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연쇄살인의 끝 - DNA 과학수사와 잔혹범죄의 역사
김형근 지음, 한면수 감수 / 글항아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의 첫 권인 '주홍색 연구'에서는 선명한 지문이 주요 증거로 등장한다. 정작 홈즈는 시큰둥했던 지문 증거에 경찰들은 법석을 떤다. 당시만 해도 지문을 통해서 범인을 검거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기술이었을 것이다. 한 때는 범죄자의 귀 모양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었다. 지금에야 거의 흔적도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분명 지문은 범죄수사에 요긴한 증거이기는 하다.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장소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지문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로 나온다. 물론 가족들의 지문을 제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문이 중요한 증거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그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이제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의 몸에 손을 대도 지문이 남는다고 하지만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있었다면 지문은 남지 않는다. 더구나 부분 지문의 경우에는 증거로 삼기에 불확실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니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 수사관들은 분투할 수밖에 없다. 더 확실한 증거로 마음의 짐을 덜려는 것이다. 만약 수사관으로 일한다면 가장 가슴 서늘한 일은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피의자가 범죄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DNA에 대한 것은 하늘이 내린 동아줄과도 같다. 지문이 아직도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DNA는 범인의 머리카락부터 체액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검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지문은 남기지 않더라도 한 방울의 체액이나 체모를 남긴다면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더구나 같은 DN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60억분의 일이라고 하니 DNA가 있다면 엉뚱한 사람을 잡아넣을 확률은 대폭 줄어든다. 어디까지나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이지만 동기가 있고 범죄가 발생한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으며 현장에 DNA가 있다면 진범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제 범죄수사에 있어서 없어선 안 될 요소가 된 DNA 과학수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DNA 과학수사의 역사와 그로 인해서 잡을 수 있었던 범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초의 과학수사는 영국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람의 DNA를 각각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과학자가 영국인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한적한 장소에서 여중생의 시체가 발견된다. 조사 결과 소녀는 성폭행 뒤 살해된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소아성애자의 소행으로 보고 폭력적 전과가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남자는 끝내 자백을 하고 형을 살게 되었지만 문제는 진범이 그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경찰은 수세에 몰리게 되고 인근 주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다. 몇 천 명이 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혈액을 채취해서 DNA 검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DNA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지문에 비해서 등록된 것도 아니어서 용의자의 혐의를 확실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론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 영국 경찰은 몇 천 명을 대상으로 DNA 채취를 시도한 것이다.

범인은 엉뚱한 일로 밝혀졌다. 진범은 지레 겁을 먹고 자신 대신에 혈액 검사를 받아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부탁을 받아들인 친구는 그 사실을 이리 저리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유독 한 여성이 수상하게 여겨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진범이 검거된다. 결국 진범을 잡기는 했지만 최초의 DNA 수사는 다소 우악스럽게 전개된 셈이다. 엉뚱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서 수사하고 형을 살게 했으며 이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자 몇 천 명 단위의 사람들에게 혈액 검사를 받게 한다니 좀 놀라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DNA 과학수사가 유용하다는 확증이 생긴 셈이었다. 이후 DNA는 애인의 혈관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투약한 의사를 잡아들이게 되기도 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형되게 된 남자의 무고함을 밝혀주는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논란이 많은 루이 17세와 아나스타샤의 행방에 종지부를 찍었다.

허나 어디까지나 DNA 과학수사는 수단에 불과하다. 과학이 차가운 진실을 밝혀주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 숨은 다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사기꾼이었을 사람을 아직도 왕가의 후손이었다고 믿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수사를 하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의 손에 있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되어 준 DNA를 바탕으로 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주는 것도 사람의 몫인 셈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사람이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이며 가장 오래된 죄 중에 하나인 살인이 없어지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달한 기술은 점차 그 죄의 진상을 명확하게 해 줄 것이다. 언제나 돼야 끝날지 알 수 없는 기술과 범죄의 싸움, DNA를 단지 친자확인용으로만 사용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결코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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