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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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유명한 일본 작가의 책을 좀 읽어봤다면 권남희 작가를 모를 리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의 책 대부분이 권남희 작가의 번역을 거쳤으니깐.
내가 즐겨읽는 일본 소설의 대부분도 권남희 작가의 손이 거쳐진 번역서였다.
그런 그녀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고 하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는 총 6장으로, 1장 하루키의 고민상담소, 2장 잡담입니다, 3장 남희 씨는 행복해요?, 4장 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 5장 신문에 내가 나왔어, 6장 가끔은 세상을 즐깁니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번역가로서의 일상 이야기와 권 남희로서의 일상 이야기가 묻어나 있다.

권남희 작가는 오롯이 번역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늘 마감에 쫓기며 일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쓰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인터뷰가 들어왔다고 한다.
집 외에 어느 장소에서 주로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인터뷰인데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 생각할 정도로 집에만 있는 저자는 기자에게 딱히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집 앞 카페에서 작업한다고 둘러댈까도 했지만 양심상 거절했다고 한다.
저자는 순수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 나간 적은 없다고 한다. 즉, 집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집 안에 서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실에 있는 책상이 전부라고 한다. (그 책상에서 모든 번역서가 나온 거구나!)
가끔씩 저자에게 이러한 인터뷰가 종종 들어오는데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主婦美)가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웃음)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와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옆에서 통역하던 통역가 샤론 최에게도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봉준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했을 뿐더러 농담까지도 완벽하게 통역하여 극찬을 받았었다. 봉준호 감독도 그녀에게 언어의 아바타라고 칭할 만큼.
이렇듯 번역가나 통역가는 누군가의 말을 '잘', '제대로' 전달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에게 모두가 집중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유명한 일본 소설의 대부분은 권남희 작가의 손을 거쳤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녀 또한 같은 이유로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책이기에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고 혹여나 단어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지기에 이런 부분 또한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였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외국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오역이 발생해 논란이 있었었다.
이렇듯 단어 하나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번역이든, 통역이든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영어를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너무 기대되고 가슴 벅차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물으면 '영어'라고 먼저 대답할 정도로 영어를 너무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로는 충족되지도 않고 부족하다 느껴 엄마에게 부탁하여 영어학원이나 학습지를 배우면 안 되냐고 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집안 사정 때문에 길게 배우진 못했지만 1-2년 정도 영어 학습지를 배웠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 생애 최고로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부터 미드나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가장 좋아하는 채널이었었다.
그 때, 품었던 꿈이 통역가, 번역가, 외교관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내신 위주의, 수능 위주의 공부만 하다보니 흥미도가 뚝 떨어지면서 그 꿈 또한 자연스레 사라졌던 것 같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나도 예전에는 권남희 작가와 같은 훌륭한 번역가가 되는 꿈을 품었는데 흐지부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그녀가 낸 번역서는 왜 따뜻함이 묻어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내가 앉아있는 내 공간_한 벽면이 책으로 덮혀 있고 한 벽면에는 새하얀 피아노가 있고 한 벽면에는 책상이 있고, 피아노와 책상 위에는 꽃들이 있고_을 한 번 쭉 훑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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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Before You (Mass Market Paperback)
조조 모예스 / Penguin Group USA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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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are pretty much the only thing that makes me want to get up in the morning."

🎬
"Will you stay?"
"For as long as you want me to."

🎬
"Live boldly, Clark. Push yourself. Don't se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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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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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북한과 관련된 책은 이번이 세번째인데, 책장을 딱 덮고나니 북한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 배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18년 4월 15일, 전세계의 모두가 주목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바로 남북정상들이 최초로 분단경계선을 함께 넘은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이 분단경계선을 건너와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남한으로 넘어오는 장면은 우리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 뒤를 물려받은 김정은은 연일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전까지는 보여주지 않는,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를 고수했다면 김정은은 보여주기 식을 행하였다.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많이 달라졌는데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연상케 한다고 평가받는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연상시키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북한 내에서 신뢰도와 같은 입지적인 면에서 넓지 않았기에 많은 신뢰를 받았던 김일성을 의도적으로 따라한 것이었다.
또한, 아버지, 할아버지와는 달리 부인과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었고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인 문화적 배경을 꾀한다.
그렇다고 호의적으로 변했다고는 할 수 없다. 북한 내에서는 고모의 남편인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자신의 길에 도움되지 않는다 싶으면 없애버리는 공포정치도 행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매번 입방아에 오르곤 하는데 저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인들의 문화나 심리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열려있지만 그에 반해 북한은 닫혀있다.
말도, 행동도 항상 조심해야 하며 국가에 대항하는 태도를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 심지어 종교 생활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위반된 행동을 할 시에는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김씨 일가를 '장군님', '수령님'이라 깍듯이 받들며 신처럼 모신 북한인들이기에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가 다 헤아릴 순 없다.
비록 두 갈래로 길이 갈라져 다른 방향으로 걸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 같이 걷게 되는 날, 그 때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북한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그들의 문화를 심층적으로 다룬 『고난과 웃음의 나라』는 언젠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닥칠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려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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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우다 삶과 이야기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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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한 가지는 확실히 압니다. 원하는 것을 전부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항상 얻을 것입니다. _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일으켰던 저자는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를 맡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 생각들을 수많은 강연회와 책들에 녹여냈다.
(내 기억으론,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인생 수업」과 「상실 수업」에 이어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을 읽게 되었다.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은 네 편의 강연을 담은 강연집으로, 정신과 의사로서 마주했던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자세나 지혜에 대해 듣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두 편의 영화가 자연스레 생각났다.
첫번째 영화는 바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주인공 맥 머피는 범죄자로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는 규율에 맞춰졌던 교도소보다는 정신병원이 훨씬 자유로울 거라 생각해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어쩌면 교도소보다 더 힘든 곳이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 모두가 큰 문제 없어보여도 교도소 이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곳이기에 그 압력에 찌그러져 정신이 죽은 사람들처럼 지내고 있던 것이었다.
맥 머피는 환자들을 이끌고 반항을 시도하게 되지만 실세인 간호원에게 전혀 먹히질 않았고 꼭 정신병원을 탈출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영화 속 정신병원에서의 의료진들은 그들을 정신 나간 '것'으로 대한다. '것'으로 표현한 것은 의료진들은 그들을 '사람'이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7호 정신분열증, 20호 조울증이란 명칭으로 환자들을 부르지 않고 각자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며 다가가려 노력했고 그들도 그녀에게 차츰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희망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것이었다.
향전신성 약품과 전기충격 치료보다 더 나은 것이 존재하다는 것을 이 때 느꼈으며 진정한 사람과 보살핌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두번째 영화는 바로 「미 비포 유」이다.
내게 한 외장하드가 있는데 영어공부용이자 TV 보지 않는 내게 볼거리를 주는 용이라 할 수 있다.
외장하드 속에는 CSI 전편, CHICAGO 시리즈 등 미드와 Me before you, Midnight in Paris, The Intern과 같은 영화들이 들어있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Me before you」는 종종 보는 편인데 볼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윌이 루이자에게 그런 말을 남긴다. _Live boldly, Clark. Push yourself. Don't settle.
그 말이 내게는 꽤 인상깊었었는지 그 영화를 보고선 영화관에 나왔을 때도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사업가였던 윌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윌은 스스로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한편, 다니던 카페가 문을 닫게 되자 돈이 필요했던 루이자가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받아 6개월 동안 윌의 임시 간병인을 맡게 된다.
솔직하고 밝은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패션 감각을 지닌 매력적인 루이자에게 차츰 반하게 되었고 루이자 또한 윌이 마음을 열자 그렇게 6개월 동안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긴다.
루이자는 윌의 선택을 바꿔보려 했지만 윌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된다.
요즘은 안락사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물론, 아직도 사람의 목숨을 끊어내는 것은 잘못되었다며 안락사에 대한 반대도 꾸준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찬성하는 이들도 많아 아직까지도 안락사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세상이 바뀌면서 우리는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불치병과 같은 많은 질병들을 앓고 있다. (아이들 또한 선천적으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환경의 영향도 있다.)
대개 우리는 쳇바퀴 도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동시에 '(세상에) 남아있는 날'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허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말기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세상에) 남아있는 날'을 디데이로 놓고 살아간다.
그 고통을 함부로 표현할 수도, 말할 수도 없지만, 고통을 감내하며 이 세상에서 살거나 혹은 고통없는 세상으로 떠나는 것에 대한 선택은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결정의 책임은 그 혹은 그녀가 대신 지어주는 것이 아닌 오롯이 본인의 몫이기에.
어렸을 때, 본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었는데 암 환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_'나같은 사람은 (죽을) 날을 받아놓고 사는 거야. 그래서 남은 하루하루 소중해. 근데 이 고통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이 세상에서 '생명체'로서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삶과 죽음을 꼭 겪어야 한다.
죽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삶을 받아들였기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인데) 생명체로서 꼭 겪어야만 할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을 맞닥뜨리기 이전에 후회없이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그 자세를 마음 속에 품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죽음을 떠올리면 끝이 없는 어둠과 두려움 등을 생각하게 된다.
허나 저자는 죽음이 꼭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육체는 진정한 자아가 머무는 단순히 집에 불과하며 죽음의 과정에서 죽지 않는 자아가 물리적 껍질에서 해방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죽음 이후에 가지게 될 신체는 물리적 에너지가 아닌 심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면서.
죽지 않는 자아가 물리적 껍질에서 해방되었다? 이 말을 아리송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터인데 저자의 경험담을 듣고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저자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부탁을 받게 된다.
맡고 있는 반 아이 중 하나가 성적이 뚝 떨어졌는데 알고보니, 아이 엄마가 암에 걸려 2주 전에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상태인데 아무도 그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태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이 아빠도 병원과 회사를 오고갔기에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없었고 친척이란 분은 괜히 성만 냈다고 한다.
선생님도 꼭 같이 오란 조건에 따라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저자의 집으로 찾아갔고 저자는 아이들을 부엌으로 데리고 간다.
건강에 좋은지, 안 좋은지의 여부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콜라와 도넛을 내주며 저자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분명 알고 있었다. 엄마가 곧 돌아가신다는 것을. 이 때, 평소의 어른들이라면 곧 죽는다 혹은 곧 돌아가신다의 말만 하겠지만 저자는 나비와 고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엄마는 며칠 후 나비가 될 것이란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이튿날, 병원의 허락으로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엄마 침대를 향해 뛰어가 힘껏 안아주며 엄마는 하루나 이틀 뒤에 나비가 될거라 속삭였다고 한다.
이후, 수업 시간에 로리는 칠판에 고치와 고치를 빠져나오는 나비를 그리며 반 친구들에게 엄마의 병실에 갔던 이야기, 즉,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고 반 친구들도 로리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산더미 같은 우편물 속 어린아이가 쓴 큰 글씨가 적히 크고 노란 봉투가 눈에 띄어 열어보게 되었는데 바로 로리의 편지와 선물이었다.
'로스 박사님, 치료비를 드리고 싶어요.'로 시작된 편지와 함께 엄마가 돌아가신 후 반 아이들이 로리에게 준 위로의 편지를 선물로 보낸 것이었다.
반 아이 중 한 명은 이렇게 썼다고 한다. _'로리야. 네 엄마가 돌아가셔서 난 너무 슬퍼. 그래도 바깥의 몸만 벗은 거라고 생각해. 벗을 시간이 되었던 거야. 그럼 잘 있어.'
저자는 로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앞서 말했듯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덧붙여, 성숙한 어른들도 받아들이고 버티기 힘든 것이 '죽음'인데 미성숙한 어린이들은 어떨까. 부모를 혹로은 조부모를 혹은 애완동물과의 이별을 어린 아이들이 마주했다면 어른들이 오히려 솔직하게 아이들에게 감정을 털어놓고 무조건 막지만 말고 함께 이겨내는 것이 덜 힘들게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거라 저자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말하는 쪽은 아이들이니깐.

저자의 말에 따라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고서 바로 리뷰를 쓰는 것인데 솔직히 리뷰를 쓰면서도 내가 제대로 리뷰를 썼나 싶을 정도로 너무 무의식의 흐름대로 쓴 기분이다.
아마 책 속 두번째 강연에서 나온 제피의 사연때문일지도 모른다. 제피의 사연을 읽는데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글에 담다보면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담지는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나연이의 사연이 떠올랐다. MBC 스페셜에서 방영된 [너를 만났다]라는 영상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단순히 감기인 줄만 알았는데 희귀 난치병에 걸려 발병한 지 한 달만에 가족들 곁을 떠난 나연이.
미역국을 끓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엄마의 바람이었고 VR을 통해 엄마는 나연이를 만나게 된다.
짧지만 나연이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후-하고 초를 분 나연이의 생일을 축하해 준 엄마는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쌓게 되고 나연이는 예쁜 나비가 되어 사라진다.
방송이 방영된 이후, 불편하게 바라본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하늘에 있는 나연이에게도, 땅에 있는 나연이 엄마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각인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병원은 아이들의 출입이 엄격해 로리도 엄마와 작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건데, 저자와 병원 측의 배려로 로리와 동생이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이는 로리와 동생이 슬픔에 휩싸이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연이 엄마에게도 그런 기회가 아니었을까.


죽음이 끝이라 생각하면 앞서 말했듯이 끝이 없는 공포감과 두려움에만 휩싸일 뿐이며 세상에 남아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오히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알차게가 아닌 제대로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죽음은 없다. 죽음은 또다른 시작이다.
죽음을 이렇게 인지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후회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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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 『여름의 겨울』부터 읽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잔상이 오래가는 것은 그 때에 겪었던 기억과 그 때에 들었던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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