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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트와 그림자들 - 2022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프리마 수상작
마리옹 카디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그림책을 읽고 나면 제목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표지가 보이게 전시된 그림책은 정말 행운이다. 그렇지 않고 책등만 보게 되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림책이 많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 서점은 표지 그림을 보면서 책을 선택하게 되니 나름 그것도 장점이긴 하다. (오프라인에서야 당연히 내용도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 사실 그닥 눈길을 끄는 제목은 아니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그림책의 핵심 내용을 제목에다 써버리면 그 또한 책을 읽는 맛이 사라져버리니 제목을 잘 짓는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고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아리에트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물에 비친 소년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에 눈길이 갔다. 머리모양은 좀 비슷한 것 같기고 하다.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옛날에 사자가 살았어요.
사자는 사냥을 많이 하고, 많이 먹고, 많이 자다가
어느날 죽었어요. 그리고 그림자만 홀로 남겨졌답니다.
늙은 사자의 평온한 죽음과는 대비적으로 물 속에 비친 사자는 젊고, 강단이 있어보이고, 동물의 왕 같은 면모를 보인다. 죽음 뒤에 그림자만 남아 돌아다닌다는 것이 참 기발한 상상인 것 같다. 사자의 그림자는 다른 주인을 찾아다니다 아리에트의 생활을 지켜본 다음 아리에트의 그림자가 되기로 한다. 아, 아리에트는 저 소년이었구나. 그렇다면 그림자....가 아니고 그림자들...인 이유는??
학교에 가는 아리에트를 뒤따라간 사자의 그림자는 아리에트의 그림자를 쫓아내고 자신이 아리에트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하교로 간다. 그날따라 아리에트는 자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거칠어진 느낌을 받는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얼굴로 준비를 하던 아리에트였기에 그가 그날 하루 학교에서 벌인 일들은 확실히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리에트는 사자의 기운을 받아 활기차고 신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 다음날 사자는 더욱 신이 나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리에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 확대되고 더 거침없어지자 '피곤함'을 느낀다.
아리에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때가 있다. 나의 평소 성격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커피와 재미있는 책 한권이면 충분히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고 있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때도 많다. 하루 세끼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많다. '나' 혼자 일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들인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내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평소의 나보다 오버해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상황상 그렇게 해야만 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내 속의 나'가 하고 싶어하는 행동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다보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럴 때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혹은 카페 같은 곳에 가서 '평소의 나'로 돌아간다. 이게 릴렉스이고 이게 나를 다시 충전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만이 '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봤던 영화 '인사이드아웃'도 떠오른다. 내 안에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여럿 있다.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적절한 나를 발동시켜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여건이다. 눈치도 좀 챙길 줄 알아야 하고, 스트레스도 확 날려버릴 수 있어야 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생각도 해야 한다.
그림자라는 특이한 소재로 내 행동의 여러 면을 생각하게 해 준 그림책이다. 거기에 페이지 페이지마다 작은 볼거리가 곳곳에 숨어있는 그림책이어서 그걸 찾는 재미도 있다. 색감이나 무늬의 사용도 다채로워서 그림책을 보는 눈이 즐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