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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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의 그 경계, 『골든아워 1』

 

 

 

 

 

『하나, 책과 마주하다』

 

우리가 이 생을 살아가면서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이렇듯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그들을 붙잡아주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외과의사 이국종이다.

이국종은 외상외과 의사로서 17년간을 일했고 지금도 쉬지않고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의료 시스템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골든타임'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이 MBC스페셜이였다.

실제 골든타임에 도착한 중증외상 환자들의 대부분은 목숨을 건졌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들은 대부분 죽음에 더 가까워져야만 했다.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골든아워란 60분 안에 중증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하여 빠르게 수술방으로 들어가 치료해야 하는 시간이다.

MBC스페셜을 봤을 때도 참 마음아파하며 눈물이 흘렀는데 또다시 책을 통해 보니 한동안 말문이 턱 막혀 멍하니 있었다.

책에는 그가 말하는 무수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 몇가지만 말해볼까 한다.

어느 초여름 밤, 폭력조직들의 싸움이 벌어져 응급실에는 피 흘리는 조직원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 중 칼을 맞은 한 남자가 있었는데 피를 수혈하면 몸에서 곧장 빠져나갈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출혈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의사들의 헌신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이국종 교수가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느냐였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도 이국종 교수에게는 언제나 걱정거리가 있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였다. 한정적인 중환자실의 침실은 실제 회복되서 일반병실로 올라가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리가 비는 것인데 실제 외상환자들을 수술하고 나서도 중환자실 자리가 부족해 항상 발을 동동 구른다고 한다. 예전에 메디컬 다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중환자실은 간호사들의 집중케어가 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들은 수술하고나서 수시로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때문에 응급실 혹은 일반병실로 갈 수가 없다. 정말 자리가 없게되면 응급실 침상을 대개 병상으로 쓰기도 한다는데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국종 교수는 강조한다. 실제 이 교수가 병원 윗선에 여러 번 의견을 올렸지만 딱히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병원 내부 사정도 중요하겠지만 의사들이 수술과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게, 자리가 부족해 발을 동동 굴리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은 병원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싶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차승원과 유재석이 극한알바 특집으로 탄광에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막장의 개념을 알았지만 실제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더 와닿았었다.

막장, 삶이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는 곳을 말한다.

이국종 교수는 말한다. 병원에도 막장은 존재한다고.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수술방으로 들어서는 그 곳이 바로 막장이라고.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한 남자가 8층 높이에서 추락하여 출동한 119구급대가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 곳은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나 장비가 전혀 없는 상태였는데 필요한 각종 검사를 다 해놓고선 중증외상센터로 보냈다.

사고가 자정쯤 발생했고 이국종 교수에게 환자가 온 시간이 새벽 3시가 넘어서였다. 출혈이 심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환자의 상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환자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위해 보호자들을 만나러 갔는데 어린 아이들 둘뿐이였다고 한다.

자세한 말을 할 순 없었다. 중학생 여자아이와 초등학생 남자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엄마는 어디 계시니?'라고 묻자 '엄마는 없어요.'라고 덤덤히 말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 교수는 그저 '아빠가 좀 많이 아프시단다.'라는 말 밖에 할 순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아이들의 고모라는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두 남매의 아버지는 다음 날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이국종 교수는 여기저기 사회기관에 도움을 청해도 명쾌한 해결책을 들을 수 없자 허 위원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몇달 후, 국회의원 회관에서 회의가 있던 날 허 위원을 만나 들은 이야기는 가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고모라고 한 사람은 바쁜 남매의 아버지를 대신해 돌봐준 이웃주민이였고 뜬금없이 엄마라는 사람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려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아이들을 다시 할머니네에 맡겼다는 것이다.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았다면 분명 두 아이의 아버지는 죽음에 가까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처음 이송되었던 병원에서 바로 중증외상센터로 보냈다면, 만약 이송되었던 병원에서 수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각종 검사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증외상센터로 온 환자들은 노동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어린 남매가 받았을 상처에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니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허나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매달려 있는 그들을 어떻게든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것이다.

 

중증외상센터로 온 환자들은 살거나 혹은 죽어서 수술방을 나간다.

환자에게 단 1%의 확률이라도 존재한다면 의료진들은 그 1%의 희망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

이국종 교수님의 노고에 존경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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