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웨이 - 세계는 지금 새로운 리더를 요구한다
달라이 라마, 라우렌드 판 덴 마위젠베르흐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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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를 추구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바라는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라는 자리는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성선설을 믿는 사람은 다를 지도 몰라도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인 생물이고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돕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과 연결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이정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 '리더스 웨이'는 진정한 리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와 마이젠베르흐라고 한다. 한 명은 세계적 종교 지도자고 한 명은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이다. 두 사람은 리더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해 전혀 다른 표현으로 답한다. 허나 그들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비폭력을 주장해 온 종교 지도자와 자본주의의 핵심 같은 경영 컨설턴트의 접점은 없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의외의 것이었지만 읽어 나갈수록 논리적인 연쇄 고리가 맞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목표는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첫 장에 들어서면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진정한 리더는 바른 눈을 가지고 바른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라'는 말은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었다. 어떤 일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판단한다는 것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서는 어렵다.

더구나 감정에 지배되는 뇌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자신이 잘못한 일을 반성하는 수준을 넘어 자학의 정도까지 반복하게 될 때가 있다. 그 일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바르게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마음의 평정은 사라진지 오래고 판단하는 눈은 멀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통한 마음의 수련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움찔하게 되지만 딱히 복잡한 것은 아니고 복식 호흡이나 산책을 하는 정도의 것이라서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기분 나빴던 일을 가지고 계속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은 자신이 깨뜨린 유리조각을 한 손에 부여잡고 놓지 않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나왔다. 한 손에 잡은 유리 조각을 수시로 꽉 조이니 손에서 피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마침 며칠 전에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이 머리를 스쳐가고 있던 터라 이 비유가 상당히 기억에 남았다. 동시에 그 이미지를 상상해보니 며칠째 붙잡고 있던 일을 마음에서 털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칭찬이든 욕설이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해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당하고 나면 방어적인 반응이 나오기 쉽다. 같이 욕설이 나오거나 혐오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관찰 이후에 객관적 판단을 내리라니 당혹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바른 일을 하라고 한다. 당장의 이익을 쫓아서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반드시 그것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도덕적 원칙을 세우고 원칙을 관철하라는 조언도 함께 있었다.

'바른 눈과 바른 일'이 리더의 조건으로 일관되게 계속 제시된다. 처음 접했을 때는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 납득하게 되었다. 사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어려울 지도 모른다. 또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한다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배려하는 리더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하기야 바르게 행한다는 것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리더의 첫째 조건은 명석한 두뇌나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겸손'이라고 한다. 겸손한 리더야 말로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며 상대가 행복해지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이상적인 리더라고 할 수 있었다.

시작은 리더란 무엇인가로 이후는 리더가 어떻게 행해야 하며 적절한 리더란 어떤 자인지 사례가 제시 된 것이 흥미를 더했다. 리더란 길을 막고 있는 통나무를 함께 치워보자고 제안하는 사람일 것이다. 단 한 마디지만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할 생각이 없었다면 제안하지 못했을 말이며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면 꺼내지 못했을 말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조국에서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업가는 세계적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른 일을 행하면 부도 행복도 따라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부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리더이며 '바른 눈과 바른 일'이라는 두 가지 리더의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킨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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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를 리뷰해주세요.
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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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갓집에 가는 길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러 이동 하는 참에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구걸을 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내 눈높이는 마침 남자의 손의 위치에 있었다. 눈에 들어온 남자의 손에는 손가락이 2개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없는 손의 부분은 맨질맨질해 보였다. 뭉툭하고 퉁명스레 내놓은 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처음 인식하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장애인을 만나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가서였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재활을 위한 곳이었는데 그 곳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기묘한 기분은 어느새 같이 웃는 것으로 바뀌었고 어린 시절 동안 품고 있던 두려움을 그제서야 떨쳐낼 수 있었다. 사실 장애인을 처음 만난 것은 그 때가 아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것도 역시 그 때가 아니었을 것이다. 거리를 가다보면 수많은 장애인과 스쳐지나가게 된다. 다만 개인적 교류가 없기에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무리를 지으려면 소통하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동물이었다면 타인에 대한 관심은 좀 더 희박해졌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개인 간의 유대가 멀어진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소통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잘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잘 짜여 있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좀 더 섬세한 신경을 요구하는 장애인과의 교류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만큼 무신경한 말이 누군가에게 칼날처럼 박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강제로 일어났다. 인간이 자신 말고 가장 신경을 쓰는 대상인 자식이 장애아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일어났다. 이 책 '아빠, 어디 가?'에서는 두 명의 아이 매튜와 토마를 둔 장 루이 푸르니에의 일상을 담고 있다. 냉소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푸르니에는 처음 매튜가 태어났을 때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완벽하게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머리를 가누지 못했고 배가 고파도 보챌 줄 도 모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매튜는 성장한 다음에도 아빠인 푸르니에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한다.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버지를 두고도 글을 읽지 못하니 아빠가 낸 동화책이라고 알아볼 일이 없는 것이다. 입에서 내는 소리라고는 자동차 소리를 흉내 낸 것뿐이었다. 후에는 척추도 구부려져서 몸을 유지하기 위해 금속으로 된 보정기구를 입힌다. 씻기기 위해서 보정기구를 벗길 때마다 들어나는 몸은 날개 없는 새의 그것처럼 변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정기구도 척추를 지탱하지 못하자 푸르니에는 큰 아들 매튜의 수술을 결정한다. 매튜의 척추는 펴졌지만 그는 죽고 만다. 이 때 푸르니에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공을 던진 다음 공을 주워 달라고 부모에게 오는 것만이 소통의 길이었던 매튜가 이제 공을 주워 줄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공을 주워 달라고 의사표시를 할 때면 부모가 손을 잡고 공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니 부모의 손을 잡기 위한, 교감하기 위한 유일한 행동을 생각하면서 아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가는 곳을 말해줘도 계속 '아빠, 어디 가?'냐며 묻는 토마만이 남았다. 토마는 현재 의료시설에 들어가 있는데 아빠를 알아볼 때마다 하는 말은 '아빠, 어디 가?'뿐이다. 푸르니에가 하는 답변을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은 아는지 끊임없이 그에게 같은 질문을 해댄다. 두 장애아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문제는 결코 원치 않은 선물이고 집어던지고 싶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삶에 지쳐가지만 푸르니에는 자신의 냉소적 유머를 고수한다.

아들들의 머릿속에 지푸라기가 들어 있다고 하고 방에 아이들이 없자 보모에게 아이들을 창밖으로 던져 버렸느냐고 묻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불편해 하면서도 화제가 없으면 그가 장애아의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그가 그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해주길 바란다. 우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자신의 작은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웃을 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이를 사랑할 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에 혹시라도 글을 읽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설레고 바다를 싫어해서 그것을 피할 묘수로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면 그래도 잔머리를 부릴 줄 아는구나 하고 감격한다. 무겁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따스한 이야기 '아빠 어디 가' 인상 깊게 읽었다. 이제 푸르니에는 토마에게 어디에 간다고 대답해 줄지 궁금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장애아를 둔 아버지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너무 무겁지 않게 그리고 가슴 따뜻하게 펼쳐진다는 점이에요.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것이 특징이구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같이 온 '굼벵이의 노래'의 경우
사고로 중증 장애인이 된 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빠 어디 가'는 장애아를 키우는 아버지가 본 세상이라면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의 시각에서 본 책이라 또 다른 느낌이네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자신이 보던 세상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나
다시 생각하는 면이 있어서 '누구나' 읽어도 좋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장애아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야."
웃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가 아니다.
이런 하늘의 선물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아이구!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P43)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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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연쇄살인의 끝 - DNA 과학수사와 잔혹범죄의 역사
김형근 지음, 한면수 감수 / 글항아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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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의 첫 권인 '주홍색 연구'에서는 선명한 지문이 주요 증거로 등장한다. 정작 홈즈는 시큰둥했던 지문 증거에 경찰들은 법석을 떤다. 당시만 해도 지문을 통해서 범인을 검거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기술이었을 것이다. 한 때는 범죄자의 귀 모양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었다. 지금에야 거의 흔적도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분명 지문은 범죄수사에 요긴한 증거이기는 하다.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장소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지문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로 나온다. 물론 가족들의 지문을 제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문이 중요한 증거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그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이제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의 몸에 손을 대도 지문이 남는다고 하지만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있었다면 지문은 남지 않는다. 더구나 부분 지문의 경우에는 증거로 삼기에 불확실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니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 수사관들은 분투할 수밖에 없다. 더 확실한 증거로 마음의 짐을 덜려는 것이다. 만약 수사관으로 일한다면 가장 가슴 서늘한 일은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피의자가 범죄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DNA에 대한 것은 하늘이 내린 동아줄과도 같다. 지문이 아직도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DNA는 범인의 머리카락부터 체액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검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지문은 남기지 않더라도 한 방울의 체액이나 체모를 남긴다면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더구나 같은 DN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60억분의 일이라고 하니 DNA가 있다면 엉뚱한 사람을 잡아넣을 확률은 대폭 줄어든다. 어디까지나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이지만 동기가 있고 범죄가 발생한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으며 현장에 DNA가 있다면 진범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제 범죄수사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된 DNA 과학수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DNA 과학수사의 역사와 그로 인해서 잡을 수 있었던 범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초의 과학수사는 영국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람의 DNA를 각각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과학자가 영국인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한적한 장소에서 여중생의 시체가 발견된다. 조사 결과 소녀는 성폭행 뒤 살해된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소아성애자의 소행으로 보고 폭력적 전과가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남자는 끝내 자백을 하고 형을 살게 되었지만 문제는 진범이 그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경찰은 수세에 몰리게 되고 인근 주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 몇 천 명이 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혈액을 채취해서 DNA 검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DNA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지문에 비해서 등록된 것도 아니어서 용의자의 혐의를 확실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론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 영국 경찰은 몇 천 명을 대상으로 DNA 채취를 시도한 것이다.

범인은 엉뚱한 일로 밝혀졌다. 진범은 지레 겁을 먹고 자신 대신에 혈액 검사를 받아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부탁을 받아들인 친구는 그 사실을 이리 저리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유독 한 여성이 수상하게 여겨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진범이 검거된다. 결국 진범을 잡기는 했지만 최초의 DNA 수사는 다소 우악스럽게 전개된 셈이다. 엉뚱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서 수사하고 형을 살게 했으며 이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자 몇 천 명 단위의 사람들에게 혈액 검사를 받게 한다니 좀 놀라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DNA 과학수사가 유용하다는 확증이 생긴 셈이었다. 이후 DNA는 애인의 혈관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투약한 의사를 잡아들이게 되기도 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형되게 된 남자의 무고함을 밝혀주는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논란이 많은 루이 17세와 아나스타샤의 행방에 종지부를 찍었다.

허나 어디까지나 DNA 과학수사는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이 차가운 진실을 밝혀주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 숨은 다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사기꾼이었을 사람을 아직도 왕가의 후손이었다고 믿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수사를 하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의 손에 있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되어 준 DNA를 바탕으로 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주는 것도 사람의 몫인 셈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사람이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이며 가장 오래된 죄 중에 하나인 살인이 없어지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달한 기술은 점차 그 죄의 진상을 명확하게 해 줄 것이다. 언제나 돼야 끝날지 알 수 없는 기술과 범죄의 싸움, DNA를 단지 친자확인용으로만 사용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결코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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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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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드라마 '로 앤 오더 : 성범죄 전담반'을 보다가 놀란 기억이 있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말한 남자는 패스트푸드점의 점장에게 직원이 도둑질을 했으니 사무실로 데려가서 옷을 전부 벗기고 수색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둑이라고 의심이 가더라도 점장은 직원에게 옷을 벗으라 요구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점장은 경찰이라는 남자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 결과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셈이므로 진짜 경찰이 도착하여 체포되었다.

단 한 통의 전화, 경찰이라는 말의 권위를 믿고 죄를 행한 것이다. 피해자인 여직원이 제발 그만둬달라고 애원했는데도 말이다. 전화를 걸은 범인 쪽에서는 그런 행동을 한 인간이야말로 추악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도둑으로 몰린 직원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안 된 것이지만 평소에 그런 추한 욕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간단히 조종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그런데 심지어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어떤 남자가 패스트푸드점 70군데에 전화를 걸어 같은 일을 벌였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점장은 자신은 경찰의 말에 따라 정의를 실행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 것이다. 물론 선택은 전화를 받은 점장이 한 것이고 그의 행동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상황에 따라 인간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드러낸다고 이 책 '인간의 두 얼굴'에서는 말하고 있다. 자신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함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에 따라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실제 실험에서 안과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의사가 엉뚱한 행동을 시켜도 사람들은 대개 그대로 했다고 한다. 권위자의 말에 따르게 된 것이다. 그 권위조차도 인간이 부여한 것인데도 말이다. 거기에 길에서 3명의 사람이 하늘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자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고 한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탈출을 할 수 있었던 10분간 승객들이 나오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생물이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생명에 위협을 준다니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비슷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고 한다. 5명에게 설문지를 풀게 하고 연기를 넣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피실험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설문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반면 혼자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보다 집단으로 있는 것이 더 위험했던 셈이었다.

이처럼 사람은 상황에 휘둘린다. 70%이상의 사람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이 나서 연기가 들어와도 다른 사람이 나가려 하지 않으니까 별일 아니겠구나 하고 판단하는 뇌라니 무서워졌다. 그렇다면 사람은 항상 상황에 지배되는 것일까. 인간이 반대로 상황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황에 지배되는 인간이 보통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지배하는 인간을 흔히 영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에 선로로 떨어져 끼여 버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33톤의 지하철을 미는 대다수의 사람은 전부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밀어보자고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이야 말로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외치자 두 번째 사람이 혹시 하고 가세하고 세 번째 사람이 돕자는 마음으로 손을 보태면 그 순간 3명은 집단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휘둘리는 70%의 보통 사람들이 가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단 한 마디를 외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 된다고 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누군가가 구해주겠지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드는 사람은 그 순간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니래도 다른 사람이 구해줄 것이라는 방관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상황에 휘둘릴 수도 지배할 수도 있다. 단 한 마디, 먼저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악은 평범하다고 한다. 누구든 악에 휘말릴 수도 있고 마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상황에 지배되어 무수히 많은 양떼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둠은 너무 가까운 반면 '그 한 마디'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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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를 리뷰해주세요.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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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먹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먹는다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서운 기세로 늘어나는 체중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은 음식들은 사람의 식욕을 충족시키고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특히 빵의 경우 사람들이 흔히 먹는 주식 중에 하나다.

식감도 그렇지만 그 향긋한 냄새가 사람의 발길을 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이들 고민을 해결할 빵이 있다면 그 빵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빵집의 운영자는 마법사였다. 마녀의 화덕까지는 아니라도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빵집이 동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빵집의 단골손님이 빵을 싫어하는 소년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 책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마법사의 빵집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소년은 그 빵집의 주요 고객이었다. 그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소년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바로 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새엄마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생모는 그에게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가 어린 시절 아이를 버렸던 것이다. 프로작을 복용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정신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버려진 아이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다 주머니를 뒤지니 보름달 빵이 있었고 그것을 조심스레 먹었던 것이다. 후에 아버지가 그를 데려 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버려진지 거의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또한 그 일이 있은 이후 그는 말을 극단적으로 더듬게 되었다. 글이 있으면 또박또박 읽을 수 있지만 그저 말로 하려면 의사소통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런 마당에 또 빵을 사먹는다니 의아하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엄마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재혼을 강행했고 친 엄마에 대한 따뜻한 정이 있던 것도 아닌 터라 그는 그것을 방관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새 엄마는 무희라는 딸을 함께 데려왔다. 나이차가 꽤 나는 편이라 그 아이와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새 엄마와의 관계는 점차 서먹한 것이 된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무심한 탓이었다. 아니면 새 엄마로써 친해지고 싶었는데 다가오지 않는 아이가 짜증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 태도는 어른스럽지 못했고 소심한 편이었던 소년은 당연히 새 엄마인 배 선생을 피한다. 같이 식사하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매일을 빵으로 때운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빵집 주인이 그에게 실없는 소리를 던진다. 소년이 집은 빵에 아기의 간 말린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소년은 그 말을 실없는 말로 듣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생긴다.

동생 무희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처음 지목된 사람은 유아원 교사였지만 그는 혐의를 부인하고 무희는 끝내 오빠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말을 하라고 다그치는 엄마를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 의미 없는 행위가 악의가 되어 주인공을 덮치고 그는 새엄마에게 얻어맞는다. 사실 덩치로 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터지만 마음이 약한 소년은 매를 맞다가 도망친다. 그를 더 상처 입혔던 것은 아버지가 그 상황을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쫓기듯 달려 집을 나온 그는 피할 곳을 찾아 빵집으로 뛰어든다. 그 곳이 24시간 열기도 하지만 매일 가다시피 하는 터라 익숙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인의 실없는 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었던 탓이 가장 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대뜸 뛰어들어 숨겨 달라고 말하는 소년의 말에 주인은 그를 오븐 속으로 밀어 넣는다. 마녀, 아니 마법사의 화덕 속으로 뛰어드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마법사, 새, 소년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위저드 베이커리로는 수많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주문을 하고 그 대가를 결코 치르려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인데도 말이다. 소년은 마법사와 소통하기도 하고 주로 이기적인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부당함에 맞설 힘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법사의 빵집에 들어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성장해가는 소년이라는 면은 판타지적인 면인 강했지만 그 손님들이 가진 이기심은 섬뜩한 것이었다. 더구나 소년에게 씌워진 누명의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은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의 것이었다. 독특한 소재에 환상과 공포를 버무린 성장소설이라 놀라운 점이 많았다. 성장소설치고 꽤나 어둑한 면이 강하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소년은 선택을 하고 그에 따라 나오는 두 가지 결말이 각각 나와서 끝까지 흥미 있게 읽었다. 소년은 마법사의 빵집에 들어섬으로써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누구나 꿈꾸던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줄 빵이 있다니 정말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결코 그런 빵집이 실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또 왜일까.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성장소설에 공포와 판타지를 녹여 냈다는 점과
두 가지 결말이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마법이 담긴 빵이기는 하지만 빵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과 마법사의 빵집에 들어간 소년이 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요리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거리의 소년이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 있는 <비밀의 요리책>이 떠올랐구요.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 성장을 한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사는 이유>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10대 후반부터 누구나
여동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재부터 파격적인 것이 많아서 적어도 10대 후반은 되야 읽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성장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통을 겪고 있는 10대 후반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20대 중반에게 추천하고 싶구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는 신발을 신은 채 약한 훈김이 남아 있는 오븐 안으로 한 발을 들였다. 빵 굽는 용도의 오븐이라면 어째서 신발을 벗으라는 말을 안 하는 거지? 어서 들어가라는 듯 턱짓만 까딱해 보이는 그에게 말했다.
"다, 조, 좋은데 오, 온, 스위, 스, 위치는, 누르지, 마, 마요."
(P13 마법사의 오븐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빵이란 내게 있어 진절머리 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초강력 아이템이긴 하다. 그러나 이곳의 마법사가 만드는 빵이라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빵에는, 잘못 사용하면 조금은 위험한 향신료일지 몰라도, 과거와 현재 대신 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P93)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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