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류기>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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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은 참 빨리도 흘러가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남은 기억도 그리 많지 않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워서였는지 행복했었다는 기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는 어린 시절에 멍해서 그랬던 것 같지만 그 때를 떠올려 봤을 때 부정적인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어떤 감정으로 남게 될 지 두려운 기분도 든다. 공부만 한 학창 시절에 무슨 목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지는 것은 레일 위를 거침없이 달렸는데 어느새 탈선해버린 기차마냥 멈춰버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주류고 또 아니냐를 사람들은 단정지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자신의 척도로 잰다. 그게 어른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직 무른 자신은 어른이 아니구나 하는 한탄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왜 그리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며 다독거려주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대한민국 표류기'라는 책이다. 저자는 허지웅이라는 기자로 얼마 전에도 영화 관련 기사에서 이름과 사진을 봤다. 관심사가 아닐 때는 눈에도 띄지 않다가 관심사가 되면 계속 눈에 보이듯이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이 책의 저자의 이름이 보이는 기분이다. 추천사에서 보면 찌질한 아이돌 혹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표기되어 있는 이 인물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남들은 탈출하고 싶은 곳으로 생각하는 고시원을 지상천국처럼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또 군대이야기야 싶지만 듣고 나면 저런 군대생활도 있나 싶은 군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거기에 본의 아니게 사고에 휘말리게 된 배우의 이야기, 정치이야기, 영화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여태까지 고시원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그 곳의 갑갑함이나 불이 났을 때 위험하다는 이야기 정도였는데 한 달 20만원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풀어놓으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달랐던 것이다.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길래 드디어 고시원에 대한 무용담을 풀어놓을 차례인가 했지만 그가 말하는 고시원은 사람 냄새나는 곳일 뿐이다. 거기에 말하는 사람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그리 달갑지 않은 군대생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또 남다르다. 조교로 복무하면서 성병에 걸린 다른 군인의 성기를 면도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치질에 걸려서 여자 친구 생리대를 써봤던 이야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담을 풀어 놓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는 돈을 벌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다가 아니고 자신의 반지하방에서 즐겁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에 평범한 20대 청년의 이야기구나 하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런데 모든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경험담을 풀어 놓을 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너무 마음 아파서 자살시도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살아남은 이후에는 자신에게 약을 판 사람에게 고맙다는 메일까지 보낸다. 이쯤 되자 더 이상 저자에게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또 어머니를 생각하는 못난 자식의 모습을 보여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자신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권장하면서도 어머니가 휘말려서 다쳤을까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사물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조금 독특하고 날카로운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랑에 울고 웃는 자신의 일상부터 정치이야기까지 이야기는 거침없는 물살을 탄다. 어떤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가 록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순간부터였다. 현재의 주업이 영화기자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록키와 교차되는 스탤론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었다. 사실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아서 행복하기만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시절에 록키의 책을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그 때 록키의 저자가 스탤론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탤론은 근육질의 액션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영화 록키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그 책은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한참이 지나 보게 된 영화도 감동적이었다. 그 이후 시리즈는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록키 덕분에 스탤론은 알게 모르게 호감을 갖게 된 배우였다. 그런 배우의 인생을 영화와 교차해서 말해주니 그 때의 감동이 다시 되새겨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고 기억을 퍼 올려서 감동하기도 하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좋은 책은 많지만 동시에 모든 좋은 책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에 의한 것이지만 말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저자의 일상도 좋았지만 잊고 있었던 록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주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 이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흘러가듯 살아지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독거리는 책이라 문득 '거위의 꿈'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록키처럼 다시 달려보거나.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평범한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굳이 선두에 서지 않은 삶도 충분히 즐겁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가 떠오르네요.
형식은 다르지만 속에 느낌은 유사하군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고민많은 20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나를 세울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P110)