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잠이 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피곤하지도 않았기에 야간에 할 일까지 구하게 되었다. 낮에 일한 회사에서 밤에는 경비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코 잠에 들지도 업무에 태만하지도 않는 남자는 야간 업무에서 각광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회사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남자에게 집은 필요치 않았다. 기껏해야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들르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래서 집을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낸다. 교통비도 필요없었고 집세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부수입이 생겨난 것이다.

앞에 남자의 이야기는 집의 용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집은 잠만 자는 곳은 아니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역시 잘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이 사라진다면 잘 곳이 사라져 버린다. 가족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집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집이 사라져 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해 질 것이다. 여기 바로 그런 상황에 빠진 중학생 소년이 있었다.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의 소년 타무라 히로시는 1학기 종업식의 날 집을 잃게 된다.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른채 여름 방학만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 나이대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소년은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분명 본 낯익은 가구들이었다. 누군가가 아주 급하게 이삿짐을 꺼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년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부인한다. 아마 아주 비슷해보이는 가구일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랍장을 열어본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고 서랍장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의 체육복이었다. 나와 있는 짐은 전부 자기 집의 것이었고 졸지에 집이 사라진 것이다.

망연자실해 있는 소년 옆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고등학교 3학년인 소년의 누나였다. 누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엉엉 울기 시작한다. 소년도 울고 싶었지만 그저 누나의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삼남매의 장남인 큰 형이 온 것이었다. 그래봤자 형도 막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이었지만 형은 아버지가 올 때를 기다리자며 동생들을 달랜다. 소년의 누나도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삼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난 아버지는 생각 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리 드러나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 표정에 희망을 갖는다. 아버지는 분명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딘가 따로 갈 거처가 있어서 침착한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한 것이다. 허나 소년의 아버지는 삼남매를 모아두고 이렇게 말한다. 안 됐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각자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해산'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진다. 삼남매는 예상을 뒤엎은 아버지의 말에 순간 멍해진다. 미처 아버지에게 매달려보지도 못했고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형과 누나와 나이차가 있어서 어리광쟁이로 큰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돌연스러운 해산 선언도 당혹스러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이 하나 생각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누나와 형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어리고 성인이 될 날도 멀기만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년은 형과 누나에게 자신은 친구가 많으니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고 말한다. 자신은 혼자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형과 누나는 소년을 말린다. 허나 소년은 고집을 부렸고 큰 충격으로 이성적 판단력을 잃은 두 사람은 그런 소년을 끝내 말리지 못했다. 하기야 두 사람도 갈 곳이 없어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머리가 멍한 때라 소년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소년은 그 때부터 근처 공원에서 생활한다. 중학생 노숙자가 된 것이다. 가진 돈도 얼마 없었고 공원에서 자는 처지라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형이 문제가 있으면 그리 오라고 했지만 형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었다. 갑자기 집이 사라진 삼남매의 노숙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 '홈리스 중학생'은 일본 유명 코미디언이라는 타무라 히로시의 자전적 이야기다. 중학생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해산 선언으로 노숙자가 되어 공원 미끄럼틀 안에서 생활한다니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 소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어서 당혹해 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특히 배가 너무 고픈 삼남매가 배부르게 먹고 싶어서 밥 한 그릇을 두 시간 동안 씹어서 먹었다는 이야기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풀은 물론이고 골판지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이야기 '홈리스 중학생' 인상 깊게 읽었다. 가장 추운 계절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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