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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계, 가을을 노래하다 ㅣ 당시 사계
삼호고전연구회 옮김 / 수류화개 / 2021년 2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렇게 한 계절이 찾아오면 그 시기에 맞는 시들이 절로 떠오른다.
봄과 여름에 이어, 마지막으로 '가을'을 읽었다.
『당시 사계 봄을 노래하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13764404
『당시 사계 여름을 노래하다』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19675671
저자, 강민우, 권민균, 김자림, 서진희, 차영익은 삼호고전연구회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2010년부터 중국 고전을 현대인의 독법에 맞게 번역하고 그 의미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궁정의 가을 저녁 秋夕 _두목 杜牧
은촛대에 서린 가을빛 차갑게 병풍을 비추는데
수놓은 비단부채로 날아드는 반딧불이 공연히 내쫓네.
밤새 궁궐 계단 물처럼 싸늘한데
하릴없이 누워 견우직녀성 바라보네.
銀燭秋光冷畵屛, 輕羅小扇扑流螢.
天階夜色凉如水, 臥看牽牛織女星.
실의에 빠진 궁녀의 쓸쓸함과 처량함이 시에 잘 묻어나있다.
대개 한자의 뜻을 새겨보며 내용을 파악하곤 하는데 책에도 나와있듯이 워낙 시가 함축적인지라 의미 파악이 쉽지는 않았다.
이 시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반딧불이'와 '부채'를 염두해두고 읽으면 된다.
반딧불이가 스산하고 서늘한 곳에 산다는 전제하에 옛 사람들은 썩은 풀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난다고 믿었다.
즉, 반딧불이에서 궁녀의 처량한 처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계절적으로, 부채는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여름에는 쓸모있지만 가을이 되면 쓸모없어진다.
즉, 여기서 궁녀를 부채로 비유한 것으로 볼 때, 조만간 버려질 운명에 놓였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실의에 바진 궁녀에게 있어서 견우직녀성은 희망의 끈으로 엿볼 수 있다.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輕羅小扇扑流螢 (경라소선박류형).
天階夜色凉如水 (천계야색양여수), 臥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두번천이라고도 불린 두목은, 경전과 역사서에 두로 통하였으며 특히 왕조의 치란과 군사 연구에 전념했다.
7언절구로 유명한 그의 시는 역사사실을 통해 개인의 서정을 읊은 영사시가 주를 이룬다.
재기발랄하고 호방하며 만당의 쇠운을 만회하려는 마음을 시로 담아내어, 만당시기에 성취가 높은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가을날 장안으로 가면서 동관역루에 짓다 秋日赴闕題潼關驛樓 _허혼 許渾
붉은 단풍잎 저녁에 쏴쏴 바람에 나부끼는데
장정에서 한 잔 술 마시네.
구름은 태화산으로 힘없이 돌아가고
저녁 비는 중조산을 잠시 지나가네.
나무들은 아득히 산을 따라 검푸르고
강물은 멀리 바다를 향해 고요해지네.
장안성 내일이면 도착하는데
여전히 어부와 초부의 꿈을 꾸네.
紅葉晚蕭蕭, 長亭酒一瓢. 殘雲歸太華, 疏雨過中條.
樹色隨山迥, 河聲入海遙. 帝鄕明日到, 猶自夢漁樵.
여행길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가을에 느끼는 정취가 잘 묻어나는 시이다.
1·2구의 경물에는 시인의 슬프고 처량한 감정이, 3·4구는 걷히는 구름 그리고 잠시 내리는 비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
5·6구는 높은 곳에 서서 관산을 따라 붉은 산 빛이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시각으로, 황하가 발해로 흘러가는 것을 청각으로 표현했다.
7·8구에서는 장안여행이 명리를 추구해서 가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으로 시는 마무리된다.
'水'나 '雨'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습하다千首濕는 평을 받긴 해도, 늦가을 가랑비에 젖은 붉은 낙엽은 가을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간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紅葉晚蕭蕭 (홍엽만소소), 長亭酒一瓢 (장정주일표). 殘雲歸太華 (잔운귀태화), 疏雨過中條 (소우과중조).
樹色隨山迥 (수색수산형), 河聲入海遙 (하성입해요). 帝鄕明日到(제향명일도), 猶自夢漁樵(유자몽어초).
허혼은 만당시기에 영향력이 가장 큰 시인 중 한 명으로, 평생 율시만 지었다고 전해진다.
(율시란, 8개의 구절과 4개의 운으로 된 근체시의 한 형식이다.)
옛 일을 회고하거나 전원을 제재로 한 시를 많이 지었는데 특히 높은 곳에 올라 옛일을 회고하는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한적한 노년을 보내며 【정묘집】을 지었다고 하니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봄, 여름에 이어 드디어 가을까지 「당시 사계」 시리즈를 마무리하였다.
이전에 읽은 봄, 여름과는 달리 시에 함축된 의미가 많아 개인적으로 가을이 조금 어렵긴 했다.
그래도 당시만 다룬 시집을 계절별로 읽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 큰 의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옛사람들이 남긴 문학작품은 물론 유적지나 유산들을 볼 때 항상 느낀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똑똑했던 것인가!
환경도 지금보다 여의치 않았을텐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당시 사계」 시리즈는 순수하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당시를 접해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시'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추천하고 싶다.
읽은 책이 많은 만큼 올리고 싶은 도서리뷰도 많은데, 책상 한 번 앉기가 힘들다.
어제처럼 하루를 다 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오늘도 하루를 온전히 버릴 수는 없어 벌써 느즈막한 오후가 되었지만 채색하다 만 그림부터 빠르게 마무리하고 공부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