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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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의 근대문학을 처음 만난 것은 교과서에서였고, 대표작 몇 개를 제외하면 시대별, 작가별 작품 이름과 줄거리로만 기억될 뿐 제대로 감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국 근대 문학이라 하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짧은 단편과, 시험 때문에 달달 외웠던 주제와 문학사적 의의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울 판이다. 내가 한국 근대문학을 다른 방법으로 -교과서가 아닌- 만났다면,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람들과의 만남도 첫 만남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듯, 문학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만나는 중국 근대 문학이 바로 이 책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다.

이 책에는 중국 근대문학이 태동한 이후부터 1949년까지 나온 작품 중, 중국 ‘근대문학’의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과 중국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 9편이 실려 있다. 8명(루쉰의 작품이 두 편이다)의 작가 중에서 내가 이름이나마 알고 있는 작가는 ‘루쉰’뿐이다. (그나마 그 유명한 아Q정전도 읽지 않았고 영화도 보지 않았다) 현대문학에서도 나는 중국의 작가는 ‘쑤퉁’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미국편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을 대부분 알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책에 소개된 9작품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4편이나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내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렀을 때 만난 중국인 유학생들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정보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흔히들 가깝고도 먼 나라라 하면 ‘일본’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중국’이 더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이후 한국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유학생들도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었다.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처음에는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그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문화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중국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도 그러한 나의 관심 영역 확장과 맞물려있으며,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개인적으로는 위따푸의 ‘타락’, 마오뚠의 ‘린 씨네 가게’를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근대문학에서 우리는 일본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위따푸의 ‘타락’은 일본 유학 당시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중국 청년들의 자기정체성 확보와 민족의 정체성 확보가 같은 차원에서 사고되었던 중국 근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p.78)는 해설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보았던 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중국인 유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본까지 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근대의 중국인은 자신들의 본국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부나 권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일본인들에게 ‘시나징(支那人)’이라고 멸시 당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은 어떨까? 일본에서 나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유학생들은 학업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 일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중국인 유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최근의 한국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들의 일탈-불법취업-을 막고 등록금을 내게 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근대의 중국과 한국이 군사적으로 부강하지 못한 힘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면, 지금은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다.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마오뚠의 ‘린씨네 가게’를 읽을 때는 내 주변의 어른들이 떠올랐다. 시아버님은 요즘도 ‘한국 사람이 만든 물건은 다 엉터리’라며 일본 사람들이 물건을 제대로 만든다고 침을 튀겨가며 칭찬을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도 일제 화장품만 사용하고 싸구려 일본 제품이라도 굉장히 좋은 것인 양 갖고 싶어 하신다. 공산품이 부족하던 시절, 일본 제품은 중국이든 한국이든 생활 속에 자연스레 들어왔을 것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국산품-요즘은 국산 찾기가 더 어렵다마는-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아 온 그 분들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자국의 국민을 위한답시고 생색을 내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관리의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근대문학을 읽을 때와 달리 조금 편안함을 느꼈다. 한국 근대문학이 그 당시 문어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과 달리 중국의 근대문학이지만 현대의 문어체로 번역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중국 근대의 모습이 우리의 근대와 같거나 비슷한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앞으로 중국의 근대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대문학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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