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0
김선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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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스티커의 기원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를 놀리거나 욕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등에 붙이는 악의적인 장난에서 영감을 받은 걸 수도 있다. '바보', '멍청이' 같은 단어가 등에 붙은 걸 발견한 상대가 폭발하면 '장난이었어. 왜 그렇게 화를 내?' 하며 변명하는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사실 기원이야 어찌 되었든 내 알 바 아니고, 처음 보는 저주 방식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양한 이유로 싫었지만, 그게 꼭 저주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은 어차피 기후 이변 문제 하나만으로도 종말의 길을 착실히 걷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인공지능 같은 기술 문제도 있으니 그냥 둬도 곧 멸망할 것 같았다. p.27



어렸을 때, 유치한 장난이지만 친구 등에다 놀릴만한 문구를 써서 붙여놓고 깔깔대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장난 같은건가? 김선미 작가의 '스티커'를 읽은 뒤 '비스킷'을 읽었다. '비스킷'이 시기상으로 먼저 나온 책이라, 이 책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김선미 작가는, 약간 뭐랄까, 기후 위기나 자연현상과 재해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의 기본 성향 또는 지향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시선만큼이나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애정이 묻어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 그리고 사회에 나왔을 때 겪게 될 현실에 대해 걱정은 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내 아이라도 이 험한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살아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잘 짚어 낸다. 그것을 '스티커'라는 징벌 개념의 저주를 통해 드러낸다. 다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해결책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러한 해결책은 '긍정적 에너지'가 아닌 '부정적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복수하고 싶다면 무덤을 두 개 파 놓으라는 말이 있다. 하나는 상대의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무덤이라고 한다.p.63


"맞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주 스티커는 떨어져서 땅으로 스며들어 저주 스티커에 깃든 부정적인 에너지가 땅에 흡수되는 거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축적되다가 더 이상 땅이 품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야. 작게는 진도가 낮은 지진이나 규모가 작은 해일이 일어나고, 크게는 산사태, 폭풍, 대형 산불, 진도가 큰 지진이 발생해."p.93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제재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남을 배려하고, 약자를 도와주며, 기본을 지키는 사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사회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세상이기에 상대도 나와 같은 고통을 받아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주 스티커를 판매하는 주인공은 요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다. 우연히 손에 넣은 저주스티커 제작 도구로 소소하게 용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도와달라고 외치지 않아서 그래. 요즘 사람들은 섣부르게 나서려고 하지 않거든.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특정해서 도와달라고 해야 해. 거기 안경 쓴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병실을 방문한 경찰이 설명했다. 도움을 받을 때도 지침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서 도움받지 못한거라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오히려 동물이 인간보다 더 나은 게 아닐까. p.54


살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세상과 맞닥뜨릴 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 무기력함을 느낀다. 도움을 받을 때도, 누군가를 콕 집어서 요청해야한다는 게, 피해자 입장에서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보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주술적인 '저주'라는 것, 그러니까 사적인 제재이면서 익명을 보장할 수 있는 징벌의 방법이 있다면 솔깃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마도 알고 있다. 가해자에게 똑같은 방법 혹은 상응하는 방법으로 벌을 주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다만,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기분마더 옳지 않다고 가볍게 치부할 생각"(p.105)도 없다.


책에서는 요마의 반대편에서 저주스티커를 떼고 다니는 '소우주'라는 아이가 나온다. 소우주의 가족들은 저주스티커를 제거하는 일을 한다. 소우주를 통해 저주가 아닌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딪쳐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지켜 줘야 하는 거였구나.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줘야 했구나. 내가 날 지켜 주지 못해서 나는 저주 스티커를 만들었던 거구나.p.204


스스로 강해지라고 하는 말은, 전작에 등장했던 '무너져 내리고 스스로 비스킷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지만, 그때 곁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혼자가 아니기에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주 스티커를 주문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쌓여 오히려 나를 망쳐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책에서는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지켜내야한다고 말하면서, 소우주와 다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곁에서 너의 편이 되어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청소년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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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2 텍스트T 15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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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를 읽었고, 연이어 비스킷을 읽은 다음, 비스킷 2를 읽었다. 


최근에 각종 매체나 미디어를 보면, 판타지의 범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현실에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거나, 판타지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일까? 타임루프를 하거나,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을 받아서 사이다 같은 해결을 한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찜찜함이 남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스킷이 된 아이들은, 사람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스스로를 숨겨버린 탓이다. 현실에서라면,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비스킷 2에서는 아이들도 그렇지만 존재가 희미해진 담임 선생님도 스스로가 변화한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왕따를 목격해도 너희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왕따에 대한 의논 자체가 고자질이라고 생각하니까. 누가 자신을 따돌렸는지 혹은 누가 그 아이를 괴롭히는지 말하면 가해자들을 불러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테고, 그러면 고자질한 게 들통나서 2차 피해를 당할 거라고 보는 거지. 그래서 너희들은 어른을 믿지 못하고 그냥 혼자 고통을 감내하고 말아. 왕따를 이야기하는 건 결코 고자질이 아니라는 걸 너희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왕따를 모른 척하고 방관하는 게 오히려 비겁한 행동이야. 그러니 피해자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걸 두고만 보지 말아줘."(p.174-175)


비스킷 2는 작가가, 비스킷을 읽고 주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스킷'에서 존재가 지워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비스킷2'에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스킷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 비스킷에서 구조된 아이와 그들을 구조하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왁~ 끓어올랐던 관심은 순식간에 가라앉거나, 가짜뉴스나 더 자극적인 뉴스로 재생산된다. 


제성이와 덕환이, 효진이는 비스킷으로 일순간 유명인사가 되었다. 효진이는 비스킷을 구하겠다며 더 큰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구하는 일에는 어려움도 있고 위험도 있다. 때로는 열정이 지나쳐 엉뚱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는, 누군가를 도우려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처한 객관적인 상황에 대해 알아볼 것, 그리고 정말 도움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할 것. 때로는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그 마음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리고, 집단괴롭힘 같은 경우엔,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비스킷 2에서 만난 선동이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선동이를 구하려고 했던 마음은 분명 좋은 의도였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책에서는 다행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제성이나 효진이, 도령이나 덕환이가 초능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일반적인 우리라면 그럴 경우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비스킷보다 비스킷2에서는 작가가 고민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최근 2~3년 사이에 더 악랄해지고 광범위하게 퍼진 딥페이크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 올 초에도 뉴스에서 꽤나 시끄러웠다. 


AI기술의 발달로,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벌이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을 보여주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 어느때보다도 그런 세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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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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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작가의 '스티커'를 읽은 후, 이 책 '비스킷'을 읽게 되었다. 순서야 상관없겠지만, '스티커'와 '비스킷'을 읽고 나니 작가가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대충 감이 왔다. 대충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작가의 마음이 아니니 틀릴 수도 있어서.. 라는 변명을....ㅎㅎㅎ 프롤로그를 옮겨 적어본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 구운 과자인 비스킷처럼 그들은 쉽게 부서지는 성향을 지녔다. 비스킷은 잘 쪼개지고, 만만하게 조각나며,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상에 고립된 비스킷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비스킷은 눈에 잘 띄지 않기에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넓디넓은 세상에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 사진에 희미한 형상이 찍혔다고 호들갑 떠는 경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을 때는 대부분 주변에 비스킷이 있다. 나는 비스킷을 소리로 인지한다. 미약한 숨소리, 힘없는 발소리, 가볍게 스치는 옷감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안다. 일단 그 소리를 인식하면 곧이어 모습이 보인다. 비스킷은 대체로 형체가 희미하다. 희미한 정도는 비스킷이 자신을 인식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비스킷의 상태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반으로 쪼개진 상태.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이 "어? 너 여기 있었어? 몰랐네."라고 말하는 단계이다. 몸 선이 흐리고 전체적으로 선명하지 않다. 시력이 좋은 사람은 1단계 비스킷을 만나면 어쩐지 어두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2단계는 조각난 상태, 열 명 중 다섯 명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큼 존재감이 불안정하고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약하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를 보는 것처럼 흐릿해서 보았어도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2단계에 해당한다. 종종 목소리를 통해 존재감이 드러나서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주변인들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3단계는 부스러기 상태. 존재감이 없어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단계다. 투명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잘 보이지 않아 나도 소리로 찾아내기 힘들다. 이때까지 비스킷 3단계인 사람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비스킷 3단계는 오랫동안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왔기에 주위에서 덩달아 관심을 꺼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사라진 비스킷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더욱 숨기는 악순환에 빠진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비스킷의 단계는 수시로 변한다.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가 재건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자신을 단단히 지켜 나가며 아예 비스킷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비스킷은 어디에든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 비스킷이라 이름 붙인 존재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 프롤로그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 주변에 정말 비스킷 같은 존재들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날 졸업 앨범을 들춰보다, 어, 우리 반에 이런 아이도 있었나?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와 연결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친구, 어쩌면 그 아이들이 비스킷과 같은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제성이는 청각과 관련된 병을 치료받고 있다. 소리강박증, 청각과민증, 소리공포증. 이 세가지 병이 진짜 있는 병인가 찾아보니, 청각과민증이나 소리공포증은 병명이 보인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할 경우이다. 나는 소리에 대해 그리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잠자는 시간이나 집중이 필요할 때는 소리에 민감해지기도 한다. 제성이는, 소리와 관련한 병을 고치기 위해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고 생각해서일 거다. 제성이는 소리 때문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만큼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모든 소리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땐 공사장 소음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어떨 땐 시계 초침 소리에도 크게 반응한다. 제성이에게는 어린이집 동창들이 있는데, 덕환이와 효진이다. 덕환이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절친이고, 효진이는 비스킷 3단계에서 구해낸 아이이다. 비스킷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에 효진이를 만났다. 그 당시 효진이가 비슷킷 3단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본 이후 그들은 함께 하게 되었다. 비스킷을 찾아낼 수 있는 제성이, 비스킷을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덕환이, 그 자신이 비스킷 3단계였다가 존재감을 찾은 효진이, 이 세 명의 친구들은 아지트에 모여 다른 비스킷들을 구해내기 위해 함께 한다. 물론 제성이의 생각과 달리 효진이가 많이 앞서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비스킷이 된 존재들을 찾아 구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주변에서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비스킷이란 것이 애초에 무관심 속에서, 혹은 무시 당하면서 되는 것이다 보니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면 필시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제성이가 생각하고 있듯이, 비스킷이 다시 제 모습을 찾는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비스킷이 된 아이에게 어떤 관심이, 어떤 상황이, 필요한지는 각자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말수가 없는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 배제되기 쉽다. 과묵하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못하는 건 억울한 면도 있지만, 학교가 원래 그렇다. 내성적인 아이보다는 외향적인 아이가 더 주목받는다. 내성적인 아이는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말수가 없어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은 비스킷이 되지 않는다." (p.45) 학폭 피해자였던 도주는 논리정연하게 말도 잘하는 편인데, 왜 비스킷이 된 걸까? 환경운동가라는 도주의 꿈 이야기를 하며, 제성이는 결국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네가 잘 안 보이는 거 알고 있냐고. 도주는 자신을 아이들이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앞으로도 영원히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튀게 되면 또 맞을테니까. 그렇다. 도주는 아이들 눈에 튀는 아이라서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채식주의자라서. ​도주가 비스킷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주의 행동(그러니까 채식주의자이면서 환경운동가인)이 튀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면 된다. 그 해결책을 덕환이가 찾아 준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제성이가 만날 수많은 비스킷들에 대해 생각했다. 비스킷을 찾아 비스킷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 그리고, 제성이는 비스킷을 구해내는 일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네가 괴로운 일을 당해 숨고 싶었던 건 잘 알아. 근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존중받을 수는 없어. 네가 먼저 널 긍정해야지 다른 사람도 동화될 수 있잖아. 괴롭힘에 깨진 네 마음, 꿈, 기분 같은 것들을 계속 말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널 이해할 수가 없어.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널 이해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 사람이 생길 때까지 우리 휘둘리지 말고 같이 자신을 지켜 내자."(p.78) 제성이와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사실, 좀 청소년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 약간 교과서같은 정답들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그런 느낌을 배워갈 수 있다면 이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문학적인 문장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건... 일단 욕심.. ^^ ​(도주 덕분에 제성이는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데, 이 작가가 환경 문제에 꽤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스티커'라는 책에서도 나온다.) 다음으로 제성이가 만난 비스킷은, 지안이다. 볼펜 사건으로 보노보에게 쫓기던 제성이가 층간 소음 유발자인 윗층에 살고 있는 지안이를 만난다. 그리고 이모집 2층에 있는 비스킷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꽤나 영화같은 스펙타클한 액션이 진행된다. "나는 비스킷에게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숨죽인 채 지내느라 힘들었을 거라고, 차가운 다용도실에서 그만 나가자고 말했다. 자존감은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믿느냐를 보여 주는 지표이다. 자신으로부터 더는 도망치지 않는 길이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비스킷이 점차 존재를 드러냈다. 아주 희미하게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나는 비스킷을 조심스럽게 업었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건 뼈뿐이다. 뼈를 어르며 내가 느낀 감정은 정의감도, 연민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참담함이었다. 얼마나 오래 학대한 걸까. 얼마나 오래 학대당한 걸까. 참담함이 분노로 변하여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 같은 비스킷이 서서히 내 등에 기대어 왔다."(p.198) ​제성이는 비스킷을 구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아닌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비스킷으로 만들어버린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이 아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이모의 도움도 받는다. 제성이는 스스로를 '소리'에 가둬버렸지만, 제성이 옆에는 친구들이 있고, 제성이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제성이의 소리 강박증이 완전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이 났지만, 제성이 역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서 자신의 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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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반올림 60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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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본다. 제목에 이어 표지를 보는건, 이 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머리 속에 넣고 읽기위해서다.

꽃다발을 들고 행복한 얼굴로 뛰어가고 있는 남자아이 주변으로 칼로리 높은 음식들이 보인다. 내가 굳이 칼로리를 언급하는건 제목의 영향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뚱뚱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다.

중3짜리 소년 벵자멩 프와레는 비만이다.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예상했던대로 비만 판정을 받았다. 벵자멩이 비만인 것은 많이 먹기 때문이다. 벵자멩에게 음식은 살아가기 위한 세끼 식사가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행복한 마음, 이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멋진 공간에서 제공하고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무엇'이다.

나도 어렸을 때 비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말로 누군가는 위로를 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비만이라고 주의해야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나는 벵자멩만큼 먹는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산소운동은 거의 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운동 부족이다. 즉, 나의 비만은 음식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의 문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벵자민이 뚱보로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나는 분명히 이 작가가 뚱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확하게 그려낼까?

옷을 사러 간 장면에서는 내가 옷을 살 때마다 느끼는 그 느낌 그대로여서 벵자멩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뚱뚱한 사람에게 가혹할 정도로 참견을 한다. 기성복 시장에선 맞는 옷을 찾기도 어렵다. 예쁜 디자인은 엄두도 못낸다. 맞으면 아니 들어가면 입어야한다. 선택의 기회란 건 없다. 물론 최근엔 큰옷도 제법 나오지만 여전히 소수이다.

벵자멩의 다이어트는 눈물겹다. 게다가 그의 행복의 원천인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 살이 약간 빠졌을때, 평소에는 생각지도않았던, 여자친구에게 꽃을 들고 직진하다 실패를 맛본다. 벵자멩의 다이어트는 이 일을 계기로 중단되고 급기야 우울증이 깊어진다.

벵자멩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그 어느때보다도 비만청소년이 많아진 요즘이기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덧붙임. 알랭삼촌이 할머니에게 화를 낼때, 벵자멩의 다이어트를 응원하는 삼촌을 이해할 수 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비만인 사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이어트, 외모에 관심 많은 청소년들이 읽으면 건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비만인 친구들에게는 현명한 행동과 대처를, 비만이 아닌 친구들에게는 비만인 친구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재밌게 읽고 한뼘 더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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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 -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나만의 경계를 찾는 법 알고십대 4
노윤호 지음, 율라 그림 / 풀빛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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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도서이다.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나만의 경계를 찾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많은 책들이 이런 부류의 책이다. 요즘 시대가 그래서일까? 개인의 마음관리에 관한 책이 많다. 원래 많았는데 나의 관심이 그런 쪽으로 옮겨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사건을 보면 그 원인을 '병든 마음'에서 찾기도 한다. '병든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병명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크든 작든 아픈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어떻게 다루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청소년기의 마음관리는 예전에도 많이들 다루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있다보니 위협적인 것들도 많아졌다. 이 책은 4가지 주제로 나누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잇는 청소년의 예를 들어주며 나의 상황과 대딥하여 보고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1. 자꾸만 내 감정에 흔들리곤 해요_나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

  2. 답답한 관계에서 도망쳐 자유롭고 싶어요_가까운 이들과 올바른 경계 짓기

  3.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자꾸 휘둘려요_관계중독에서 벗어나기

  4. 사회 속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요_더 넓은 관계에서 중심세우기 


1장에서는 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들이 정말 나의 문제인지 살펴보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는 싫은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저자는 그것을 나와의 관계멪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를 이해하고 긍정적일 때 가족, 친구, 사회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진다.

이유없이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나의 단점만 보이고 내가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마음', 바로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성향이 있고 기질이 있다. 나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을 '단점'으로 해석하기 쉽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해본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우울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의 차는 커서 누군가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로지를만큼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울감은 말 그대로 감정이지 나의 성향이 아니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는 '감정'을 바꿔보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즉, 지금의 '감정'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영역이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가장 쉬운 방법이 수면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우울하다고 느끼는 일이 많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는 최근 많이 거론되는 분노조절장애와 자해에 대해서도 조언을 하고 있다. 자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저자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또한 자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한 후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해서 엉망이 된 내 몸은 어떻게 치료하나. 결국은 하나가 편하자고 하나를 희생시키는 격이니 그것은 문제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2장에서는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이야기한다.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가족들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한 친구들이 그거한 자신의 과거에 묶여 힘들어할 때가 많다. 우리의 뇌가 경험을 기억할 때 사건만 저장하지 않고 그때의 주정적인 감정을 같이 저장하여 미래에는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도록 대비한다. 그러다보니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면 과거의 기억을 꺼내 재정리하는 단계를 거친다. 우리 뇌가 과거의 기억을 재해석하면 최근에 재해석한 내용으로 기억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3장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설명한다. 나의 존재 가치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 집착하거나 밖에서 찾을 때 관계에 휘둘리게 된다. 이 시기에는 가족보다 친구나 또래가 더 중요할 시기이다.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래관계에서 유대감이나 정체성을 형성하다 보니 소중할 수박에 없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친구 관계가 친구들 눈치를 살피며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면 진정한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판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청소년기에는 뇌의 인지 부분이 형성되는 중이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행동이 타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된다. 거기에 또래관계 안에서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고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간다.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들 무리에서 이탈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다보니 평판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p.111)

마지막으로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를 알아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공감,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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