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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평점 :
저자 조성두
일곱날의빛
2023-10-23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한국 장편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아이가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초향과 엄마는 장독대 너머까지 넘어온 비릿한 냄새로 소년이 두 번째 오던 날부터 알아채었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깡마른 소년, 말총머리에 눈이 큰 아이는 두 마리의 염장 고등어를 들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미소와 손짓에 소년은 다가왔고 초향의 엄마는 없는 살림이지만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다는 죽향 수저를 건네며 아이에게 밥 한그릇을 대접해줍니다.
백석 포구에 산다는 아이의 이름은 성원이였고 엄마는 곧이어 지리산에, 그것도 왜 이런 산골에 오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그곳은 각지에서 들어온 천주쟁이들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조용히 숨어 살던 산속 마을이었으니깐요.
덧붙여, 초향의 엄마 이름은 김마리아입니다.
몇 마디 건네다보니 아이는 내포 일대 오일장을 도는 등짐장수의 아들임을 알게되었고 엄마는 그제야 안심하게 됩니다.
"머슴아가 효자네. 근데 니 몇 살이가?"
엄마는 아이가 아비와 함께 등짐을 지었다는 사실에 거듭 감탄하는 눈치였다.
"열… 네 살이요!"
"와! 정말로? 우리 초향이보다 겨우 두 살 많아? 누부(누나)는 없고? 어째 이리 개우바릴까(경우가 바르다)! 사나(사내)티가 무슨 총각 같다."
……
고향이 청송인 티를 제대로 내시더라니. 당시 나는 엄마가 무엇때문에 그리 말이 많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당신은 제 말은 고사하고 침묵과 묵상이 늘 모습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왠지 마음이 앞서게 보이더라니! 분명 뭔가에 동한 것 같았다.
처음 서로 뻘쭘했다. 내 소중한 곳으로 안내한 나는 이미 귀밑까지 벌게졌지만, 소년에겐 그 모습이 너무 예뻤던 거겠지? 사실 난 엄마를 믿은 원인이 가장 컸다. 낯선 이와 자리를 내준 엄마의 선택은 오롯한 믿음이지 엉겨 붙은 호기심 그득이었으니까. 아무튼 도착하자 눈만 피하던 우리는 뭔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공기놀이였다.
초향과 원이의 사랑은 그렇게 이어져갔고 결국 함께 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초향의 아버지 배문호 베드로는 예수쟁이가 될 각오를 해야 하며 원이 부모님을 꼭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원이네 부모님은 원이에게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주쟁이 며느리로 집안 말아먹을 일 있냐고 난리가 났죠.
그 난리통에도 사랑을 택한 원이는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바라옵건데 이를 선물한 원이와 아이의 진행을 순탄히 지켜주옵소서. 특히 우리 초향이. 이름 그대로 주의 향기를 품는 아내요, 그와 한 손의 지어미가 될 수 있도록 부디 사랑하시고, 늘 당신의 한 손과 함께 저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이 구석진 산에 오른 고등어! 특별한 이 음식. 감사와 사랑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지난 2개월의 겨울은 매우 추웠지만 부모들의 약조로 3월이면 새색시와 신랑이 되는 초향과 원이는 겨울 내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짐승도 아닌 사람 소리에 초향은 놀라 몸을 숨깁니다.
"니미럴, 이거 개고생이구먼!"
"그러게나. 하필 이런 질척 설한에 천주쟁이 사냥이라니!"
산속 지름길을 통해 헐레벌떡 뛰어간 초향은 아버지께 관군이 올라오고 있다고 외칩니다.
멧돼지나 노루를 사냥하듯, 인간사냥이 펼쳐질 앞으로의 상황에도 초향의 부모님은 눈빛을 교환한 뒤 딸과의 인연을 정리합니다.
"딸아, 부디 살아 이 아비와 어미의 신앙을 보듬어라. 그것이 이 부모의 마지막 기대이고 믿음이고 희망이다."
"내 그날 보았던 길상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구나. 부디 어린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고 시댁 어른을 공경하거라. 절대 오늘 이후로 그 어떤 억한 감정도 품지 마라. 어차피 믿음의 증거는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니. 엄마는 하늘에서도 우리 초향이를 위해 기도하마."
겨우겨우 물어 원이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된 초향은 그저 눈물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맨발로 뛰어나온 원이가 초향이를 제 품에 안은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곧 입방아에 내리게 되고 별 수 없이 원이의 아내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죠.
발악에 발악을 거듭한 시어머니는 그저 초향을 시집살이로 괴롭힙니다.
그러다 초향은 임신을 하게 되고 한숨만 푹푹 쉬는 시어머니와 달리 시아버지는 매우 기뻐 며느리를 앞장서서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향의 부모님을 챙겨주었다는 것이죠.
갖은 고문을 받다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써서 시신 수습에 힘을 써줍니다.
만삭의 몸에 애써 슬픔을 억누른 채 썩어가는 부모님을 수습하게 된 초향은, 결국 어떠한 말을 듣고 혼절하게 됩니다.
원이는 초향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초향의 부모님을 수습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시아버지가 며느리 곁을 지키게 됩니다.
이틀 뒤에 깨어난 초향은 시아버지 간곡에 물 한모금을 겨우 마셨지만 원이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주섬주섬 단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른 새벽, 집 터에 장인, 장모를 안치한 후 내려오고 있을 원이와 마주하기 전에 초향은 시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아가야. 용서하거라. 내가 대신 무릎을 꿇으마!"
"아버님, 고마웠어요. 이 세상 잠시라도 거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으니!"
"초향아! 아가야, 우리를 용서하거라. 내 미안쿠나."
……
"아버지. 원이에겐 저를 찾지 말라 전해주세요. 그 초향이는 이제 죽었다고요."
"아가야! 아니 된다. 어찌 그 몸에 뭘 어떻게 하려고!"
"아버지. 저는 억한 마음 하나도 없답니다. 그것이 제가 천주님께 배운 바요. 제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셨으니까요. 아버님. 어머니께도 마지막 안부 전해주세요. 저는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산발된 머리, 핏기없는 얼굴.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초향은 원이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산길을 고집하며 부모님의 고향이 경상북도 청송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눈을 뜨게 된 초향.
아버지 베드로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우애 거길 널찌게(떨어지게) 되었소? 이 가실(가을) 갱분(강변)에 물이 없어 망정이지. 작은 아주매 거기 구디(구덩이)에서 건졌다 아닌교. 어찌 돌삐(돌)에 맞았는지. 이래 눈 뜬 것도 용하다카이."
초향의 인생에 나타난 두번째 남자, 바로 박춘삼이었습니다.
1867년 청송에 초향이가 오고 14년이 지나 1881년 봄, 둘은 조용히 혼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향의 나이는 스물일곱, 박춘삼은 마흔일곱 살이었습니다.
총각은 드디어 우렁각시를 품게 됩니다.
운명이 곧 인연이 되어 춘삼과 결혼한 초향은 기적과도 같은 아이, 세례명 엘리사벳, 딸 송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한 번 잃었었고 나이 서른여덟인데 늦둥이같은 자식이 태어났으니 춘삼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후 춘삼이 죽고 초향과 딸 송이는 서울 경성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책은 초향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송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책에서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다뤄집니다.
첫 번째는 초향, 두 번째는 송이, 세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유화이지요.
사실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앞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초향이 춘삼과 결혼하고 송이를 낳은 후, 첫번째 남자였던 원이가 찾아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말이죠.
순수하게 초향만을 사랑했던 원이, 그런 원이를 보며 참 마음 아팠어요.
더 언급하면 아예 스포가 되어버리니 침묵하겠지만 이 부분 꼭 읽어주세요. 정말 슬픕니다. (눈물 광광)
읽는 내내 전에 읽었던 책들이 자연스레 연상되었어요.
특히 초향과 원이의 이야기는 꼭 소나기를 연상케했죠.
그거 아시죠?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몰입해 읽다 보면 울컥하기도 하고 눈물이 또르르 흐를 때.
F 감성 낭낭한 저는 읽다가 몇 번이고 울컥했었는데 결국 또르르 흘러내리더라고요.
인문/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지만 그 이상으로 소설도 많이 읽고 있는데 전부 소개하진 않고 있어요.
즉, 소설만큼은 찐으로 추천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