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미국 드라마 '로 앤 오더 : 성범죄 전담반'을 보다가 놀란 기억이 있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말한 남자는 패스트푸드점의 점장에게 직원이 도둑질을 했으니 사무실로 데려가서 옷을 전부 벗기고 수색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둑이라고 의심이 가더라도 점장은 직원에게 옷을 벗으라 요구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점장은 경찰이라는 남자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 결과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셈이므로 진짜 경찰이 도착하여 체포되었다.

단 한 통의 전화, 경찰이라는 말의 권위를 믿고 죄를 행한 것이다. 피해자인 여직원이 제발 그만둬달라고 애원했는데도 말이다. 전화를 걸은 범인 쪽에서는 그런 행동을 한 인간이야말로 추악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도둑으로 몰린 직원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안 된 것이지만 평소에 그런 추한 욕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면 그런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간단히 조종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그런데 심지어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어떤 남자가 패스트푸드점 70군데에 전화를 걸어 같은 일을 벌였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점장은 자신은 경찰의 말에 따라 정의를 실행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 것이다. 물론 선택은 전화를 받은 점장이 한 것이고 그의 행동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상황에 따라 인간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드러낸다고 이 책 '인간의 두 얼굴'에서는 말하고 있다. 자신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함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에 따라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실제 실험에서 안과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의사가 엉뚱한 행동을 시켜도 사람들은 대개 그대로 했다고 한다. 권위자의 말에 따르게 된 것이다. 그 권위조차도 인간이 부여한 것인데도 말이다. 거기에 길에서 3명의 사람이 하늘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자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고 한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탈출을 할 수 있었던 10분간 승객들이 나오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생물이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생명에 위협을 준다니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비슷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고 한다. 5명에게 설문지를 풀게 하고 연기를 넣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피실험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설문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반면 혼자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보다 집단으로 있는 것이 더 위험했던 셈이었다.

이처럼 사람은 상황에 휘둘린다. 70%이상의 사람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불이 나서 연기가 들어와도 다른 사람이 나가려 하지 않으니까 별일 아니겠구나 하고 판단하는 뇌라니 무서워졌다. 그렇다면 사람은 항상 상황에 지배되는 것일까. 인간이 반대로 상황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상황에 지배되는 인간이 보통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지배하는 인간을 흔히 영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에 선로로 떨어져 끼여 버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33톤의 지하철을 미는 대다수의 사람은 전부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밀어보자고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이야 말로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외치자 두 번째 사람이 혹시 하고 가세하고 세 번째 사람이 돕자는 마음으로 손을 보태면 그 순간 3명은 집단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휘둘리는 70%의 보통 사람들이 가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단 한 마디를 외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상황을 지배하는 영웅이 된다고 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의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누군가가 구해주겠지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드는 사람은 그 순간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아니래도 다른 사람이 구해줄 것이라는 방관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상황에 휘둘릴 수도 지배할 수도 있다. 단 한 마디, 먼저 손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악은 평범하다고 한다. 누구든 악에 휘말릴 수도 있고 마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상황에 지배되어 무수히 많은 양떼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둠은 너무 가까운 반면 '그 한 마디'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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