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사진관이 하나씩 있었다. 지금도 동네에 사진관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런 느낌의 가게는 아니다. 지금이야 주로 증명사진을 찍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필름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겼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정도 뒤에 사진을 찾으러 가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야 사진에 찍히는 대상이 된지도 몰랐고 그저 엄마를 따라 간 곳에 불과했었다. 그 와중에 개한테 쫓긴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간 크고 나서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서는 돈이 아깝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공간이 되었다. 사진을 뽑고 나면 손가락이 찍혀 있거나 빛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핸드폰에까지 카메라 기능이 있어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쉽게 찍은 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 예전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찰나를 기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그와 함께 사진관도 점차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사진관은 이제 약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책 <가스미초 이야기>는 가을 한 때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스러지고 마는 단풍 같은 단편집이다. 일본의 귀족에 해당하는 화족의 사진을 맡아서 찍기도 하고 '사진의 명인'이라고 불리었던 할아버지와 사는 소년 이노의 추억을 단편 하나하나에 담고 있다. 할아버지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던 사진처럼 이노의 추억은 단편 하나하나에 머물고 소년은 성장해간다. 그와 함께 사진관은 몰락의 길을 걷지만 말이다. 전차가 아직 거리를 달리던 시절 이노의 집은 사진관을 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여장부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할아버지는 점차 초라해져 갔고 끝내는 노인성 치매로 인해서 자랑하던 사진기술에서도 도태되고 있던 입장이었다. 더구나 가업으로 생각했던 사진관도 점차 사양 산업이 되어 이노 무에이라는 이름은 손자에게까지는 갈 일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사를 할 생각도 사진관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할아버지는 끝까지 사진사로써의 인생을 고집한다. 덕분에 가족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자포자기의 공백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의미로는 스러질 잎이 가장 아름답게 모습을 빛내는 단풍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다녔고 어머니는 가부키에 열을 올렸다. 소년 이노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향락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은 누구하나 혼내는 일이 없었고 이노 역시 섣부른 반항기도 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동안 소년은 동급생 소녀와의 사랑을 경험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사진관에 얽힌 이야기, 대릴 사위이기 이전에 스승과 제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과 함께 전해진다. 그 단편들은 담백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흑백 사진 같은 맛이 있어서 서글프지만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가 남긴 졸업사진과 함께 소년의 어린 시절이 끝난다. 단 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제외하면 추억을 증명할 단 하나의 존재인 사진에 영혼을 건 사진사인 할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스함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