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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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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떤 사람이 읽는가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질 책이다. ‘나를 일깨우는’ 방법으로서 뭔가 획기적인 글쓰기를 원했다면 조금 아쉬울 책이고, ‘일상 기록법’이라는 부제에 눈길을 준 사람은 조금 만족스러웠을 책이다. 다시 말해 평소 자기 나름의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사람보다는 ‘글쓰기’라는 말만 들어도 움츠러들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의 표지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이 어떤 책일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참 부끄럽게도 나는 책의 제목과 부제는 흘려보았고 ‘소설가 공지영’에만 눈길이 갔으니, 책을 펼쳐들고 읽기 직전까지 ‘공지영’이 쓴 글쓰기 책인 줄 알았다. (에구 --;;)

글을 쓰는 행위는 왜 일어날까? 단순 사실의 기록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상의 기록과 공유, 전문적인 정보의 전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는 매일매일 쓰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동아보고 계획하게 만들며, 그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만드는 글쓰기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이며, 친구나 연인, 가족으로 확장이 가능한 글쓰기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즐겁게 글을 쓰기 위한 색다른 시도’에는 다양한 글쓰기의 형식을 만날 수 있다. 저자도 강조하는 바이지만, ‘결국 형식은 내용 다음으로 중요하다’(p.77)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생각을 이어 나가는 고리 ‘클러스터’와 유기적으로 연상하기인 ‘마인드 맵’은 일상에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한 방법이고 개인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압축형 글쓰기인 ‘시’는 번역서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드러나 아쉽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나를 기록하다’를 읽으면 우리가 왜 매일매일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어렸을 때 강제적으로 써야 했던 ‘일기’의 내용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기록에 그쳤다면-혹은 되풀이되는 하루 일과에 그쳤다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부터 나를 돌아보는 질문을 하는 것까지도 기록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다양한 질문의 예시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것은 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현재의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거나, 자신의 삶이 허무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목적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새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글쓰기’를 통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 없는가는 이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직접 해 봄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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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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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의 근대문학을 처음 만난 것은 교과서에서였고, 대표작 몇 개를 제외하면 시대별, 작가별 작품 이름과 줄거리로만 기억될 뿐 제대로 감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국 근대 문학이라 하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짧은 단편과, 시험 때문에 달달 외웠던 주제와 문학사적 의의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울 판이다. 내가 한국 근대문학을 다른 방법으로 -교과서가 아닌- 만났다면,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람들과의 만남도 첫 만남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듯, 문학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만나는 중국 근대 문학이 바로 이 책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다.

이 책에는 중국 근대문학이 태동한 이후부터 1949년까지 나온 작품 중, 중국 ‘근대문학’의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과 중국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 9편이 실려 있다. 8명(루쉰의 작품이 두 편이다)의 작가 중에서 내가 이름이나마 알고 있는 작가는 ‘루쉰’뿐이다. (그나마 그 유명한 아Q정전도 읽지 않았고 영화도 보지 않았다) 현대문학에서도 나는 중국의 작가는 ‘쑤퉁’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미국편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책에 소개된 9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4편이나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내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렀을 때 만난 중국인 유학생들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정보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흔히들 가깝고도 먼 나라라 하면 ‘일본’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중국’이 더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이후 한국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유학생들도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었다.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처음에는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그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문화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중국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도 그러한 나의 관심 영역 확장과 맞물려있으며,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개인적으로는 위따푸의 ‘타락’, 마오뚠의 ‘린 씨네 가게’를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근대문학에서 우리는 일본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위따푸의 ‘타락’은 일본 유학 당시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중국 청년들의 자기정체성 확보와 민족의 정체성 확보가 같은 차원에서 사고되었던 중국 근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p.78)는 해설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보았던 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중국인 유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근대의 중국인은 자신들의 본국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부나 권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일본인들에게 ‘시나징(支那人)’이라고 멸시 당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은 어떨까? 일본에서 나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유학생들은 학업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 일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중국인 유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최근의 한국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들의 일탈-불법취업-을 막고 등록금을 내게 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근대의 중국과 한국이 군사적으로 부강하지 못한 힘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면, 지금은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다.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마오뚠의 ‘린씨네 가게’를 읽을 때는 내 주변의 어른들이 떠올랐다. 시아버님은 요즘도 ‘한국 사람이 만든 물건은 다 엉터리’라며 일본 사람들이 물건을 제대로 만든다고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도 일제 화장품만 사용하고 싸구려 일본 제품이라도 굉장히 좋은 것인 양 갖고 싶어 하신다. 공산품이 부족하던 시절, 일본 제품은 중국이든 한국이든 생활 속에 자연스레 들어왔을 것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국산품-요즘은 국산 찾기가 더 어렵다마는-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아 온 그 분들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자국의 국민을 위한답시고 생색을 내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관리의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근대문학을 읽을 때와 달리 조금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 근대문학이 그 당시 문어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과 달리 중국의 근대문학이지만 현대의 문어체로 번역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중국 근대의 모습이 우리의 근대와 같거나 비슷한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앞으로 중국의 근대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대문학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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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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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이라.

우리는 살면서 타의든 자의든 일을 하게 되고, 그 일이 밥벌이가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자신의 일에 대해 불평불만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때에는 그 일의 가치-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와는 상관없이 그저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들 역시 힘들고 고달픈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길을 찾아 그 길을 걷고 있으므로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공선옥, 정성일, 박래군, 이진숙, 이현우, 서민, 남경태, 김창남, 안건모, 강홍구, 이영미, 이희수, 염형국, 박승숙, 양희규, 김신명숙, 전진삼.

이들 중 내가 익히 알고 있거나, 이름 석 자라도 들어 본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관심 분야가 달라서일 것이고, 그들의 이름보다는 그들의 행위가 더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결코 쉽게 그 자리에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나에게는 조금 낯선 분야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삶은 내게도 좋은 거울이 되어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김신명숙의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얼마 전까지 나도 이들처럼 나만의 길을 찾았다고,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고 어느새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현실(육아와 살림)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갖고 있었는데 말이다.

‘왜 대다수의 여성들은 부당한 차별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탐색하기 위해 여성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많은 여성들이 허약하고 의존적인 내면을 갖고 있었다. 그녀들은 대개 분노보다 체념이나 합리화를 택했으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나 저항보다는 순응이 주는 당장의 편안함 쪽으로 기울었다.’(p.250)는 결론을 내리고 ‘여성 내부의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짧은 글이었지만, 그녀의 글은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이를 두고 혼자 외국에 나갔던 ‘나쁜 엄마’이자 자신의 삶과 행복을 남편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나쁜 아내’(p.246)였던 그녀는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이며,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될 모습이었다. 결국은 시도도 하지 못한 채 두 손을 들고 말았지만. 그래도 김신명숙의 이야기는 나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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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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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을 조직하고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열기까지의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그 결과를 담아낸 활동보고서로서의 내용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 책의 목적이 희망제작소의 활동 중 [불만합창단]을 조직과 과정, 그리고 성과를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든, 시민활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희망제작소가 하는 일을 홍보하고자 한 것이든 간에 이 책을 읽은 한 개인으로서의 감상은, 시민단체의 역할과 개인의 불만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하나의 방법을 알게 한 책이었다.

나는 시민단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니 시민단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시민’이라는 말에 많은 것이 담겨있지만, 내가 그 ‘시민’ 중 하나인지도 모호할 때가 많다. 수많은 시민단체들 중 나와 의견을 같이 하는 단체를 찾는 것도 드물고, 그것을 굳이 찾을 생각도 없고, 또 내가 그들 중 한 명이어야 한다는 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한 국가, 도시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이기는 하지만, 나의 정치적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산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가끔 이슈가 되곤 하는 일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발언이나 행동을 보면서도 나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불만합창단]은 ‘사회창안’의 가장 기초단위라 할 수 있는 개인의 불만과 고민을 노래로 풀어낸 작업이므로 나와 같은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배부른 소리 같은 나의 사소한 불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인 것의 표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점차 사회적 문제에 부딪혀서도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리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제작소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고, 박원순 씨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었는데, 그 단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희망제작소의 그들은 ‘소셜디자이너’이기를 원한다. 그들이 정의한 ‘소셜디자이너’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다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p.35)이라고 한다. ‘불만합창단’은 그런 그들이 ‘사회’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에 관심을 돌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유럽의 작은 시민단체를 둘러보면서 ‘시민단체’의 역할과 목적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시민 제안은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활동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시민이 직접 개입하면서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창안이다’(p.47)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만합창단’의 조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불만합창이란 것이 단순히 모여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합의와 토론에서 비롯해야 의미가 있다’(p.59)는 현지 씨의 깨달음은 나에게도 공감되는 것이었다.

불만합창단은 어떤 사람이든 참여할 수 있고, 어떤 불만이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미리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불만에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과정이다. (p.65요약)

이 책의 중간 중간에는 시민단체의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의 생각들이 메모처럼 적혀있다. ‘불만합창단’을 조직하고 행사를 치루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한 두 사람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지면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도 ‘불평, 불만’이 많은 친구가 이야기를 할 때는 ‘좀 그만 했으면’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그’의 일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만합창은 그러한 ‘그’의 일을 ‘우리’의 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노래와 합창이라는 결과물 이전에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 불만합창은 그 과정을 경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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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의 운동화 봄봄 어린이 4
원유순 글, 김병하 그림 / 봄봄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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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 피해상황을 보면서, 자연의 엄청난 위력과, 자연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에 한숨이 길게 나왔다. 자연재해의 경우 (환경 파괴나 난개발 등으로 인한 피해도 물론 크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 많다. 그래서,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긴급구호가 절실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자연재해가 아닌데도 인간의 목숨이, 아이들의 팔다리가 찢겨져 나가는 일이 있다. 바로 인간이 일으킨 '전쟁'과 그 전쟁이 남긴 결과들 때문이다. 여기 이 책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석이의 운동화이다. 어느날 주인에게 버려진 운동화가 모르는 나라의 아이에게 가면서 겪은 이야기를 운동화의 시선으로 풀어간다. 일단 화자가 '운동화'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를 담담하게 끌어가는 느낌은 있으나, 감정적인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버리고 찾아가지 않는 물건들이 점차 늘어간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보니 아까운 줄 모르는 세대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구하기가 어렵고, 아이들도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해야 하는 곳이 많다. 석이의 운동화가 새 주인을 만난 곳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전쟁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나라지만 아이들은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석이의 운동화는 모하메드라는 아이의 운동화가 되었다. 축구도 제대로 못하는 석이랑 있을 때보다 공도 뻥뻥 차며 운동화로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모하메드가 쇳덩어리를 줍던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모하메드는 다리 하나를 잃게 된다.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였던 모하메드는 다리 하나를 잃은 후 방에서만 지낸다. 희망도 없고 살아갈 기력도 없다. 그런 모하메드에게 삼촌은 목발을 구해주고 목발을 짚은 모하메드는 운동화를 잃어버렸던, 아니,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던 그곳으로 간다.

 

모하메드에게 운동화는 살아가는 활력소였을 것이다. 다시는 신지 못할 신발이지만 그것을 찾아 든 모하메드는 자신의 꿈이 축구선수였다고 말한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앉은 모하메드의 등이 가엾다. 누가 이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았을까?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이나 스포츠라면 이긴 자든 진자든 그 자체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지만, 전쟁은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 슬픔만을 안겨줄 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사람들이 벌인 전쟁으로, 그리고 그 전쟁이 낳은 결과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전쟁은 그 어떤 명분을 갖다댄다해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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