적당히가 통하지 않는 시기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움직일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적당히 살아간다는 말은 비난받아야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사람됨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 우리는 또 적당히 변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에 제일 앞장서 저항하는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그것 역시 필요한 순간에 곁을 채우는 무수히 많은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부끄럽게 사는게 아닌지 굳이 고민하지 않으련다. 나쁘게 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련다. 황정은 작가는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어서(그의 작품을 보면 그러하다) 내가 내린 결론을 딱히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작가의 의도도 아니라 생각되지만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적당히 살지만, 필요한 순간에 여기, 사람이라고 같이 외칠 수 있는 영인이 좋았다. 그저 그러했을 뿐....
최진영 작가의 <울룰루-카타추타>는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타인을 구하다 사고로 죽은 남자의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모두가 훌륭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참 반듯하여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였을듯한 남자. 이런 남자나 여자들을 꽤 많이 안다. 하지만 제 3자가 바라보는 사람과 가족이 보고 원하는 사람은 다르다.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는 타인에게 아버지를 칭할 때 항상 문목사님이라고 한다. 장준하 선생의 아들은 아버지라는 호칭 대신 항상 선생님이라고 하더라. (사적인 자리에서는 모르겠지만 공적인 인터뷰에서는 항상 이렇게 얘기하더란 말이다.) 문익환 목사님이든, 장준하 선생님이든 너무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분들이 좋은 아버지였을것 같지는 않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게 직업이다 보니 지나치게 반듯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부모밑의 아이들은 사는게 힘든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자식에게도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짧은 소설은 그 훌륭한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입장과 관찰자로서의 엄마(아내)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에 많은 훌륭한 부모님들이 이걸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도덕적이고 훌륭한 부모가 아니라 때로는 좀 남들의 비난을 받더라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부모가 더 필요한 법이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 아이들이 나빠봤자 얼마나 나쁘겠는가 말이다. 이 소설의 혜성이처럼 아빠는 늘 별거 아닌 일로 나를 사람들 앞에서 혼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이해를 항상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수상작 3편 중 전춘화 작가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분이었는데 중국 길림성 출신의 작가님이다. 그의 <웰컴 투 빌라>는 연변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신혼 부부가 만나는 사람들과 한국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히 호의를 베풀고 있는 사람인데 내게는 그것이 호의가 아니라 강요로 느껴지는 지점이라든가 한쪽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도움이 아니라 평등한 친구가 필요한 사람의 거리,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첨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감수해야 되는 것들의 미묘한 문제들을 차분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생각보다 뻔한데 뻔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내용은 전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 흘러가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지가 뻔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서 나는 사실은 몰랐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상대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해서 뻔하지 않고 새롭다.
마지막에는 김학철 선생님의 책 <항전별곡>에 수록된 '맹진나루'가 실려있다. 상하이 황포군관학교시절과 조선의용군으로 태항산으로 향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김학철 선생님의 일면을 볼 수 있었지만, 역시 <최후의 분대장>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상 제정의 취지와 선정 방법, 그리고 수상작 모두가 아름다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올해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