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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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 유명한, 엄청 유명한 정신과 상담박사의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울컥하고 화가 난 적이 있었다. 박근혜 탄핵 당시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이 이런 저런 횡포를 부리고 다닐 때의 이야기였는데, 그분들도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외로움이 크다는 것. 그래서 그분들의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다보면 그분들도 그렇게 막나가지는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강연의 주제가 '경청'이었던듯....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은 가정이든 주변에서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그런 노인분들이 대체로 자기 집에서 어떤지를 알거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같은 건 듣지 않고 늘 똑같은 주장과 얘기를 하고 하고 또하고... 그에 대해 반론을 얘기하면 버럭 화내고, 욕하고,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러니까 정신과박사님이 몇 시간 투자해서 경청하신 그 얘기를 그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몇 십년동안 주구장창 듣고 듣고 또 듣고, 그러다가 한마디 했다가 욕 처듣고 이런 과정을 몇십년을 했을거라는거다. 그런 가족들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라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다른 가족들에게는 폭력이 될수도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화가 났던건 결국 내 경험이 투영되어서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말하는 사람은 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와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른 가족이 일방적으로 들어야했고 그 듣는 얘기도 어찌 그리 수십년을 변하지 않는지.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진짜 "식사하셨어요? 아픈덴 없으시고요?"하면 끝이다. 난 아버지와 그 외의 대화를 할 시도조차 안한다. 


  내가 이 곳 서재에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분명히 '다름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어떤 책을 읽어도 그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인상깊으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과 품격은 다름을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데서 나온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한 다리 건너서 남 얘기 할 때는 그리 쉬운 것이 막상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로 오면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치 내 아버지와 나처럼 말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나와 다르고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주변 조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기 싫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치졸한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게 이렇게 어렵다.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건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에 실린 단편 <스무드>를 읽으면서 든 생각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듀이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생긴것만 한국인이지 그는 한국어를 할줄도 모르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냥 미국인이다.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 지독한 무지에 기반한 편견과 혐오까지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숙소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우연히 태극기부대와 마주친다. 그는 숙소로 돌아갈 길을 찾고 있는 중인데 성조기를 든 무리를 발견하고 저들이라면 나를 도와서 숙소가는 길을 알려줄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어는 안 통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만 깊어간다. 어느새 듀이는 한국의 태극기부대에 호감을 갖고 있는 외국인 기자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고, 듀이는 이들을 뭔가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오인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나머지 감각으로만 인지하는 태극기 부대의 모습은 적대도 없고 흥겹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다. 우리는 한발짝 떨어져서 보는게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한 발짝은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넓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정도로 넓은 보폭일 때가 많다. 쉽지 않은 것이다. 내부로 한가운데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지말이다. 그런데 한국 작가가 자신의 세상 한 가운데에 이방인을 데려오고 그리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스꽝스럽지만 쉽지않은 한 걸음이고, 그 걸음이 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비론따위 개한테 줘도 그 비겁하고 더러운걸 왜 사랑스러운 개한테 주냐고 따지고 싶은 나이지만, 양비론이 아니라 이 미칠거같은 극우들의 행태들을 해결하는데 우리는 뭔가 다른 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거다. 내 아버지와 나와의 대결은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므로 아마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거다. 그래도 내 아버지와 나는 가족이고 성인이므로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대로 가도 딱히 더 나빠질 일은 없을듯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정쩡하게 뭔가 개선하려 하다가는 예전의 그 피터지는 싸움을 늙은 아버지와 해야 할 판이므로....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노인들의 태극기부대에서 이십대 청년들의 태극기부대로 진화하고 있다. 손놓고 있으면 걷잡을 수 없는 폐악이 될터이다. 결국 모든 각도에서 우리는 지금 현재를 볼 필요가 있는데 성해나 작가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어떤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시선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내게는 이 작품이 크게 와 닿았다. 


 이 소설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갈등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익히 알고 있던이라는 말은 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재가 뻔하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뻔하지 않으면 새롭고 힘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너진다. 하지만 극적인 무너짐은 없다. 모두 은밀하거나 노골적이거나 안타깝거나하는 각기 다른 질감의 욕망을 쫓다가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냥 찌질하게 또는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이 책 속 인간들의 욕망은 우리 모두가 겪어본것들이다. 남들과 다른 또는 남들은 싫어하지만 나만은 그의 진가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팬심. 위대한 작가를 나만 알아본다는 팬심이 무너지는 과정은 나의 한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이다. 무당을 통해 신구세대 교체의 과정을 자해적인 칼춤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저 헤비메탈 음악을 쫒다가 현실의 막막함에 무너지는 청년들을 통해 우리가 한 때 가졌던 그 많던 꿈과 욕망들이 그리고 그 무너져 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어디에도 낭만이란 한 톨도 없이 허무하고 폭력적으로 무너져 갈 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무수히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그 모든 욕망의 끝을 나는 얼마나 낭만으로 감추고 살았는지. 그 적나라하고 허무한 끝을 보는 기분이 씁쓸하지만 사실 그게 내가 살아온 날들이니 받아들이고 다시 삶과 세상을 다르게 들여다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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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7-03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엄청 핫한 작품을 읽으셨군요~! 수록된 작품들이 현재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나 봅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체험할수 있다는게 장점인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5-07-07 14:37   좋아요 0 | URL
배우이자 출판하시는 박정민님의 한줄평 넷플릭스 왜봐가 지대한 공헌을 하지 않았나싶어요. ㅎㅎ 근데 책도 괜찮습니다. 예전에 김초엽 작가 읽을 때는 단 한권만으로 최애작가가 되었는데 그정도로 제 취향은 아니지만 성해나 작가도 앞으로 계속 관심갖고 읽고싶은 작가입니다. ^^ 한국소설의 지평이 좀 넓어지는 거 같아 요즘 기분이 좋아요. ^^

책읽는나무 2025-07-06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보다>에 ‘스무드‘가 실려 있어서 앞에 조금 읽다 멈췄는데 이 책에도 그 단편이 실려있나 보군요. 다 읽기 전이라 줄거리는 일단 건너띄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이 책도 입소문만큼 괜찮은 책인가 보다. 여겨지네요.
극적이지 않은 무너짐.ㅜ.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무너짐을 겪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5-07-07 14:40   좋아요 1 | URL
매일이 불안하고 매일이 무너지는 것, 그게 인생이죠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그렇지만은..... ㅎㅎ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죠?
요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좀 다양해지는 것 같고, 뻔하지 않은 힘이 보여요. 그래서 너무 좋네요. 한국 작가를 많이 많이 사랑하는게 제 꿈입니다. ^^

단발머리 2025-07-08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어요. 곧 읽어보려고 해서 ㅋㅋㅋㅋㅋ위에 두 문단만 읽고, 밑의 문단들은 아껴두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과 품격은 다름을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데서 나온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님! 백번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바람돌이 2025-07-08 11:04   좋아요 1 | URL
책이 좋았어요. 가독성이 좋은 것도 맞고요. 단발님은 이 책 리뷰를 진짜 멋지게 쓸 수 있을듯요. 화이팅입니다. ^^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거 한다리만 건너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그 한다리가 어려워요. 나의 가장 옆에 있는 가족이 제일 어려워요

희선 2025-07-10 0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람은 다르게 보기 어렵기는 하겠습니다 늘 보는 거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모르는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한국계 미국 사람이어도 한국을 잘못 알고 있기도 하고, 여기 와서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르구나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 실제로 있을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5-07-10 12:02   좋아요 1 | URL
핏줄이 한국인이라고 한국어를 반드시 해야 하고 한국을 잘 알아야 하고 그런 이상한 생각들은 이제 점점 없어지는거 같아요. 내 안에서는 안 보이는 것들이 바깥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을까? 사람이 저절로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문학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다른 시야를 보여주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