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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집에 놀러가면 집구경하는 것보다 그 집에 있는 책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아니면 이 사람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지, 이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는데 책장만큼이나 좋은 자료도 없다. 그런데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실세계에서 그들의 서재를 보거나, 가상세계에서 그들의 서재를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은, 책 좀 읽는 보통 사람들의 서재를 보여준다. 이들의 책장은 보여주기 위한 책장이 아니기에 화려하지 않다. 대신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책이 정리되어 있어서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찾아낼 수 있다. 집이 좁아 다른 곳에 책 둘 장소를 아예 마련해서 옮겨 놓은 이가 있는가하면, 침대 밑부터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놓은 이도 있다. 공간이 한정적이다보니 나도 새로 들어 온 책을 위해 오래 되어 잘 읽지 않는 책이나,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을 우선 빼 낸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아, 맞아 이때 이 책들이 많이 읽혔었지. 이 사람도 이 책을 좋아했구나,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아이가 책이 읽고 싶을 때 아무 서점이나 가서 책을 한 아름 안겨주는 아버지와 헌책방을 돌며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아버지는 차원이 다르다. 헌책방은 원하는 책이 거기에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대형 서점에 가 책을 사주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주문해주는 아버지하고는 저 깊은 곳부터 다른 것이다. 그건 책을 사주는 게 아니라 그저 책을 살 수 있게 돈을 대신 내주는 것하고 크게 다를 게 없다." (p.71)
이건 이 책 저자인 윤성근씨의 생각인데, 나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할 때 책을 사주는 아버지라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책을 읽고싶어한다고 덥석 사주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마치 SNS에서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아서 뭔가 바뀔 것 같은데도 전혀 안바뀌는 것처럼. 헌책방이든 동네책방이든, 대형서점이든, 온라인서점이든 어쨌든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책을 산 책방에서 준 책싸개를 쓰면 나중에 그 책을 보면서 서점 생각도 함께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 책 표지를 싸주는 동네 서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많이 아쉽다고 했다."(P.97)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면 표지를 싸서 주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교과서도 모두 표지를 싸서 다니던 때였다. 달력으로 싸 놓으면 가장 튼튼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점점 책 표지도 투명비닐로, 그리고 코팅된 책 포장지로 변형되었다. 책방에서는 비싼 종이는 아니지만 책방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로 책을 싸서 주곤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책방에서는 더이상 책에 표지를 싸주지 않았다. 책방 뿐만 아니라 학교의 교과서에 표지를 하는 것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일단은 책 표지를 싸지 않더라도 책이 쉽게 찢어지거나 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당시 일회용 비닐을 비롯하여 일회용품을 쓰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여서 책방에서도 고객이 꼭 싸달라고 말하기 전에는 싸주지 않았다. (이건 그 당시 내가 4년동안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경험이다) 그러고보니 초등학생 딸아이의 교과서에 책 표지를 싸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많이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P.125)
도서관이 많다고 해서 개인들이 책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나도 지금 작은도서관이지만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된다. 책을 읽다보면 내 책이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 그리고, 나는 책에 밑줄도 치고, 색깔로 표시도 하면서 읽는 스타일이라 빌린 책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책을 사야 한다. 그런데 아무 책이나 다 살 수는 없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본 후 구입을 하는 겨우도 많다. 물론 어떤 책들은 작가나, 주제에 따라 읽어보지 않아도 바로 사서 보아야 할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어릴 때 자연스럽게 책이랑 친해지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도 책 읽기가 쉽지 않죠. 무엇이든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하면 그 책 본문에 나온 책이라든지, 참고 문헌이나 주석 같은 데 또 다른 책이 소개돼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책을 찾아서 읽으면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쉽게 알 수 있어요."(p.213)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책 읽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도서관에 와서도 선뜻 읽을 책을 고르지 못한다. 우리집 아이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책을 꺼내 주루룩 훑어보고 읽을지 안읽을지를 선택하는데도 망설임이 없다.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접해보고 책 읽는 일이 특별한 일이 되지 않으면 가능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하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책과 무작정 친하던 사람, 그런 환경이나 계기가 어릴 때부터 잘 갖춰진 사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만나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 매력에 끌려 깊이 빠진 사람이다." (p.222)
책을 그저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 그 책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면서 나와 겹치는 부분을 발견하면 친근감이 들고, 나와는 동떨어진 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름 또 신선하게 읽었다.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을 책도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서재 하나 갖고 싶다. (요즘 계속 아이 책이 내 책 자리를 뺏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