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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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사진관이 하나씩 있었다. 지금도 동네에 사진관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런 느낌의 가게는 아니다. 지금이야 주로 증명사진을 찍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필름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겼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정도 뒤에 사진을 찾으러 가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야 사진에 찍히는 대상이 된지도 몰랐고 그저 엄마를 따라 간 곳에 불과했었다. 그 와중에 개한테 쫓긴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간 크고 나서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서는 돈이 아깝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공간이 되었다. 사진을 뽑고 나면 손가락이 찍혀 있거나 빛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핸드폰에까지 카메라 기능이 있어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쉽게 찍은 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 예전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찰나를 기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그와 함께 사진관도 점차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사진관은 이제 약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책 <가스미초 이야기>는 가을 한 때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스러지고 마는 단풍 같은 단편집이다. 일본의 귀족에 해당하는 화족의 사진을 맡아서 찍기도 하고 '사진의 명인'이라고 불리었던 할아버지와 사는 소년 이노의 추억을 단편 하나하나에 담고 있다. 할아버지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던 사진처럼 이노의 추억은 단편 하나하나에 머물고 소년은 성장해간다. 그와 함께 사진관은 몰락의 길을 걷지만 말이다. 전차가 아직 거리를 달리던 시절 이노의 집은 사진관을 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여장부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할아버지는 점차 초라해져 갔고 끝내는 노인성 치매로 인해서 자랑하던 사진기술에서도 도태되고 있던 입장이었다. 더구나 가업으로 생각했던 사진관도 점차 사양 산업이 되어 이노 무에이라는 이름은 손자에게까지는 갈 일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사를 할 생각도 사진관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할아버지는 끝까지 사진사로써의 인생을 고집한다.

덕분에 가족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자포자기의 공백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의미로는 스러질 잎이 가장 아름답게 모습을 빛내는 단풍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다녔고 어머니는 가부키에 열을 올렸다. 소년 이노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향락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은 누구하나 혼내는 일이 없었고 이노 역시 섣부른 반항기도 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동안 소년은 동급생 소녀와의 사랑을 경험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사진관에 얽힌 이야기, 대릴 사위이기 이전에 스승과 제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과 함께 전해진다. 그 단편들은 담백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흑백 사진 같은 맛이 있어서 서글프지만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가 남긴 졸업사진과 함께 소년의 어린 시절이 끝난다. 단 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제외하면 추억을 증명할 단 하나의 존재인 사진에 영혼을 건 사진사인 할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스함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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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초 - 순식간에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결정적 행동의 비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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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흘러간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아 무료하게 약속장소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1분 1초가 길기만 하다. 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해가 넘어가는 것조차 모를 때가 있다. 사람들이 살면서 가볍게 흘려보내거나 정말 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1분, 그 1분 안에 활용 가능한 심리학 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 책 <59초>다. <괴짜심리학>의 저자 리처드 와이즈먼의 신작인데 제목만큼 강렬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허나 1분도 안 걸리고 꽤나 유용한 심리학 비법이 나열되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책 자체는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의 경우 호감의 심리학이라면 2장은 목표달성, 3장은 창조성, 4장은 유혹, 5장은 안티-스트레스, 6장은 관계유지, 7장은 순간적인 결정, 8장은 아이 교육, 9장은 상대방을 읽는 법, 10장은 행복이다. 각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비법들이 서너 개씩 들어 있으며 그에 해당하는 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주니 신빙성도 있는 편이다.

그 중 몇 가지 이색적인 것의 예를 들자면 1장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돌아오게 하는 비법과 5장에서 운동 안하고 효과 보기가 있었다. 잃어버린 지갑의 경우 들어 있는 돈보다 지갑 자체나 지갑 안에 들은 신분증 때문에 더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누군가 잃어버린 지갑을 주워서 우체통에 넣어주면 좋겠지만 요행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밝고 귀엽게 웃고 있는 어린 아기의 사진을 넣어두면 좋다고 한다. 지갑 여러 개를 일부러 잃어버리고 지갑 회수율을 조사한 결과 어린 아기 사진이 회수율이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창조성을 높이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녹색 식물이 효과가 좋은 것은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원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어린 아기를 보면 무심결에 호감을 느끼고 보호하도록 되어 있어 지갑을 돌려줄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 지갑은 누군가 한 번 잃어버린 지갑이고 자신은 그것을 돌려주려 하는데 그 일이 아주 보람차다는 쪽지가 들어 있으면 회수율이 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의 지갑에다가 이미 누군가 잃어버린 지갑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쪽지를 붙이고 다니는 것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어린 아기의 사진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 해도 말이다.

또한 5장의 운동 안하고 효과 보기는 플라시보를 활용한 방법이었다. 플라시보 효과는 설탕으로 이루어진 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먹어도 효과가 나타난다는 위약 효과를 말한다. 반대로 평소의 움직임을 표로 만들어 벽에다 걸어두면 사람은 그제서야 자신의 활동량이 꽤 많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살이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생각도 안했던 평소의 행동이 칼로리 소비가 많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살이 빠진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안 하고 효과를 볼 수 있다니 지나치게 날로 먹는 것 같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처럼 이 책 <59초>에는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심리학이 담겨 있다. 다만 방관자 효과나 작은 부탁을 하고 큰 부탁을 이어서 하면 거절하기가 어렵다는 것 같은 내용은 다른 심리학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내용이라 흥미가 덜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써도 될 만한 내용들부터 해서 손가락 길이를 통한 성격진단법처럼 흥미 위주로 읽기 좋은 내용들이 고루 섞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만큼 강렬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지갑에 넣고 다닐 아기 사진도 구하고 싶은 마음을 자아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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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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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이라면 가부장제라든지 가족에 대한 생각 같은 것이 비슷해서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이름들이 헷갈리고 도무지 외워지지 않아서 집중해서 읽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일본 소설뿐만이 아니라 많은 외국 문학들은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에 서 있다.

그나마 익숙한 영미나 일본 소설의 경우에는 약간은 익숙하다. 허나 깊이까지 들어가면 우리와 다른 탓에 이방인의 시선으로 읽게 되고 만다. 더욱이 그 외의 다른 나라의 책을 읽노라면 전혀 다른 모습에 낯설어도 이렇게 낯설 수가 없다. 단 한 번이지만 먹어봤던 음식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독특한 향취의 음식을 먹는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보트>는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에 들어간다. 아버지는 '바', 어머니를 '마'로 부른다던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 음식까지 등장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급급해진다.

그럼에도 책장이 물 흐르듯 넘어가게 되는 것은 이 책의 전반적 내용이 열에 들뜬 아이의 사고가 전환되듯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의 생각이나 대화만큼 뜬금없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 얘기를 하나 싶으면 저 얘기로 거침없이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은 사건에 따라 전개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생각, 후회들이 뒤엉켜 물 흐르듯이 흘러서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후에 생각하기에는 그리 많은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마치 풍경화를 긴 이야기로 읽어내려 한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의 한 뭉치를 베어낸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베트남, 이란 등 이국적인 나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흘리니 그 독특한 문화에 따른 향취가 배어든다. 그런 낯섦을 넘어서고 나면 베트남 대학살이라든지 역사적 아픔과 가족의 유대를 공유하고 있는 익숙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와 반목하기도 하지만 끝내는 그 끈을 놓지 못하는 남자가 아버지의 경험을 소설로 쓰는 모습,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혼란에 빠진 소년, 한 번의 바람으로 딸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아버지 등 소재는 다르지만 어쩐지 익숙함이 배어나오는 내용이다.

여러 단편이 실려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보트 피플을 다룬 단편 <보트>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어린 딸의 보트에 태워 보내는 부모와 그런 부모를 떠나 두려움에 떠는 소녀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뉴스에서나 봤던 보트피플이 어떻게 바다를 건너오는지를 읽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배에 실은 물은 한정이 있는 지라 식수가 부족해지면 사람들을 점차 앓게 되고 죽게 된 사람들은 바다에 버려진다. 그것을 기대하고 상어 떼가 배를 따라오며 탈수와 피로, 기아에 지친 사람들은 때로 자살을 선택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런 보트 안에서 소녀는 잃어버린 가족을 생각하고 다른 가족의 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아이를 맹목적으로 돌보려 드는 것이다. 지친 아이 엄마도 소녀를 동생이라고 칭하면서 아이를 넘겨줄 듯 싶다가도 이내 이성을 잃고 자기 아이를 내놓으라며 달려든다. 그 기묘한 상황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새로운 가족의 연대감이라니 그것이 더 측은했다. 수없이 혼란에 빠지고 아파하며 헤매지만 결국 다시 가족이란 끈으로 버티는 사람들, 그 끈을 놓치고 만 사람들은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다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그 끈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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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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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교복은 넥타이를 하는 종류였다. 그날 아침도 여느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넥타이를 했으며 밥상 앞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갈 시간이 되어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의 안과 밖이 반대로 뒤집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서 약 한 시간 동안 내 모습을 식구들이 수차례 보았는데도 넥타이가 뒤집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내가 당황하며 넥타이가 뒤집혀 있었다고 말하자 전부 몰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그 사람에게는 거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길가에서 어느 여자가 넘어져도 그저 아프겠구나 하고 무심코 지나치게 되지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는 사람들이 자신만 보는 것 같고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넥타이 사건 이후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결국 사람의 관심의 방향은 전부 안으로 쏠려 있다. 사랑에 빠졌다거나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람의 주요 관심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부터 해서 머릿속에는 자신에 대한 것이 흘러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가장 모르는 사람도 자신이다. 다리를 떨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서야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음을 깨닫거나 어이없는 일로 속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속마음을 정신분석을 통해 풀어주겠다는 것이 이 책 <프로이트의 의자>다. 사실 그렇게 거창한 책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이론을 가르쳐 주고 자신 혹은 타인의 행동에서 숨은 진의를 읽어주는 책일 뿐이다.

허나 그게 또 재미있다. 예전에 했던 행동들을 되짚어 보면서 그 안에 숨어 있던 진의를 읽어내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담이 공격성의 발현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상상하지 못할 부분이었다. 공격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킨 축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때로 기분 나쁜 농담을 던지는 사람의 숨은 진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직접적인 말로 공격하면 자신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돌아온다. 하지만 유머인척 능숙하게 구사하고 모두가 웃고 지나가면 공격성은 뿜어내고 반격을 당할 일은 없는 것이다. 웃고 지나갔던 사람이 숨은 진의를 알고 나중에 화가 나도 그 일을 걸고넘어지기 어려우니 꽤나 능수능란한 공격수단이란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불안이나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행동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은 절로 수긍이 가게 되었다. 몸에 통증이 올 때 사람들은 대개 통증을 줄이기 위한 수단을 사용한다. 지나친 통증은 쇼크 상태를 불러 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증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통증이 없다면 몸의 어디 하나가 망가져도 모를 테지만 통증이 있어서 더 심한 경우를 막을 수 있다. 불안도 역시 그렇다고 한다. 불안을 느낄 때 그 이유를 밝히기도 하고 그것을 행동의 원동력으로도 쓰라고 한다.

시험 직전 같은 경우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다. 불안을 억지로 억누를 필요도 없고 그 사실을 부인할 필요도 없다. 시험 준비 상태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 공부를 하게 되며 불안은 일종의 통증 같은 경고 편지이므로 그 원인을 찾아 대비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들을 정신분석을 통해 자연스레 읽어내고 그 솔직한 마음을 알아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억지로 누른다고 해도 터져 나오니 차라리 깊게 침잠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현실에 집중하고 갇힌 마음을 풀어주는 정신분석, 크게는 아니라도 작은 고리들을 풀어내어 마음의 안정을 주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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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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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와 보통 사람들을 나누는 경계는 때로 아주 얇은 막에 불과하다. 하나의 마음가짐, 하나의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시모치 아사미의 소설 <달의 문>에 등장하는 남자는 갈림길에 섰을 때 단 한 순간의 판단과 행동으로 범죄자와 평범한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고 만다. 사실 광기와 멀쩡함조차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신의 광기를 제어하고 얇은 막으로 감싸인 정상의 범주에서 터져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멀쩡함이라는 것이다.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에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가치를 쉽사리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가득 찬 사회이니 살인밖에 방법이 없다면 그것을 강행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후에 '벨 아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조르주 뒤부아 역시 그런 사람들의 무리 속에 위화감 없이 섞여든다. 나중에는 그들보다 더한 면모를 선보이기도 한다.

처음의 동기는 단순한 것이었다. 군 복무가 지겨워져 전역한 장교인 뒤부아는 막연한 동경만을 품고 파리로 온다. 시골의 부모님 곁에 남아서야 농부나 선술집 주인밖에 할 일이 없었는데 그의 허영심으로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 같은 남자가 일할 자리쯤은 있을 거라고 파리를 우습게 봤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겨우 구한 일자리는 보잘것없는 연봉을 주는 곳이라 월말이 되면 매번 쪼들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게 된 곳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수입이 적어서 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그는 옛 전우인 포레스티에를 만나게 되고 이를 계기로 보다 나은 일자리로 옮겨갈 기회를 얻게 된다. 가난과 함께 비굴해진 자신감으로 인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매력이 여성들에게 적절하게 통용된다는 점을 이용해 한 발자국씩 위로 향한다. 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한 태도, 여성들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한 발언까지 고루 갖춘 남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능숙하게 책략까지 구사할 수 있었으니 이제 출세길은 그의 앞에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뒤부아는 점차 귀부인들과 그 딸에게 인기를 얻고 '벨 아미'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미남 친구라는 뜻의 벨 아미는 무료한 귀부인들의 은밀한 욕망이 섞인 별명으로 천천히 모습을 바뀌어 간다. 그 과정에서 뒤부아는 숱한 연애 사건을 일으키지만 상대는 유부녀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쪽에서도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가능한 쉬쉬하며 덮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이용한 여자들은 그가 악한이라는 사실을 후에 깨달아도 그를 잊지 못했으며 그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나 기묘했던 것은 주인공 뒤부아만 비난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은 부유한 귀부인들의 욕망과 뒤섞이며 그에게 이점으로 작용한 것뿐이지 특별히 그가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로맨스를 원하는 귀부인들은 그에게 몸을 던지고 그는 그것을 통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는다. 또한 그가 일하는 신문사 사장은 돈을 위해서는 부정한 일도 서슴지 않고 강행하고 우아한 귀부인으로만 보였던 여성은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권력자들과 몸을 섞는다. 그런 마당이니 뒤부아의 행동은 그리 특별한 것도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오직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추하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뒤부아의 별명인 벨 아미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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