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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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책읽기, 글쓰기, 그림책...이런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게 '나'이다. 한때는 국내 작가들의 소설에 푹 빠진 적도 있고, 한때는 일본문학을 내도록 읽기도 했다. 전공 도서인 국어학과 국문학을 다룬 책, 실용 국어와 한국문화를 뒤지고 다닌 적도 있다. 최근에는 독서와 그림책 등을 다룬 책을 주로 읽는다.


어지간해선 벽돌책도 마다하지 않는데 특히 그 내용에 푹 빠져 읽을 때는 7~800 페이지의 분량도 많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이 그랬다. 앞서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파크에 이어 또 벽돌책이었다.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자 묘한 재미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이 책은 문학에 숨겨져 있는 25가지의 발명품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문학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문학의 원작자라고 칭할 수 있는 최초의 발명가인 엔헤두안나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테크놀로지를 끌어온다. 테크놀로지란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것을 뜻한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왔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떤 점에서 테크놀로지란 말인가? 저자는 인간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문학이 풀어나간다고 본다. 인간의 뇌가 제기하는 온갖 문제와 감정을 다룬다.


"창조물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부로 눈을 돌렸지만, 문학은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부로 눈을 돌린다."(p.24)


무슨 주제를 다루더라도 이 사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껴가진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직접 작성하지는 않은 걸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발굴한 첫 번째 발명품이 있다. 바로 플롯 반전이다. 플롯 반전의 밑바닥에는 '확장'이 있다.


'확장은 플롯이나 캐릭터, 이야기 세계, 서술 스타일 또는 스토리의 다른 핵심 요소에서 일반적 패턴을 취한 다음 그 패턴을 확대하는 것 '(p.36)을 말한다.


확장은 모든 문학의 근저에서 놀라움, 황홀감, 경외감을 일으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치유 과정을 강조한다. 카타르시스는 건강에 좋지않은 것을 정화한다는 뜻으로 두려움을 정화한다. 그리스 비극의 치유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기 효능감', 즉 외상 후 두려움을 잘 처리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이 있을 때 더욱 효과적이다.


제1장부터 저자는 문학 속에 숨겨진 발명품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호머의 《일리야드》에서는 용기를 불러온다.


'용기는 우리가 요즘 서술자라고 부르는 문학 테크놀로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서술자는 스토리 뒤에 숨겨진 마음을 가리킨다."(p.58)


스토리텔링은 구술되었기 때문에 어조와 취향이 드러난다. 일인칭 화자인 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시에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문학은 어떤 스토리든 튀해서 사랑 이야기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p.96)


공감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기분이다. 우리의 공감력을 개선할 도구로는 '사과'가 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우리 뇌가 사과를 받아들이면, 분노와 피해의식 같은 부정적 감정은 줄어드는 반면 신뢰와 사랑 같은 긍정적 감정은 늘어난다.'(p.113)


풍자가의 발명품은 세 가지가 있다. 패러디, 암시,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풍자는 원래 남을 비웃으려고 고안되었지만 우리 자신을 풍자하면 기분이 고양되고 통증도 억제할 수 있다. 남들을 풍자하면 우리 자신을 끌어내려 불안감과 심장마비로 몰아간다.


'흥미진진한 논픽션은 또다른 수수께끼이다. 논픽션 자체는 스릴러와 반대된다.교과서나 교육 매뉴얼, 또는 궁금해서 펼쳤다가 지루해서 금세 덮어버리는 책들의 영역이다. 그런데 미래에서 들려준 이야기와 결합하면'(p.163) 우리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수 있다.


스트라파롤라는 반전의 감정적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상정했다. 하나는 반전이 부여하는 행운을 확대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았다'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줄폭시킨다. 또 하나는 왕실 신부를 불완전하고 무능하게 그릴 수 있다. '그녀를 공주로 만든 것은 미덕이 아니라 우연이었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순전한 우연이었어.'(p.203~204)


샤를 페로는 동화의 반전을 걱정하였다. 나쁜 스토리텔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비논리적 스토리텔링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운에 대한 믿음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햄릿》은 슬픔과 이룬 타협의산물이요, 슬픔을 이겨낸 치유의 산물이었다.(p.220)


세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음모 없는 플롯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애도뿐만 아니라 상실의 아픔에서 비롯된 눈물도 동시에 처리한다. 복합적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정신적 장애를 유발한다. 세익스피어의 극에서 복합적 슬픔의 원인은 죄책감이다. 햄릿은 우연한 깨달음읠 결과로 죄책감을 없애게 된다. 햄릿의 치유 역시 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설은 산문 장르의 하나로 교묘한 주장으로 논리를 뒤덮는다. 역설은 본래의 진실을 철회하게 할만큼 강력하거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대신 역설은 반대되는 진실에도 우리 마음을 열게 할 만큼의 설득력이 있었다. 문학적 역설을 뒤집는 대신에 진실을 두 가지로 확대한다.


이 책에서 나는 그동안 읽은 여러 책을 다시 만났다. 그때는 잘 몰랐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도 많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문학의 목적, 존재 이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묘하게 이끌리는 점이 많다.


제인 오스틴이 구사하는 자유 간접 화법이 무엇인지, 메리-셀리가 아드레날린으로 맥박을 고동치게 하고 코티솔로 눈을 이글거리게 하여 우리의 스트레스를 나쁜 괴물에서 착한 괴물로 전환시키는 것을 본다. 조지 앨리엇은 실패를 치유할 시도로 감사 테크놀로지를 개선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 루이스 케럴의 '좋아, 그래서' 스토리, 소설의 독백, 재발견까지 다양한 문학적 발명품은 우리의 뇌가 하는 질문과 호기심을 풀어나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룬 문학적 발명품들이 거의 다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의 각 장의 마지막에는 문학발명품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읽은 책이 좀 늘어서 이 목록 중에도 제법 있었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제목은 익히 알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계속해서 읽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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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9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원서를 읽고나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소개하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하니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읽고 다시 원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잘읽었습니다.
하양물감님,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하양물감 2022-07-2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읽은 책일 때 더 이해가 잘되었어요. 앞으로 읽을 책도 그럴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