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미셀러니 -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
그레이엄 하딩 지음, 차재호 옮김 / 보누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소망은 비슷하겠지만 시대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사회에서 바라는 교양은 다르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의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온갖 학문에 어느 정도 수준의 잡다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반면 현대의 교양이 있다는 수준은 르네상스 수준의 만능인에는 훨씬 못 미치는 정도이지만 어느 정도의 상식 수준을 필요로 한다. 시사적인 이야기나 전문적 경제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화를 주도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한 항목이 추가되었다.

바로 '와인'이다. 술도 '주도'라는 것이 있어서 마시는 데에도 법도가 있다지만 여태까지는 그저 쉽게 즐기면 되는 문화였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이고 연장자와 마실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와인을 잘 마시고 즐길 줄 알고 와인 라벨을 아무렇지 않게 읽으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해댈 수 있지 않으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와인도 그저 술의 하나고 다른 술이라고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유난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화 '식객'에 나오는 와인에 관한 이야기에도 이런 부분이 있었다. 와인도 술이니 그저 즐겁게 마시면 될 것을 전문가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와인에 대한 서정적 묘사를 하려 들고 마실 때 꼭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입모양을 한다든지 잔을 들고 색이나 향기를 억지로 느껴보려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것처럼 와인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와인을 마셔보았자 햇빛 찬란한 포도밭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와인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화고 술은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마시면 좋은 정도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인상이 더욱 강했다. 더구나 술을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는 와인이 하나의 열풍처럼 번지는 모습은 묘하기까지 하다. 와인을 즐기지 않는지라 십 만원이 넘는 와인을 받아도 전혀 즐겁지 않은데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하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몰리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와인 미셀러니'는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책이다. 와인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때 입에 올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어용 주제 생성에도 풍부하지만 와인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모여 있기 때문에 읽는 즐거움도 있다. 한 페이지 남짓한 짧은 이야기가 조밀하게 모여 있는데 첫 번째 등장하는 와인이야기부터 '마리화나 와인'이라고 한다. 거기에 친절하게도 그 마리화나 와인의 조제법까지 적혀 있다. 꿀을 첨가한 달콤한 와인인데 문제는 마리화나도 넣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마디가 추가되어 있다. 마시거나 만들면 실정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충격의 마리화나 와인으로 시작된 책은 와인을 주제로 게임을 하는 와인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책의 표지에 쓰여 있듯이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가 모여 있어서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반 상식을 추가하는 부분도 많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다른 과일을 가지고 와인을 만들기도 했는데 주로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 발달하게 된 것은 포도가 다른 과일이나 야채에 비해서 발효가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와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의 경우 쌀로 빚는 와인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와인은 포도주라고 단순히 생각했던 터라 곡주가 와인으로 나와 있는 점이 신선했다.

그리고 최근 드라마 제목으로 등장한 '떼루아'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단순히 단어적 의미는 땅이라는 것이지만 와인의 원료인 포도가 성장한 토양이나 기후 등 환경적 요인을 전부 합쳐서 떼루아라고 지칭한다는 부분을 읽고 그게 왜 제목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실제로는 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소설에 와인을 여러 번 등장시키고 나름대로 중요한 소재로 활용한 이안 플레밍에 대한 것이나 포도원 토지 가격에 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형성된 지나치게 아는 척하면서 마시는 와인 문화가 거북스러웠는데 역으로 와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와인에 대해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저 즐겁게 마시는 편이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변함없지만 말이다. 술은 결국 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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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황금 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살와 바크르 지음, 김능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세계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면 백 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 이야기가 유쾌한 것이라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게 만들어져 있다. 질투에 가득 찬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불공평함을 토로해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시트콤이라면 하늘에서 비나 깡통이라도 떨어져 내리련만 현실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그 사연의 당사자가 불만이나 애통함에 가득차 있을 뿐인 것이다.

여기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이 있는 장소는 여성 전용 교도소이고 나라는 이집트, 아랍 문화권이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상상력이 소비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자신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으니 그 겉이라도 이해하려고 시도해보려면 엄청난 양의 상상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랍 문화권에 큰 관심이 없었다. 중동 분쟁이나 하마스에 관한 강의는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고 아랍 문화권에 살고 있는 여성에 대한 것도 히잡을 쓰고 구속적인 삶을 사는 여성들이란 생각을 품은 것이 전부였다. 하기야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가진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니 그리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 '황금 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의 삶이란 지나치게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거의 보편적이고 서로 부딪히는 문명이 있다는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물론 책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들이니 그 지역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면이 더 많겠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채로운 것을 넘어서 충격적일 뿐이었다.

책의 제목만을 들으면 한 편의 역사소설이나 서사시가 나올 것 같지만 한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의 이름은 아지자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의 뛰어난 미모 덕분에 결점이 되지 못했다. 아지자의 어머니는 부유한 남자와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남편이 죽고 어린 딸과 남게 된 아지자의 어머니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아지자의 새아버지는 아름다운 아지자의 어머니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간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아지자의 어머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지자 역시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새아버지에게 헌신적으로 임했다. 허나 아지자의 새아버지는 아지자를 딸이 아니라 애인으로 원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아지자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몰랐고 새아버지의 충실한 애인 노릇을 한다.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적어 놓고 아무리 다시 생각을 해봐도 할 말을 '우웩'일 뿐인 역겹고 끔찍한 상황이었는데도 아지자는 그 때를 행복하고 안온한 때로 기억하고 있었다. 심각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자신이 피해자임을 모르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는 섬뜩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어른이 되고 후에 살인자가 되어서 여성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런 이후에도 그 소녀는 그녀가 결코 처해서는 안 되었을 끔찍한 상황을 추억인양 떠올린다. 그러면서 자신을 여신 같이 다른 사람에게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면서 후에 자신이 하늘로 오를 황금 마차를 탔을 때 데리고 갈 사람들을 하나하나 고르기 시작한다. 불쌍한 여인이 망상에 빠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여러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원치 않는 관계에 빠지고 그것을 애정이라고 각인하게 된 여자 아지자의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아지자가 자신의 황금 마차로 구원할 불쌍한 다른 이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드러나는 속사정을 다루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해야 했던 여자라든지 자신의 끔찍한 부부관계를 끝내기 위해 남편을 죽인 여자, 명예살인으로 큰 충격을 받은 소녀 등 어떤 여성의 이야기든지 읽는 사람을 충격으로 밀어 넣는다. 소설 속의 인물이라 해도 그들이 지은 죄는 죄일 뿐인데도 그들을 동정하게 되고 아지자의 망상이 현실이 되어 그들이 황금 마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 교도소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라니 결코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 번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아랍 문화권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란 점은 좋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이 통하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 기가 막힐 때가 많았던 점은 제외하고 말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아랍 문화권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신문이 아니라 소설로 읽게 된 아랍 문화권 여성의 삶은 독특하다 못해 충격적인 면이 있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아랍 문화권에 관심이 큰 분이나 30대, 40대, 50대에 권하고 싶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남동생은 누나를 차에 태우고 갔다. 그녀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자주 그 남동생을 안아주었고 그의 옷을 빨아주었으며, 심지어 젖도 안 나오는 자기 젖가슴을 물리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며칠 동안은 어린 남동생에게 아직도 젖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 며칠 밤 동안 엄마 젖을 찾으며 울어대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괴로워했었다.
그 동생이 누나를 싣고 갔다.
(P288~P289 명예살인을 하려는 가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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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다. 하지만 매운맛이라는 감각이 사실은 통증이듯이 자극을 계속 받는 삶은 어떤 의미로는 피곤하다. 그래서 염세주의자들은 삶은 끊임없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구원일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공포를 구원으로 여길 만큼 지친 사람들이라니 묘하기는 하다. 허나 막상 죽음을 앞둔 순간에 소크라테스처럼 초연하게 독배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괴테처럼 죽기 전에  '더 많은 빛을'이라는 말을 해보고도 싶고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믿는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서 죽음에 초연할 수 있으면 싶지만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면 그저 머릿속에 생각만 많은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것을 강요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니 치열하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좀 더 치열하게 살았다면 온갖 쓸데없는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일도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뜨끔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이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제목만으로도 사람을 움찔하게 한다. 일단 반 농담으로 그리고 실상은 한탄으로 자신은 유죄구나 하는 말을 하게하고 마음속으로는 짜증을 내면서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의 작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세밀한 감각으로 그려내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다. 도발적인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따뜻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그녀는 특유의 필치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자기계발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문구가 하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행복해지라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타인과의 관계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여자가 요정을 만난다. 요정은 그녀에게 단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여자는 소원을 말하는데 그 소원은 바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후 여자는 마을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그녀가 죽기 전 다른 사람들은 행복의 비밀을 묻는다. 여자는 웃으면서 행복의 비밀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눈을 감는다. 행복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잡으려면 타인에게 상처를 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전부를 던져야 할 때가 많다. 삶 속의 많은 일들을 그저 무의미한 자극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미련한 일이 없겠지만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서는 온전히 사랑하기도 사랑받기도 그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상처입지 않을 정도만 사랑했고 사랑받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행복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제야 약간은 거슬렸던 제목이 조금씩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일에 자신을 전부 던지지 않으면 그 소망을 이루기 어려운 일이 많다. 성공적 결과를 얻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일에 치열하게 임하지 않았다면 후회가 남는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아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 것을 그리고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할 것을 충고하는 첫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녀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차분하게 보듬는 내용의 드라마를 쓸 수 있게 된 여태까지의 인생이 책장과 함께 흘러간다. 돌아가신 이후에는 너무나 사랑했지만 애증도 없지 않았던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드라마를 쓰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글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일은 익숙한 동시에 낯설고 편안하면서 동시에 불편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것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가장 묘했던 것은 글이 따뜻함을 풀어낼수록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날카로움이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섬세한 감성이라고 해야 할 지 글 한 줄 한 줄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예민함은 이 책 전반에 기묘한 감흥을 느끼게 했다. 물론 한 권으로 한 사람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사람만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것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허나 이 책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이는 작가의 에세이라 더 좋았다. 다만 좀 더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이 책을 볼 때마다 찔리는 마음을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알고 난 이후 연탄재를 발로 찰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삶에 그리고 사랑에 치열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게 하더군요. 겨울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에세이라는 점이 더 좋았구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에세이가 떠오르네요. 여성 작가가 쓴 감성적 에세이인데다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 들은 내용이어서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20, 30대 여성에게 권하고 싶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도록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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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혼자놀기 -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강미영 지음, 천혜정 사진 / 비아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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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간다. 군중 속의 고독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목적지가 같은 것이 아니듯이 누군가가 함께 태어나 함께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쌍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생물이고 타인 속의 자신도 자신의 일부이기에 그 점은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 속의 '혼자'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삶 속의 진짜 즐거움을 찾아내기 힘들 수가 있다.

항상 누군가가 함께 해야만 즐거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서 '자아 찾기' 여행이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하기야 자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그런 것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사람에게는 자아 찾기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자아가 강한 사람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의 진짜 즐거움을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해도 사람들은 혼자가 되는 것을 거북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잠깐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시도한다. 발작이 일어난 것 마냥 눌러대는 문자 메시지 일수도 있고 영화관에서조차 다물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입일 수도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혼자 밥을 먹는 일이다. 사람의 삶을 유지하려면 영양분 섭취가 필수다. 결국 밥을 먹지 않고 생을 유지하기는 어렵고 사람들이 밥을 먹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밥을 먹는데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 바로 누군가가 혼자 밥을 먹을 때의 일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무슨 죄 짓는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빤히 그 사람을 쳐다보고 그 사람도 은근히 멋쩍어 한다. 그런 불편이 싫어서 밥 먹을 때만 되면 그렇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불러서 먹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음식을 먹는 일을 감수하거나 아예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듣고 싶은 과목이 있어서 혼자 강의를 듣게 된 터라 강의가 끝나고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친구가 왠지 혼자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연유를 묻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점심을 혼자 먹는데 주변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힐끔거리더라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이상했는지 계속 자신을 힐끔거리는데 자신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 사람들을 관찰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도리어 주변 사람들이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한다. 거기에 갑자기 웬 모르는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자기가 혼자 먹으려니 너무 무안해서 그런데 같이 앉아서 먹으면 안 되겠냐고, 마침 책도 안 가져와서 더 곤란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혹시 거절당해서 혼자 먹게 될 까봐 안절부절 못하면서 말이다.

전혀 낯모르는 타인에게 같이 밥을 먹어달라고 청할 만큼 혼자 밥 먹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시대라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점점 개인주의화 되는데도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작아지지만 보이지 않는 연결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결된 세상이 되었다는 말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지나친 연결로 인해서 혼자 있는 것도 즐기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어째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식당 운영하는 입장에서야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손님이 그리 달갑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 '혼자 놀기'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책이다. 오히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운 면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혼자 노는' 시간을 어색해하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나치게 일상적이지만 혼자가 어색한 사람들에게는 비일상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함께 하는 일은 즐겁다. 자신이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알던 사람의 모르는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의 신선한 생각에 감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더 즐겁다. 자신의 수많은 생각의 편린을 정리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모든 에너지를 자신에게 들여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간으로 인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앞으로 보낼 시간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더 좋아할 수도 자신에게 더 실망하게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의 주역인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귀중하다. 사실 그냥 뒹굴 거려도 상관없다. 그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점점 잊게 되는 허나 잊게 되면 크게 후회할 혼자 노는 시간의 즐거움을 되새겨 주는 '혼자 놀기' 나쁘지는 않았다. 이 책이 자신이 홀로 보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할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자신이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그것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혼자 보내는 시간을 껄끄럽게 생각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혼자 보내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좀 더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괜찮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남들이 뭐라던 나만의 사생활이 있고 나만의 행동양식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꺼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내 방에서만큼은, 한 달에 한 번쯤은 모든 걸 탁 풀어놓은 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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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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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는 어찌 보면 끔찍한 생물이다. 어제 다른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가 어느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다. 지구를 '우리 행성'이라고 지칭하는 인류에게 냉소를 퍼붓고 인류가 죽어야 지구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외계인이 등장했다. 불행하게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범고래나 고양이도 자신의 유희를 위해 펭귄이나 쥐를 죽인다지만 인간만큼 효과적으로 동족을 죽이는 생명체도 드물다. 소설 '드래곤 라자'의 엘프 이루릴은 이런 말을 한다. 엘프가 숲을 거닐면 숲과 동화되어 그저 지나갈 뿐이지만 인간이 숲을 거닐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보다 자신에 맞추어서 환경을 바꾼다.

더구나 그런 노력은 환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김어준의 책 '건투를 빈다'에서도 이런 대목이 있었다. 상담자인 여성은 자신의 연애는 싸움을 기반으로 한다고 한다. 싸워가면서 관계도 돈독해지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남자친구를 변화시켜 나갈 생각이라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진저리를 치지만 원래 자신의 연애는 이런 방식이며 그것은 지극히 건강한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짝사랑이 괴로운 것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해서라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자신의 구미에 맞추어 변화시키려는 방식이 '건강한' 것인지는 의문이 생겼다.

하물며 그 변화의 극단에는 죽음이 있다. 인간은 상대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주로 악당이 내뱉는 대사긴 하지만 미국 드라마 속의 악당은 이런 말을 한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전쟁터에서 수십 아니 수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쟁과 평화 중에 어느 것이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평화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가 바람직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하는 전쟁은 왜 사라지질 않는 것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 책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쟁은 예전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아수라장인 전장을 거닐며 패튼 장군은 전쟁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신도 무슨 조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의 제목은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말하는 평화가 비정상적이라고 한다. 전쟁터 속에서 군인들이 살아 돌아오면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그래서 군인들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전쟁터에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기에 당연한 혼돈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평화야 말로 전쟁이 잠시 멈춘 비정상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혐오하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은 전쟁을 너무나 싫어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야 말로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런 감정은 사라져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 충격적이다. 매일 많은 매체에서 전쟁은 일상적으로 소비된다. 단 한 명의 죽음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끔찍한 일인데 수만 명의 죽음은 단순히 수치화되어서 그냥 지나치게 된다.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전쟁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찰나에 전쟁에 대해 분석하는 책은 충격적이지만 논리적인 면도 있었다.

인간 본성 속에 죽고 죽이려는 욕망이 있지 않다면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던 것이다. 단순히 전쟁의 원인이 타인의 것을 원하는 탐욕이라고 보기에는 그 전쟁은 지나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말이다. 전쟁은 정상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무슨 짓을 하던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암담하지만 납득이 가기는 하는 주장부터 전쟁이 숭고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그 해방적 초월성을 인정하고 그 소명을 받아들이라는 절대 납득하기 싫은 내용도 있었다.

자주 잊게 되지만 우리나라는 휴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책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좀 더 흥미로웠다. 머리로는 납득이 가지만 가슴으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꽤나 들어 있었지만 왜 전쟁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지 인간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을 행할 수 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제목은 물론이고 표지까지 찜찜했지만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은 나쁘지 않았다. 허나 이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전쟁은 가능한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도 타인의 죽음보다는 평화를 바라게 되는 것도 인간의 모순적 본능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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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 2008-12-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훌륭한 리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안 2008-12-25 16:17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bookmark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