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워터프루프북) 민음사 워터프루프북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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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 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 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빗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다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았다.


“얘, 너 힘들었니? “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다 하면서 배우는 거죠. 지영이가 잘할 거예요.”

아니요, 어머니, 저 잘할 자신 없는대요. 그런 건 자취하는 오빠가 더 잘하고요, 결혼하고도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김지영 씨도, 정대현 씨도,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책으로도, 영화로도 항상 대두시되었던 문제가 '페미니즘'에 관련된 것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읽고서 혹은 영화를 보고서 페미니즘 관련된 문제를 제기했다면 그들은 분명 책 속에서 혹은 영화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해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인스타그램이 처음 등장했을 때 호기심에 계정을 생성했고 한 권, 두 권씩 책리뷰를 올리고 중간 중간 일상을 담아냈었다.

그러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한 도서를 읽고서 여느 때처럼 리뷰를 올렸는데 페미니즘 어쩌고 저쩌고를 시작으로 일상과 관련된 글까지도 들먹이며 페미니스트 어쩌고 저쩌고로 테러 아닌 테러를 당했었다.

그 때는 계정을 생성한 것이 너무 초기이기도 했고 SNS를 통해 온갖 험악한 말은 처음 들었는지라 그 사람의 잘못이 물론 100%이긴 하지만 제대로 대응을 못했던 나의 잘못도 약간은 있다.

암튼 그 사건 이후로 일상글도 싹 내리고 한동안 인스타그램 자체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 때, 데인 게 꽤나 뇌리에 박혔었던건지 지금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애용(?!)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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