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류기>를 리뷰해주세요.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은 참 빨리도 흘러가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남은 기억도 그리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워서였는지 행복했었다는 기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는 어린 시절에 멍해서 그랬던 것 같지만 그 때를 떠올려 봤을 때 부정적인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어떤 감정으로 남게 될 지 두려운 기분도 든다. 공부만 한 학창 시절에 무슨 목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지는 것은 레일 위를 거침없이 달렸는데 어느새 탈선해버린 기차마냥 멈춰버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주류고 또 아니냐를 사람들은 단정지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자신의 척도로 잰다. 그게 어른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직 무른 자신은 어른이 아니구나 하는 한탄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왜 그리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며 다독거려주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대한민국 표류기'라는 책이다. 저자는 허지웅이라는 기자로 얼마 전에도 영화 관련 기사에서 이름과 사진을 봤다. 관심사가 아닐 때는 눈에도 띄지 않다가 관심사가 되면 계속 눈에 보이듯이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 보이는 기분이다. 추천사에서 보면 찌질한 아이돌 혹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표기되어 있는 이 인물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남들은 탈출하고 싶은 곳으로 생각하는 고시원을 지상천국처럼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또 군대이야기야 싶지만 듣고 나면 저런 군대생활도 있나 싶은 군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거기에 본의 아니게 사고에 휘말리게 된 배우의 이야기, 정치이야기, 영화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여태까지 고시원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그 곳의 갑갑함이나 불이 났을 때 위험하다는 이야기 정도였는데 한 달 20만원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풀어놓으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이다.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길래 드디어 고시원에 대한 무용담을 풀어놓을 차례인가 했지만 그가 말하는 고시원은 사람 냄새나는 곳일 뿐이다. 거기에 말하는 사람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그리 달갑지 않은 군대생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또 남다르다. 조교로 복무하면서 성병에 걸린 다른 군인의 성기를 면도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치질에 걸려서 여자 친구 생리대를 써봤던 이야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담을 풀어 놓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는 돈을 벌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다가 아니고 자신의 반지하방에서 즐겁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에 평범한 20대 청년의 이야기구나 하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모든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경험담을 풀어 놓을 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너무 마음 아파서 자살시도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살아남은 이후에는 자신에게 약을 판 사람에게 고맙다는 메일까지 보낸다. 이쯤 되자 더 이상 저자에게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또 어머니를 생각하는 못난 자식의 모습을 보여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자신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권장하면서도 어머니가 휘말려서 다쳤을까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사물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조금 독특하고 날카로운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랑에 울고 웃는 자신의 일상부터 정치이야기까지 이야기는 거침없는 물살을 탄다. 어떤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가 록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순간부터였다. 현재의 주업이 영화기자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록키와 교차되는 스탤론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었다. 사실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아서 행복하기만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시절에 록키의 책을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그 때 록키의 저자가 스탤론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탤론은 근육질의 액션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영화 록키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그 책은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한참이 지나 보게 된 영화도 감동적이었다. 그 이후 시리즈는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록키 덕분에 스탤론은 알게 모르게 호감을 갖게 된 배우였다. 그런 배우의 인생을 영화와 교차해서 말해주니 그 때의 감동이 다시 되새겨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고 기억을 퍼 올려서 감동하기도 하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좋은 책은 많지만 동시에 모든 좋은 책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에 의한 것이지만 말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저자의 일상도 좋았지만 잊고 있었던 록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주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 이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흘러가듯 살아지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독거리는 책이라 문득 '거위의 꿈'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록키처럼 다시 달려보거나.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굳이 선두에 서지 않은 삶도 충분히 즐겁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가 떠오르네요.
형식은 다르지만 속에 느낌은 유사하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고민많은 20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나를 세울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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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수 있다! - 불가능을 뛰어넘는 오바마의 희망 메시지
개런 토머스 지음, 김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한 때 미국 드라마 '24'가 인기를 끌었을 때 그 드라마에 대해 놀라웠던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극의 형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미국 대통령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극의 특성상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 원칙을 지키고 '존경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통령이라는 게 드라마에서나 가능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 떨떠름해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대통령 후보로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버락 오바마'였다. 배리라는 이름이 아니라 '버락'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 그 후보는 곧 돌풍을 일으켰다. 허나 그 때만 해도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었다. 반농담조로 '24'의 영상이미지가 무의식중에 새겨진 사람들이 그에게 투표를 해서 정말 그가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을 눌렀다. 이쯤 되자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변화'의 바람이 이미 폭풍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 오바마는 매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고 현재 세계의 관심을 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이 책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그렇게 오바마가 돌풍을 일으킨 사람일 수 있었던 이유, 배리라는 미국식 이름이 아니라 '버락'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어린 시절 부터 하나하나 조명해가며 풀어놓고 있다.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나 현실에 고개를 숙일 줄 몰랐던 오바마의 아버지는 하와이에서 오바마의 어머니인 앤을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아버지 오바마 시니어는 그가 배운 것을 그의 조국을 위해 활용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오바마가 두 살일 때 아들을 두고 조국으로 돌아갔다. 조국의 정치적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가족들은 오바마가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품길 바랐기에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해서 과장 섞인 무용담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출생과 피부색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길 바란 것이다. 심지어 해변에서 놀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오바마를 하와이인으로 착각하자 외할아버지는 그가 하와이의 첫 군주인 카메하메하 왕의 증손자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족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보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집 밖을 나서면 조롱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피부색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즈음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장학생과 사랑에 빠졌고 오바마와 어머니는 인도네시아로 이주하게 된다. 새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오바마는 친구들의 따돌림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나라에서 가톨릭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이미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을 아니지만 그 꿈을 어른이 되어 실현시켰다는 부분은 놀라웠다. 오바마는 혼란의 시기를 잘 적응해나가는 듯 했지만 정작 새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소원해지고 교육열에 남달랐던 그의 어머니가 오바마를 미국으로 보낸다. 아들이 좀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기 바랐던 것이다.

결국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 오바마는 곤경에 빠진다. 피부색 문제는 차치하고도 하와이의 학생들은 배드민턴이나 축구를 하지 않았고, 오바마 역시 럭비공을 어떻게 던져야 할 지 몰랐던 것이다. 살던 곳이 연이어 바뀌어 문화적으로 힘들었던 데다가 학교에 간 첫 날 선생님이 그의 이름을 배리가 아닌 버락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오바마는 그 일로 놀림감이 되었다. 이어 오바마의 학년에는 아프리카계 학생이 단 한 명 있었는데 그 여학생과 오바마가 친해지자 그것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당황한 오바마가 그 여학생을 밀어내자 더 이상 그를 비웃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의 가치에 손상을 입힌 일을 한 것 같아 그는 그 일이 내내 불편했다.

이후 오바마는 인종적 차별에 인한 충격과 정체성에 의한 혼란에 시달린다. 그 문제는 그를 타락으로 이끌었지만 오바마는 점차 그 문제에서 벗어난다. 아버지와의 만남과 이해, 자신이 고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감정을 발산할 대상인 농구를 찾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부분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안으로만 쏠리던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오바마는 실패의 경험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었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오바마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읽었다.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린다는 다른 정치인과 오바마가 연설대결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92%가 오바마의 연설 쪽에 손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오바마는 형편없는 연설을 할 능력이 없는 것 같다'는 평까지 나왔다고 하니 오바마에 대한 찬탄은 당분간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사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그가 끝까지 잘 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는 이미 놀라운 존재이기는 하다.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넘어 이제 '세계인'이라고 할 정도의 자긍심을 품은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할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의 마지막장을 읽고 나니 Yes, We can의 We를 I로 바꿔보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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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다. 하지만 매운맛이라는 감각이 사실은 통증이듯이 자극을 계속 받는 삶은 어떤 의미로는 피곤하다. 그래서 염세주의자들은 삶은 끊임없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구원일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공포를 구원으로 여길 만큼 지친 사람들이라니 묘하기는 하다. 허나 막상 죽음을 앞둔 순간에 소크라테스처럼 초연하게 독배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괴테처럼 죽기 전에  '더 많은 빛을'이라는 말을 해보고도 싶고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믿는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서 죽음에 초연할 수 있으면 싶지만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면 그저 머릿속에 생각만 많은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것을 강요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니 치열하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좀 더 치열하게 살았다면 온갖 쓸데없는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일도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뜨끔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이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제목만으로도 사람을 움찔하게 한다. 일단 반 농담으로 그리고 실상은 한탄으로 자신은 유죄구나 하는 말을 하게하고 마음속으로는 짜증을 내면서 책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의 작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세밀한 감각으로 그려내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다. 도발적인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따뜻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그녀는 특유의 필치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자기계발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문구가 하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행복해지라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타인과의 관계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여자가 요정을 만난다. 요정은 그녀에게 단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여자는 소원을 말하는데 그 소원은 바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후 여자는 마을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그녀가 죽기 전 다른 사람들은 행복의 비밀을 묻는다. 여자는 웃으면서 행복의 비밀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눈을 감는다. 행복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잡으려면 타인에게 상처를 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전부를 던져야 할 때가 많다. 삶 속의 많은 일들을 그저 무의미한 자극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미련한 일이 없겠지만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서는 온전히 사랑하기도 사랑받기도 그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상처입지 않을 정도만 사랑했고 사랑받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행복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제야 약간은 거슬렸던 제목이 조금씩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일에 자신을 전부 던지지 않으면 그 소망을 이루기 어려운 일이 많다. 성공적 결과를 얻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일에 치열하게 임하지 않았다면 후회가 남는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아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 것을 그리고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할 것을 충고하는 첫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녀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차분하게 보듬는 내용의 드라마를 쓸 수 있게 된 여태까지의 인생이 책장과 함께 흘러간다. 돌아가신 이후에는 너무나 사랑했지만 애증도 없지 않았던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드라마를 쓰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글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일은 익숙한 동시에 낯설고 편안하면서 동시에 불편한 일이었다. 너무 많은 것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가장 묘했던 것은 글이 따뜻함을 풀어낼수록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날카로움이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섬세한 감성이라고 해야 할 지 글 한 줄 한 줄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예민함은 이 책 전반에 기묘한 감흥을 느끼게 했다. 물론 한 권으로 한 사람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사람만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것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허나 이 책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이는 작가의 에세이라 더 좋았다. 다만 좀 더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이 책을 볼 때마다 찔리는 마음을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알고 난 이후 연탄재를 발로 찰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삶에 그리고 사랑에 치열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게 하더군요. 겨울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에세이라는 점이 더 좋았구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에세이가 떠오르네요. 여성 작가가 쓴 감성적 에세이인데다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 들은 내용이어서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20, 30대 여성에게 권하고 싶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도록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P14)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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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혼자놀기 -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강미영 지음, 천혜정 사진 / 비아북 / 200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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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간다. 군중 속의 고독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목적지가 같은 것이 아니듯이 누군가가 함께 태어나 함께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쌍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생물이고 타인 속의 자신도 자신의 일부이기에 그 점은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 속의 '혼자'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삶 속의 진짜 즐거움을 찾아내기 힘들 수가 있다.

항상 누군가가 함께 해야만 즐거울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나서 '자아 찾기' 여행이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하기야 자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그런 것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사람에게는 자아 찾기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자아가 강한 사람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의 진짜 즐거움을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해도 사람들은 혼자가 되는 것을 거북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잠깐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시도한다. 발작이 일어난 것 마냥 눌러대는 문자 메시지 일수도 있고 영화관에서조차 다물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입일 수도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혼자 밥을 먹는 일이다. 사람의 삶을 유지하려면 영양분 섭취가 필수다. 결국 밥을 먹지 않고 생을 유지하기는 어렵고 사람들이 밥을 먹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밥을 먹는데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 바로 누군가가 혼자 밥을 먹을 때의 일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무슨 죄 짓는 것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빤히 그 사람을 쳐다보고 그 사람도 은근히 멋쩍어 한다. 그런 불편이 싫어서 밥 먹을 때만 되면 그렇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불러서 먹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음식을 먹는 일을 감수하거나 아예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듣고 싶은 과목이 있어서 혼자 강의를 듣게 된 터라 강의가 끝나고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친구가 왠지 혼자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연유를 묻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점심을 혼자 먹는데 주변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힐끔거리더라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이상했는지 계속 자신을 힐끔거리는데 자신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 사람들을 관찰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도리어 주변 사람들이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한다. 거기에 갑자기 웬 모르는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자기가 혼자 먹으려니 너무 무안해서 그런데 같이 앉아서 먹으면 안 되겠냐고, 마침 책도 안 가져와서 더 곤란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혹시 거절당해서 혼자 먹게 될 까봐 안절부절 못하면서 말이다.

전혀 낯모르는 타인에게 같이 밥을 먹어달라고 청할 만큼 혼자 밥 먹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시대라니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점점 개인주의화 되는데도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작아지지만 보이지 않는 연결로 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결된 세상이 되었다는 말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지나친 연결로 인해서 혼자 있는 것도 즐기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어째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식당 운영하는 입장에서야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손님이 그리 달갑지 않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 '혼자 놀기'는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책이다. 오히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놀라운 면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혼자 노는' 시간을 어색해하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나치게 일상적이지만 혼자가 어색한 사람들에게는 비일상적인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함께 하는 일은 즐겁다. 자신이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알던 사람의 모르는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의 신선한 생각에 감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더 즐겁다. 자신의 수많은 생각의 편린을 정리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모든 에너지를 자신에게 들여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간으로 인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앞으로 보낼 시간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더 좋아할 수도 자신에게 더 실망하게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의 주역인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귀중하다. 사실 그냥 뒹굴 거려도 상관없다. 그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점점 잊게 되는 허나 잊게 되면 크게 후회할 혼자 노는 시간의 즐거움을 되새겨 주는 '혼자 놀기' 나쁘지는 않았다. 이 책이 자신이 홀로 보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할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자신이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그것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혼자 보내는 시간을 껄끄럽게 생각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혼자 보내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좀 더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괜찮을 것 같네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남들이 뭐라던 나만의 사생활이 있고 나만의 행동양식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꺼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내 방에서만큼은, 한 달에 한 번쯤은 모든 걸 탁 풀어놓은 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P121)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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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잠이 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피곤하지도 않았기에 야간에 할 일까지 구하게 되었다. 낮에 일한 회사에서 밤에는 경비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코 잠에 들지도 업무에 태만하지도 않는 남자는 야간 업무에서 각광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회사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남자에게 집은 필요치 않았다. 기껏해야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들르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래서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다. 교통비도 필요없었고 집세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부수입이 생겨난 것이다.

앞에 남자의 이야기는 집의 용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집은 잠만 자는 곳은 아니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역시 잘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이 사라진다면 잘 곳이 사라져 버린다. 가족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집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사라져 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해 질 것이다. 여기 바로 그런 상황에 빠진 중학생 소년이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의 소년 타무라 히로시는 1학기 종업식의 날 집을 잃게 된다.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른채 여름 방학만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 나이대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소년은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본 낯익은 가구들이었다. 누군가가 아주 급하게 이삿짐을 꺼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년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부인한다. 아마 아주 비슷해보이는 가구일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랍장을 열어본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고 서랍장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의 체육복이었다. 나와 있는 짐은 전부 자기 집의 것이었고 졸지에 집이 사라진 것이다.

망연자실해 있는 소년 옆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인 소년의 누나였다. 누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엉엉 울기 시작한다. 소년도 울고 싶었지만 그저 누나의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삼남매의 장남인 큰 형이 온 것이었다. 그래봤자 형도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이었지만 형은 아버지가 올 때를 기다리자며 동생들을 달랜다. 소년의 누나도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삼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아버지는 생각 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리 드러나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 표정에 희망을 갖는다. 아버지는 분명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딘가 따로 갈 거처가 있어서 침착한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한 것이다. 허나 소년의 아버지는 삼남매를 모아두고 이렇게 말한다. 안 됐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각자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해산'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진다. 삼남매는 예상을 뒤엎은 아버지의 말에 순간 멍해진다. 미처 아버지에게 매달려보지도 못했고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형과 누나와 나이차가 있어서 어리광쟁이로 큰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돌연스러운 해산 선언도 당혹스러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이 하나 생각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누나와 형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어리고 성인이 될 날도 멀기만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년은 형과 누나에게 자신은 친구가 많으니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고 말한다. 자신은 혼자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형과 누나는 소년을 말린다. 허나 소년은 고집을 부렸고 큰 충격으로 이성적 판단력을 잃은 두 사람은 그런 소년을 끝내 말리지 못했다. 하기야 두 사람도 갈 곳이 없어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머리가 멍한 때라 소년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소년은 그 때부터 근처 공원에서 생활한다. 중학생 노숙자가 된 것이다. 가진 돈도 얼마 없었고 공원에서 자는 처지라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이 문제가 있으면 그리 오라고 했지만 형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었다. 갑자기 집이 사라진 삼남매의 노숙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 '홈리스 중학생'은 일본 유명 코미디언이라는 타무라 히로시의 자전적 이야기다. 중학생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해산 선언으로 노숙자가 되어 공원 미끄럼틀 안에서 생활한다니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 소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서 당혹해 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특히 배가 너무 고픈 삼남매가 배부르게 먹고 싶어서 밥 한 그릇을 두 시간 동안 씹어서 먹었다는 이야기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풀은 물론이고 골판지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이야기 '홈리스 중학생' 인상 깊게 읽었다. 가장 추운 계절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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